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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네오나치의 성지, 베벨스부르크 성 (SZ 99.5.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7,494회 작성일 02-03-09 05:30

본문

작성일 : 1999/05/07  조회수 : 123

■  네오나치의 성지, 베벨스부르크 성- 마녀와 악마주의자와 네오나치가 축제를 여는 곳  (쥐도 99.5.7)

과거 나치 친위대(SS)의 성지(Kultstaette)이던 파더본 근교의 베벨스부르크 성. "아름다운 Almetal 계곡 위로 Wewelsburg 성이 당당히 솟아있다." 'SS 제국지도자(Reichsfuehrer)' 히믈러 때문에 유명해진 이 성이 그림엽서와 같은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성의 서쪽 면일 뿐이다. 그 외에는 이 성은 Boeddeker 국유림을 지나는 가파른 길을 올라 이 성을 방문하는 4만5천명의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광경을 제공할 뿐이다. 이 풍경은 즉 2차대전이 끝날 무렵 SS에 의해 폭파되고 나중에 재건된 성채인데, 이 성채는 베벨스부르크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그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없다.

그중 한 쪽에는 20년대처럼 유스호스텔이 들어섰고 다른 쪽에는 베벨스부르크 향
토 박물관이 들어섰다. 과거 파더본 주교들의 고문 지하실이던 '마녀의 탑' 위의 무기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보물 찾기'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언론에서 이 성을 히믈러의 '성배(聖盃)의 성(Gralsburg)'이라고 읽었던 사람은 여기서 과거의 '아리아족의 단련장'이나 비교적인 제의의 사원을 찾게 되는데, 이는 모든 헛된 일이다. 또한 여기서 유령이 출몰한다는 설도 근거가 없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2년전 인터넷에서 '반파시즘 뉴스'는 과거 히믈러의 친구이었던 Florentine('Florrie') Rost van Tonningen-Heubel(84세)이 이 성을 '민속학 연구소'로 쓰기 위해 구입하기를 원한다고 전한 바 있다. 그녀는 네덜랜드의 나치 지도자 Meinoud Rost van Tonningen과 결혼했는데 1945년 그와 함께 부역 혐의로 기소됐다. 그녀의 남편은 소송이 시작되기 전에 감옥에서 죽었고, 그녀 자신은 몇년간 징역을 살아야 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남편의 복권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 때문에 '검은 미망인(Schwarze Witwe)'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인터넷에서의 이 뉴스는 그녀가 "깨어나라! 우리들의 민족적 유산을 위해 수많은 동지들이 쓰러져갔는데 이제 반민족적 세력들이 이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그녀가 베벨스베르크 성에 설치를 계획하고 있는 이 '마지막 전쟁의 비극에 대한 전시 및 연구 센터'는 최소한 10만 마르크가 소요될 것이다. 그녀는 이를 위해 헌금을 요청했는데, 이는 주식과 비슷한 '게르만의 건축석재'로 지불되며 도이체방크와 에센 포스트방크에 낼 수 있게 된다. 이 편지는 SS의 구호이던 "우리들의 명예는 신의다(Unsere Ehre heiBt Treue!)'로 끝나고 있다.

베벨스부르크 마을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주민들은 방어적 자세를 보인다. 볼프강 브레벡 박물관장은 이런 풍문에 대해 "말이 안된다"고 강력히 이야기했다. 그는 이 성이 Bueren 자치단체에 속하며 매각될 계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들이 특히 그에게 불쾌한 것은 최근 이 지역 주민들의 태도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마을이 과거 가장 기괴한 역사의 현장 중 하나였다는 것이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1933년 히믈러는 이곳이 "북방적 남성들의 군사조직 엘리트들과 그들의 종족 공동체"를 위한 "대표적인 중심지"가 될 것을 희망했다. 건축가 Hans Bartels가 50여명으로 이루어진 팀과 함께 이 대대적인 비밀 작전에 돌입했다. 베벨스부르크 성은 "SS 세계제국의 이데올로기적 중심지로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들은 최근 은퇴한 파더본 대학의 역사학 교수 Karl Hueser가 1980년부터 기록보관소들을 뒤지고 Bartels 자신을 포함해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채록하기 시작하면서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는 1997년 재판이 발행된 "1933-1945 베벨스부르크. SS의 성지이자 테러지(Wewelsburg 1933 bis 1945. Kult und Terrostaette der SS)'라는 기록으로 담겨져 나왔고, 베벨스부르크 지자체 박물관에서 같은 이름의 전시회도 열렸다.

2차대전 이후 이 성이 파괴되면서 단지 2개의 홀만이 남아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존엄한 홀(Weihehalle)'인데 이는 '지도자의 홀(Gruppenfuehersaa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히믈러는 1941년 6월초 SS 장성들에게 "동유럽 진군의 목표는 슬라브 민족을 3천만명 줄이는 것(Dezimierung)'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SS 참모총장의 여자들이 엄숙하게 'SS 종족공동체(SS-Sippengemeinschaft)'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기념비적인 '동굴(Gruft)'이 하나 있는데, 파르치발의 무대장치를 연상시키는 그것은 원래 히믈러의 묘소로 지정된 것이었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성 아래의 채석장과 거기서 일하는 히믈러의 사설 강제수용소(KZ)의 노예들이 보였었다.

1933년 히믈러와 Oswald Pohl SS 재정 및 행정 담당관(WVHA)은 뮌헨에서 사단법인 '독일 문화유산 보호 및 촉진 협회'를 설립했는데, 이 단체의 정관에 따르면 '베벨스부르크 성의 유지'가 그 목표이다. 그러나 실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KZ 부근의 채석장이었는데, 이 채석장은 건설에 광분했던 나치 국가에 필요한 석재를 조달했다. 이는 베벨스부르크 성에서 시작된 것이며 SS 제국 경제의 초석이었다.  

뵈데커 숲의 명예 묘지에는 '모두가 희생자였다'는 모토하에 SS 소속원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여호와의 증인, 러시아 전쟁포로와 섞여서 같은 나무 십자가 아래 잠들어 있다. 이제 이 자리에 삼각형의 대형 석재가 추모 기념비로서 세워지게 되는데, 이러한 이 지역의 분위기 변화는 하노버 엑스포와 관련이 있다. 즉 이를 통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자 하는 것이다. 브레벡씨는 "우리는 박람회 안내소를 설치했고 셔틀버스 서비스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유령을 더이상 겁낼 필요가 없는가? 이 물음에 대해 지역 언론들은 최근 많은 토론을 하고 있다. 히믈러의 '동굴'에 대해 매혹적으로 느끼는 방문자들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홀의 지붕은 거대한 철십자가 장식하고 있고 돌바닥에는 '검은 태양'의 모자이크, 지그룬트(고대 루네문자의 S자) 수레바퀴가 있다. 이러한 SS의 상징은 점점더 극우파 진영에서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레벡씨는 "밤에 이리로 몰래 들어와서 보탄교도들이 소위 피의 공동체 입교식을 열고 악마주의자들은 '검은 미사'를 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불청객들도 특정한 시간에 나타나는데, 지난 주말 발푸르기스의 밤에는 소위 악마와 극우파들이 침입했고 10월말의 할로윈데이에도 비교 신자들이 들어오곤 한다.

브레벡씨는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우파와 비교(Esoterik) 간의 연관성을 밝혀줄 나치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Ruediger Suenner 감독이 찍은 다큐멘타리 비디오 "검은 태양"은 50 마르크나 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히트를 쳤는데, 여기서는 히틀러의 정신적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소위 '신비주의자'들이 잘 설명이 되어있다.

베벨스베르크에 독일 여성과 결혼해 1976년부터 이곳에 살면서 BBC 등을 위해 일하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Stuart Russell씨는 이곳에서 SS 종족공동체의 과거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그러나 더 위험한 현상이 최근 관찰되고 있는데, 이는 젊은 극우파들과 PDS(민사당. 구동독 공산당 후신) 기층 간의 접촉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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