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588명
[독일개관]독일에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이곳에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판은 독일관련 데이타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곳입니다. 그러니 1회용도의 글(구인,질문 등)은 정보의 가치가 없으므로 이곳에 올리시면 안됩니다.

종교 이민, 이민교회와 민족문제..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하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2,914회 작성일 02-08-27 05:03

본문

1. 이민과 역사


1-1. 한인 이민의 역사

한반도에서 이민이 시작된 것은 한 민족의 형성기로 소급할 수 있다. 사실 한민족의 성립은 이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 말기에 한반도에 들어온 농경, 청동기문화를 일르킨 무문토기계열의 종족이 점차 한민족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 뒤 변한, 가야계를 중심한 삼한, 삼국계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야요이문화와 고대 문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660년 백제가 멸망되자 귀족들이 중국에 포로가 되어 강제 이민되었고,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되자 귀족들을 포함한 약 20여만 호가또 강제로 이민을 당했다, 이 이민자들의 후예중 고선지 장군은 당 나라에서 파밀고원을 넘어 원정을 단행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통일신라때에는 신라인들이 유학, 외교 등으로 당 나라에 가기도 하였으나 상업 차 이민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오늘날 뉴욕, LA에서 코리어타운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중국에도 코리어 타운이라 할 신라방, 그들의 관청인 신라소, 그들이 세운 사찰인 신라원 등이 있었다, 조선조에 와서는 만주와 북한 지역에 이민을 많이 시켰는데, 대표적인 것은 세종 때 사군 육전의 설치 후 남부의 주민을 북부에 이주시킨 경우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오만여명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강제 이민 당한다. 이들 중에는 , 천주교를 믿고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도 있으며, 도자기 기술자로서 일본의 도자기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근대적 이민은 20세기 초에 시작된다. 한말 1902년 12월 22일 102명이 상선 S.S. Gaelic호를 타고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함으로 시작된 하와이 이민은 1905년 까지 7천여명이 넘게 되었다. 당시 인천에서 선교하면서 이민을 보내는 데 앞장섰던 조원시(George Heber Jones)목사가 쓴 "Koreans in Hawaii"(1906)에 의하면, 1903-05년까지 이민한 7,394명중에는 755명의 여자와 14세 이하의 어린이 447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1905년에 그 일부(20%)가 본토로 이주하여, 1905년 당시에는 5,700명이 하와이에 남아 있었다. 이민 온 한인들은 주 6일, 하루 10시간 노동하며 월 18불을 받았는데 당시 생활비는 월 6-8불이였다고 한다. 그들은 4시에 기상하여 5시부터
일터로 나갔는데, 오후 5시 30분 귀가하여 목욕하고 개인생활을 가졌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향한 일반이민이 어렵게 되었던 것은 1924년 동양계 이민금지법(Oriental Exclusion Law)이 제정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방 전후하여 유학생으로 와서 미국에 잔휴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LA의 소위 Wstts폭동 이후 1968년 미국의 이민법이 바뀌면서 다시 이민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와츠폭동이후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가 흑백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기 위하여 동양계를 완충재로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와츠 폭동이 일어났던 바로 그 곳에서 1992년의 LA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어려운 일을 당하신 분들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아야 할지 모를 우리 모두에게 한편으로는 많은 교훈과 심각한 반성을 불러 일으켜 주고 있다.

한국계 이민이 늘어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한다. 시기적으로 보아 우리는 미국의 이민법이 바뀐 것이 주원인일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만약 1972년의 '10월 유신'과 1975년의 월남의 공산화가 이 무렵 이민급증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최근 고국을 방문한 이민자들이 고국에서 이런저런 내용의 섭섭한 말을 들었다든지, LA 폭동에 대해서도 고국을 방문한 이민자들이 고국에서 동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더라고 하는 점은 이민오신 분들 측에서도 다소 이해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월남의 공산화 직후, 당시 고위 관직을 지낸 어떤 인사가 김포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된 사례에서도 짐작되는 바와 같이, '유신' 선포와 월남의 공산화, 그리고 그 뒤에 계속되었던 일련의 군부독재가 이민을 서두르게 만든 한 이류가 될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한 이민은 독재와 공산화를 두려워하여 도피하려 했다는 의미의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따라서 거시에 따른 어느 정도의 비판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민족은 하와이 이민 이후에 유학생으로서, 혹은 생계를 위하여, 혹은 새 땅에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는 적게는 망명과 도피형 이민 등으로 미국에 와서 정착했다. 미국의 국토는 남북한 국토의 약 43배이며 한국국토의 거의 70%가 산지임에 비해 미국의 가용면적은 거의 70-80%에 이르는 것을 고려할 때, 가용지 대비는 100배 이상이 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인구 약 2억 5천만 명은 한국의 인구 7천만 명에 비해 4배가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부분의 문제가 인구과밀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국은 인구문제로
제기되는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이민을 정책적으로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미국유학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교육수요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직 그 대안조차 변변히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이루어진 교육책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무책임하게 어린 학생들을 해외로 방기하는 듯한 유학정책은 찬성보다는 비판을 더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당분간 중고교 학생들의 해외유학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다면, 하기 쉬운 말로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뒷날까지 계속 이곳에 정착하여 한국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방안을 계획하면서 그들의 젊은 시절부터의 해외유학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오히려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1-2. 이민의 세계사적 의의

세계의 역사는 따지고 보면 적극적인 이민 자들에 의하여 변화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힛타이트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들의 이민의 역사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세계사는 흔히 4세기경부터 시작된 게르만족(German)의 이동을 거론하면서 오늘날의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오늘날 유럽의 근간이 이로 인하여 형성되었음을 강조하였고 중세의 유럽을 여는 새로운 활력을 갖기 시작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이동시킨 것은 중국 북쪽에 거주하던 오호의 하나인 흉노(Huns)였는데도 그 점
은 강조되지 않는다. 노르만족(Norman)의 이동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큰 자극과 변화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이 지배하는 영국에 쳐들어가서는 노르만 왕조를 세우고, 오늘날의 영어가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 17세기 초에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었고, 남북 미주의 주인공으로 대치되었다. 옛 소련의 경우, 동부 시베리아의 연해주지역에 살던 한국사람들이 1937년경 카자흐스탄과 타쉬켄트 등 중부 소연방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것은 잘 알
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농법과 한민족 특유의 근면으로 어려운 자연조건과 싸우며 새로운 개척자적 삶을 정착시켰고 주변 민족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사회학자의 글에 따르면, 어떤 사회가 시들지 않고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국토 내에서 시골출신의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도시로 진출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모험성과 창의성을 갖고 있어서 기존질서에 순응하여 그것들을 상실해버림 도시의 소시민들을 자극함으로써, 끊임없이 사회. 문화. 정치를 새롭게 변화, 개혁시켜 간다는 뜻이다. 세계사에 나타난 이민의 역할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민 자들이 한 사회나, 전 세계역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세계사에 대한 이 같은 통찰력을 가지고 이민을 이해할 때, 우리 이민 자들은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이주와 개척자적 삶을 통하여 이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1-3. 이민 자들의 정주유행

이민 자들이 새로운 땅에 이주하여 삶을 영위하면서 기존의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 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대략 세 가지 형태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새 사회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모험적인 삶을 개척하는 '개척형', 해 사회에 동화하는 '동화형', 그리고 그 중간형태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적당한 선에서 유지하면서 기존의 사회에 타협. 조화하려는 '조화형'등 이라 하겠다. 이러한 유형들은 이민 자들이나 이민 자를 받아들인 기존사
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 윤리. 전통. 제도. 과학. 기술 등의 문화역량과 그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형성될 뿐 아니라, 새 사회에 진출하는 이민 자들이 기존사회와 대비되는 어떠한 종류의 창의성과 모험적인 용기를 소유하고 그것을 끈질기게 활성화해 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1-3-1. 개척형: 위의 세 형태 중, 이 유형은 이민 자들이 새로운 개척지에 들어왔을 때, 기존의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깊은 신앙과 고도의 도덕성, 학문적 능력과 용기가 기존사회를 능가하는 역량이라면, 이민한 사회에 들러가 기존의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그 사회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개척자적 사회를 성립시켜 나갈 가능성이 있게 된다. '개척형'은 때로는 정복형'과도 상통한다고 보겠는데. '정복형'이 이민현지의 사람들과 문화를 말살하고 자신들
의 인종과 문화를 이식해 왔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띄고 있었다. 세계사에서는 게르만족의 유럽 대 이동 때와 아메리카 주에 이주한 유럽인 들의 경우, 그리고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그곳에 이주한 유럽인 들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한국사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를 건국한 주역들이 그런 이민 자들에 속할 것이다.

1-3-2. 동화형: 이민 자들이 고도의 신앙과 문화능력, 개척자적 덕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는 오히려 기존의 사회에 동화되어 버리게 된다. "동화형'이 그런 유형이다. 다시 말하면 이민 자들이 높은 신앙과 문화를 갖지 못하면, 이민현지에 와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점차 이민현지의 전통과 문화에 매몰되어 버린다. 이민 자들이 비록 한때 군사. 정치적으로 기존사회를 정복하거나 승리한 경우라 할지라도, 정복 지의 문화를 능가할 역량을 갖지 못하면 얼마 안 있어 문화적으로 되정복당하게 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노르만 족이 프랑스의 노르만디 지역을 정복하고도 그들은 언어 등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정복한 현지에 동화되고 말았다. 중국 주변의 오호를 비롯한 여러 민족들은 한때 한족을 군사, 정치적으로 정복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
들도 모두 얼마 안 있어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정복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국주변 민족의 한족정복은 곧 한족중심의 중국의 역사를 대중국민족의 역사로 확장시켜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따라서 높은 문화와 개척자적 용기를 갖지 못해서 이민 현지에 동화하는 이민은, 새 역사를 개척한다는 이상적인 의미의 이민의 사명을 상실해 버리고 단순히 은둔적 도피적 안식처와 편안한 삶을 목적하는 듯한 하나의 현실적인 생활수단으로 전락되어질 수도 있게 되었다. '정복형'과 마찬가지로 '동화형' 또한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3-3. 조화형: 이 유형은 노르만 족의 영국진출과 유럽인들의 같은 지역 내에서의 이민 실태에서 보이는 것이다. 19세기 이후의 유럽계의 미국 이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동양계의 경우, 중국의 화교들이 대부분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 들은 자신의 아이덴테테를 일정하게 보존하면서 이민현지의 문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의 수용성을 띄고 있다. 그들은 이민현지의 기존 전통과 생활에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자기 문화만을 이민현지에서 배타적으로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 들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을 위한 성숙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개방성이 결여되어 게토화(Ghetto)하는 현상도 더러 나타난다.

1-3-4. 세대간의 다른 유형: 위의 세 형태는 동일한 혈족집단의 이민세대와 관련시켜 볼때 달리 나타날 수도 있다. 즉, 이민 1세대에서는 '개척형'이 많이 보이고,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에서 '동화형이, 그 이후 세대에서 '조화형'이 각기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민 1세대는 언어와 문화 등에서 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개척형'으로 될 가능성이 크고, 2세대에 오면 1세대에 대한 반발로 1세대가 가진 본국의 문화를 의식적으
로 배격하여 이민현지에 동화하는 경향이 늘어나며, 그 다음 세대에는 이민사회에서의 벽을 실감하는 한편 자아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하면서 다시 1세대가 취했던 방향으로 회귀하는 것을 고려하게 되어 어느 정도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는 '조화형'우로 정착해 간다는 것 이다.

우리는 위의 세 유형 중에서 어느 것이 이상적인 것인가를 쉽게 말할 수 없다. 이민 온 사람들의 민족적 배경이 다르고, 이민현지와의 문화적 사회적 관계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사람의 외관과 언어 전통이 비슷한 경우에는 '동화형'의 모델이 많이 발견되고 그 다음 '조화형' '개척형' 의 순으로 보인다. 이 경우는, 미국과 카나다의 주류를 서구계 백인임을 전제로 해서 본다면, 유럽계 이민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외관과 문화가 많이 다른 비유럽계 특히 동양계의 경우에는 잘라 말할 수 없다. 이민의 역사가 짧아 아직도 세 유형이 혼재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굳이 유형화하라면 '개척형', '조화형', '동화형'의 순서로 두고 싶다. 그것은, 뒤에서 말할, '창조와 섭리의 질서' 속에서 파악되는 필자의 '민족관' 과도 관련된다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앞서의 이민유형과 관련, 우리의 이민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다음 몇 가지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미주에 이민 온 우리 한민족은 어느 형태의 이민생활을 이상적인 것 으로 삼아야 하며, 현재 우리는 앞서의 이민유형을 밟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과거 역사를 변화시켰던 저 이민자들과 같이 고도의 신앙과 문화, 도덕성과 용기를 갖고 있으며 새역사를 개척한다는 사명감을 갖고있는가. 우리는 다시 한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이민사회를 신앙적 도덕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이민교회는 과연 그러한 자질을 뒷받침하려고 노력하며 또한 이러한 특수한 사명을 깨닫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민교회는 이민자에게 깊은 신앙과 도덕적 능력을 배양시키고 개척자적 용기를 고취시켜 가면서 새 사회에 대해 어떻게 봉사하고 희생하여 썩어지는 밀알이 될 것인가의 사명감을 일깨워가야 한다. 여기서 이민교회는 이민자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하는 폐쇄된 역할만이 아니라, 이민자와 기존 사회를 연결 시켜 주는 교량으로서의 폭넓고 적극적인 역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의 목적과 이
민교회의 사명에 대한 이러한 질문과 확인은 뒤에서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2. 성경애 나타난 이민과 민족문제

2-1. 성경에 보이는 이민
성경에 보면, 이민의 사례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믿듬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을 떠나는 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민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고 70여명의 권속을 이끌고 요즘말로 하면 이집트로 초청 이민을 가게 되었다. 이들 야곱의 후예들은 4백여년 동안의 이집트 생활을 통하여 창대한 민족으로 성장하였다. 주전 722년 앗시리아가 북쪽의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을 계기로 10지파 휴예들의 세계를 향한 diaspora적 생활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또 주전 586년의 유대왕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3차례에 걸쳐 유대 민족은 바빌로니아로 강제이민을 당하였다. 주후 63년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은 유대인들을 세계로 흩어버렸다.

2-2. 이민생활의 두 형태
이민 현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민현지와 고국에 대해 두 가지 형태의 다른 자세를 가졌다. 하나는 이민현지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그 사회에 크게 공헌하였고 다른 하나는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우리는 일단 이 두 형채를 현지적응형과 고국귀환형으로 명명하고 이들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가하고자 한다.

2-2-1. 현지적응형(요셉과 다니엘의 경우): 이민 1세 혹은 1.5세에 속하며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학식, 경류으로 이민현지에서 기존사회의 질서와 기치에 자극과 변화를 주며 공헌하고 있다. 그들은 이민현지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들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정신적인 유산은 그들이 어릴 때에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가정교육과 하나님 중심의 신앙교육이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 민족을 배반하였다는 식으로 매도하지도 않고 그들의 현지에서의 공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런 공헌이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심지어 에스더 같이 이민현지에서 소위 국제결혼을 하여 유대인의 피를 이방의 권력자와 섞은 사람에 대해서도 성경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2-2-2. 고국귀환형 (모세와 에스라, 느헤미야): 모세의 경우는 이민 3-4세 혹은 그 이후에 속하나 에스라 느헤미야의 경우는 분명치 않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을 받았거나 이민 현지에서 당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는다. 모세의 경우는 당시 세계 최강국의 하나인 이집트에서 최고의 교육이라 할 궁중교육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신앙과 전통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민현지에서의 보장된 출세를 거부하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여 백성을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서도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해친 폐쇄적인 인물이라던가 반세계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다.

2-2-3. 신앙, 전통 및 모국어 고수: 앞에 지적한 두 형태 중에서 어느 것이 더욱 성경적이고 어느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 두 형태의 이민자들이 이민현지에서 가지고 있던 공통적인 가치관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이민자들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그들 두 형태가 공통적으로 가졌던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신앙과 민족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민현지의 국가와 사회를 위해 공헌했던 앞의 요셉.다니엘 형이 그들의 생활 양식의 밑바닥에 하나님 신앙과 민족적 전통을 토대로 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뒤의 모세.느헤미야 형도 이민현지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보장된 출세를 거부할 정도로 그들은 강렬한 신앙과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그들은 이민현지에서 민족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현지적응형이든 고국귀환형이든 이들에게 공통되게 보이는 점은, 이들이 모두 조상전래의 민족어를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민현지의 언어와 조상 전래의 언어를 같이 구사할 줄 아는 '이중언어'의 소유자들이었다. 이집트의 총리대신이었던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맞을 때 통역을 세웠다(차 42:23)는 점에서 이중언어의 소유자였다. 이민 3,4세에 해당되는 아론, 미리암, 모세도 그들이 바로와 그 공주 앞에 섰다는 점에서 이집트어를 말할 수 있었
을 것이며, 40여년 간 민족구원의 Exodus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들은 모국어도 간직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이 점은 바빌로니아에서 강제이민생활을 한 유대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들 중에 이민현지에서 고급관료로 봉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나, 또 오랜 동안의 포로생활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모세 5경을 비롯 한 성격을 히브리어로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이민생활에서도 민족어를 간직
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2-3. 민족문제의 발생: 이스라엘 민족이 이민생활을 하는 중에 민족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민족문제가 발생한 배경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신앙과 거기에 뒷받침된 문화의 갈등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이민현지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보이는 민족문제는 히브리의 유일신 신앙과 이방의 다신교적 신앙, 히브리의 순결문화와 이방의 향락문화 사이에서 생긴 갈등이었다. 요셉은 이집트의 음란문화를 거부하려다가 고난을 당한다. 다니엘의 경우, 궁중의 '진미와 포도주'로 상징되는 바빌론의 향락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 신앙 때문에 사자굴로 표현되는 극심한 고난을 당한다. 이러한 민족문제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신앙과 그들의 순결문화가 그들이 처했던 이민현지의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디모데 후서 2;20-21에서 읽을 수 있듯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은 깨끗이 준비된 그릇이다. 요셉과 다니엘이 이민현지에서 그렇게 요긴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깨끗이 준비된 그릇'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민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하나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극도로 향락문화가 발달한 이민현지에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는 역할이라고 하겠다.

또 하나 이민현지에서 민족문제가 일어나게 된 것은 히브리 민족이 창대 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결국 히브리인들을 이민현지에서 말살시키려는 위기 속으로 몰아갔다.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혹독한 노예생활을 겪어야 했던 것이나 남아가 나면 살해당해야 했던 것 그리고 바빌론에서 유대민족을 학살하려고 했던 하만의 음모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같은 사실을 근대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미국의 흑인학대, 한인들을 상대로 엘 에이에서 발생한 흑인폭동 등은 바로 이와 비슷한 예에 속할 것이다.

이민현지에서 민족문제가 제기된 결과, 이민자들이 게토화되기 쉽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 나타났다. 첫째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공고하게 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그들에게 위기로 부닥친 민족문제는 오히려 민족적 구심점을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된 히브리 민족은 그들이 당한 고난으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아의식을 일깨워 '출애굽'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시켰다. 유대 민족은 바빌론 포로생활의 고난을 통하여 뒷날 귀환 후 이웃 이방민족과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만들어 갔던 것이다. 아와 관련, 지난전 LA 사태 때에 미국의 대학에 있는 한인 학생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많다. 그 때 그 사건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태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본국에서 온 유학생들보다도 이1.5세, 2세들이었다.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는 사태가 확산되자 1.5세 혹은 2세들이 주도권을 갖고
기도를 인도하며 적극적인 대책을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이때까지 자신들을 미국인들과 동일시했던 그들이 비로소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를 발견하면서 일종의 '정체성 위기' (Identity Crisis)'를 맞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나아가서는 자신들도 별수 없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민교회는 LA사태를 이민후세들을 교육하는 중요한 자료로 삼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이민현지에서 부딪친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망이 달린 절박한 이 민족문제는, 둘째로 하나님 신앙과 민족사를 확고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신앙과 역사에 근거한 민족문화를 정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는 민족문화의 고전들이라 할 모세 오경과 여호수아서, 에스겔서, 이사야서 등과 시편의 일부가 이민생활에서 야기된 민족문제가 발단이 되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전들이 그 뒤에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의 신앙과 역사의식을 자극하고 환기시켜 가면서 민족문화의 유산을 풍부하게 재생산해 갔던 것이다.

2-4. 기독교의 민족관: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성경이 민족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유대인들이 포로생활과 이민 현지에서도 민족의 본질인 신앙, 전통, 언어를 고수하려고 하였는가. 구약성경의 경우, 언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족은 '바벨탑 사건'(창 11;1~9)과 관련시킴으로 인간을 교만한 죄악의 결과로 탄생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에 앞서 노아의 후손들이 여러 기층으로 분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벨탑 사건'이 민족형성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 민족형성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학자들 중에는 사도행전 17장26절에서 바울의 민족관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바울은 민족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성경의 민족 이해는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민족적 책임을 환기시켜 준다고 하겠다. 민족이 창조와 섭리의 질서의 관련되는 존재라면, 기독교인들은 민족을 보존해야 할 사명과 민족문화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할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았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아울러 기독교인들은 나의 민족이 귀중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다른 민족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산물로서 꼭 같이 귀중함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 민족을 보존 하기 위한 민족의식, 민족운동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민족 문화를 어떻게 창달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3. 이민교회와 민족적 사명

3-1. 미국 내의 이민교회: 미국에서는 현재 2, 5000(혹은 3,000)여개로 추산되는 한인 교회가 있으며, 거기에 비례하여 신학교도 난립하고 있다고 한다. 또 신학교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들은 미국에 있는 소수민족의 인구수에 비해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망컨대, 앞으로 당분간은 이민교회와 신학교, 신학생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민교회 중에는 순수한 신앙적 기반 위에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서의 나무랄 데 없는 교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더러는 이민자들의 사교장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소쯤으로 생각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은 듯,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노정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이민교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이민 자들의 독특한 심리와 연관시켜 설명하기도한다.

이민교회를 생각하면서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s)들의 '회당'(aynagogue)을 연상하게 된다. 1세기에 흩어진 이래,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워 구약성경과 민족적 전통을 가르쳤다. 2천여년간 나라가 없이 지냈지만 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회당을 중심으로 한 민족교육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인 이민교회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지나친 요구일까. 교민사회가 아직도 한인 공동체의 민족교육을 위한 요구를 만족시켜 줄만한 마땅한 기관을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잠정적으로라도 이민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3-2. 이민교회의 전망: 이민교회의 존재는 이민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민교회의 장래의 추이도 이민의 형태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먼저 앞으로의 한인 이민공동체의 추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 전망을 살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
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 역이민의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지 앞으로의 이민의 증감현상이 이민공동체를 어떻게 유지, 변화시킬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계속적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숫자로 이민이 가능할 경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개척형 내지는 조화형의 이민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민의 숫자가 줄어들거나, 이민이 중단될 경우, 한인 이민공동체는 급속히 동화의 길을 걷거나 좋은 경우 조화형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한인공동체의 유지여부는 이민 자들의 결속 여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인 콤뮤니티를 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이민의 증감에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겠지만, 유대인 공동체와 같이 개척형 혹은 조화형의 이민생활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인 콤뮤니티가 결속력 있게 유지될 수 없게 된다면, 이 또한 급속한 동화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민교회의 존재가 이민공동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때, 이민교회가 오늘날의 형태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민이 계속되거나, 한인공동체의 결석을 강화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개척형이거나 최소한 조화형 이민이 유지될 수 있다면 민족어로 예배보는 교회공동체가 어떤 형태로든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민이 중단되거나, 한인 공동체가 결속력 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한인교회도 결국 제1세대 이민이 끝남과 동시에 끝맺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미국에 이민 왔던 많은 민족들이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으로 어떤 형태의 이민공동체를 유지할 것이며, 어떤 형태의 이민교회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3-3. 이민교회의 민족적 사명: 민족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와 깊은 관련이 있고, 그래서 이민현지에서도 민족의 보존이 하나님의 영광과 민족간의 긴장과 자극을 위해 필요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민교회의 존재형태가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가는 어렴풋이 나마 떠올려진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개척형 혹은 최소한 조화형 이민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자는 것이다. 그것은, ?으로 이민교회를 민족어 중심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이민의 형태도
거기에 상응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비록 나열식이긴 하지만, 이런 관점에 서서 이민교회의 민족적 사명을 적시해 보고자 한다.

이민교회의 민족사적 사명을 논하려고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민교회가 한인공동체 가운데서 그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나름대로 이민사회에 끼친 민족사적 공헌을 가벼이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작년 LA 사태 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이민현지의 민족문제 해결에는 거의 방관자 역할밖에 할 수 없었던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몇 가지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 몇 가지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다음 몇 가지로 이민교회가 갖는 일반적인 사명과 함께 민족적 과제를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3-3-1. 위대한 신앙인 양성의 책임: 이민은 개척자적 삶이기 때문에 목적의식 없이는 그 자체의 성공적인 삶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 목적의식은 신앙을 통해서만이 일깨움을 받을 수 있다. 철저한 신앙이 없이는 이민생활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경제적으로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나, 정치적으로 도피했다는 그러한 소극적 의미보다는 이민 온 자체를 위한 우리들의 이민의 중요한 목적을 각성하여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한국계 이민이 '제 2의 청교도적 사명'을 각성하고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락문화가 도처에 뿌리박아 가고 있는 미국사회에 대해 신앙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르키면서 도덕적 성결운동과 경제적 절제운동을 주도 해가야 한다. 미국이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이 사회에는 아직도 낭비성이 심하다. 세계의 60억이 넘는 인구 중 미국인구는 2억 6천이 채 안 되는데, 미국인들이 세계 에너지의 60%를 쓰고 있다면 당신들은 이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러고도 미국이 세계에 대해 자신들의 경제가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신앙의 힘이다. 미국의 이러한 낭비에 대해 미국교회는 이점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한인 이민교회는 이것을 지적하고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우리들이 보내심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환경문제만 해도 그렇다. 들은 이야기지만, 남미 리우에서 열린 환경문제 국제대회에서 제3세계들이 미국만 절제하면 전세계의 환경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고 이 지적에 대해 미국 대표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또 이때 작성한 조약 초안에 미국 대표가 서명을 거부했다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 지금 세계에 대해 얼마나 비도덕적인 존재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한인 이민교회가 신앙적 성결과 도덕적 품위를 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나라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교회는 이러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을 계속 키워 나가야 한다. 미국이 잔디를 위해 뿌리는 비료만 절약해도 세계의 빈곤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들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 도겠지만, 미국이 세계의 배고픔을 나누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다면, 더욱 불경기가 되어서라도 배고픔의 고통을 경험해 보는 것이 이대로 지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된다. 세계를 향한 미국의 지도력은 이제 정치. 군사력에서가 아니라 고난을 같이 나누는 데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 또한 신앙의 위대한 힘 없이는 불가능하다.

3-3-2. 개성과 다양성의 추구: 이민교회는 한인들에게 미국과 캐나다의 복합민족 국가에서 가지는, 소스민족의 장점을 살리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곧 소수민족의 개성을 살리면서 복합민족간의 조화를 이룩해내는 작업이다. 소수민족의 개성을 살리는 길은 민족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민지역에서 한인의 민족교육을 다룰 공식 기구가 생길 때까지 만이라도 교회가 이 일을 맡아야 한다. '용해하는 냄비(Melting Pot)'가 아닌 '샐러드 접시'(Salad Bowl)의 복합문화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미국과 카나다에서는,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한인들도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뚜렷이 하여야만 미국 사회에 자극을 주면서 조회를 이룩할 수 있다. 백인들과 구분되는 외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외모에 상응하는 자신의 개성을 갖지 못할 때, 한인 이민자들은 멸시를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복합문화를 추구하는 미국사회에도 긍정적인 공헌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깨어지고 있는 가정상황 앞에서, 동양의 가정 윤리는 미국 가정을 회복하는 데에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이 우리 문화의 개성적인 장점들을 소개하는 작업은 장기적으로 다른 민족과의 조화를 꾀할 뿐 아니라 다원적인 미국문화를 고양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여기서 한국문화 소개와 관련, 한인교회들이 이웃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 세울 수 있는 장기적인 프로그램 몇 개를 들어본다면 한국의 문화와 예절 소개, 김치 담그기, 불고기 만들기, 한국의 국악 가르치기, 전통공예 만들기 등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더 많은 것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이민 1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후손들의 미국 사회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진출에 장기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포석이 될 것이다.

3-3-3. 민족교육의 사명: '자녀교육'은 이민자들 대부분이 이민 온 가장 큰 이유의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의 인격적 접촉이다. 이민자들 대부분은 자녀들의 장기적인 교육을 위하여는 무엇보다 교육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돈벌이에 막대한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시간투자의 우선순위상 더 직접적이고 더 중요한게 할애해야 할 곳은 자녀들과의 접촉인데, 정작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시간을
덜 투자하는 셈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덜 투자하는 만큼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권에서 쉽게 벗어나게 되고 부모가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미국의 저질 향락문화에 무방비 적으로 노출되며 심하면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거기에 오염되어 버린다. 돈은 나중에 혹은 덜 벌더라도, 자녀들을 위하여 시간을 직접 투자하여야 한다. 이민의 목적을 참으로 자녀교육에 걸었다고 한다면, 먼저 교육을 위한 시간투자의 우
선 순위를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치관이 형성될 청소년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과 교훈은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참고로 돈과 기회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민현지의 교육과 관련, 가장 민감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민족어 교육문제이다. 이민현지에서 민족어란 가족관계이외에는 거의 실효성이 없는 것인데, 이것을 굳이 이민 후예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이민현지에서 민족적인 아이덴티티를 고수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언어야말로 민족정신이 깊든 가장 핵심처요,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범주화하고 드러내는 가장 진실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민족어를 모르고는 민족적 개성을 이해할 수 없고, 민족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선조들의 신앙과 전통도 전수 받을 수 없다. 이민현지에서도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고수해야한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라면, 민족어 교육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민후예들의 이민사회 진출과 관련, 자신들의 개성을 상실해 버리고 미국에 동화된 이들보다 민족적 전통을 강하게 지닌 후손들이 더욱 진취적으로 이민사회에 진출한다는 견해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 민족적인 전통을 훈련받은 2세들이 상대적으로 대학진학의 가능성이 높다는 실례들도 드물지 않게 보인다. 이들이 민족적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민족어를 간직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민족어를 고수하는 것이 이민사회 진출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 오랫동안 미국사회에서 생활해 온 많은 이민 선구자들도 같은 경험을 술회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이민현지에서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그것을 치고 나갈 수 있는 힘은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일계이민교회의 민족교육이 실패한 사례를 들어 민족어교육의 무모성을 예견하기도 한다. 처음 오하이오 등지에 왔던 독일계는 민족어보존을 위해 교회에서 민족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했지만 2,3세에 와서는 동화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러나 독일계를 비롯한 유럽계가 이 땅에서 민족어를 상실하는 것과 한인이 민족어를 상실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민족어를 상실하여도 이 땅의 주류(main stream)에 흡수되는 데에 별로 문제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희랍계나 이태리계가 대
통령 후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한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다르다. 한인이 다른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이 땅의 주요 흐름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동양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에서 조수 민족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라도 존재하려면, 외모만 동양인이어서는 안 된다.그 외모에 걸맞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갖고 있어야만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힘
이 생긴다. 이민교회는 한인들에게 바로 이러한 것을 준비시켜 주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민족의 전통과 사상이 긷든 총체적 문화로서의 민족어를 가르치는 데서 가능하다.

이민 2세에게 민족어를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은 이런 관점에서 설명되기도 한다. 이민 1세는 스스로 원해서 이민 온 것이지만, 2세 3세는 스스로 원해서 이 땅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모국과 이 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부모의 세대는 자녀들의 그런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이 어떠한 곳을 선택하든 선택한 곳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적 여건이다. 언어가 얼마나 개척자적 삶에 필수적인가 하는 것은 1세가 이민 왔을 때에 겪은 경험에서 충분히 인식할 것이다.

모국어 교육을 위한 기관으로 현시점에서는 단연 한인교회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이민교회는 유대인들의 '회당'과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민사회를 위한 마땅한 기관이 설립될 때까지 만이라도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은 이민선교를 위해서도 사실 바람직하다고 본다. 민족어 교육의 더 실제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가정예배를 한국어로 진행하는 등 가정을 교육기관으로서 십분 이용하여야 할 것이며, 이민교회의 주일
학교 교육도 점차 민족어로 추진하는 것 등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한인교회들 이 힘을 합치고 모국의 지원을 받아, 이민현지에서 장차 민족어로만 가르치는 각 단계의 특수학교 설립도 구상해 볼만하다고 생각된다.

3-3-4. 민족화해의 사명: 이민교회는 일반교회와 마찬가지로 민족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교회의 사명이 있다. 이 점은 이민교회가 민족문제를 직접 체험하는 자들로 구성된 만큼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문이다. 교회는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LA사태를 통해서 볼 때, 그 동안 한인 이민교회가 미국내의 민족문제 해결에 거의 기여하지 못 했음이 드러났다. 필자는 LA 사태를 계기로 한인교회마다 "제민족 협력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한인교회 주변의 다른 민족들과의 화해와 일치를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수시로 개최할 것을 제창한 바 있다. 또 다른 민족에게 우리를 이해시키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나아가 가능하다면, 흑인 형제들과 영업을 같이 경영하며 그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는 법과 사업경영의 기술,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협동과 사랑 등을 훈련시켜 궁극적으로 그들이 자립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이민교회의 한 중요한 사업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3-3-5. 교민을 인권과 권익을 위한 제사장적 역할: 이민교회는 이민현지에서 한인들의 권익보호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출을 뒷받침하는 구심적 역할을, 교민을 위한 전문기관이 생겨날때까지 당분간만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3.1운동 때에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서 수행한 경험을 돌아보면서 얻는 교훈이다. 이민현지의 2, 500여개의 지역 교회들이 전국적인 교단 조직과 연결하여 필요할 때에 교민들의 이 같은 관심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의 책임이자 선교의 차원에서도 고려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단결이 성숙되면 그 단합된 선한 힘을 단지 한인사회를 위해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을 위해서 나아가서는 미국내의 제반 이유에 성경적대안과 하나님의 나라 확대방안을 제공하는 일에도 단합된 세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은 말:
끝으로 이민교회의 조국을 향한 민족사적 사명이 있다. 먼저 기독교 신앙에 바탕한 좋은 인재를 양성하여 조국으로 보내는 일이다. 조국은 아직도 많은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조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학문과 새문화의 자극을 계속 받아야 하고, 그래야만 세계를 향한 한국+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조국의 민주화. 자주화를 위한 이민현지에서의 역할이 있다. 그 동안 이런 역할을 조국을 향해서만, 그것도 거의 비판적인 입장에서만 감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당연했다고 본다. 이제 그 역할을 확대시켜 미국의 정부와 의회, 언론과 재계를 향해서도 수행 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와 자주화를 저해하는 일들을 자행해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국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가 항상 필요함을 강조해 두고 싶다. 유의 할 점은 그 비판이 미국적 상황과 가치관으로써만 매도하거나 시니칼한 표현 일변도로 나가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조국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이 엄격성과 포용성을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셋째, 조국의 통일을 위한 사명이다. 해외에서는 조국의 남과 북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다. 종래 해외에서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이름아래 한쪽을 다소 편향적으로 비판했던 경험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 비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획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남과 북을 같은 선상에 두고 남북의 체제를 같은 척도로써 비판할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 거기에서 이민교회가 남과 북을 향한 객관적인 시각과 비판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민교회가 남과 북을 향한 객관적인 시각과 비판의 신뢰성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민교회는 남의 자본주의 이념과 북의 사회주의 이념이 갖는 모순들을 지양하고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통일조국의 신앙적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를 성장시키고 있는 섭리사적 목적이 "조국통일과 세계선교"에 있을 것이라고 자주 강조한 바가 있다. 끝으로 조국을 향한 기도와 울음이 그 치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모세와 다니엘과 바울의 기도가 있어야 하겠고, 시편 기자가 읊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편 137:1)와 같이 조국을 향한 울음이 늘 있어야 할 것이다.

기사등록시간 : 2002-08-08 21:14:17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독일개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40 종교 Jack, Ahn이름으로 검색 2198 08-27
39 종교 Jack, Ahn이름으로 검색 2257 08-27
38 종교 Bohoja이름으로 검색 2179 08-27
37 종교 Jack, Ahn이름으로 검색 2349 08-27
열람중 종교 하니이름으로 검색 2915 08-27
35 종교 로라이름으로 검색 2232 08-27
34 종교 한경제이름으로 검색 2379 08-27
33 종교 흰돌이름으로 검색 2345 08-27
32 종교 우연이름으로 검색 2434 08-27
31 종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2360 08-27
30 종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2793 03-15
29 종교 김림이름으로 검색 2276 03-15
28 종교 김림이름으로 검색 2317 03-15
27 종교 김림이름으로 검색 2557 03-15
26 종교 김림이름으로 검색 2260 03-15
25 종교 고민거리이름으로 검색 2367 03-09
24 종교 고민거리이름으로 검색 2291 03-09
23 종교 이상혁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097 03-09
22 종교 땡중이름으로 검색 2368 03-09
21 종교 이 서규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2283 03-09
게시물 검색
이용약관 | 운영진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비밀번호분실/재발급 | 입금계좌/통보방법 | 관리자문의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온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