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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인물]동독의 잔다르크-노이에스포룸 지도자 베르벨 볼라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5,655회 작성일 02-03-14 17:31

본문

◆ 노이에스포룸 지도자 베르벨 볼라이

1989년 가을 동독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노이에스 포룸(Neues Forum)에는 베르벨 볼라이와 엔스 라이히라는 걸출한 두 지도자가 있었다. 이 중 베르벨 볼라이는 '혁명의 어머니', '프렌츠라우어 베르크의 쟌다르크'라고 불리며 노이에스 포룸을 이끌었다.

boley1.gif1945년 태어난 그녀는 동독의 집단주의 교육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자라왔다. 미술을 공부한 그녀는 베를린 조형예술가 협회를 이끌기도 했다. 80년대 초 동서독 양편에서 군비 확장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동독의 새로운 국방 관련 법을 반대해 비밀경찰의 요시찰 인물이 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영국 여성과 평화운동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는 이유로 슈타지에 의해 간첩 혐의로 84년 초 체포되어 6주 간 갇히는 몸이 되었다.

▶ 동독의 잔다르크

당시 그녀는 동독 재야의 핵심단체이던 '평화를 위한 여성' 단체의 중심 인물이었다. 1986년 다른 민권운동가들과 함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결성했는데 이는 체코의 카르타 77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이 무렵 그녀는 서독 녹색당 지도자이던 페트라 켈리와 교유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방하원 의원이던 페트라 켈리는 정기적으로 동독 재야 지도자들과 만나 그들에게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제공했다. 호네커 서기장이 87년 본을 방문했을 때 켈리는 볼라이의 그림을 선물했다고 한다.

1988년 동독 정부는 볼라이를 체포했는데, 수많은 민주화 지도자들이 서방으로 추방되던 당시에 그녀는 감옥에서 싸워 동독 체류 권리를 얻어냈다.

1989년 9월 9일 베르벨 볼라이는 다른 야당 지도자들과 함께 89년 동독 민주화 운동을 이끈 노이에스 포룸을 결성했다. 그 당시 볼라이는 "나는 완전히 변화된 동독, 성숙되고 자율적 시민을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 베를린 장벽 개방 비판

그러나 '잔다르크'로 불리던 볼라이는 결국 민중의 영웅이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서베를린으로 몰려 가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 있고 성숙한 동독 시민에 대한 꿈이 무너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은 미쳤고 정부도 이성을 잃었다"고 베를린 장벽 개방을 비판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정치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 그녀는 일관성 있게 동독 구 비밀경찰 슈타지의 범죄를 추적하는데 힘썼고 만프레드 슈톨페 브란덴부르크 주총리와 그레고르 기지 민사당 하원대표의 슈타지 관련 의혹을 파헤쳤다. 기지가 그녀를 고소해서 법정이 그녀가 기지를 "Stasi-Spitzel(슈타지 끄나풀)"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자 그녀는 그를 "Stasi-Spritze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볼라이는 이 새로운 시대에 시민운동을 구해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그녀의 개인주의적 성향 역시 조직에는 맞지 않았다. 그녀 없이는 노이에스 포룸도 불가능했다.

1995년 10월 그녀는 또 한번 금기를 깨버렸다. 그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헬무트 콜 연방총리를 맞이했는데, 콜은 1990년 당시 동독 민주운동 세력의 통일에 대한 회의적 견해와 충고들을 철저히 무시했던 장본인이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동독 민주세력의 기민당 입당이 가속화되었으며 이는 결국 동독 시민운동의 마지막이었다.

볼라이는 오늘날 89년 동독 민주화 운동 지도자 중에서 의원직이나 공직을 갖지 않은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서 여전히 많은 논쟁들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boley.jpg1996년에 볼라이는 다시 한번 별로 전망 없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보스니아 재건을 돕기 위해 달려간 것이다. 거기서 그녀는 동독의 옛모습을 보았다. "피곤하고 회색빛의 완고한 얼굴들, 뛰어 가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등은 60년대나 70년대 동독의 모습"이라고 그녀는 썼다. 보스니아의 무너진 집 옆에서 찍은 한 사진은 볼라이가 프렌츠라우어 베르크의 집 뒤뜰에서 찍은 사진과 너무도 비슷해 보인다.

- 슈피겔 99.9.27 참고 gosrani(gosrani@berlin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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