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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폰타네의 문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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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05-02 00:29 조회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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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네(Theodor Fontane: 1819-1898)가 켈러(Gottfried Keller: 1819-1890)를 비판하며 소위 문체에 대한 자신의 속내음을 밝힌다. 켈러의 문체는 적당한 곳에서 쓰였다면 그 이상의 훌륭한 문체가 없을 듯하나 만약 적당하지 않은 곳에 쓰인다면 별 볼 일 없는 문체라 꼬집는다. 뭔 말이냐?

두 양반들이 살던 19세기 유럽 언어예술계, 특히 프랑스의 그 세계에서 즐겨 쓰던 문구가 있었다: 문체는 인간성이다, 즉 문체는 글을 쓰는 사람의 고유한 성격이 뭍어 있는 것이다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사람과 쓰여진 글과의 밀접한 관계를 일컫는 말인 셈이다. 글에 글쓴 이의 특유한 냄새가 풍긴다는 말. 폰타네는 허나 이를 꼬집는다. 문체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며 보다 더 객관적인 접근 방식을 권한다. 훌륭한, 성공한 문체를 논함에 있어 글을 쓰는 이를 중심에 놓지 말고 오히려 그 글이 다루는 내용을 중심에 밀어넣자고 제안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사랑이야기를 펼치는 글의 모습과 정치이야기를 펼치는 글의 모습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사랑이야기를 다룰 때 그 글을 쓰는 이의 독특한 글쓰는 모습이 앞에 내세워지기 보다는 오히려 말하자면 사랑이 앞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글을 쓰듯 하는 글쓰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정치가 앞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글은 사랑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셈이다. 어찌 보면 전래의 그 프랑스 식 문체론을 주관적 문체론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폰타네 식의 문체론을 일정 의미에서 객관적 문체론이라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켈러는 이러한 객관적 문체론을 무시하고 전래의 주관적 문체론에만 의지했다는 폰타네의 꼬집음이다. 예를 들어 켈러의 ‘일곱 전설들’을 읽으면 전설이라는 내용의 글이 갖추어야 할 모습에 담은 작품이라기 보다는 켈러의 고유한 주관적인, 마치 동화를 쓰듯 펼치는 글의 모습에 전설이라는 내용을 담은 글이다 보니 내용과 문체가 서로 아구가 맞지 않는다는 폰타네의 비판이다. 결국 뛰어난 작품이 갖추어야 할 양자의 일체, 즉 객관적 문체가 아쉬운 작품이라는 평이다.

이는 허나 달리 말하자면 글의 뛰어남과 그렇지 못함을 재보고자 할 경우 해당 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무엇을 말하든 이를 어떻게 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이를 잣대로 삼는 예술론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미 19세기에 폰타네가 내다 본 언어예술론이다. 이게 좀 더 성숙을 하면 언어 자체가 앞에 나서는 예술론이 튀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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