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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독일 국가(國歌)의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 이름으로 검색 조회 3,931회 작성일 02-03-10 01:35

본문

작성일 : 1999/04/25 조회수 : 330

■ 독일 국가(國歌)의 역사

현재 독일 국가로 사용되고 있는 '독일인의 노래(Lied der Deutschen)' 3절은 1841년 팔러스레벤(Heinrich Hoffmann von Fallersleben)이라는 공화파 투사가 하이든의 곡에 자신의 시를 실은 것이다. 이 노래를 자신의 민요집에 실었던 팔러스레벤이 이 노래가 국가로까지 쓰이게 될 것을 예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는 처음에는 학생들의 인기를 얻었고 나중에 점차 독일인 모두의 호응을 받게 된다.

그런데 왜 1절과 2절은 국가에서 빠졌는지는 직접 노래 가사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데, 특히 1절은 나치에게 악용되어 현대 독일인들의 거부감을 사고 있다. 그러나 팔러스레벤의 정치 성향이나 당시 정세를 보면 1절의 가사가 가진 원뜻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우선 '독일인의 노래'를 살펴보자.

1.
Deutschland, Deutschland ueber alles, (독일, 모든 것 위의 독일,)
ueber alles in der Welt, (이 세상 모든 것 위의 독일)
wenn es stets zu Schutz und Trutze (독일이 공격과 방어를 위해)
bruederlich zusammenhaelt, (늘 형제와 같이 연대한다면)
von der Maas bis an die Memel, (마스에서 메멜까지)
von der Etsch bis an den Belt - (에치에서 벨트까지)
Deutschland, Deutschland ueber alles, (독일, 모든 것 위의 독일,)
ueber alles in der Welt. (이 세상 모든 것 위의 독일.)
Deutschland, Deutschland uber alles, (독일, 모든 것 위의 독일,)
ueber alles in der Welt. (이 세상 모든 것 위의 독일)

2.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독일의 여자들, 독일의 신의,)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독일의 포도주, 독일의 노래)
sollen in der Welt behalten (이들은 그 오래된 아름다운 음조를)
ihren alten schoenen Klang, (이 세상에서 간직하리라)
uns zu edler Tat begeistern (우리가 고귀하게 행동하도록 열광시키리라)
unser ganzes Leben lang. (우리의 전 생애 동안)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독일의 여자들, 독일의 신의,)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독일의 포도주, 독일의 노래)
Deutsche Frauen, deutsche Treue, (독일의 여자들, 독일의 신의,)
deutscher Wein und deutscher Sang (독일의 포도주, 독일의 노래)

3.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법과 자유)
fur das deutsche Vaterland! (조국 독일을 위해!)
Danach laBt uns alle streben (우리 모두는 이를 추구하리라)
bruederlich mit Herz und Hand! (형제와 같이, 마음과 손으로)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법과 자유)
sind des Gluckes Unterpfand. (이들은 행복의 담보)
Blueh' im Glanze dieses Glueckes, (이 행복의 빛에서 만개하라)
bluehe, deutsches Vaterland. (만개하라, 조국 독일이여.)

1841년에 팔러스레벤은 군주제의 경찰 기관으로부터 추적을 받고 당시 영국령이던 헬고란트에 체류하면서 이 시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가사를 붙일 곡을 고르다가 요세프 하이든의 부드러운 현악 작품인 '황제4중주(Kaiserquartett. 1797)'를 선택했는데, 사실 이 곡을 고른 것은 군주제에 대해 조롱의 의미가 들어있다.

왜냐하면 하이든의 이 곡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의 국가로 쓰기 위한 현상공모에 당선된 것인데, 이 국가는 "신이여, 황제 프란츠를 지켜주소서"로 시작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팔러스레벤은 이 곡을 자신의 "비정치적 노래집"이라는 책에다가 자신이 작곡한 많은 민요와 동요 사이에 슬쩍 끼워서 출판한다.
독일의 전통적인 학생조합(Burschenschaft)들은 역시 학생조합원이던 팔러스레벤이 이 노래를 1841년 만들자 마자 곧 즐겨 부르게 됐다.

'독일인의 노래'는 1848-49년 혁명시기에 이미 독일 전역에서 널리 불려지지만 그 이상의 큰 의미는 부여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바울교회에서 개최된 독일 최초의 의회에서는 독일의 상징색으로 학생조합의 삼색기인 '흑적금(Schwarz-Rot-Gold)'을 선택하면서 역시 학생조합에서 온 이 노래를 독일의 노래로 선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독일에서는 최초인 이 민주화 시도가 실패하고 군주제가 계속되면서 이 상징색과 노래의 의미는 일단 반감된다.

1870-71년에 비스마르크의 지도하에 보불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 제국이 형성되는데, 이때 프로이센의 상징색으로 '흑백적'이 선택되었고 공식 국가는 지정되지 않았다. 단지 황제 찬가로 '승리의 월계관을 쓴 황제 만세!(Heil Dir im Siegerskranz)'가 채택되었는데, 그 멜로디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과 동일했다.

그러다가 '독일인의 노래'는 1890년에 처음으로 이 노래의 발상지인 헬골란트에서 독일제국에 의해 공식 사용되는데, 즉 헬골란트가 영국령에서 독일로 넘어오는 행사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 후로 이 노래는 급속히 독일 전역에 퍼져나갔고 20세기 초에는 비공식적인 국가로까지 올라간다.

1914년에는 이 노래를 부르며 많은 학도병들이 1차대전에 자원해 갔는데, 이들이 무더기로 죽어간 네덜란드의 Langemarck 전투에서 학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용맹하게 싸웠다고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이 때 이들을 이끄는 장교들을 매우 무질서했고 안개와 화약연기 속에서 적과 혼전을 거듭하면서 학생들은 이 국가를 불러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서 총을 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1918-1919년에 1차대전이 끝나자 독일제국도 끝장이 났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시작되는데 이 시대에 독일인들은 독일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던 시대를 상기하면서 다시 '흑적금 삼색기'를 국기로, '독일인의 노래'를 국가로 선택했다. 1922.8.11 바이마르 헌법 제정 4주년 기념식에서 제국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버르트(SPD)에 의해 이 노래가 정식으로 국가로 선포된 것이다.

에버르트 대통령 연설의 일부를 보면 "통일, 법, 자유, 이 세가지의 화음은 독일이 내부 분열과 억압에 시달리던 시대에 독일인의 그리움를 표현했다. 이 노래는 이제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어려운 길을 동행할 것이다. ... 이는 민족주의적 자만심의 표현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시인과 같이 우리도 그 모든 것보다 독일을 사랑한다. 이제 흑적금 국기와 통일, 법, 자유의 노래가 우리 조국의 감정에 엄숙한 표현을 부여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치가 1933년 총선에서 승리, 정권을 잡았을 때 이들은 흑적금 삼색기 대신 철십자 깃발을 휘날렸다. 그리고 '독일인의 노래'도 산산조각이 났는데, 나치는 이 노래의 1절만 나치친위대의 전투노래인 '깃발을 쳐들고' 맨 앞부분에 삽입했다. '독일인의 노래' 1절과 함께 독일군 탱크가 유럽을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4년 후인 1949년 동서독이 창설되자 모두들 다시 19세기 독일 민주주의의 요람기를 기억하게 되었다. 동서독은 모두 학생조합의 색이던 흑적금을 국기로 택했는데, 동독은 여기에다가 몇가지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나 국가에 있어서는 동독은 "폐허에서 부활해(Auferstanden aus Ruinen)"라는 노래를 새로 만들어 국가로 삼았다. 동독 정부는 나중에 이 노래에 들어있는 "독일-통일된 조국(Deutschland-einig Vaterland)"이라는 구절을 문제삼아 이를 금지하기도 했다.

한편 서독은 콘라드 아데나워 초대 총리와 테오도르 호이스 초대 대통령 간의 서한을 통해 국가를 결정했는데, 아데나워는 이 서한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면서 '독일인의 노래'를 국가로 추천했다. 이에 대해 호이스는 1절은 나치의 악용으로 인해 국가로서의 자격을 잃었고 2절은 너무 사소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이를 제외하고 3절만 국가로 삼자고 다시 제안한다.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문제는 결정됐다. "'독일인의 노래'는 국가이다. 공식행사에서는 제3절이 불리워진다.(Das Lied der Deutschen ist Hymne, gesungen wird bei offiziellen Anlaessen die dritte Strophe.)"

이런 모호한 규정 때문에 나중에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CDU 소속의 주 문화장관들이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이 노래의 세개 악절을 모두 배우도록 지시해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한편 독일 통일 1년 후인 1991년 8월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도 서신을 교환, 이 노래를 '새로운' 독일을 위한 국가로 최종 확정했다. "독일 역사의 증거로서 이 노래의 모든 절들이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호프만 폰 팔러스레벤의 '독일인의 노래' 제3절을 요세프 하이든의 곡에 부친 이 노래가 독일 민족의 국가이다."(Als ein Dokument deutscher Geschichte bildet es in allen seinen Strophen eine Einheit ... Die 3. Strophe des Liedes der Deutschen von Hoffmann von Fallersleben mit der Melodie von Joseph Haydn ist die Nationalhymne fur das deutsche Volk.)"

한편 나치에 의해 1절이 악용되기는 했으나 1절의 원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해석도 많다. 이에 대해서는 혁명 당시 프랑크푸르트 의회 의장이던 하인리히 폰 가거른이 1848.5.19 프랑크푸르트 파울스 교회에서 행한 연설도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자리 전 독일 민중 앞에서, 내 핏줄 속에 마지막 피 한방울이 흐르는 한, 독일 민중의 이익을 내게 있어 모든 것 앞에 세우며, 독일 민중의 이익이 내 사고의 규준이 될 것임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선출한 의회 기관으로서 최고의 중립성을 엄숙히 서약한다. 우리는 커다란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독일의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 전 제국을 위해서... 독일은 통일되어야 하며 하나의 제국으로서, 모든 국가 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가운데 민중의 의지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 여러 문제에 대해 회의가 존재하고 견해들이 갈라지게 되더라도 통일에의 요구에는 어떠한 의심도 있을 수 없다. (Ich gelobe hier feierlich vor dem ganzen deutschen Volke, daB seine Interessen mir ueber Alles geh'n, daB sie die Richtschnur meines Betragens sein werden, so lange ein Blutstropfen in meinen Adern rinnt; ich gelobe hier feierlich, als das von Ihnen gewaehlte Organ Ihrer Versammlung, die hoechste Unparteilichkeit. Wir haben die groeßte Aufgabe zu erfuellen. Wir sollen schaffen eine Verfassung fuer Deutschland, fuer das gesamte Reich ... Deutschland will Eins sein, ein Reich, regiert vom Willen des Volkes unter der Mitwirkung all seiner Gliederungen ... Wenn ueber Manches Zweifel besteht und Ansichten auseinandergehen, ueber die Forderung der Einheit ist kein Zweifel.)"

이걸 보면 당시의 문맥에서 '모든 것 위의 독일'이라는 구절이 조국애가 최고 가치이며 이를 모든 정치 행위의 준거로 삼자는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는 민족, 국가, 공동체가 최고의 목표인데, 이러한 발상은 프랑스의 Vive la nation!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국가와 그 민주적 기관들이 군주나 황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팔러스레벤은 바로 이런 신념 때문에 헬골란트로 도망쳐야 했던 것이다.

나치가 바그너를 이용해 먹고 니체를 우려 먹었듯이(물론 이들의 음악과 철학에 악용당할 소지는 충분히 있었지만), 어떻게 해석하면 자신들의 구미에 딱 맞는 팔러스레벤의 제1절도 그렇게 악용했던게 아닌가 싶다. '모든 것 위의 독일'이라니! 유럽의 라이벌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러시아나 미국과 상대하려던 히틀러에게 이보다 더 맘에 드는 말이 또 있었을까?

그렇다고 이 노래 1절이 현대 독일의 국가로 적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여자니 포도주니 하면서 학생 주점의 치기가 물씬 풍겨나는 2절은 말할 것도 없지만(여자를 '타자화'하는 이런 가사가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당시엔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여자 대학생이 거의 없었나 보다), 1절도 팔러스레벤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여준다고 해도, 그 시대 상황에는 적절한 요구였을지 모르지만, 현대 독일의 국가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조국애를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조국'이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분명히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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