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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독일인의 반유태주의를 말한다(SZ 99.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 이름으로 검색 조회 6,542회 작성일 02-03-09 06:26

본문

작성일 : 1999/08/28  조회수 :243

■ 한 독일유태인
Ein deutscher Jude(SZ 99.8.28/29 Von Mosche Zimmermann 발췌요약)

유럽인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일면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정체성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사람들은 동시에 유럽인이면서 독일인이고 모당 당원이며 60년대의 향수에 젖은 팬이거나 동시에 그 무엇일 수 있다. 정체성이란 상황적 콘텍스트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태인은 항상 유태인일 뿐인가?

독일인이냐 유태인이냐"라는 양자택일적인 정체성의 질문, 그리고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분열된 충성심의 문제가 하필이면 이그나츠 부비스의 경우에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얼마나 뿌리깊게 흔적을 남겼는가를 보게 된다.
(Dass man die alternative Identitaet "Deutscher oder Jude", und damit die Frage der gespaltenen Loyalitaet, ausgerechnet am Beispiel von Ignatz Bubis wieder aktualisiert, zeigt, wie tief die Sp8uren sind, die Hitlers "Mein Kampf" hinterlassen hat.)

또한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 특히 독일에서 얼마나 인종중심주의가 강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Es illustriert aber auch, wie stark der Ethnozentrismus in Deutschland trotz EU heute noch ist.)

물론 이 논쟁에서도 명백히 드러나지만, 이와 관련해서 패러독스하게도 끔직할 정도로 반유태주의자들과 유태인들간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도 묵과할 수 없다. 그 한 예는 막심 빌러의 "위대한 독일인은 없다"(Kein groBer Deutscher)라는 책을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상기한 논쟁을 대충 흝어만 보더라도, 우리는 히틀러가 무덤에서 여유있게 미소지으면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데 반해, 부비스는 무덤에서조차 발딱 뒤집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게 된다.
(Verfolgt man die Debatte ganz allgemein, so kann man sich der Vermutung nicht entziehen, Bubis werde sich in seinem Grabe umdrehen, waehrend Hilter schmunzelnd seine ewige Ruhe bewahren kann.)

이그나스 부비스는 자신을 "마지막에 유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빌러의 의심스러운 찬사에 대해서도 유감스럽지만 만족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말해져야 할 것이 있다: 즉 "Deutsche Staatsbuerger juedischen Glaubens"유태인의 믿음을 가진 독일국적시민"이라는 이말은 나찌정권이 같다붙인 것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해당자 스스로의 자기평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 1933년 이전에도 그랬다. 그리고 전후 1945년 이후에도 그랬다.

"유태인"과 "유태인의 믿음을 가진 독일국적시민"이라는 이 상이한 명칭들을 마치 유태인과 독일인은 서로 화합될 수 없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 바로 이것이 고전주의적인 반태유태주의적 태도이며 또한 민족사회주의(나찌)자들의 태도이다.

유태인들이 19세기말 이래 "유태인의 믿음을 가진 독일국적시민"이라는 명칭을 택한 것(당시 유태인조직의 명칭은 Central Verein der deutschhen Staatsbuerger juedischen Glaubens 였다)은 이들이 반유태주의에게 여지를 주지않으려는 시도였으며, 이것을 명칭으로서 모든 수단을 다해 그들과 대적하기 위함이었다.

Central Verein의 회원들은 "deutscher Jude"(독일유태인)이라는 단어의 콤비네이션에 대해서 어떤 내용적인 문제도 못 느꼈다. 이 조직의 명칭은 후에 "Reichsvertretung der deutschen Juden"(독일유태인의 제국대변단체)로 되었다.

제3제국에 들어와서부터 이 단어의 조합은 나쁜 어감을 띄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체이름은 끝내 "Reichsvertretung der Juden in Deutschland"(독일소재 유태인 제국대변단체)로 대체되어야 했다.

현재에도 이 제3제국이 만들어낸 척도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비유태인이나 유태인들사이에서 더이상 "deutsche Juden"이라는 말은 받아들여질 수 없거나 회피하게 될 정도이다.

여기서 유태성을 "단순한 믿음"차원으로 격하시킨다는 비난, 혹은 더 나아가서 "유태인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존재(Exsistenz der juedischen Nation)의 종말"에 대한 희망을 피력한 것이라는 주장은 초점이 빗나가도 아주 빗나간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태인"(Jude)과 "유태인성"(Judentum)을 설득력있게 구분해 정의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자기 스르로를 유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위와 같은 비난을 허용한다면 그는 그로써 이런 종류의 비난이 프랑스혁명이래 반유태주의자들의 가장 효율적인 무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유태인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Nation"(민족, 국가)을 의미한다면 프랑스에 사는 유태인들은 프랑스인으로서의 국적,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는 그 현상이 다음으로 표현될 것이다: 독일인이냐 아니면 유태인이냐(Entweder Deutscher oder Jude)

작성자 : jayuroni (webmaster@berlinreport.com)  조회수: 89 , 줄수: 36 , 분류: 사회  
독일인의 반유태주의를 말한다2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의당 한번쯤 질문을 던져 보게 될 것이다. 부비스가 텔 아비스에 묻히기를 원한 것이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결정인지, 아니면 한 독일국적시민의 이 우울한 결정을 독일인이 유태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로 메타퍼로서 읽을 것인지 말이다.

유태인이건 비유태인이건간에 "유태인"과 "유태인성"이라는 개념을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유태인이라는 존재성과 많은 것들이 연관될 수은 있겠지만, 그것이 어디에 묻히는가 하는 장소의 문제만큼은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 살아 있든, 죽었든 간에 단지 텔 아비브에 머무른다는 것이 유태인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인가?

디아스포라유태인들을 깎아내리는 시오니즘(Zionismus)을 유태인성과 동일시하려는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부비스의 마지막 결정은 시오니즘의 승리로 바뀌어 해석된다. 그로써 그는 다시금 "유태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텔 아비브에서의 부비스장례식에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은 독일의 반유태주의자들의 그것과 원칙에 있어 다르지 않았다: ubi tumulus ibi patria.

우리는 과거의 역사적사실로부터도 잘 알 수 있는 반유태주의와 시오니즘간의 유사성에 대해 경계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들은 아그나스 부비스와 막심 빌러간에 어떤 차이도 발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빌러와 그밖의 논자들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는한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들은 여전히 마치 독일국적시민과도 같이 유태인일수 없기 때문이다.

사족으로 말해두자 독일의 한 멍청한 정치가는 이그나스 부비스가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오래된 반유태주의의 신봉자들에게 유태인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사람이라는 것과 동의어였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가?

도대체 유태인과 이스라엘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동일시하지 않는 한 유태인일지라도 그가 이스라엘에 도착하거나 혹은 독일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서만 비로소 유태인이 되는 것인가?

명성있는 문필가가 반드시 최고의 역사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마르틴 발쩌의 경우에서 보게 된다. 막심 빌러는 그에 어느정도까지만 동조한다. 왜냐하면 발쩌가 이로니화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가 오해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Denn da, wo er ironisiert, kann er missverstanden werden.) 마치 이그나스 부비스가 맥없이 독일인들에게 극우적인 경향에 대해 경고할 때 오해를 받을 수 있듯이.

120년전 발간된 빌헬름 마르의 책 "Der Sieg des Judenthums ueber das Germanenthum"(게르만성에 대한 유태인성의 승리)은 게르만인과 유태인간의 대립에서 출발해서 "Finis Germaniae"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도출해 낸다. 이제 또한 독일유태인이 이 목적론적 페시미즘(Zweckpessimismus)을 수단으로 해서 반유태주의에 싸움을 벌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부비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이들이 하필 부비스의 편쪽에서 지원사격을 받게 되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독일-유태인 지성인인들 사이에서 독일을 거절하는 태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자주 "독일인들"과 같은 일괄적인 명칭을 들을 수 있다.(Da hoert man haeufig die pauschale Bezeichnung "die Deutschen") 이들은 모든 독일인들이 단지 면제부(Persilschein=비나찌증명서,결백증명서)만을 추구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항상 다시금 갖는다.

독일에서는 "독일인들"(비유태인 Nichtjuden이라고 한번 말해보라!)이 독일유태인중앙협회장에게 양자의 상호이해를 위해 복무하려고 한다면,  더이상 "진짜 유태인이서는 안된다"(er solle kein :richtiger Juden: mehr sein)고 요구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묻게 된다.도대체 독일에서 "Richtiger Jude"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도 독일에 반유태주의와 외국인적대감정 그리고 인종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반유태주의'와 같은 하인쯔 갈린스키의 단정적인 명제는 비생산적이다 못해 차라리 반생산적이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그나스 부비스는 보편적인 코디네이션을 위해 노력했다. 단지 유태인의 두려움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입장은 전임자 못지않게 유태인적이라면 유태인적이었다. 아무리 독일인들의 일부가 부비스가 홀로코스트를 망각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희망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그 반대다: 즉 부비스는 차라리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1월27일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의 해방의 날을 제정하게 함으로써 결코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도록 만든 것. 이것은 부비스가 임종직적 다시 유태인이 되고 더이상 독일인이기를 포기하기 이전, 한 독일인이자 유태인이었던 부비스의 공로였다.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엮어내기가 얼마나 성공했는가를 판가름하기 위해서는 그 척도로서 단지 미친 정치가나 심술궂은 문필가의 견해 혹은 피곤에 지친 병든 중앙협회의장의 말들만을 들어서는 안된다. 1998년 헤센주의 지역선거는 오랜 독일-유태인간의 역사를 배경으로 이제 막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반영해주고 있다. 이 선거에서 부비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선거에서 전혀 단점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되었던 것이다.(왜냐 그건 부비스가 매일 TV에 나오는 스타였으니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였으니까 그랬다.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장점이 된게 아니다 - 역자주) 뭔가가 확실히 완전히 변하기는 변했다.

누군가 부비스는 "진짜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게 장점이 됐다고 논리를 전개한다면, 바이마르에서는 "진짜유대적"이라는 것이 별로 단점이 되지 않았음을 지적해야겠다.

그러니까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부비스는 한 독일인이었다. 그리고 또 유태인이었다. 즉 그는 한 독일인유태인(Ein deutschher Jude)였다. 그의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성공적인 독일인유태인이었다. 그가 위대했는지 평범했는지는 후에 역사가 결정할 것이다. 이때 필을 든자는 "위대한 독일인"(groBer Deutscher)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독일적임"(deutsche GroeBe)"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보리스 베커는 위대한 독일인이었던가? "der GroeBe)가 붙는 프리드리히2세는는 그럼 더 위대했던가? 보리스 베커는 이그나스 부비스가 독일인유태인이었듯이 한 독일인 테니스선수였던 것이 아닌가? 혹은 빌러가 추천하듯이 독일인과 유태인간의 구분은 독일인과 테니스선수간에 구분과 하등 다를 것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그나츠 부비스는  자신의 죽음이후 독일을 떠났다. 베커는 세납자로서 이미 살아 생전에 모나코로 갔다. 심지어 자기 자식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옮겼다. 그의 독일성에 대한 소속성을 세금시스템을 가지고 정의내릴 수 없는 만큼이나 독일인임이라는 것을 인종이나 종교를 통해 정의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원칙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이그나츠 부비스의 입장을 하나의 쓰라린 이로니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라건데 이러한 나의 주장이 또 다른 식으로 곡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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