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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비판적 정판(定版)'의 문제점 - 뷔히너 전집의 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2,279회 작성일 02-03-09 13:24

본문

작성일 : 2000/12/20 [Time: 22:23]

■  소위 '비판적 정판(定版)'의 문제점- 뷔히너 전집의 예
(슈피겔 2000.12.16. Johannes Saltzwedel. 번역: 고스라니gosrani@berlinreport.com)

쉼표 하나까지도 정밀하게 연구되어 나오는, 유명 작가의 소위 '비판적 정판(kritische Ausgabe: 마땅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 '비판적 정판'를 제안합니다. 더 나은 번역어를 알려주시면 감사-역주)'은 흔히 문헌학의 정수로 일컬어진다. 그렇지만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이러한 사업은 종종 기괴하고 엽기적일 뿐이다. 기념비적인 뷔히너 정판의 첫 출판분이 그러하다.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이 1835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은 분량이 작았고 또 잘 판매되지 않았다. 이 책은 160 면에 불과했고 당시 가격이 1 굴덴 12 크로이처였으며, 초판은 4백부 발간되었지만 12년이 지나도록 모두 판매되지도 않았다. "프랑스 공포 정치에 대한 드라마투르기적 영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던 이 작품의 판매가인 1굴덴 12 크로이처는 이 책이 발간된 프랑크푸르트에서 근처 다름슈타트(최근 이 전집이 발간된 도시-역주)까지 마차를 타고 가는 가격 정도이었는데, 당시에는 이 책을 사기 위해 이 정도 금액을 내는 사람이 무척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작품은 총 18권으로 계획된 게오르그 뷔히너 '역사적-비판적 전집(historisch-kritische Gesamtausgabe)'의 첫 4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네 권의 가격은 480 마르크(약 23만 원)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1797년과 1799년 서간체 소설인 "휘페리온" 1, 2권을 발간했다. 이 작품의 초판은 각각 360부씩 발간되었다. 이 책을 출판한 코타 출판사는 작가에게 1백 굴덴을 지불했다. 그런데 D.E.자틀러가 편집한 '역사적-비판적 전집'은 총 22권에 4천 마르크를 호가한다.)

의대생이던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년)가 약 5주간 집필한 그의 첫 작품 "당통의 죽음"은 세계 문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의 필독서에 속한다. 당통의 절망적인 냉소("세계는 카오스야")와 우리 속의 악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들은 도이체 타센부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6 마르크 주고 사거나, 레클람 문고판을 4 마르크 주고 사면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심지어 공짜로도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이 작품을 좀더 철저히 연구하려는 사람은 얼마 전부터 수표와 짐가방을 준비해야 한다. '역사적-비판적 전집'의 첫 부분이 최근 학술서적회 출판사(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에서 출간된 것이다. 이 전집은 "당통의 죽음"을 부록까지 포함해서 장장 1,640 면에 펼쳐놓았다. 이 장정본의 가격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480 마르크이다.

"당통의 죽음"을 읽는데 이런 돈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 A4 포맷의 전집을 편하게 읽기는 어차피 어렵다. 이 책에 가득한 스콜라적인 주석과 약자들 사이에서는 뷔히너의 원문이 가장 해독하기 쉽다.

각 페이지마다 뷔히너 필사본 원문의 복사본이 실려있다. 그 옆에는 창피스럽게도 모든 잘못쓴 글자, 잉크 얼룩, 줄을 그어 지운 글자 등이 정확히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는 이 모든 텍스트가 다시 한번 나오는데, 이제 소위 '발생적 서술'에 따라서, 즉 뷔히너의 여러번에 걸친 모든 개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더 텍스트 나오고 그 옆에 검열에 걸려 지워진 부분들과 인쇄 오류 등이 수집되어 있다. 마지막, 즉 네번째로 나오는 '인용과 관련되어진 텍스트'가 있는데, 여기서는 8가지의 기호를 통해 뷔히너가 어떤 책들에서 작품 창작의 모티브를 얻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도 충분치 않다. 두꺼운 제3권에서는 텍스트들은 다시 한번 인쇄되어 여기에 설명이 추가되어진다. 그래도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제 4권에서는 모든 등장인물과 이 작품에 나오는 총 663개 대화들의 모두에 색인이 첨부되어진다. 거기에다가 약 2백 면에 달하는 "편집자 후기"는 "당통의 죽음"의 형성 과정과 1851년까지 이 작품의 영향, 그리고 뷔히너의 생애(그의 조부모, 그리고 그의 국어 선생의 정치적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누가 이걸 다 읽겠는가? 누가 이런걸 다 알려고 하겠는가? 많은 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호화로운 고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부르크의 "게오르크 뷔히너 연구소(Forschungsstelle Georg Buechner)"의 토마스 미하엘 마이어 씨는 이런 조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이 전집을 통해 "당통의 죽음"이 처음으로 철저하게 원전에 의거하여 연구되어졌다고 본다. 그는 연구소의 소장 부르크하르트 데트너와 함께 이 전집의 편집인이다.  

"이 전집을 연구하는 사람은 작가의 책상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이어 씨는 말한다. 게다가 데트너 씨는 일반적인 '문학 동호인'조차도 이 당통 정판을 이용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완전성의 요구가 충족"되었고 "'당통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수집되어, 책이라는 형태로 상설 전시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좋다. 그렇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런 주석과 약어의 숲 속을 용감하게 치고 나갈 수 있는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완전성의 요구란 이런 1,640 면에 달하는 두터운 책, 원문의 30배에서 50배에 달하는 책을 통해서도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책에 들어있는 몇가지 사실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그 예로서 하필이면 이 텍스트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화, 즉 뷔히너 원본과 다른 장면 전환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빠져있다. 그리고 당통과 그 주변의 혁명가들의 초기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집중 연구해온 자브뤼켄의 독문학자 헤르베르트 벤더 씨는 이 책의 주석들에 나타나는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이는 어떠한 근거도 없으며 엉터리 역사 서술이다"라고 비판한다.

뷔히너 전기작가인 뒤셀도르프의 얀-크리스토프 하우쉴트 씨도, 독일 연구협회(DFG)가 크게 지원하여 이루어진 이 전집의 '완전성 주장'에 대해
"허황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실지로 1837년 24세도 되기 전에 죽은 뷔히너의 몇 안되는 작품과 편지들이 18권이라는 엄청난 전집으로 발간되는 것이다. 이 전집이 계획대로 2012년에 완성될지는 편집자인 데트너 씨조차도 "신만이 아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들 마부르크의 학자들은 스스로 설치한 세 개의 함정에 빠져있다. 즉 이론의 함정, 돈의 함정, 그리고 특권의 함정이다.

이러한 거대한 전집 편찬을 이루어지게 한 것은 '편집 이론(Editionstheorie)'의 발전이다. 약 30여년 전부터 학생 운동의 해방의 격정에 힘입어 편집인들은 점점더 다음과 같은 인식을 유포시켰다. "죽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의 철저한 '역사적-비판적' 판본은 단지 남겨진 작가의 글자들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그 막의 뒷편을 엿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독자는 작가와 그의 작업 방식, 그리고 나아가 그의 작품 출판자의 뒷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이러한 이론의 요체이다.

이러한 이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좌파 횔덜린 '극단주의자' 디트리히 에버하르트 자틀러(브레멘)로부터 왔다. 횔덜린(1770-1843) 작품을 수 십년에 걸쳐 정리한 "슈투트가르트 대전집"은 '독자에 대한 후견인 설정(Bevormundung der Leser)'일 뿐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예를 들어 횔덜린이 미치광증에 빠지기 직전인 1806년 무렵에 횔덜린은 큰 공책에 마치 모자이크 조각들처럼 산만하게 싯귀를 적어 두었다. 자틀러 씨는 "누가 감히 이로부터 몇 편의 시들을 '증류'해낼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그래서 그는 1975년부터 횔덜린의 원고의 '팩시밀리 사진'과 이를 해독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들을 덧붙여 출간했다. 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엄청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슈바벵의 예언자 횔덜린의 어둑어둑한 싯귀들을 자틀러는 3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정리해냈다. 불과 몇 주전부터 드디어 비평가들은 이 전집의 마지막 두 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몇 번을 다시 들여다보아도 횔덜린의 숭고한 찬가 대신에 단지 단어들의 뭉치만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안에 뭔가 천재적인 것이 숨어있다는 것은 편집자가 마치 예언자처럼 몇마디 덧붙이는데서 보증될 뿐이다.

전문가들은 자틀러의 방식이 횔덜린의 신탁과 같은 작품들에는 적당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 "프랑크푸르트 전집"은 부록까지 포함해서 자그마치 4천 마르크이다. 또한 이 전집은 예상치 못하던 결과를 가져왔는데, 자틀러의 동료 학자들은 이러한 '팩시밀리 사진' 방식을 다른 작가들의 작품, 즉 별로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에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수께끼의 서정시인 파울 첼란(1920-1970) 숭배자들은 이제 그의 단어장이나 볼펜 메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는 이러한 것들이 그의 시를 보다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지 아닌지는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스위스 소설가 콘라드 페르디낭드 마이어(1825-1898)의 케케묵은 그림엽서들도 팩시밀리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만일 필사본이 없다면 초판본을 가지고 성스러운 원본 텍스트와 그에 대한 주석 및 발생 흔적이 밝혀져야 한다. 내년에는 몇 면 밖에 안되는 소설 "렌츠"를 "해체"-데트너의 말-하는 작업이 뷔히너 전집의 두꺼운 책 한 권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런 작업들은 물론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러한 대전집 편찬을 위해 별도 연구소가 설립되는 경우-이는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루어지는데- 돈의 함정이 나타난다.

마부르크의 연구소는 5명의 연구원, 2명의 보조 직원, 1명의 비서가 일하고 있고, 6개의 사무실과 특수 도서관이 갖추어져 있다. 이전에는 한 사람의 독문학 교수가 보통의 학문적 방법을 통해 이루어내던 작업이 이제 엄청난 예산을 갖춘 일이 되고 말았다. 뷔히너 전집 편찬자 마이어 씨는 "'당통의 죽음'을 판매해서 13년에 걸친 DFG의 지원금을 메꾸려 한다면, 그 판매액은 이 책들과 같은 크기의 금덩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해도 소위 특권의 함정만 없다면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업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많은 '역사적-비판적' 전집 사업은 학문 세계의 싸움터와 같은 모습이 된다.

이 공룡 같은 마르부르크의 "당통"은 좋은 예이다. 왜냐하면 로베스피에르나 생쥐스트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지나친 세부 묘사나 뷔히너 인용에 첨부된 혁명 테러의 역사 등은 단지 그에 들어간 땀을 증명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러한 주석에는 지난 1백년간 계속된 연구자들의 줄다리기가 담겨있다. 학자들은 누가 "당통의 죽음"의 인민법정에서 승리할 것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이 젊은 작가가 도대체 어느 한쪽 편을 들었는지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데트너나 마이어 씨는 오래 전부터 뷔히너를 이상주의적인 혁명가로 서술해 왔으며, 그래서 증거가 없더라도 자신들의 영웅적 이미지를 주장한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는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극히 의심스러운", "이상스럽고 시야를 좁히는","고집스럽게 자신의 의견에 고착된" 등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이 두 연구자는 1934년 말 뷔히너가 자신과 친분을 가진 혁명가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에 있어 "아마도 그 조직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 본다. 장-크리스토프 하우쉴트는 이러한 "당통의 죽음" 주석을 "1834년 가을부터 1835년 봄 사이 헤센의 저항파 활동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의 집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뷔히너의 지하조직 접촉설에 대한 갖은 추측들은 "당통의 죽음"에 대한 더욱 심화된 이해를 위해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헤르베르트 벤더 씨는 이러한 주석의 허섭쓰레기로부터, 마이어 씨와 데트너 씨가 다른 뷔히너 연구자와의 지속적인 싸움에 있어 일격을 가하려 함을 즉각 알아내었다.

이렇게 숨겨진 멱살 드잡이가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 지원금과 "사단법인 게오르크 뷔히너 학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전집의 의미일 수 있을까? 짧은 극본을 위해 1,640 면을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러한 작업을 위한 전제가 "아직 전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집자들을 아직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쟝-크리스토프 하우쉴트는 "괴테 전집을 이런 식으로 편찬하려면 아마도 1천권은 족히 필요할 것"이라고 비꼰다. 마부르크에서는 그래도 18권 밖에 계획하고 있지 않고 어쩌면 정말로 2012년이면 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편집광적인 인물 마이어는 은퇴할 시기가 될 것이고 젊은 사람들이 게오르크 뷔히너의 작품을 수천 줄의 주석으로 하나의 요새처럼 만들어 버리는 사업을 넘겨 받게 될 것이다.



- 역자의 덧붙이는 글: 기자는 이러한 작업이 지나치게 번잡함을 조롱하고 있지만, 이 기사를 번역한 역자는 이렇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밀한 작업과 학문 방법론이 한국의 학계에서는 아직은 더욱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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