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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미리 가본 음악회 - 쾰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인수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3,647회 작성일 02-03-10 01:49

본문

작성일 : 1999/09/12 )  조회수 : 180

월간유럽 99.9월호 정인수(월간유럽 음악통신원)

참 오랜만이다. 그치? 그동안 뭘 하며 지냈는지도 모르게 여기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려. 주말에 좀 쉬다가 새로운 주가 다시 시작하기가 무서울 정도라니까(이만하면 그동안의 무소식에 대한 구박을 면할까?)

이제 가을인가 봐. 백화점의 여름마감 정기세일이 끝났기도 했지만, 더위가 한풀 꺾인 뒤 차분함인지 우중충함인지가 이곳 하늘을 뒤덮는걸 보면 말이야(구름이 두껍게 깔리고, 비가 추적추적하게 오는 장면을 연상하면 됨). "아 내가 독일에 있었지?!"하며 익숙해진 일상을 새롭게 바로보게 해준다니까.

조금의 과장을 보태서 얘기하면, 독일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 날씨는 꽤 장중한데가 있어서 가끔은 숙연해지기까지 할 정도야. 생각해 봐. 하루종일 마치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회색빛이 땅을 지배하면서도 그 긴장을 끝가지 유지하며 비한방울 흘리지 않는 장면을.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을의 전령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각 공연장의 새로운 시즌을 알리는 프로그램들.

내가 사는 이곳 쾰른도 예외는 아니지. '쾰른'하면 베를린이나 뮌헨, 함부르크에는 따라갈 수 없지만 나름대로 독일 음악게에서 한몫 차지하고 있는 중견도시라고나 할까.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무지카 안티크바 쾰른'을 비롯한 '옛음악'의 흐름과 '신음악'이 공존하는 곳. 독일 현대음악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슈톡하우젠이 70년대에 이곳 음대교수로 있었고, 지금도 그가 개최하는 작곡 및 연주세미나가 매년 쾰른 근교에서 열릴 정도니까.

이번 시즌에 사이먼 래틀의 공연을, 그것도 두번이나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에 부러워서 어쩔 줄 모를게 훤히 보이는데. 래틀이 2002년 아바도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니의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들었겠지? 비교적 더 '독일적인' 경향의 다니엘 바렌보임과 경쟁을 했다는 것도?

이곳 어느 유력일간지의 이름있는 평론가는 왜 하필이면 베를린 필과  "끝내주는" 래틀이 만나야하냐고 썯다지만, 이 둘의 결합을 희망적으로 관측하는게 중론인 듯해.

밀러를 중심으로 해서 고전과 낭만 뿐만 아니라, 이름없는 영국 신진작곡가들의 곡을 비롯한 현대음악쪽으로도 촉수를 뻗는 광대한 열린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같아. 5년전 영국왕실로부터 'Sir'의 칭호를 부여받은 44세(!)의 젊은 래틀이 새로운 세기의 거성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건 이미 음악계에서는 기정사실이잖아. 이번 시즌에 래틀의 그런 양면을 모두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걸 상상해 봐(흐뭇-!).

12월5일에는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연주해.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이름이야 좀 특이하지만 널리 인정받고 있는 옛음악 전문 연주단체중 하나야. 음악작품을 그 곳이 작곡된 시대정신에 입각해서 당시의 연주방식으로 연주하려는 의도로 조성된 단첸데, 정격연주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래틀이 어떻게 곡을 해석할지 궁금해지는 연주회.

2000년 5월17일에는 그가 25세였던 1980년부터 작년까지 18년간 이끌면서 세계 엘리트 오케스트라로 키운 버밍햄 시립교악단과 함께 메시앙, 그리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사이먼 홀트라는 사람의 곡을 선보이게 돼. 너무 부러워하지는 마. 기회가 되면 그 연주회 감상도 보내줄테니.

지난 시즌엔 정명훈씨가 왔었다는 거 얘기했었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서 말이야. 그때 인상을 한마디로 하자면: "야 흘러가는구나!"

곡을 이끌어가는 지휘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음악의 본질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았다니까. 가끔은 자칫 쇼맨십으로 착각될 수도 있는, 조금은 과장적인 동작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정명훈 역시 이번 시즌에 두번이나 오는 걸 보면, 작년 연주회 때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느꼈던게 유치한 애국심의 발로에 의한 착각은 아니었나봐.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과거가 되어 있을 8월 24일에는 스톡홀름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베버의 "자유의 사수"(왜 마탄의 사수로 알려져 있는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2번(협연은 작년과 달리 본인이 직접하지는 않음), 그리고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1865-1931)의 교향곡 5번을 들려줄거야.

특히 닐센의 곡이 기대되는 건 지난번 연주회곡들이 비교적 부담없는 성격의 것이었기 때문이겠지.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닐센에 비하면 단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 않을까? 후기 낭만주의, 1차대전의 충격, 새로운 형식(1악장: 두부분, 2악장; 네부분으로 구성), 이전 작품보다 더 멀리나간 화성어법. 기대해 볼만 하겠지?

또 한번의 음악회는 하이든과 베토벤으로 꾸며져 있어.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2000년4월1일) 유럽 체음버오케스트라 앞에선다고. 정명훈의 특기인 메시앙을 들어볼 수 있으면 도 좋겠는데 말이야. 요즘에는 이쪽 '고전'음악을 파고드는 건지, 아니면 이곳 관객을 고려해서인지, 어쨌든 아쉽기는 하지.

으-! 이번에도 예년과 다름없이 비엔나 필하모니의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어(99년10월21일, 2000.5.30일, 2001.1.16일, 200`1.4.27).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가봐야지. 표값(35-270DM)때문이 아니라,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뭐. 실패의 경험을 두번이나 가지고 있으니 아무리 달아도 신포도로 보일 법하잖아? 둘 다 예매 첫날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매진.

입석을 구하려고 공연 한시간반전에 갔다가 구경도 못하고 돌아온 걸 거울 삼아 그 다음번에는 두시간 전에 갔지. 그런데 잔인하게도 바로 내 앞에서 끊기는 거 있지!! 이번엔 대단한 각오를 하고 두시간 반 전이다!

첫 연주회는 피에르 블레즈의 지휘로 열려. 블레즈(1925년-) 하면 명료함과 객관적 연주로 유명하잖아. 현대음악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곡가로서의 시각이 곡의 구조를 X-선으로 투명하게 꿰뚫을 법하지. 제 2빈(Wien)악파의 쇤베르크, 베베른의 초기작품과 함께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될거야. '진지함'에서 '애가', 그리고 '삶의 긍정'으로 이어지는 표제적 설명을 덧붙여, 작곡당시(1943년) 경제적 어려움과 백혈병으로 시달리던 바르톡의 생활조건을 떠올리게 되는 곡 말이야.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중의 하나가 바로 트리에나레(Triennale). 현대음악의 활발한 연주장으로서의 위상이 삼년마다 개최되는 이 기획에서도 드러나는데, 그건 2000년4우러부터 6월사이에 열리는 서른개가 넘는 일련의 연주회들이 20세기곡들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

'인간의 소리'라는 모토 아래 열리는 올해의 행사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건 왜냐, 미국의 5대 오케스트라를 모두(!) 들어볼 수 있거든. 하하하! 시카고, 뉴욕, 보스턴, 클리브랜드, 필라델피아(물론 표값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야).

클리브랜드가 81년으로 역사가 가장 짧고, 악단들의 역대지휘자만 해도 니키쉬, 토스카니니, 스토코프스키, 브루노 발터... 숄티, 번스타인 등 지휘자 인명사전을 읽어내려가는 판국이니 놓칠 수 없는 기회잖아. 게다가 단상에 서는 이들이 불레즈, 바렌보임, 오자와, 도흐나니 같은 이들이니(쿠르트 마주어와 자발리쉬는 글쎄...) 로량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아르농쿠르가 쥐휘한 모짜르트교향곡 음반은 꼭! 들어보도록), 그리고 얼마전 첼리비다케의 타계로 지휘봉을 넘겨받은 제임스 레바인이 이끄는 뮌헨 필하모니. 말 그대로 음의 향연이 될 것 같아.

그외에도 기돈 크레머가 연주하는 20세기 바이올린 협주곡 시리즈라든지, 텍스트만 남겨진 바흐의 마가 수난곡을 그의 다른 작품에서 음악을 따와서(패러디) 재구성한 음악회 - 원전연주로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의 쿠프만 재구성, 지휘. 왜, 요즘 바흐 칸타타 전곡음반을 내고 있잖아 - 내년 1월11일의 연주회에 독주자로 등장해서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을 연주할 장영주 등 귀동냥할 거리는 많지. 인터넷 사이트 www.koelner-philharmonie.de에서 자세한 일정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셈인가?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길어졌나본데, 근황은 밝히지 않고 음악회 얘기만 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는지. 타지생활이라는게 다 그렇고 그렇지 뭐.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나마 이런 낙이 있으니 이런 생활도 견디는 것 아니겠어? 건강해. 그럼,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99년8월 쾰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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