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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10-29 12:05 조회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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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노래를 건네주신 고마운 님,

이즈음 다시금 예의 그 자문이 가끔씩 엄습하더군요: 니 글은 또 왜 쓰는고? 이에 준해 떠오르는 오스트리아 작가 Bernhard의 말이 있습니다: "나를 작가라 부르지 마시오. 그냥 어떤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라 불러 주시기를..."

그리고 그 El Condor Pasa에 대한 님의 말씀, 이즈음의 떨어지는 낙엽들 속에서 저를 잠시 그래도 조금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네요. 그러다가 버거움에 지쳐 그만 두었지만:
심수봉 아시죠?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등등 심금을 울리는 그 구성진 목소리의 주인공, 옛날 박통이 제일로 쳤다는 여가수, 이 사람의 노래를 한국에 있을 때부터 좋아해 특히나 술 마시며 즐겨 들었다 기억하는데, 그렇다고 조용필 이상은 아니었다 싶었거든요. 근데 몇 년전 이 곳에서 우연히 이 여가수의 노래를 들었는데, 컴을 통해, 근데, 아 글씨,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하더라고요. 아니, 이건 또 뭐냐? 도데체 왜? 물론 이 여자 특유의 그 가창력에 그 원인이 찾을 수도 있다 싶었으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만 생각해 보니 이 여자 노래들과 결부된 내 과거의 그 숱한 추억들이 그 선율과 함께 저를 엄습했던 것이 아닐까, 타향살이 몇 해던가 묻기도 남세스러운 내게 (벌써 그 당시에) 이는 눈물이라는 강간범 앞에서 발가벗고 그대로 침대 위에 벌렁 누워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꼴이 아닌가 말이죠.
그런데, 제가 저번에 말씀드리고자 했던, 아니 함께 한번 생각해 보고자 했던 바는 이러한 구체적 추억과 결부된 경험되어진 음악이 있는 반면, 이러한 경험의 저 너머에 있는, 음악 그 자체가 갖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해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El Condor Pasa라는 곡의 이면에 담겨 있는 사연의 저 너머에서 다시 한번 이 곡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문이었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만약 이 곡을 지금의 그 곳 사춘기 아이들이 들으면, 그 곡 뒤에 새겨져 있는 사연을 정녕코 모르는 그 곳 아이들이 들으면 어떠한 모습을 띌까, 혹시 내가 사춘기때 이 곡을 들으며 느꼈던 그 아스라함과 엇비스한 그런 느낌을 품게 되지나 않을까, 그럼 이는 어디에 그 연유를 두는가, 짧게 말씀드리자면, 그 '다름'과 동시에 '같음' 또한 음악이 향유하는 힘이 아닐까 뭐 그런 주저리였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El Condor Pasa에 대한 님의 말씀에는 만약 정정이 아니라면 최소한 보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엘 콘도 파사의 곡에 음악 외적인 역사 내지는 수난의 경험적 요소를 첨부 - 아무리 그 곡이 여기에 그 연원을 둔다 해도 -해서 생각함을 일단 벗어날 수 있다 주장한다면, 그럼 니가 말하는 것은 그 음악이 주는 직접적 내지는 즉흥적 감성 내지는 감흥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것도 또 아니다 하렵니다. 그럼 뭐냐?
(사실은 제가 지금 쪼께 취해 있어요. 한 친구가 생일이라며 맥주집으로 초대해 가 보니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구권에서 서너 명, 이태리, 프랑스 등 남부권에서 두어명, 북독, 스웨덴 등 북부권에서 또 두어명 앉아 있길래, 오랜만에 진탕 떠들다 왔습니다. 대화 내용은 대강 정치, 경제, 문화, 철학 등등, 한 마디로 이 곳 사람들 흔히 말하듯 신과 세계에 대해 때론 침 팍팍 튀겨가며 열띤 논쟁을 벌렸지요. 내 한국인의 기상을 맘껏 펼쳤음을 살짝 자랑해 봅니다^^. 그래 그냥 자려다 님께만은 그래도 최소한 손짓만큼은 드리고 싶어 이리 갈겨 씁니다.)
음악 자체 내의 형식미가 있는 듯 해서입니다. 어제 주신 님의 곡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쳐졌다가 격정적이고 그리고 또 쳐지지요. 그런데 도입부의 느린 걸음이야 이끄는 부분이니 넘어 가도, 두 번째의 격정은 바로 이 도입부의 쳐짐이 있으매, 바로 이와 대조를 이루매 그 들림이 뛰어난 경우라 볼 수도 있고, 그럼 세 번째 마무리의 쳐짐은 도입부의 쳐짐과 같은가 다른가 따져 본다면 다르다, 왜? 바로 두 번째의 격정을 거친 후의 쳐짐과 그 전의 쳐짐과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단지 그게 뭐이냐 야멸차게 계속 캐물을 수는 있겠죠. 대강 이런 것^^. 클라식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형식 내의 꿈틀거림이 더 복잡 다단해질 수 있죠. 사실 클라식 즐기는 맛은 이 꿈틀거림을 좀 더 찐하게 느껴보는 맛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님이 염려하시는 그 히틀러의 베토벤에 대한 국가적 짝사랑 문제는, let me see, 베토벤의 음악에 그 책임이 있을까요, 아님 히틀러의 그 꼴통에? 님이 말씀하시는 음악과 이데올로기의 연결 문제, 우리 더 생각해 보죠.
(이 관계를 니이체/바그너와의 관계와 비교함은 님이 쪼께 오바하신 듯...)

건강하시고,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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