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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통일의 주역 - 겐셔 외무장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6,588회 작성일 02-03-14 17:20

본문

◆ 겐셔 누구인가

▶ 통일의 주역 - 서방세계 최장수 외무장관

genscher.jpg외교의 비스마르크, 한스 디트리히 겐셔(72세 - 1927년 동독 할레 출생)는 콜과 함께 독일 통일의 주역이다. 그는 오랫동안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외교 철학과 관련,'겐셔리즘'이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서방 일변도의 독일외교를 동쪽으로 확대해 동서 균형과 화해, 실리를 추구한 그의 '탈서구적' 외교노선은 '겐셔리즘'이라 불렸다. 동서간에 적절한 균형을 추구하는 '겐셔리즘'은 독일통일에 매우 효과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겐셔는 통일 당시 산전수전 다 겪은 외무장관이었다. 그는 74년부터 92년까지 무려 18년 간이나 외무장관을 지냈다. 이는 소련의 그로미코 다음으로 장수한 기록이다. 그가 오랫동안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쌓은 신뢰와 인간관계도 독일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통일 당시 그의 소련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와의 친교 관계가 없었다면 독일통일은 훨씬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그의 통일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통일 외무장관으로 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한때 독일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나 소수당 출신(자민당) 당수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92년 건강을 이유로 외무장관직을 사퇴해 지금은 평의원으로 남아 있다. 그는 95년에 회고록을 냈다.

1952년 친구 두 명과 함께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넘어온 그는 52년까지 동독에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독과 통일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것이 이에 대해 현실적인 안목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통일당시 서독정부 내 여러 부처들이 동독의 경제난을 과소평가했던 것에 대해 늘 놀라워 했다. 동독의 경제 실상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과대평가는 콜에게서도 그대로 발견되는 바, 통일 당시 동독에 대해 비교적 현실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던 겐셔가 외무장관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독일을 위해 다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서독의 외교정책 주조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서독을 경제적으로 지금의 유럽공동체에 통합시켰다. 프랑스의 대통령 드골과 함께 이 백발의 독일인은 천적을 운명공동체로 탈바꿈 시켰다. 특히 그는 미국 지향적이었다. 유럽공동체나 나토와 같은 서방진영 내부로의 완전 동화에 우선적인 중점을 두는 그의 서방결속정책은 2차대전후 서독정부의 외교정책을 오랫동안 각인한다.

그러다 1969년 10월 21일 빌리 브란트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외교에 새 바람이 분다. 그는 "이제 진짜 제대로 시작하는 겁니다"(Wir fangen erst  richtig an)라고 첫 일성을 터뜨렸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그의 집권은 68년 학생운동이 주도한 사회분위기에 부합됐다. 브란트는 아데나워 시대에 대해 일종의 시계추의 균형을 잡는 상보적 역할을 해냈다. 동방정책은 서구 편향을 보충했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하라"는 구호는 "어떤 실험도 없다"는 구호를 보충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서독은 서방결속이라는 확고한 기반을 만든 후 동서독관계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력들의 첫 성과가 70년대 초반에 나타났다. 소련,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등과 체결했던 '동방조약'이 그것이다.

74년 간첩사건으로 브란트 총리가 물러 나고 슈미트 정권이 들어섰을 때 겐셔는 외무장관이 되어 18년을 장수하면서 독일통일까지 맞이하게 된다. 브란트 정권이  동방정책으로 서구 일변도적인 편향을 벗어난 것을 디딤돌로 해서 그는 서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보다 자유롭고 소신있게 동서 균형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그의 첫 작품이 헬싱키조약이다. 브란트 시대의 동방조약들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로 가는 길도 활짝 열어주었다. CSCE는 모든 유럽국가들과 미국 및 캐나다가 참여, 공존과 협력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것으로 소련에 의해 그 기본구상이 제시된 것이다. 여기서 1975년 합의된 헬싱키 최종협정은 유럽 내 상황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길을 열어주었다.

겐셔는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도, "독일민족은 통일 요구와 함께 자유로운 자결권을 갖는다"는 서독의 정치적 목표를 고수하면서, 헬싱키협정 내용 안에 '국경의 평화적인 변경도 가능하다'는 원칙이 삽입되도록 관철시켰다. 즉, 동서독 양측이 원한다면 양독 간 국경선을 제거할 수 있다는 내용인 것이다. 소련은 처음에는 격렬히 반대했으나, 설마 이런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결국 동의함으로써, 독일은 결국 통일을 위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중요한 실리를 확보하게 것이다.

이 헬싱키 협정은 이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인적교류가 행해졌으며, 동서독인 간에 민족적 연대감과 동질성이 강화되고 동서 대화도 증가하게 되었다.

80년대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될 때는, 서독이 앞장서서 소련의 SS-2 미사일에 대항해 미국의 퍼싱2와 크루즈 미사일 배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일은 동쪽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춰속에서도 힘의 우위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genscher2.jpg◁ 90.7.12 본에서. 가운데 겐셔. 오른쪽 고르비.

그는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숨가쁜 외교를 벌이면서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 '2+4' 회담 등을 통해 동서간 균형을 유지해 나갔다.그가 주조한 서독의 외교정책은 모든 이웃국가들에 신뢰를 형성하는 정책을 통해 통일의 터전을 준비해온 것이 주요특징이다.

▶ 통일에 대한 당부

그는 동서독인들이 수십년에 걸쳐 서로 다른 생활과 경험을 한 것에서 발생한 차이를 단숨에 극복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서독인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아주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동독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 대해 연대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주변 국가들과 강대국들이 독일 통일에서 여러가지 기회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한국도 한반도 분단이 이 지역에 위험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 통일이 이 지역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이웃국가들에게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특히 서독은 꾸준히 신뢰를 쌓은 결과, 미국정부, 특히 부시 대통령과 베이커 국무장관으로부터 아주 효과적인 지원을 받았다. 잇따른 협상과 대화들에서 미국정부의 이런 태도는 소련지도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변수로 작용했다.

주변국가에 대한 신뢰구축과 함께 또한 그는 1989년처럼 통일기회가 왔을 때, 좋은 여건을 이용, 빨리 행동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일은 시간이 언제나 독일편이라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서둘렀는데 그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91년 모스크바에서의 쿠데타 기도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재빨리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베를린천사 1999년 10월 3일 제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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