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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기독교에 관한 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질문자이름으로 검색 조회 6,226회 작성일 02-08-30 05:09

본문

저의 글에 답을 해주신 최의승님 ,로라님, 가브리엘님, 관심자님, 안젝님, 그리고 간접적으로나마 조언을 주신 고민거리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최의승님과 안젝님의 글은 유사한 점이 많더군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여러 역사적 자료들이 많은 도움을 줄 걸로 봅니다. 그러나 도움은 역시 도움으로 끝나지 않을까요? 그러한 참고 자료들이 직접적으로 신의 뜻을 알려준다면 몰라도...
그리고 두 분의 의견을 극단적으로 밀고가면, 그 당시의 지배자들이 효율적인 통치 수단으로 신을 만들고, 성경을 기록했다는 결론으로 까지 이르게 되더군요. 예를 들어 안젝님은 "이스라엘 역사 역시 권력자의 역사였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물론 지배자가 통치수단으로 신을 이용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지배수단은 없겠지요. 이 경우 아무리 불합리한 일도 신의 계시 라고 주장하면 되니까요. 반대자는 신의 뜻을 거역한자로 처단하면 될테고요. 그래서 인류역사에서 지배자가  신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때론 지배자 스스로가 신임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고요. 소위 말하는 신정정치가 바로 이런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이렇게 해석해 버리면 베리에서의 논쟁은 이제 끝내야겠지요. 나아가 오늘날 기독교의 존재도 무의미해지겠지요. 저의 질문도 아주 쉽게 해결되는군요. 그건 신의 뜻이 아니라 통치자가 자신을 미화하기 위하여 그렇게 쓴거다라고요. 그러나 이러한 가정 또한 설득력은 있지만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다윗이나 솔로몬이 회개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신이 단순한  통치수단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슴을 나는 느끼게 됩니다. 바로 안젝님이 지적하신 "그들이 느낀 신앙고백"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갈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안젝님 또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여기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갑자기 여기에서 권력자의 역사가  성령의 역사로 논리 비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맞는 말입니다."  님의 주장처럼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그리고 "다만 성경을 타인의 신앙고백"으로 본다면 굳이 역사적 고증이 필요할까요? 신앙고백은 말 그대로 객관적인 검증을 필요로하는 진리가 아니라 신에 대한 주관적인 체험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저의 질문의 촛점은 바로 "그 신앙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있다는 곳에 있습니다. 만약 성경이 권력자의 역사라면 제가 이토록 고민을 하지 않았을 걸로 봅니다.
로라님, 가브리엘님, 그리고 관심자님 제 이야기는 실제있었던 이야기가 아니고, 제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베리에 와서 기독교 논쟁을 읽고나서 느낀 점을 이야기로 형상화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분은 제 이야기속 여인처럼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어떤 분은 그러한 기독교의 형태를 비난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급기야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지고요. 이런 경우 논리가 아닌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논의를 좀 더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독자들은 좀 더 빨리 자신의 믿음을 검증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전 오늘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의 신앙태도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변호해 보고 싶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신앙관을 편드는 사람이 없어서요. 그리고 이걸 통해 기독교를 알고 싶습니다.. 바로 위에서 안젝님이 언급한 "신앙고백"같은거요. 독일에 와 TV에서 십계명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습니다.  모세가 신을 부를 때 "나의 신"이라고 하더군요.
왜 "우리의 신"이 아니라 "나의 신"이라고 부르는가? 그건 저에게는 놀라움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가 않더군요.
굳이 여기서 이런 애기를 하는것은 이 의문이 제 애기 속에 나오는 이 여인의 신앙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도 뚜렷한  자신의 신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자신을 비난해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그런 신이요. 여기에서 저나 그런 신을 비난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해를 풀기 위해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모두가 지탄하는 흉악범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의 처형을 정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합시다. 그럼에도 남몰래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의 부모지요. 누가 그를 두둔한다고 그부모에게 돌을 던질 수가 있을까요? 최소한 저는 그 부모를 이해할 것같습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라고요. 이 여인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신은 끝까지 자신을 사랑 한다는 확신에 차있습니다. 대단한 믿음 아닌가요?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지요? 아들을 재물로 받치라? 이것 존속 살인죄 아닌가요? 신은 그것을 사주하고, 아브라함은 주저없이 그걸 행하려 합니다. 아무리 "여호아 이레"가 있다고 해도 세속인인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카인의 살인 행위를 비판하던 하나님이 이런 일을... ?????
저의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앞서 애기한 여인과 아브라함과 그의 신이 다 지탄 받아야할 대상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완전히 막히고 맙니다. 나의 윤리적 관점을 뛰어넘는,  나의 신으로 표현되는  신앙고백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타인의 신앙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는지? 이 답은 오직 이러한 체험을 하신 여러분만이 알고있을 것 같습니다. 절 좀 도와 주시지 않으실래요?
끝으로 고민거리님께 드립니다. 님의 제안 또한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좁은 제 지식 범위 안에서는 윗 문제를 푸는데 별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 포이어바하는 윗 글에서 언급한 권력자의 역사로 성경을 볼 겄 같고, 니체는 반대로 피지배 계층이 지배계층을 복수할 목적으로 신을 창조했다고 볼 것 같습니다. 신은 죽었으니 순간 순간의 삶에 충실하라  등등... 그가 주장하는 초인처럼...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신의 개념부터 정의 하더군요. 그리고 삼라만상은 그의 연장이라 하던가? 그래서 자연과 인간은 모두 신의 연장이니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이것이 이들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이 이외에 윗 질문에 도움이 될 수있는 내용이 있다면 좀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뒤셀독자001 : 재밋네요... 님이 만드신 상황의 전개는 앞의 토론들의 지지부진을 일순간 다른 공간의 문제로 바뀌게끔 하셨네요... 물론 안잭님의 절묘한 유도가 이런 뛰어넘음을 가능하게 하셨구요.... 한 15년전의 생각이 나는군요. 김용옥씨의 책을 읽다가 문득 그의 이런 이야기를 발견했었어요. 하바드유학까지 마치고 국내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찾으려 했던 진리는 미궁의 상태에 있었는데, 어느날 마당앞에 부는 바람에 의해 떨고 있는 나뭇닢을 바라보다 순간 번쩍하는 깨닭음을 얻었노라고...(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비슷한 아마 비슷한 이야길 께예요...)
의지에 의해 지식에 소유되어진 나와, 내가 나 일수 밖에 없는 실존과의 치열한 갈등이 이제 좀 진실하게 느껴지네요...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 2002/08/17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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