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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는 바흐(Bach)가 아니라 바다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라인킨트이름으로 검색 조회 6,669회 작성일 02-03-10 02:50

본문

작성일 : 2000/11/27  조회수 : 56
<하우스만의 바흐 초상화>
슈피겔 30호 2000년/ Nikolaus von Festenberg

■ 그는 바흐(Bach)가 아니라 바다이다.  

요한 세바스치안 바흐는 어떤 사람이었나? 죽은지 250년만에 그 라이프치히 토마스교회 합창지휘자는 기술광으로, 유랑가족의 관리자로, 이론에 빠져든 꼼꼼한 음악가로 살아온다. 전기작가들은 그의 정신세계의 수수께끼를 계속해서 풀어나가고 있다.



가발은 우아하게 머리에 씌여져 있고, 손에는 악보 세 줄이 그려진 종이 한 장, 그 종이 위엔 읽기 어려운 글씨로, 1746년 바흐가 죽기 4년전에 라이프찌히 시청화가였던 엘리아스 고트롭 하우스만이 그린 그의 초상이다.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한 장의 그림.

그 음악의 대가는 자신의 영혼을 비추어 보이지 않는다. 눈은 관찰자의 시선을 돌려주고, 입은 감정을 꼭 깨물고 있으며, 손에 쥔 악보가 호사가들에게 흥미로운 것은, "심리적으로 나에게 접근하지 말라. 음악 속에 나의 비밀이 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 하우스만의 그림이 수많은 시디 커버와 음반가게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티브이의 바흐 다큐멘타리를 통해 살아난다. 7월 28일은 바흐 탄생 250주년이다. 죽은 문화의 거장이 역사를 망각하는 현대 유흥사회에서 드물게 이룰 수 있는 것을 이룬 바로 그 사람을 기념한다. 그 가발의 사나이는 아직도 적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에 남아 있는 것이다. 능력 위주의 사회가 점차 무자비해지는 바로 그곳에서 바흐의 제국이 시작된다. 즉 병과 죄책감, 죽음이 인간을 엄습할 때.

해마다 마태 수난곡을 들으러 오고, 라단조 미사를 듣기위해 라이프찌히를 순례하는 이들은 무정한 떠벌이들이나 아집 있는 고집쟁이 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바흐의 음악을 통해 지속적인 낙관주의 속에서 자신들의 실존의 한계를 바라보려는 보통 사람들이다. 바흐의 음악에서 은폐된 것에 대한 동경과 진정한 부성과 모성의 대한 동경을 느끼려는 이들은 단지 정신없는 실패자들만은 아니다.

나팔 소리로 허풍을 떨다가는, 다음 곡에서는 오보에로 삶에 기진맥진한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궁정의 음악 세계를 코스모폴리탄적으로 항해하고 마태 수난곡에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친.

바흐 250주년을 기념하여 시장에 나온 바흐 전기에 의해서 독자들은 그 라이프찌히 합창지휘자의 내면이 비밀에 조금 더 바싹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성인 추대식이나 스캔들이 되도록 하는 일이 종종은 매출을 늘리는데 도움되기도 하는 기념행사에서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신비화나 추측, 이념적 이용을 위해 바흐의 삶은 최적의 기회를 제공한다. 대문호 괴퇴와는 달리 바흐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 음악외적으로 바흐에게서 전수된 것은 모두 서사적이다. 입수된 편지들은 장래계획이나 추천서, 직장일에 대한 것이 아니면 대개 돈에 관한 것이다. 빌린 악기 대금 독촉장, 연주요금 청구서, 관세에 대한 비난등이 전부다. 어디에도 연애편지는, 신과 예술에 대한 토로도, 이탈리아 여행도 없다.

<라이프찌히 토마스교회 합창단>|
바흐 전기는 단계적으로 환각을 불러 일으켰다. 스웨덴 대주교 나탄 쇠더블롬은 바흐를 "다섯번째 복음서"라고 했고, 작곡가 막스 레거는 "모든 음악의 시작과 끝", 공산주의자 칼 립크네히트조차도 마태 수난곡에 대해, "더이상 달콤하고 부드럽고 감동적인 것은 없다."라고 법썩을 떨었다. 최초의 바흐 전기작가인 니콜라우스 포르켈은 열정적으로 프랑스와 이태리 음악가들을 공부한 바흐를 애국적이라고 선언했다. "바흐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은 다른 민족이 대항할 수 없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바그너는 바흐를 이념적으로 더욱 더 왜곡했다. <음악에서의 유대주의>라는 저술에서 바그너는 바흐를 재발견한 유대인 음악가, 펠릭스 멘델스죤 바르톨디가 작곡가적으로 바흐를 자신의 형식적이고 현학적인 언어로 모방했다며 비난한다. 왜냐하면 멘델스죤에겐 다른 모든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이라며.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바흐는 쉽게 한 시대의 음악적 전장으로 말려들어간다. 모더니스트들은 낭만주의자들의 바흐 숭배는 리스트나 바그너의 <미래음악>의 역사적인 옹호라며 비난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진정한 애정으로 바흐를 그의 애호가들에 대항해 옹호했다. "지속적으로 강력히 바흐에 몰두한 뒤 베토벤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겐 문화집단이 유일하게 심원을 염두에 둘수 있는 바로 그곳에서 마치 일종의 장식적인 오락 음악에 직면한 듯한 생각이 일어난다." 물론 아도르노는 바흐의 유산과의 단절을 요구했고, 바흐의 12음조 전문가인 베버나 쇤베르크의 독창적인 작업을 최고라고 선언했다.

다시 한번(1967년) 그 비판이론의 거두는 바흐 문제를 제기한다. 60년대에는 일조의 바흐에 대한 감격이 있었다. 칸델라버나 가포텐은 양식없는 시대의 좋은 양식에 속한다. 당시 이제 막 라인란트 팔쯔의 주수상이 된 헬무트 콜은 바로크 식의 트럼펫 밴드가 마인즈 수상실을 울리도록했고 그에게 그 음악은 변혁의 소리였다. 재즈 음악가 자끄 루시어는 마치 근대가 바흐의 테두리내에서 추진되는 양 잘 조율된 피아노를 베이스와 타악기로 연주했다.

아도르노는 이런 바로크에 대한 감격에서 몰락하는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를 읽어냈는데 그들은 편협하고 확실한 취미를 갖고 있었고 이런 취양을 "객관적인 구별능력 속에서" 검증해보지도 않았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런 60대의 바로크에 대한 감격 속에서 형식과 정형화된 것들에 대한 편애가 그 시대의 정신적 공허를 뒤덮어 버렸다고 한다.

오늘날은 더 이상 바흐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 약물로서 바흐는 더 이상 시대감각을 고양시키지 않는다. 결국 자유로운 시각이 기회를 얻었고 이제 하버드 대학의 음악학 교수 크리스토프 울프의 <바흐>라는 전기도 가능했다. 물론 600쪽 짜리 그 책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잘난척하는 발구름도 없이, 신화 깨기의 요란한 소음도 없이 울프는 매우 조심스럽게 그러나 완고할정도로 상세하게 독자들에게 자료를 제시하고 일종의 놀라움을 제공한다.

울프에게 바흐는 일종의 근대적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튀링겐의 뮤직벨리에서 나온 빌게이츠이지만 컴퓨터가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문제였다. 독일에서 정보화시대의 엘리트를 육성하고 싶은 교육전문가는 바흐에게서 놀라고 배워야한다. 왜냐하면 바흐는 한시도 직업소양교육과 동기부여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의 가문에서 당연시 되듯이 음악가가 되려했다. 바흐가문은 중세 독일에서, 특히 튀링겐에 자리잡은 음악가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가문이었다. 가문의 사라들은 마을 결혼식에서 연주를 했고, 시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거나, 영주관저에서 바이올린을 켜거나,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울프에 따르면, 일년에 한번 모든 바흐가문의 사람들이 모였다. 어린 바흐는 그러면 아이제나흐의 라틴어 학교를 빼먹고 친지들과 가족축제를 즐기고 외설적인 노래를 불러댔다. 바흐가문은 시간때우기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했는데 바흐는 그 몰락해가는 소가문의 응집체였다. 어린 바흐가 연달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자 가문은 그 고아를 오어드르프의 오르간 연주자인 가문에서 형에게 보낸다. 그러한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깊이 바흐를 파고들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자료는 별로 없다. 당시에 전형적이었듯이 우리는 그의 삶에 있어서 죽음의 지속적인 현재를 상상할 수 있다. 바흐는 두명이 부인과 20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중에 10명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이 첫 번째 아내 바바라는 바흐가 자신의 영주를 따라 칼스바트로 가있는 동안 35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죽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 않아서 바흐는 다시 결혼한다.

바흐가 당시의 교육기회를 적극 이용했음을 울프는 계속해서 밝혀낸다. 재능이 많은 자는 일찍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안다. 실용적인 지식이외에도 이론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 바흐는 단지 가문의 도제로서 공배해야하는 운명에서 벗어난다. 그는 모범소년이었고, 월반도 해서, 학과수업이외에도 계속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는 오르간을 연주만한 것이 아니라 당시 가장 희한한 악기였던 오르간을 마치 기술광처럼 연구한다.

사회적 한계에 대해 그는 어떤 과장된 존경도 품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소년으로서 귀족 소년들이 어떻게 춤과 음악으로 프랑스 사회의 교양을 습득하는 지를 호기심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무작정 오르간의 대가를 찾아 함부르크를 순례했다. 울프는 바흐의 청년기를 쉴새없는 배움의 길로 묘사한다.

또 다른 삶의 단면들. 아른슈타트에서의 오르간 연주자 생활, 쾨텐에서의 궁정 작곡가, 1723년에서 죽을때까지 라이프찌히 토마스 교회 합창 지휘자. 그 지휘자는 또한 유명한 토만 합창단을 이끈다. 마치 직업적 능력의 연속적인 상승의 기록으로 읽혀진다. 바흐는 자신의 내면의 나침반을 따랐다.

핍박받는 영주의 신하로서의 이미지, 자신의 천재성을 가장 은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구원해야 하는, 목이 뻣뻣한 전제적인 교회 관리의 이미지는 퇴색된다. 바흐는 때로는 성급하게 자신의 시대 한가운데를 헤엄쳤다. 비록 그것이 계속해서 전제주의와 문제가 발생시켰을지라도.

그는 외로움으로 자신을 썩히지 않고, 자신의 작품으로 작은 거래를 했고, 중계료를 받으며 악기도 중계하고, 쳄발로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의 성공한 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이 회상하듯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비둘기집> 앞에 서 있었다. 울프는 엠마누엘의 이런  언급을 확인했다. "그 비싼 수많은 은수저들과 12개의 가죽 의자는 무엇에 쓰였겠는가? 만일 이따금의 성대한 만찬이 아니었다면." 담배와 파이프 중독에 대해서도 울프는 검증했다. "바흐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외로움에 물러설때면 그는 한병의 위스키를 가져갔다."

토마학교의 남향과 서향의 창이 있는 따뜻한 구석 방에서 바흐는 일종의 거대 계획을 진행했다. 악보의 질서와 균형속에서 일관되게 침잠함으로써 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일. 바흐는 점점 수미일관된 형식주의자가 되어갔다. 그는 음악적 주제의 질료적 실체를 자신의 모든 작곡가적 능력으로 덮었으며 푸가 예술과 다음세계 하 단조 미사에 자신의 엄격한 신약을 남겼다.

울프의 전기의 이 지점에서 인간 바흐는 신을 쫓는 대립인물인 플라톤주의자 뒤로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이에 비해 1988년 출간된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에세이 <마태 수난곡>은 얼마나 극적으로 읽히는가?  1996년에 사망한 뮌스터 대학의 그 명예교수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한 <모멸당한> 신의, 모든 논리를 조롱하는 텍스트를 청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전해주는 바흐의 능력을 묘사한다. 바흐는 전혀 은혜롭지 못한 성서의 보다 자비로운 번역자로 등장한다. 신을 입증하는 사람, 신의 번역자, 당시대의 천재적인 선구자, 성공한 신동. 그는 시내(Bach)가 아니라  바다(Meer)라고 불려야 한다. 바흐의 <피아노 조율곡>을 그의 음악적 성서로 간주했던 베토벤이 바흐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한 말이다. 이 바다로  서거 250주년인 올해 더욱 더 멀리 사람들은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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