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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지구촌] 복지국가 독일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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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21 이름으로 검색 조회 2,559회 작성일 01-09-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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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복지국가 독일이여, 안녕!

슈뢰더의 획기적인 세금감면안 상원 통과… 노후 책임은 개인의 어깨로

(사진/이번 조세개혁안 통과는 콜 전 총리(오른쪽)의 부패스캔들 이후 새로운 여성총재가 된 안겔라 메르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으며 슈뢰더(왼쪽)의 입지를 강화시켰다)


21세기 ‘독일 자본주의’의 모양새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조세개혁안을 둘러싼 오랜 공방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슈뢰더 정부가 마련한 ‘21세기를 향한 조세개혁안’이 최근 연방상원에서 전격적으로 통과됨으로써 여야간에 벌어진 치열한 힘겨루기 싸움은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 정부의 최종승리로 끝을 맺었다.

이른바 ‘독일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조세개혁안’이 독일국민들에게 오는 2005년부터 연간 600억마르크(약35조원) 정도의 세금부담을 덜어주게 됨에 따라, 독일경제는 이제 80년대 레이건과 대처 정부 아래 추진되었던 미국과 영국의 조세개혁에 버금가는 대수술을 앞두게 되었다. 획기적인 세금감면을 통한 구매력의 상승이 침체에 빠진 독일경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슈뢰더 정부의 장밋빛 약속에 독일사회는 일단 손을 들어준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정체상태’라는 이미지로 상징되는 콜 정부의 경제정책과, ‘계급투쟁’이라는 이미지로 덧칠된 오스카 라퐁텐 전 재무장관의 경제정책을 모두 뛰어넘자는 슈뢰더 총리의 ‘개혁노선’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이로써 원전폐쇄조처와 조세개혁안 등 굵직한 타협안들을 잇따라 이끌어낸 슈뢰더 총리의 정치력은 더욱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에게도 희소식


이번 조세개혁안은 크게 세 가지 내용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 우선 현재 최저 22.9%, 최고 51%인 개인소득세율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낮아져 2005년부터는 각각 15%, 42%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연간소득 4만마르크 수준의 독신노동자에게는 연간 약 2천마르크, 연간소득 50만마르크 수준의 고소득 전문직종사자에게는 연간 약 1만5천마르크 정도의 세금감면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약 450억마르크가량의 세금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독일국민들의 주머니는 여느 때보다 한층 두둑해지는 셈이다.

또한 이번 조세개혁안에는 배당소득을 받는 개인투자자들의 세금부담을 크게 덜어줄 조처들이 담겨 있다. 기업에 부과하는 법인세율 역시 30%에서 25%로 낮춰졌으며, 개인투자자들은 이제 배당소득의 50%에 대해서만 세금을 납부하게 된다.

기업들이 자유로운 인수·합병·매각에 뛰어들도록 유인하는 방안은 조세개혁안의 또다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매각 뒤 발생하는 소득의 60%만이 세금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데 반해, 이번 조세개혁안을 통해 이제부터는 최소 1년이 지난 다음 매각한 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전액 세금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지금껏 독일경제를 특징지어온 높은 세금부담이 영·미식 자본주의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엄청난 마이너스효과를 낳고 있다는 진단은 사실 90년대 들어 널리 받아들여졌다. 독일경제의 개혁이란 곧 조세개혁이라는 공감대가 재계는 물론이려니와 노동계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마련된 셈이다. 90년대 초 콜 정부 아래에서 조세개혁을 위한 첫 시도가 이루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오스카 라퐁텐이 이끄는 야당 사민당은 소득세율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려는 기민당의 시도에 날카롭게 맞섰다. 의회를 통과한 정부안은 연방상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사민당의 봉쇄조처에 의해 끝내 좌절됐다.

98년에 이뤄진 정권교체로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무척 흥미롭다. 집권 초기 라퐁텐 재무장관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슈뢰더 총리는 한층 홀가분하게 독일경제를 대수술하는 개혁안을 내놓고서 야당인 기민당을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기민당은 자본력에서 뒤떨어지는 유한회사형태의 중소기업에 더많은 세제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최고소득세율을 더욱 낮출 것을 고집하는 등 다양한 이해를 대변하는 인상을 심어주려 애썼다. 기민당은 지난 6월 하원을 통과한 정부안을 연방상원에서 좌절시키며 슈뢰더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중재위원회마저 중도에 좌초한 끝에 여야는 마침내 표대결이라는 마지막 대승부를 벌인 것이다.


표결에서 패배한 기민당은 ‘초상집’




(사진/이번 조세개혁안에는 배당소득을 받는 개인투자자들의 세금부담을 덜어줄 조처들이 담겨 있어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기대된다. 사진은 독일의 증권거래소)


하지만 조세개혁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사실 사민당과 기민당 사이에 아무런 근본적인 이해대립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조세개혁안의 통과를 둘러싸고 야당인 기민당이 끝까지 사민당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 맞선 데는 이제 곧 임기 후반부에 접어드는 슈뢰더 총리에게 힘이 급격하게 쏠리는 걸 막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오히려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민당 지도부의 이같은 의도와는 달리 베를린, 브레멘, 브란덴부르크 등 기민당과 사민당이 공동정부를 이루거나, 혹은 기민당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주의 대표들은 슈뢰더 총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슈뢰더 총리로서는 분명한 정치적 승리를 챙긴 셈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재정에 허덕이는 이들 주정부에 연방정부의 막대한 예산지원 약속이 배후에서 이루어진 걸 두고서 기민당 지도부는 “추악한 거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기민당의 이런 주장에는 중요한 시점에 당한 정치적 패배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속내가 짙게 뭍어 나온다.

특히 콜 전 총리의 부패스캔들 이후 침체에 빠진 기민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던 첫 여성총재 안젤라 메르켈이 정치력을 시험받는 첫 무대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데 대부분의 언론은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슈뢰더 현 총리에 맞서는 다음번 총선을 앞두고 보수색채가 한층 짙은 에드문트 슈토이버 바이에른주 총리의 입김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진단을 조심스레 내놓기도 한다.

한편 여야가 벌이는 정치적 공방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번에 최종적으로 통과된 조세개혁안에 담겨진 의미에 대해 좀더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조세개혁안의 통과를 저지하려는 기민당에 대해 역설적이게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재계진영이 거의 한목소리로 ‘개혁반대세력’이라는 딱지를 서슴없이 붙인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조세개혁안의 열매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점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세금이 줄어듦으로써 독일국민들의 주머니가 한층 두둑해졌다는 사실 한 가지가 이번 조세개혁안의 모든 걸 말해주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 소득세율의 감소로 인해 고소득자들에게 더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잠시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번에 통과된 조세개혁안은 좀더 많은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고 기업들의 자유로운 인수합병을 촉진함으로써 독일경제를 ‘투기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변질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독일 자본주의’ 방향 틀다


지금껏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온 복지국가의 몰골이 줄어든 세금만큼 더욱 쪼그라드는 것 역시 당연한 귀결이다. 오히려 개인의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개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새로운 시대정신만이 두둑해진 개인의 주머니를 무기삼아 힘을 발휘하리라는 전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개혁조처의 제2탄은 연금개혁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각 개인의 노후에 대한 좀더 많은 책임은 개인의 어깨 위로 옮겨질 것이다. ‘독일역사상 가장 근본적인 조세개혁안’이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독일 자본주의’라는 낡은 잔재를 서둘러 털어내려는 발걸음은 한층 빨라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브레멘=최우성 통신원morgen@hanimail
한겨레21 2000-08-03 03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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