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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새로운 낭만주의는 올 것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인혜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1,988회 작성일 02-03-09 13:19

본문

작성일 : 2000/04/10  조회수 : 121

■  새로운 낭만주의는 올 것인가?

- 한 석사논문의 실리지 못한 서문


우리말 '낭만주의'는 독일어 단어 'Romantik'이 가지고 왔고 가지고 있는 의미의 다양성보다 어쩌면 더 다양하고 복잡하게 쓰일 수 있다. 한국에서 대개 그러한 이름들은 그 기원과 유래를 밝혀내려고 시도되기 전에 이미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수용'되어 있고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마치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것처럼 인식되기까지 한다. '화용론'의 '의미론'에 대한 우위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주장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실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그러나 다층적이고 변화의 가능성에 개방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어휘들이 그 풍부함을 향해 끊임없이 열려가기보다 대개는 다수적 일상어의 힘에 흡수되고 말아서는 뒤이어 곧 김빠지고 무능력하며 매력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에 있다 - 그것은 어쩌면 모든 강력하나 고정된 힘들이 겪게 되는 경로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낭만주의는 '낭만적'이라는 일상어와 접속되어 버리면 이내 자질구레한 감성이나 나른한 기분 정도를 연상시키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자질구레한 감성'이라는 말을 썼을까? 18세기 말에서 19세기를 향해가던 시기 독일의 이른바 '낭만주의자'들이 듣게 된다면 분개할 것임에 틀림없는 그런 말을. . .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감성 혹은 느낌(Gefuehl)'이란 가장 존중되고 칭송되어야 할 가치로써 인간의 거의 신성에 가까운 능력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감성'이라는 말 '자체'가 갖는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었느냐 하는 것이라기보다 그 단어를 둘러싼 외부적 맥락들, 그 단어에 덧씌워진 효과들의 차이를 추적하는 일일 것이다.


1800년을 전후한 시기 독일 사회에서 '낭만주의'는 지식인들 사이에 있어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독일인들이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 이 운동은 독일의 프랑스에 대한 오래된 경쟁의식에서 이미 그 공감대를 형성할 준비가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 계몽주의와 이에 사상적 기반을 둔 프랑스혁명, 그리고 그 혁명의 점점 더 어긋나가고 있는 양상은 독일인들이 더 이상 사상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프랑스에 의존적이지 않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은 더욱더 심각하게 자신의 정체성에 총체적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계몽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이들이 '비합리적인 것, 모순에 가득찬 것, 어두운 것'의 찬양으로 돌아서게 만들었고, 프랑스 문화의 우위에 대한 현실적으로 팽배하던 인식은 독일의 것, 독일의 역사, 독일의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종용하였다.

어쩌면 일종의 콤플렉스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그러나 그것이 강박적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비난받을 필요는 물론 없다. 중요한 것은 일종의 콤플렉스가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내가 당시의 '낭만주의'에 대해 주목하는 것 또한 그러한 종류의 문제들로써, 어떠한 상황과 맥락에서 어떠한 힘들이 작용하게 되며, 그럴 경우 어떠한 것들이 '가치'있는 것으로 남겨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 말해둘 수 있는 것은 이 특수한 운동이 가진 힘이 그 '깊이' 혹은 '높이'에 있어 어떤 독특한 차원을 점하고 있는 것 같이 내겐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개인적일 수도 있는 '느낌'을 당대의 낭만주의자들 또한 직접 체험하고, 표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1808년 그린 그림에서 한 수도승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은 바다와 그 높이를 측정할 수 없는 하늘 - 비록 짙고 낮은 구름이 화면을 휩싸고 있기는 하지만, 구름 뒤에 여전히 맑고 높게 빛날 하늘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을 직면하고 있다. 그 끝간 데 없는 공간에 서 있는 한 인간이 갖게 될 무한한 감정의 차원들은 관객에게 또다시 전염되고 침투될 것이다. 그래서 그 '느낌'이란 어떤 무한하고 신성한 영역과 맞닿고, 가장 내면적이며 가장 궁극적인 것을 향해 끝없이 연장될 것이다. 그렇게 프리드리히는 믿었던 것이다.

'느낌'이 궁극적인 것을 향해 '연장'된다는 것은 그것이 속성상 '순간'과 관계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이 의미를 갖고 일관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느낌'이란 그저 순진하고 얄팍한 감성적 차원에 머물지 않으며, 제멋대로이거나 작위적인 것이 아니다. 무언가 더 깊거나 더 높은 차원의 '느낌'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진정으로 인간을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그러한 느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우리 자신에게 이미. . .

이처럼 낭만주의자들은 'Gefuehl'의 차원을 신과의 매개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적 수단으로 이해함으로써 그것의 영역을 그 어느 때보다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물론 많은 유사성과 차이들이 존재했으며, 실로 다양한 맥락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당대의 경건주의 경향, 신비주의, 신플라톤주의 등등의 이름들이 말하는 바. 그러나 사실은 더 '오래되고' 언제든 다시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생각들. 그리스적 神, 중세적 빛, 그리고. . . 덧붙여진 논문이 조금은 참고가 될 것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 : 수많은 맥락들 속에서 지금의 나에게도 그 때의 그들에게도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넓게 말해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의 모토였던 '동경(Sehnsucht)'은 일반적으로는 과거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이 의미를 지닐 때는 언제나 미래적인 것과 관계를 맺을 때였다. 시간적으로 '이미 지나간 것'은 현재의 순간을 위해 쓰이고 미래에 새롭게 생산되어야 한다. 필립 오토 룽에가 그렇게도 자주 질문했던 문제는 과거의 맥락들을 넘어서 어떻게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간> 연작에서 아침과 낮, 저녁과 밤의 차이는 결코 근원적인 것에 있지 않다.

이야기를 너무 많이 벌여 놓았다. 사실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문제들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게 조작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수많은 주름들을 반듯하게 펴서 다림질하기보다 그것들을 그 상태에서 들추고 다시 접으며 또 다른 주름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는 데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가끔은 운좋게도 들추어질 만한 것을 들추었다는 기분에 젖기도 하고, 질문되어야 할 것을 물었다는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독일의 19세기 낭만주의가 어떠했고, 그것 또한 어떠한 '지나간 것들' 위에 있었는지를 물으며, 가장 중요하게도 '새로운 낭만주의는 올 것인가?' 하고 물어보는 것.
- 이것은 앙리 르페브르의 "모더니티 입문" 중 마지막 장 - 12번째 전주곡 -의 제목이기도 하다.


'논문'에 대하여
학문이 삶과 유리되지 않기를 바랬고, 나는 그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논문이 자격증이 됨으로써 학문이 삶(?)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논문이라는 형식이 진정 '생산적'인 것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음으로써, 학문이 삶과 유리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러나 여전히 무리인 것인가! 사실 진리는 간단하여, 모두들 진정한 '생산'을 지향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와질 수 있다. 왜 그 점만을 염두에 두는 것이 힘든 것일까?

필립 오토 룽에(Philipp Otto Runge)의 <시간> 연작에 나타난 회화이념 (논문 전문 Down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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