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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독일 역사교과서를 읽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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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라니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02-05-16 22:06 조회13,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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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교과서를 읽어봤더니
부끄러운 과거 고백...일본은 배워야
  

독일이 일본과는 달리 2차대전 당시 자신들의 전쟁 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이웃 국가 및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2차대전 희생자들의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그 유명한 장면과 일본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신사참배 문제를 대비시켜 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독일의 시내 서점에 나가서 역사 교과서들을 살펴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독일의 역사교육에 대해 알려져 있는 위와 같은 '선입견'들이 역시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독일의 역사 교과서들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학생들에게 숨김 없이 가르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증언 등의 자료를 많이 담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솔직히 고백

에른스트 클레트 출판사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인 "역사와 사건"은 "아우슈비츠는 사상 최대의 인간 학살의 장소"라고 서술하고 있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헝가리인의 증언을 자세히 인용하고 있다.

또 이 책은 히틀러가 자신의 거짓 평화 약속을 깨뜨리고 이웃 국가를 침략했다고 서술하고 있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당시 강대국이던 영국과 프랑스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려들어갔다고 2차대전의 원인을 독일측의 잘못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회의 소수파에 대한 독재"라는 단원에서는 유태인 탄압 등의 나치의 억압 정책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고, "체코와 프랑스, 폴란드 등 외국을 침략한 독일군이 저항에 부딪히자 부녀자와 노인 등까지 학살했다"고 명백히 기술하고 있다.

이번에는 슈뢰델 출판사의 현대사 교과서인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면 "나치 독재와 2차대전"이라는 단원에 66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테러와 저항, 유태인 탄압 등의 소단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에는 유태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금지했던 뉘른베르크 법령 등을 포함한 인종 정책이 기술되어 있고, 1938년 조직적인 반유태인 폭동인 제국 유리의 밤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유태인 교회당이 불타는 사진을 담고 있다.

또 나치가 7만 명에 달하는 정신박약인와 신체장애인들을 소위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해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며, 집시를 약 50만 명이나 학살한 사실이나 7백만 명 이상의 전쟁 포로와 외국인들을 강제노역 시킨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이 책에는 유태인이 가스실에서 학살되는 장면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스실로 보내질 유태인들은 가능한 한 조용하게 남녀가 분리된 채로 끌려갔다. 탈의실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근무하는 같은 처지의 유태인이 끌려온 유태인들에게 이를 없애기 위해 목욕을 하는 것이라면서, 목욕하고 나서 자기 옷을 다시 잘 찾아 입을 수 있도록 옷 위치를 잘 확인하라고 거짓말을 했다. 안심한 유태인들이 들어가는 가스실은 정말로 샤워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샤워기에서 나오는 것은 독가스였다."

이번에는 디스터벡 출판사에서 나온 고등학교 교과서 "시대와 구조"를 살펴보자. 여기서는 제 5장 나치와 유럽 파시즘, 제 6장 2차대전과 인종 학살 등 총 80여 페이지에 걸쳐서 당시 나치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나치즘의 죄악에 대해 숨김 없이 서술하고 있다.

1933년 나치 집권 이후 1939년까지 자그마치 250여 개의 법안이나 시행령 등을 통해 유태인을 차별하고 탄압했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에도 관련 사진이나 그림이 많이 실려 있는데, 한 판화에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한 유태인이 교수형을 당하고 있고 그 동료들이 옆에서 음악을 연주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바이에른 교과서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인 "역사"를 보면, 1941년 나치가 독-소 불가침 조약을 어기고 소련을 침공해 들어가서 저지른 범죄를 묘사하고 있는데, 소련에서만 이로 인해 2천만명이 사망했고 이 중 1/3이 민간인이라면서, 나치의 동구권 침략은 단지 영토 확장이나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 유태인과 다른 소위 열등 인종을 모두 절멸시키겠다는 의지로 진행된 전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유태인과 다른 민족에 대한 나치의 범죄는 매우 세심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루어졌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면서 유럽에서 유태인이 총 570만명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독일 역사교육의 방침

이러한 독일 역사교과서는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확고한 방침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먼저, 여기서 실제로 독일 교육에서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잠깐 독일 대학입학 수능시험의 역사과목 문제를 한번 살펴보자.

독일 튀링엔주 1999년 수능시험의 역사 과목에서 선택 3문제 중 세번째 문제인데, 문제의 제목은 "나치 독일에서의 유태인"인데, 이 문제는 총 4개의 소문항으로 나누어진다.

1. 나치 치하에서의 유태인 탄압의 전개 과정을 단계별로 서술하고, 여기서 그 각 단계의 목표와 실행 방안을 서술하시오.

2. 유태인 탄압 방법을 담고 있는 나치 선전상 괴벨스 일기의 한 부분을 읽고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하시오.

3.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유태인이 공산주의와 손잡으면 인류의 멸망이 올 것이라면서 자신이 이를 막기 위한 신의 소명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이를 참고로 해 히틀러 이데올로기의 기본 입장을 설명하시오.

4. 바이체커 전 대통령이 1985년 독일의 젊은 세대는 직접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그 전 세대가 지은 죄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를 토대로 소위 집단책임 논쟁이 현재까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시오.

이러한 시험 문제를 보면, 독일 초중등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이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를린 주 정부 교육부의 학교 역사교육 지침 중에서 나치 시대에 관련된 것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나치 이데올로기의 기본 요소와 나치가 등장하게 된 원인과 그 영향, 그리고 인간을 경시하는 파괴적인 특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이러한 나치의 세계관이 어째서 과학적으로는 지탱될 수 없는지를 익힐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당시 독일 국민이 나치즘이라는 당시 상황에 순응하고 나아가 이를 도왔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지를 알게 하고, 나치의 탄압과 인간 학살 시스템이 가지는 비인간성과 반민주주의적 경향과 싸워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라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나치즘의 책임을 일부 당시 권력층에만 돌리지 않고 일반 독일인들이 이를 돕고 함께 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점이다.


독일과 주변 국가의 역사교과서 공동연구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국제 교과서 문제 연구기관인 게오르크 에케르트 연구소는 2차 대전 이후 독일과 이웃국가와의 화해의 한 방안으로 교과서 공동연구를 주창해왔다. 특히 프랑스나 폴란드와의 교과서 공동연구가 성과가 있었다.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뱌 무명용사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후로 독일과 이웃국가의 화해는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독일에 대해 다시 신뢰를 가지기 시작하게 된 폴란드와 독일은 교과서 문제를 협의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 교과서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위원회에서는 서로 간의 역사 해석이 달라 격론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노력 자체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70년대 시작된 양국의 교과서 협의는 이제 두 나라 학자, 교육자들이 교사용 지침서를 공동집필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프랑스와의 교과서 공동연구에 있어서는 역사에 있어 많은 문제에서 서로간의 시각차를 극복하고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된다. 1951년에 독일과 프랑스 간에 유럽 역사의 이견이나 논쟁점에 대한 합의를 채택했고, 그 후에도 교과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양국의 60여 명의 학자들은 지난 1990년 "역사교과서 수정 지침서"를 공개했는데 양국의 교과서 출판 관계자들이 이를 참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 독일과 프랑스는 자신들의 교과서에서 각자 상대방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해 오던 부분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독일은 체코와도 교과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양국은 68년 교과서 공동연구를 시작했는데 잠시 중단됐다가 87년 재개되었다. 독일의 침략 부분과 체코에서 추방된 소수 독일인 문제 등 아직도 상호 간에 뜨거운 감자인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 현재 유럽에서는 이러한 개별 국가 간의 공동 연구를 넘어서서 유럽 전체의 역사 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첫번째 유럽공동교과서는 유럽 13개국 학자들이 1988년부터 4년 간의 노력을 거쳐 1992년 유럽 각국에서 출판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에선 실제로 역사교과서로 채택하기도 했다.


일본은 독일을 배워야 한다

이런 사례를 살펴볼 때 일본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일본과 주변 국가와의 계속되는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일본이 독일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것으로 생각되고, 그 이후에도 양측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공동 연구를 진행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지역의 장기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얼마 전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등 전쟁범죄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는 1995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나치 범죄를 부인하는 이른바 '아우슈비츠 거짓말'과 같은 망언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아직도 금서이다.

독일에는 전 국토의 곳곳에 2차대전의 참회하고 피해자에 대해 사죄하는 기념비, 기념관 등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해서 독일의 2차대전에 대한 반성은 계속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해주는 사건은 현재 새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건립 중인 거대한 규모의 유태인 학살 추모관이다. 이는 독일이 통일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도 결코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보여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철저한 반성과 과거 청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최근 신나치의 준동이 우려되고 있는데, 하물며 과거사에 대해 전혀 깊은 반성을 해보지 않은 일본 사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2001/07/17  OhmyNews에 게재했던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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