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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나치 과학의 긍정적 성과: 흡연과 폐암의 관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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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습이름으로 검색 조회 7,836회 작성일 02-03-15 23:23

본문

◆ 나치 과학의 긍정적 성과: 흡연과 폐암의 관계 발견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과학사가인 로버트 프락터(Robert Proctor) 씨는 "우리는 사태 그대로를 직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태는 물신화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그 역시 이러한 개방성이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프팍터 씨(45세)는 현재 베를린의 과학사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이다. 여기서 그는 나치 시대 과학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보지하려 한다. 즉 그는 "나치 시대 과학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인 것이다. 그에 의하면 나치의 전염병 학자들은 흡연을 폐암의 주요인으로 발견해 내었다.

그는 이 미묘한 연구 과제에 있어서 "Racial Hygiene - Medicine under the Nazis"와 같은 저서를 통해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나치의 잔학한 행위를 명백히 기술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출간한 "The Nazi War on Cancer"에서  나치 시대 암 연구의 잊혀진 '진보적' 측면을 발견해 내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의 연구자들은 Asbest를 암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발견했고, 음식 중 색소가 가지는 유해성을 서술했으며 폐암과 흡연의 관련성을 발견했다. 또한 그들은 이 결과를 가지고 "반 먼지 캠페인(Antistaub-Kampagnen)"을 벌여나가면서 노란 색소(Buttergelb)를 금지하고 흡연 반대 포스터를 내걸었다.

나치는 인명 살상에서만 무자비할만큼 효율적인 방식을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인명을 구하는데에도 그러했다. 물론 그 인명은 아리안족이어야 했지만. 프락터 씨는 "나치는 훌륭한 과학도 이루어냈다. 이 점이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한다.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이 역사가는 위험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고의 금지'를 받아들이기 않으며, 타부인 주제는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 여기서 그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사회학자들이 아는 것의 사회학(지식 사회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왜 우리가 어떠한 것을 알지 못하는지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과학의 실패를 혐오한다. 이에 대항해 그는 여러번 소송을 통해 싸우기도 했다. 그는 40년대에 실험을 위해 임산부에게 방사능이 함유된 철을 제공한 미국 과학자들을 상대로 싸웠으며 이를 통해 희생자들을 위해 1천만 달러의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는 시민운동단체인 Lawyers for Social Justice를 대표해 지난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그러나 그는 폐암과 흡연 간의 관련성을 수십년 간 부인해 온 이들 회사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독일의 조직적 암 연구 10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 프락터 씨는 다시 한번 자극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독일 암연구 센터(DKFZ. 하이델베르크 소재)는 2월말에 열리는 회의에 그를 초대했다. 프락터 씨는 이 자리에서 히틀러와 나치 시대 반흡연 캠페인에 대해 강연할 것이다.

프락터 씨는 "이 회의에서 많은 강연자들이 '제3제국 이전'의 암 연구와 '제3제국 이후'의 암 연구에 대해 많은 긍정적 평가를 할 것이며 제3제국의 연구에 대해서는 부정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측면에서 독일은 나치 시대에 '금세기 최고의 전염병 학'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당시 과학자들은 조직적으로 '아리안 족의 유전인자'를 위협하는 요인들을 찾으려 했다. 이 요인들을 서술한 리스트의 앞쪽에 흡연이 위치하고 있다.

이미 1939년에 나치 당원이며 의사인 헤르만 프란츠 뮐러는 박사 논문에서 흡연과 폐암의 관계에 대해 증명했으며, 2년 후 독일 연구자들은 폐암의 주원인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담배는 '민족의 적(Volksfeind)'으로 선언되었으며 흡연이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비판되었다. 그러나 비흡연자이던 히틀러는 흡연을 전면 금지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담배 소비가 세금 수입원이 되었으며 군인들이 담배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치와 관련된 테마는 언제나 포르노그라피처럼 더럽게 여겨졌다고 프락터 씨는 말한다. 이 때문에 이 테마와 거리를 두고 토론하는 것이 언제나 어려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치의 의학으로부터 무시무시한 교훈들만이 끄집어내지고 있다. 이 때문에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전염병학이 발전하기 어려웠고 당시 흡연 연구의 성과들이 계승되지 못했다.

프락터 씨는 독일 암연구 센터의 25면에 달하는 팜플렛에서 암 위험 요인과 암 예방 등에 대해 다루어지면서 흡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일은 나치 시대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이러한 말이 독일인의 귀에 몹시 거슬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암의 주원인인 흡연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 곳을 '암' 연구 센터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에게는 독일 암연구 센터가 벌이고 있는 반흡연 캠페인이 전혀 충분치 않게 여겨지고 있다.

프락터 씨의 이러한 입장은 그를 언제나 정치적 토론의 치열한 쟁점으로 이끌어간다. 그는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에서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Stephen J. Gould로부터 과학사를 수학했다. 그는 과학계에서 여성의 평등을 위해 투쟁했고, 제3세계 기아 퇴치에 무력한 과학계를 고발했고, 과학의 군사화, 미국의 인종주의와 우생학 운동에 대해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락터 씨는 미국 과학자들이 '거대한 우생학'을 이제까지 무시해 왔음을 깨달았다. 모두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고 있지만 거의 한 사람도 독일의 인종주의 광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대체 당시 과학은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인가? 1980년 그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서 독일로 와 '인종 위생학(Rassenhygiene)'의 역사를 공부했다.

프락터 씨는 이를 통해 곧 수많은 처참한 사태들 외에 '예방적 인종 위생학'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아스베스트, 알코올, 수은, 라디움 등의 환경 독소로부터 유전인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나치 의학이 널리 유포된 악마와 같은 나치 과학의 상과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동료 학자들은 그가 저서인 "Racial Hygiene" 중 한 장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장을 그대로 두었다.

프락터 씨는 여러 극단적 입장 속에서 하나의 태도를 취해야하는 남부 텍사스에서 성장했다. 모계쪽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KKK단에 소속되었고, 외할아버지는 1930년대에 나치 동조자였다. 부계쪽은 이에 반해 자유주의적이었으며 프락터 씨의 아버지는 민권운동가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인종주의적인 일부 가족으로부터도 "니그로 러버"라고 욕을 먹기도 했다.  프락터 씨는 아버지쪽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극단적 사유는 프락터 씨에게도 낯설지 않다. 호전적인 태도로 그는 흡연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인권단체인 Lawyers for Social Justice는 그를 고용해 대기업과 싸우도록 했다. 이 투쟁의 핵심 쟁점은 사회가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언제부터 알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담배 회사들은 이러한 지식이 콜럼부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락터 씨는 특히 폐암의 위험은 미국에서 1954년 이래로 의학적으로 인정되었고, 일반인들은 이보다 더 늦은 1964년에야 알 수 있었다는 논증을 폈다. 그는 그러나 담배 회사들은 이러한 치명적 해악에 대해 이보다 훨씬 이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프락터 씨는 "2차대전 후에 미국 담배 회사 회장들이 독일로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 이 기업인들은 독일의 기업인들과 함께 나치 시대 암 연구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또한 자신들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보건당국들과의 투쟁 전략에 대한 정보도 나누었다. 프락터 씨는 "나는 미국 기업 뿐 아니라 독일 기업들도 고소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문서보관소의 수백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들을 뒤져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들은 담배 기업들이 나치 시대 반흡연 캠페인에 대처하기 위해 발전시킨 전략들을 담고 있다. 프락터 씨는 "당시 미국인들은 독일인들로부터 순식간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 중 중요한 교훈 중 한가지는 반흡연 운동에 대항하면서 비흡연자를 광신주의자(Fanatiker)로 낙인찍는 캠페인을 벌이는 담배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흡연에 대한 두려움을 일종의 신경증과 '불에 대한 두려움(Pyrophobie)' 증세로 매도해 나갔다.

그는 담배 연기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독일에서 흡연자 없는 훌륭한 레스토랑을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저기 앉아서 자살 행위를 하면서 나도 중독시키고 있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담배 회사의 로비스트들은 프락터 씨를 "니코 파시스트"라고 명명한다. 또한 반흡연 운동 로비스트들 중에서도 일부는 그가 나치 시대의 반흡연 캠페인을 발견해 낸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베를린의 과학사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프락터 씨가 처음으로 했던 공식적 행동은 웃으면서 모든 재떨이를 치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 시습 ◀
베를린천사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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