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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통일논단] 통일에서의 제3의 길 -독일통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림이름으로 검색 조회 5,848회 작성일 02-03-14 18:29

본문

◆ 독일 통일의 타산지석

한국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점차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배우며 자라난 우리 국민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여기에는 몇 년 전부터 심각해진 북한 식량난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북한의 비참한 경제난에 대한 소문들은 통일이 되면 남한이 북한 주민 2천만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도록 했다. 대체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또한 휴전선이 사라지면 남한으로 대거 넘어올 것으로 생각되는 북한 난민들을 단지 동포라는 이유만으로 환영할 수 있을까?

게다가 '6.25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금융위기가 남한을 강타하면서 이러한 회의는 거의 공포로까지 부풀어 올랐다. 서울역에서 잠자는 가출 가장들을 보라. 목구멍이 포도청, 우리 먹고 살기도 정말 이렇게 힘이 드는 판에...

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면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만큼 북한의 사정에 대해서는 캄캄했고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지만, 어쩌면 이는 "어떻게든 되겠지" 혹은 "하면 된다"라는 우리 특유의 '무대뽀 정신'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민간의 통일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던 80년대에 운동권에서 통일 논의를 활성화시켰던 것은 분명히 필요했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90년 이후 독일의 통일과 그 후 상황을 지켜보면서 통일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끝없이 소요되는 통일 비용과 10년이 지나면서 가까워지기는커녕 서로 간의 편견과 불신만 확대 재생산하는 동서독 사람들에 대한 관찰은 한국인의 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 민족주의에 대한 회의

통일 한국의 강대국화와 같은 통일에 대한 환상, 이산가족의 눈물로 대표되는 통일에 대한 감상적 접근 방식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면서, 이제 우리는 갑자기 냉혹한 현실 앞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환상과 감상은 모두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족주의는 '반공'보다도 그 뿌리가 깊으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우리들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통일에 대한 거부는 민족주의에 대한 반역으로 자각되면서 우리를 거의 자기분열의 상태에까지 몰아가고 있다.

▶ 나쁜 선례가 된 독일 통일

이제 우리들은 남북 통일이 이제까지처럼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지상과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렇게 태도가 변화한 중요한 이유로 독일 통일 과정의 문제점들을 들고 있다. 독일 통일은 우리가 한반도 통일을 생각할 때 깊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반면교사'인 것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북한이 각각 체제를 유지하면서 평화공존하는 통일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95년 7.7%에서 98년말에 11.8%로 늘어났다고 한다.

휴전선이 가까운 시일 내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의 강렬한 인상이 아직 남아있던 1994년에는 이 비율이 73,8%에 달해 당시의 희망에 부푼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1년 후에는 50,4 %였고 98년 말에는 33 %에 불과했다.

90년대 초 만해도 독일 통일은 우리에게 열광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방되는 사진은 언제 보아도 우리에게 부러움 뿐만 아니라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켜왔다.

그러나, 냉전 시대 분단의 경험을 공유해 온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리의 심정적 친근함은 자연스럽게 독일 통일의 문제점으로부터 한반도 통일에 대한 회의로 우리의 생각을 이동시킨다.

게다가 "한국보다 몇 배나 경제 규모가 큰 서독이 북한보다는 경제가 건실한 동독을 '인수'해서도 저 모양인데, 그에 비하면 경제력이 부족한 남북한은 비슷한 방식의 통일을 하게 되면 대단한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재건 작업은 동독에서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소요될 것이며, 북한 난민의 남한으로의 유입은 독일에서보다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자들은 통일이 정치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인간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았다고 본다. 이는 통일이 두 체제의 장점을 종합하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아니라, '우월한' 서독 체제가 '열등한' 동독 체제를 흡수 통일하면서 흡수된 동독 사회의 모든 면들이 비난받고 부정되고 있는 현재 독일의 모습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독인들의 반발을 초래해 양측이 심리적으로 오히려 더욱 분열되어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콜 정부가 국내외의 모든 회의적 견해들을 무시하고 단숨에 밀어부쳐 성사시킨 전격적 흡수 통일 방식의 당연한 귀결이라 보여진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최소한 당시 독일 국민과 정부보다는 더 신중하게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앞선 자를 배울 수 있는 뒤에 오는 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독일과는 다른 방식의 통일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즉 북한이 개방된 후 남북한이 당분간 분단을 유지하고, 북한이 한국의 도움으로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이루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도기가 오래 걸려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이를 경제적,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여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질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활용되어야 하는 귀중한 시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독일 통일에 놀란 북한

어쩌면 독일 통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국은 이러한 점진적 통일 시나리오에 훨씬 접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남북한 간에 무력 포기, 군비 감축, 이산가족 상봉, 문화와 경제 협력을 위한 협정들이 추진되고 있었는데, 독일 통일과 함께 이러한 접근을 북한 정부가 거부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구 동독 지도부가 걷게 된 불행한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북한은 한국의 일부에서 제기하는 통일 논의에 대해 독일식 흡수통일 의도라고 경계해 왔고, 이는 현재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에 대한 의심에까지 이르렀다. 이때부터 더욱 꼬이기 시작한 남북한 관계는 더욱 냉랭해지기만 했다.

▶ 통일에 있어 '제3의 길'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회 발전이란 요원하다. 그리고 이는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통일이 내포하고 있는 허다한 문제점들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경계한다면 이는 능히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통일이 미리 이루어진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행운이다. 이는 우리가 통일에 대해 좀더 냉정하고 실용적 자세를 취하도록 도울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베트남과 같은 무력통일도 아니요 독일과 같은 한 체제에 의한 다른 체제의 병합도 아닌 '제3의 길'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들이 나아간 길을 택할 수 없음이 역사를 통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독일의 통일이 당시에는 각각 새로운 실험이었듯이, 우리의 통일 역시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 실험이 될 것이다.

- 김림 베를린천사 1999년 10월 18일 제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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