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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베케트 연구(2)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 -1860)

제가 개인적으로 지난 세기 최고의 언어예술가로 꼽고 있는 아이레의 글쟁이 베케트의 예술 세계 형성에 철학적으로 거의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입니다. 그래 이 철학자의 미학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베케트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바탕 다듬질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이 양반 인식론의 대강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I), 이를 바탕으로 예술적 인식과 관련된 그 대상의 문제 등에 대한 말씀(II)을 드린 다음, 마지막으로 여러 예술 분야 중 음악이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대한 이 양반의 의견을 짧게 요약 말씀드리겠습니다(III).


I.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을 우리말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 번역한다는군요. Wille를 의지로 번역함에는 이의 없으나 Vorstellung을 표상으로 번역함에는 참 안타깝다는 마음이 앞섭니다. 표상(表象)이 표면에 떠오른 모습이라는 뜻이라면 그 내용에 있어 어찌 이의를 달겠습니까마는, 이 표상이란 말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즉 말이 우리 감각에 와 닿지를 않아요. 허나 어쩝니까, 일단 공식 번역을 존중하기로 하죠.

위의 대표작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세계를 한편으론 의지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표상의 세계로 이등분합니다. 후자의 세계는 쉽게 말씀드려 경험의 세계죠. 현상(Erscheinung)의 세계라고도 하고요. 주체와 객체로 다시 나누어지는 세계, 이 세계를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내세운 세 가지 조건에 묶어 버립니다: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율.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경험한다 함은 우리라는 경험 주체가 그 무엇이라는 경험 객체를 인식하는 과정을 일컫는 바, 이 인식 과정은 공간적, 시간적 그리고 인과율적 조건에 얽매여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Kant의 12 범주 대신 단 세 가지로 이 현상적 경험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 하니 이 Hegel의 천적 양반 얼마나 뿌듯해 했겠습니까?

그 뿐인가요, 의지의 세계가 그 옆에 (뒤에?) 있습니다. 이 세계가 사실 말씀드리려는 쇼펜하우어 예술론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졸지 마시고 정신 똑바로 차리시고 자알 들으시길^^.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의하면 경험의 세계 저 너머, 아니면 그 뒤에 위치해 있으며, 동시에 이 현상적 경험의 세계를 근본지워주는 그런 세계입니다. 말이 좀 마구 어려워지죠. 다시 한번: 표상의 세계가 외면의 세계를 대표한다 하면 이 의지의 세계는 내면의 세계를 감싸는 말이지요. 이러한 구분에 준해 표상의 세계에 적용되는 위의 세 인식 조건들은 이 의지의 세계에는 당연 무효합니다. 달리 말해 표상의 세계에서의 인식이 이 조건들을 통한 간접적 인식이라 한다면 의지의 세계에서의 인식은 아주 시원한 듯 들리는 직접적 인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두 세계들의 상호 관계는 이러한 정적인 관계 이상은 아닐까요? 일종의 상호 교통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양 세계의 동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객관화'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즉 의지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는 현상이 아니지만 현상적 표상의 세계로 객관화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예컨대 우리 사람의 육체,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육체는 당연 표상의 세계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육체는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의지가 밖으로 뛰쳐 나와 >>객관화<<된 현상이라 합니다.

어, 잠깐만, 그럼 그 의지의 세계는 표상의 세계와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적 관계에 있으니 의지의 세계가 이 경험적 인식의 기본 조건에 어쨌든 걸려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고 여쭈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객관화의 관계와 인과율적 관계는 엄연히 구분해야 합니다. 의지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밖으로 나타내고 싶어하는 일종의 >>힘<<을 가지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의지의 세계에서 바라다 보면 우리네 인생 또한 별 것 아니라 바로 이 의지의 힘이 스스로 밖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총체인 것이죠. 니이체가 생각나시죠? 사실 이 양반의 소위 >>권력에의 의지<<의 서광은 바로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의지론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의지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면 현상(Erscheinung)의 세계에서 여러 모습들로 나타나며, 이러한 현상의 모습들간의 싸움에서 벌어지는 쟁탈권을 바로 그 >>권력에의 의지<<가 대변하니 말이죠.


II.

의지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킨다면, 이는 바로 우리 인식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를 다시 등급화시킵니다. 높고 낮음의 서열을 매깁니다. 고수-하수가 있고 앞서감-뒷서감이 있다시피 말입니다. 허나 우리의 철학자는 이의 잣대로서 직접- 간접을 이용합니다. 간접적 인식 대상이란 위에 말씀드린 일반적 경험의 인식 대상들, 다시 말해 이러한 인식의 세 가지 조건들을 통해서만이 - 즉 간접적으로 -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을 말하며, 반면 직접적 인식 대상이란 이의 부정을 말합니다. 이를 쇼펜하우어는 >>이데아들<<(복수입니다)이라 규정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데아들이 우리의 주된 관심사, 즉 예술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우리의 대상인 이데아들은 시간과 공간의 규제에 얽매이지 않으니 당연 이전이나 변형, 사라짐 등의 현상에 붙잡히지 않고, 어째 보면 영원한 대상적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Kant의 소위 >>물자체<<와 엇비슷하지 않나 의심하실 수 있으나, 사실 그런 면 또한 있고요, 단지 다르다면 이 물자체는 대상이 될 수 없는 반면 이데아들은 한 주체를 위한 대상으로 부각이 될 수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심지어 >>진실한 존재들<<이라 부르며 격을 높이려 합니다.

허나 이 순간 어, 잠깐만, 그럼 플라톤의 이데아하고는 뭔 차이가 있나요? 하는 질문 던지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플라톤이 생각했던 이데아는 각 개별적 사물의 원초적 형태, 내지는 단순한 형식으로서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이 책상이라는 물건의 저 건너에 있는 그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그 무엇이 되는게죠. 나아가 플라톤에게는 진선미라는 세 가지 주요 이데아들이 등장하는 반면, 쇼펜하우어는 이를 무시합니다. 자신의 이데아론은 이와 많이 다르니 말이죠. 결정적인 이 두 양반들의 차이를 어쩌면 이데아들은 어찌 인식되어지는가에서 살펴 볼 수 있을겝니다. 플라톤은 이러한 인식 과정에서 감성적 요소를 완전 배제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희랍 양반은 감성 그 자체가 우리의 인식을 곡해한다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자신의 순수한 이데아를 어찌 이 감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그 대신 오로지 정신, 즉 철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건대, 왜 플라톤이 그럼 예술을 폄하하며 철학의 저 뒷칸으로 물리쳤는가 그 이유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독일 철학자는 허나 바로 여기에서 예술 본연의 과제를 찾습니다: 예술은 바로 이 의지가 객관화된 존재로서의 이데아들, 이 유일한 >>진실한 존재들<<을 다시금 표상의 세계들의 물질들을 통해 현현시키는 작업을 그 목표로 삼는다 합니다. 어찌 보면 이는 이 양반의 철학적 맥락에서 보면 인식론과 미학을 연결짓고 있는 지점으로도 보입니다만.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죠? 문제가 있어요. 그럼 저 같이 자기 스스로를 예술가로 보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저의 인식 능력 또한 시간, 공간 그리고 인과율이라는 경험의 조건을 무시할 수 없으니 말이죠. 만약에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그러한 예술가적 특별 인식이 가능하다 한다면, 이는 어쨌거나 이러한 평범한 경험의 인식과는 다른 종류의 인식임에는 틀림없다 봐야 할 것입니다. 달리 말씀드리면, 현상적 경험의 세계 저 밖에 머무르는 이데아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인식 주체 또한 이 경험의 세계를 떠나 저 세계로의 외출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짧게 말해 저는 예술가로서 한갖된 세상적 존재임을 잊어야만 저의 예술가적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엄청난 선언입니다. 물욕 애욕 등의 이 세상과의 세속적 관계를 끊고, 소위 무아의 지경에 이르러야 된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죠. 세상을 잊고 자기를 잊으니 너와 내가 없어지고 경계가 없어지매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는 인식 주체와 객체가 혼연일체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바, 바로 이게 예술가의 이데아 인식에서 이루어진다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명상<<이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결국 예술 작품은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그 명상의 결과를 경험 세계의 물질로 표현한 작업의 결과일 따름이고, 예술이란 결국 그에 있어서는 >>인식 방법<<인 셈이지요. 그것도 인간 최고의 인식 방법.


III.

아까 참에 제가 쇼펜하우어는 그 객관화의 정도에 따라 인식 수준을 등급화 시킨다 말씀드렸듯, 예술가들의 인식 또한 등급화됩니다. 그 고저의 잣대 또한 마찬가지로 객관화의 정도에 달려 있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밑에서부터 건축, 회화, 언어 예술 등의 순서로 올라갑니다. 객관화가 그 만큼 더 성숙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허나 오늘은 이에 대한 상세한 말씀은 접어둠을 용서하시고, 약속드린대로 이 양반 미학에 있어 그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말씀을 끝으로 맺을까 합니다.

"철학적 명백함으로 쇼펜하우어는 처음으로 음악과 다른 예술 장르와의 차이를 인지했으며 명시했다. 그는 바로 이 음악에 미술과 언어 예술과는 다른 본질적 성격을 부여했던 것이다" 독일 작곡가 R. Wagner의 말입니다. 이를 맛배기로 하고 그럼 쇼펜하우어의 음악에 대한 말을 직접 들려 드리지요:

"음악은 다른 여타 예술 장르와는 달리 이데아들의 모사가 아니다; 오히려 >>의지 그 자체의 모사<<다. 물론 이 의지의 객관화가 바로 이데아들이지만: 따라서 음악의 효과는 다른 여타 예술 장르들보다 더 강하고 그 침투력이 훨씬 세다." (강조: 쇼펜하우어)

주지하시다시피 이는 단순 주장입니다. 테제의 설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요. 그럼 쇼펜하우어 자신의 논증은? 하시면, 유감스럽게도 없는 듯하다 말씀드립니다. 제 눈에는 그 양반은 이러한 테제의 설득력이 너무 너무 뚜렷하고 명백하니 논증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한 듯 합니다. 아니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한 듯 합니다. 그 >>직접성<<, 즉 >>매개체 없음<< 때문이지요. 단지 그는 논증 대신 부분적인 확인 과정을 통해 이에 대한 설득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님께서 직접 찾아 보시고 - 오늘 참 시원 시원 막 넘어가죠^^ -, 그 대신 제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오히려 이러한 확인 과정의 재확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러한 테제가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렵니다:

음악은 그 더할 수 없는 직접성, 세계 그 자체의 근본인 의지가 그 어떤 매개체 없이 나타나는 직접성에 힘입어 음악적 인식의 양적면에서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훨씬 더 넓으며, 그 질적면에서는 훨씬 더 신빙성이 높다 할 수 있습니다. 왜 넓으냐 하면, 다른 장르들은 특정한 한 객관화의 등급에 머물러 있는 반면 음악은 이러한 등급에 얽매이지 않고 바로 그 의지 그 자체의 표상이니 그렇습니다. 또한 왜 그 신빙성이 높으냐 하면, 바로 중간 매개체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또 그렇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고요. 순수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짧게 요약 말씀드리자면, 음악은 세계 그 자체의 근본인 의지를 가장 순수하게 전달하는 유일 최고의 인식 양태란 주장입니다. 그러니 철학보다 훨씬 더 높은 자리 매김을 저지르는 경우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음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언어를 쇼펜하우어는 >>무의식의 언어<<라고도 부릅니다. 지적이고 합리적인 평상의 언어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의지 그 자체라는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바로 이 무의식의 언어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을 하는 동안 자신의 그 작업 자체는 무의식 속에서 진행된다는 말이지요. 덧붙여 제가 음악을 듣는 그 순간 제게 전달되는 것은 또한 이러한 무의식 속의 순수한 작업의 결과, 즉 의지 그 자체라는 말이기도 하고요. 또 문제 있습니까?^^

쇼펜하우어의 말합니다:

"Musica est exercitium metaphysices occultum nescientis se philosophari animi"

("음악은 형이상학 속에서의 무의식적 연습이며, 여기서 정신은 자기가 철학을 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쓰고 보니 참 주저리 주저리 해대었음을 고백합니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은 못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최소한 이 가르침을 한번쯤은 직접 들여다 보겠다는 작은 욕심이 님들의 마음 한 구석에 생긴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 이상은 또한 이 어리석은 자의 능력이 허락하지도 않는 듯 합니다.

서동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9-04-03 (금) 23:43 10년전
새로 시작하려는 '베케트 연구' 시리즈를 되도록이면 짜임새 있게 꾸려나가고픈 욕심에 얼추 3년여 전에 이 곳 마당에 올린 글을 복사해 뻔뻔스레이 다시 내밉니다. 듬성듬성 보이는 이런 저런 모양새에서 얼추 10여년 전에 처음으로 끄적거렸던 글임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강산이 변한다 했거늘, 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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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2-04-06 (금) 07:29 7년전
(속에)가슴에 품어 뜻하는 것들과 드러내어 보여지는 모습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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