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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를레네 디트리히 탄생 1백주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 이름으로 검색 조회 6,845회 작성일 02-03-10 00:56

본문

작성일 : 2001/12/21 조회수 : 24



13.jpg고혹적이면서도 당당한 은막의 여왕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신화는 지금도 살아있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올해 12월 27일이면 백살이 된다. 혹은 두살 적은 98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론 백살이 맞다. 이것을 계기로 베를린 영화박물관(Berliner Filmmuseum)은 내년 2월까지 특별전시회 »Forever Young«을 개최한다. 여기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그녀의 수많은 의상과 사진, 편지들이 공개된다. 12월 28일엔 Friedrichstadtpalast에서 대규묘 레뷰가 벌어진다. MDR KULTUR는 29일과 30일 양이틀간에 걸쳐 "마를레네 디트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테마로 그녀를 추모한다.



마력적인 성적매력 그리면서도 차가운 거리감, 매혹적인 얼굴, 유별나고 독특한 목소리는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세기의 스타의 한사람으로 만들었다. 치명적인 여자(femme fatal) 디트리히는 은막에서만 위험한 여자였던 것이 아니다. 그는 대사냥꾼이자 이빨없는 사자 헤밍웨이를 그녀의 숭배자로 만들어버렸다.  Gary Cooper, Maurice Chevalier 혹은 Jean Gabin같는 마쵸들도 그녀를 사랑했던 이의 대열에 있다. Erich Maria Remarque도 그녀의 연인이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가끔씩 그녀는 근육질의 젊은 배우를 거느렸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네"(Ich bin von Kopf bis Fuß auf Liebe eingestellt)



60379.jpg1930년 Josef von Sternberg 연출의 "푸른 천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일약 유명해졌다. 이 성공후 그녀는 슈테른베르크를 따라 헐리우드로 가서 그와 5년동안 활동을 같이 했다. 그는 그녀에게 어금니 4개를 빼라고 충고한 사람이다. 그녀의 얼굴이 더 갸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녀가 15 킬로를 빼도록 했다.



32년의 "금발의 비너스"에서 남성정장을 하고 나타난 것은 그녀의 상표가 되어버렸다. 이는 섹스심벌 디트리히에게 당당하고 독립적인 중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해주었다. 35년까지 슈테른베르크와 일한 후 그녀는 나찌의 선전부장관 괴벨스의 소원에 따라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당시 모든 주요신문들에서 읽을 수 있었던 한 사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떠들었다.



"마를레네가 이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독일영화산업의 선도자로서의 역사적인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며 더이상 헐리우드의 유태인들의 도구로 악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29431.jpg그러나 그대신 그녀는 미국국적을 취득했으며 히틀러독일에 반대한 투쟁의 대열에서 수많은 쇼에 출연해 군인들을 위문했다.  일부 독일사람들은 이 "조국에 대한 배신자"를 오랫동안 용서하지 않았다. 1960년에 그녀가 몇번 서독을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맞이한 플래카드에는 "마를레네 꺼져라"와 같은 것도 있었다. 97년에 가서야 베를린사람들이 화해의 뜻을 비쳤고 한 도심의 광장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그녀는 2차대전후에도 몇개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미 그녀의 화려한 시기는 지나간 뒤였다. 그녀는 53년 라스베가스의 사하라 호텔의 무대에 출연해 숨막히는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쇼스타로서의 두번째의 캐리어를 시작했다. 쇼의 기반은 그녀가 출연한 옛 영화의 노래와 우화들이었다. 그녀는 수많은 성형수술을 받았고 아주 세세히 그녀의 무대출연을 계획했으며 예고없이 들어닥치는 사진사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75년 시드니의 한 극장에서 대퇴골이 부러졌을 때 이것이 그녀 무대경력의 마침표가 되었다.



13.jpg1978년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다시한번 "아름다운 지골로, 가난한 지골로"라는 영화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 뒤로는 완전히 공개석상에서 사라졌으며 거의 모든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거부했다. 그러다 1983년 Maximilian Schell이 감동적인 다큐 "Marlene"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여기서도 그녀는 단지 목소리만 나온다. 여기서 그녀는 사랑과 성에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그래요 남자들이 딱히 그런걸 요구하고 기대하는거고,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그에 굴복하게 되는거죠."



91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반파쇼의식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품위에 대한 감각"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92년 5월 6일 파리의 그녀집에서 숨을 거두었고 베를린의 어머니집 근처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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