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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잊혀진 나찌 희생자 - 동성애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525회 작성일 02-03-09 05:16

본문

작성일 : 1999/04/18  조회수 : 123

■ 나찌에 희생된 잊혀진 동성애자에 대한 최초의 공식추도식"(FR,99.1.28)  

오라니엔부르크의 작센하우젠 추모단지에서는 그동안 나찌에 희생된 동성애자그룹에 대한 추도식이 열렸다. 이로써 한때 포로수용소였던 곳을 개조한 추모단지에서 처음으로 그동안 똑같이 나찌에 희생되었으면서도 "잊혀져온" 동성애자희생자에 대한 추모가 이루어진 것이다.

구서독뿐 아니라 구동독에서도 이 포로수용추모단지에 최소한 추모간판 하나라도 달아달라는 요구마저 거절해 왔었다. 독일 정치가로서는 처음으로 동성애자 희생자에 대해서도 추모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명백하게 언급한 사람은 전 바이체커 대통령이다. 그는 1985년 종전40주년 행사에서 그렇게 연설했다.

브란덴부르크 추모단지 재단이 이 추모식을 개최한 계기는 1996년  나찌희생자 추모일 추모사에서 다른 주변희생자그룹도 생각하자는 헤어쪼크 대통령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나찌가 폴란드인과 여호와의 증인을 "성경연구가"라고 명명하면서 박해를 한 같은 해에 동성애자가, 그 다음해엔 집시들이 박해대상에 포함되었다.

이 행사는 추도단지측과 독일 동성애자연맹이 같이 협력해서 조직했다. 행사의 내용은 기도예배, 브란덴부르크 문화과학부장관 라이케(사민당)의 포로들이 총살, 가스살해된  Z구역에서의 화환증정(이곳에서  포로를이 총살, 가스살해되었음), 그리고 노래와 독경으로 이루어진 문화프로그램이었다.

추모단지측은 2000년엔 "동성애자박물관"과 공동으로 작센하우젠 포로수용소 수감되었던 동성애자들의 역사를 상기하는 전시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나찌들은 동성애자성향을 "유태인 영혼의 사악한 충동"이라고 보았고 "민족과 국가, 인종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1935년에 이미 제국형법의 175조는 엄격하게 동성애자를 규제했는데 이것도 175A 를 통해 보강되었다. 동성애자범죄구성요건은 두드러지게 확대되었고 처벌은 가혹해졌다.(최고10년형)

그러나 1871년 독일 창건 이래  제국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여성동성애자, 즉 레즈비언에 대한 면책은 히틀러 때도 계속되었다.

나찌는 게슈타포 국가비밀경찰안에 동성애자특별담당국을 설치했다.1936년부터는 "동성애자와의 투쟁과 추방을 위한 제국본부"가 결성되었다.  1940년 SS대장 힘러는 "한명 이상의 파트너를 유혹한 적이 있는 모든 동성애자들"에 대해 포로수용소수감을 명했다. 경찰과 군대의 동성애자는 사형을 각오해야 했다.

작센하우젠 포로수용소에서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약 천명의 동성애자가 수감되었다. 동성애자는 독방감금벌을 받기도 하고 대개는 노동조건이 가혹한 노동판에서 부려먹는 존재로 이용되었다. 물론 이 수용소에서 1942년엔 동성애자에 대한 의도적인 살해가 자행되었다. 이때 약 200명이 살해되었다.

베를린의 "동성애자박물관"의 뮐러씨는 SS자료에 따르면 약 만명의 동성애자가 동성애자라는 죄목으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들중 살해된 비율은 60%에 달한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1919년부터 1932까지 175조가 적용 판결을 받은 동성애자는 9천명이었다. 1933년과 1943년 사이엔 45000명에 달했다. 원칙적으로 이 조항에 해당, 동성애자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은 약 50만명에 달했다.

이 175조와 175조 A항은 전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1935부터 무려 1969년 9월 1일까지 효력을 발휘했다. 독일정부는 1973년까지 이 175조가 민족사회주의적 불의와는 관계가 없다고 여러번 천명했다. 1994년에 와서야 비로소 이 조항은 완전히 삭제되었다.

175조를 합법적으로 간주하는 한 그리고 합법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아 포로수용소에 갇힌 동성애자들은 나찌의 희생자로 승인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성애자연맹의 대변인은 이 나찌희생자추모일을 계기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힌다:

"우리는 새독일정부가 마침내 나찌정권에 희생된 모든 동성애자들의 지위를 완전히 복권시켜 줄 것을 요망합니다."(FAZ,99.1.28)  




참고로, 동유럽의 강제노역자들도 독일정부가 나찌의 희생자가 아니라 전쟁일반의 불행일뿐이라고 아직까지 발뺌을 하는 바람에 아직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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