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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 68혁명과 한국의 6월항쟁

페이지 정보

작성자 freiheit이름으로 검색 조회 8,203회 작성일 02-03-15 0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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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386세대가 있듯이 독일에는 68세대가 있다. 1968년 학생운동을 통해 개혁된 사회가 30년을 넘게 '성공적으로'성장하며 68혁명에 동참한 세대가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동안 생긴 말이다.

1967년 6월 2일, 이날은 독일의 역사를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베를린 학생 기독연맹 소속의 평화주의자 베노 오네조륵(Benno Ohnesorg. 26)이 시위중 경찰이 쏜 실탄을 맞고 사망한 것이다. 당시 베트남전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평화시위가 한창이던 중 페르시아(現이란)의 인권문제가 독일에서는 크게 대두되고 있었다. 오네조륵이 경찰의 실탄에 맞아 사망한 이날은 페르시아의 왕이 독일을 공식방문(Staatsbesuch)을 하는 날이었다. 페르시아 출신 학생들과 독일학생들은 왕권 하에 인권을 무시했던 그의 방문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베를린에서 벌였고 그 과정에서 오느조륵이 사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문제는 한 시위 참가자의 사망뿐 아니라 경찰의 발포가 이미 계획된,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독일의 급진운동세력 형성이 가속화 됐고 그 운동세력은 익년 독일의 68혁명을 이끄는 주도적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의 6월 항쟁, 정확히 20년 전의 사건이었다.

'386세대 끌어안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한국의 일부 정당들의 움직임을 타고 386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 요즘, 386이라는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낸 이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도 386세대에 속할 수 있었음에도 결국 그 세대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영원히 우리에게 20대 친구로 남아 있는 이들이 과도기에 성장해 어중간한 우리에게 386이라는 새로운 세대를 '부여'해 주고 떠난 것이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사실발표가 도화선이 된 한국 87년의 6월 항쟁은, 물론 독일의 68혁명과 그 목적에 대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와 연관을 맺으려는 이유는 사건발단의 유사성과 그리고 차후 당사자들에 대한 처우가 두 나라간에 두드러질 정도로 다르게 나타나는 점 때문이다. 일부에서만 여전히 '재야운동단체'의 이름으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단체가 있는 한국의 현실과, 정당과 정부의 차원에서 68년 학생운동의 주도했던 사람들을 거리 이름으로 영원히 간직하자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부러움, 그 이상이다. 그 첫번째로 언급된 학생운동의 주역은 역시 '두츠케(Dutschke)'였다.

사회 정치의 급진적 개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점진적으로 없애자는 독일의 68혁명은 68년 부활절기간을 통해 본격화되었고 시위를 이끈 Rudi Dutschke가 뮌헨출신 노동자인 요셉 에어빈 바흐만에 의해 4월 11일 테러를 당함으로 정점에 달한다. (사건 발생 6일전 마틴루터 킹 목사가 역시 테러를 당해 숨졌다) 바흐만은 68년 4월 11일 베를린에 도착, 두츠케가 대변인으로 있는 학생단체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렸다. 두츠케는 갓 태어난 아들을 위해 약국으로 가는 길이었고 그 길목에 있는 사무실에 들린 것이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길 들은 그는 길건너 기다리고 있는 바흐만에게 다가간다. 이미 바흐만은 외투 속에 낡은 권총 한정을 숨기고 있었다.

"당신이 두츠케요?" 그 질문 한가지만 던진 채 바흐만은 총을 꺼내 두츠케의 머리에 세발을 쏜다. 이후 두츠케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지만 결국 뇌의 손상으로 언어를 비롯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고 두츠케의 부인 그레첸 두츠케(현재 아들과 함께 미국거주)는 남편의 회고록에서 밝혔다. 이러한 사건이 한 개인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믿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 내막을 궁금해 했으며 이가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독일의 68 혁명은 학생 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지금 독일 정치를 이끌고 있는 슈뢰더 수상과 외무부장관 요시카 피셔,Joschka Fischer, 역시 68혁명 세대들이다.) 당시 독일에서 베트남전으로 인해 '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던 미국 출신의 여인(그레첸 두츠케, Gretchen Dutschke)과 결혼한 두츠케는 한 때 동료들에 의해 변절자로 간주될 만큼 당시 독일 학생운동단체는 미국과의 관계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독일은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세계 경제 대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흔히 독일이 한국보다 한 20년은 앞서 있다고 어림잡아 평가하곤 하는데 실제로 학생운동사를 비교하다보면 그 20년이라는 수치가 마냥 근거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독일의 오네조륵이 경찰의 실탄을 맞아 사망한지 20년 후인 1987년 같은 달, 한국에서는 그와 유사한 비극이 발생했다. 이한열군이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을 맞고 사망(뇌사)한 것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의 진상을 밝히려는 학생시위가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범국민 반정부 시위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오네조륵의 죽음과 두츠케에 대한 테러, 그리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의 죽음, 20년의 차이를 두고 두 나라 사이에서 발생한 이 사건들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를 하나되게 묶어주고 보다 발전된 민주사회의 밑거름이 된 그들의 고마움을 되새기고, 이제 그들의 덕으로 사회를 이끄는 중심에 우뚝 선 386세대는 80년대의 뜨거운 젊은 가슴을 늘 품고, 언제고 희생당한 이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용'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베를린천사 1999년 9월 17일 창간호 freihe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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