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자행된 유대인박해와 한국근대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동유럽 거주 유대인들의 미국 이민은 1849년의 샌프란시스코 금광 발견과 1881년 한 과격한 유대인에 의해 자행된 러시아 황제 암살사건 이후 유태인 박해로 인해 다수가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부터 본격화된다.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는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미국으로 건너간 이들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등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은 주로 미국 동부지역 도시들에 모여 살게되는데 이들 중 많은 수는 영화, 음악등 예술계에 두각을 드러낸다. 미국 현대음악의 거장인 조지 거어쉰, 영화사 워너브라더즈의 워너형제, 클라리넷티스트 베리 굿맨등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 올릴 수 있겠다. 동유럽지역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의 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는 이처럼 미국의 영화음악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꽃피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이 시기에 유대인 박해와 우리나라역사의 관계이다. 러시아 황제 짜르의 유대인 박해를 지켜보던 전 세계에 퍼져살던 유대인들은 극분했으며 강한 반러 감정이 생겨나게 된다. 당시 러일전쟁을 치르고있던 일본은 군자금 부족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유대인들의 극에 달한 반러 감정이 결정적 작용을하여 당시 프랑크푸르트에 근거지를 둔 최고의 은행인 유대계 로칄트 (Rothschild)계열의 "쿤 & 롭사" Kuhn & Loeb Co( 지금의 리먼브라더스)의 야콥 쉬프의 협조로 일본에 막대한 전쟁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된다. 이 돈으로 일본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능하게 하며 그 이후 쉬프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왕에 의해 표창을 받으며 국빈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게된다.
러시아는 이 전쟁의 패배로 1905년 "피의 일요일" 이라는 국운을 맞게되며 미국에서는 쉬프의 이러한 친일적인 태도로 인하여 반유대주의 감정이 생겨나게된다.
극동에서는 1904년부터 1905년 걸쳐 진행된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일제수탈의 시기로 서서히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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