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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동서독 화폐통합 5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940회 작성일 02-03-08 02:07

본문

  
  ■     동서독 화폐통합 5년
          (Die Zeit, 95.6.30, 20 , Mario M ller 기명)
  
   1990년 7월1일 서독화폐인 도이치마르크화(DM)의 효력범위
가 구동독지역에까지 확대되는 이른바 화폐통합이 실시되었다.
구동독주민들은 경제통합과 사회통합을 전격적으로 가능하게
했던 5년전의 이 화폐통합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구동독 주
민들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요구 못지않게 서독 마르크화
의 흡인력에 의해 구동독에 정치적 변혁이 촉발된것도 사실이
다. 당시 동독주민들은 "도이치 마르크화가 동독으로 오면 우
리는 여기에 머무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서독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구호만큼 당시 통일에 있어 경제적
인 모티브가 얼마나 강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구호는 없을
것이다.

   서독의 돈을 적재한 화물차량들이 국경을 넘어 동독지역으
로 진입하자 구동독의 승용차들과 주민들은 기꺼이 길을 내주
며 환영했다. 서독의 표시를 단 화물차량들이 얼마나 소중한
물건들을 운반하고 있었는가는 알아차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
았다: 약 280억 마르크에 해당하는 총 600톤의 은행권과 500톤

의 동전들을 실은 화물운송행렬을 동독경찰과 인민군은 헬기까
지 동원해 에스코트했다. 수개월전만해도 사회주의의 보존을
위해 존재하던 인민군대가 적인 자본주의 화폐의 안전한 수송
을 위해 이같이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
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운송작업은 바로 구동독 국가은행
이 기획하고 서독연방은행(분데스방크)이 지원함으로써 이루어
진 것이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 양독이 시도한 이같은 모험은 역사상 유
례가 없는 것이었다. 당시 화폐통합을 준비한 한 인사는 "우리
는 참고와 선례가 될만한 결정적인 문헌을 찾아 헤맸지만 헛
수고였다"고 회상한다. 화폐통합은 급박하게 진행되었었다.
1990년 3월 18일 구동독에 새로운 정부가 선출된 후 동서독은
도이치 마르크(DM)화의 화폐영역을 동독지역까지 확대하자는
콜수상 제안을 기초로 화폐통합 협상을 시작했는데, 한달 후
통화조약에 서명작업이 있었고, 이 조약은 7월 1일을 기해 전
격적으로 효력을 발생했다.

   화폐통합과정에서는 무엇보다 동독 마르크화와 서독의 도이
치 마르크화의 적절한 교환율을 찾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
다. 급속한 화폐통합에 반대한 서독연방은행은 양 지역의 경제
적 격차에 상응하는 교환율을 제의했으나, 연방정부는 사회적
분위기와 동독지역 유권자들을 고려해 구동독주민들에게 유리
한 1:1 교환율을 고집했다. 결국 경제적인 논리에 앞서 정치적
인 논리가 관철되었고, 이는 후에 경제적인 휴유증을 낳게 된
다. 임금은 1:1 교환율을 따랐으며, 금융자산은 평균 1:1.8 (도  

이치 마르크 : 동독 마르크)로 교환되었다. 한편 전체적인 화폐
통합과정에서 콜수상에 추월당했다고 여긴 연방은행 ㅍ총재는
총재직을 사임했다.

   이같은 진통과 커다란 과제를 안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
서독 화폐통합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구
동독 국가은행은 기능을 중지했고, 서독연방은행은 15개의 지
점을 설치하는 등 자체조직을 확대했다.

   연방은행은 여타 통화정책적 결정을 내릴 때는 보여주지 못
했던 대담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즉 연방은행은 동구블럭국가
로의 컴퓨터수출시 요구되었던 COCOM (대공산권수출통제위
원회)의 예외적인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이같은 허가없이 전산
시설을 구동독지역에 확충했다. 연방은행본부가 6월중순 당시
동베를린지역에 있는 제국은행 건물로 이주한 후 지점간 내부
적인 통신문제도 해결되었는데, 이는 제국은행 건물내에 구동
독 국가보위부가 설치해놓은 유일하게 현대적인 전화망을 사
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방은행은 또한 화폐통합이 진행되는 동안 유례없이 관대
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구동독 주민 1인당 현금유통량이 과거
에는 1,000 동독마르크 규모였음에도 불구하고 화폐교환을 위
해 1인당 2,600 도이치 마르크를 준비했는데, 이는 구동독주민
들이 도이치 마르크에 대한 KUSH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
나 매진(賣盡)의 우려는 곧 근거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월초
며칠간 구동독주민들은 함께 약 40억 마르크정도만 자신의 구  
좌에서 현금으로 찾았다. 당시 구동독주민들의 현금수요가 이
같이 낮았던 이유는 이들이 이미 1989년말 설정된 여행자외환
기금 등 을 통해 이전에 상당한 금액을 이미 도이치 마르크
(DM)화로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독지역에 독자적인 은행을 개설해 자국군대를 물질적으로
지원해 온 소련계 금융기관도 지체없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도이치 마르크를 수송하러 고위 장교를 대동한 수송화물차를
보냈다. 연방은행은 화폐교환시 지폐를 제공하는데는 별 어려
움이 없었으나 동전의 경우 조폐창에서의 작업이 늦어 공급난
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구동독의 동전이 계속
사용되기도 했다.

   이같은 사소한 일들을 제외하면 화폐통합이라는 거대한 작
업은 독일적인 철저성을 극명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7월 1일과
2일 동독주민들은 처음으로 1만개의 은행, 관청, 경찰서, 학교
등에서 지불영수증을 제시하고 최고한도 2,000 도이치 마르크
를 받아갈 수 있었다. 도이치 마르크화가 동독지역에 효력범위
를 확대하기 전날인 6월30일까지 총 2천5백만개의 동독구좌가
도이치 마르크화로 전환되었다. 현금이 사용되지 않은 신용거
래의 경우에도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었다. 그사이 구동독지역
에 진출한 서독은행들은 자체의 시스템을 고수했는데, 그 결과
교환과정에서 상당한 장애가 나타났으며 송금이 시행되지 않
거나 사라지기도 했다. 최종집계후 교환된 동독돈 화폐는 170
억 동독마르크에 이르렀는데, 이 동독마르크화중 납성분이 많
은 지폐는 환경보호적인 차원에서 소각장으로 가는 대신 광산
에 매립되었다.

  동서독간의 화폐통합이 유럽 화폐통합의 모델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1990년 7월 1일 있었던 도이치
마르크화의 전격적인 도입과 같은 빅뱅(대폭발)이 유럽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은 화폐교환이 갖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연방
은행은 유럽화폐통합을 점진적으로 시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
다. 독일연방은행은 당시 전격적인 화폐통합이 성공했던 것은
연방은행이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했으며 통합에 필요한 인프
라스트럭처를 확보하고 있었고 동기부여된 인력이 있었으며
통합작업이 독일국민전체의 여망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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