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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펌) 김영하/ 태극기 단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549회 작성일 06-01-08 08:39

본문

좀 긴 듯 하지만...

마지막 한 줄...
내 마음에 콕 박혀서 좀체 빼내질 못하겠습니다.


태극기 단상


-김영하(소설가)



거리에서 맞닥뜨리면 참으로 당혹스런 사람들이 있다. 원형 헬멧을 뒤집어쓴 우주조종사처럼 기이하여 시선이 가기는 한데 그렇다고 붙잡고 말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드는 사람들. 시선을 끈다고 다 스타는 아니다. 아무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눈길이 자꾸 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들 중 한 부류가 바로 ‘태극기팔이’다. 저 근엄한 관공서에도 오직 한 장 만이 나부끼는 신성한 태극기를 수십 장이나 들고 다니며 태극기 사세요, 태극기 사세요를 외친다. 행사 기념품으로 쓰였음직한, 단체의 이름이 전면에 새겨진 찌그러진 야구모자를 쓰고 어두운 표정으로 군중 사이를 누빈다. 한 군데 죽치고 좌판을 벌이기보다는 대체로 시장 바닥처럼 군중들이 몰려드는 곳을 선호한다. 특히 이들은 현충일이나 광복절 같은 국경일을 앞두고 일제히 출몰하는 경향이 있다. 첨단의 패션과 삶의 악다구니, 무심한 시선들 사이를 항해하는 수십 장의 태극기는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시청 앞에서 고등어를 파는 사람처럼 시장에서 국기를 파는 사람은 뭔가 신성한 것을 모독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태극기팔이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퍼포먼스도 장난도 아닌 진지한 밥벌일 뿐이다. 그들이 노리는 고객은 이미 태극기를 보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집에 아직 태극기가 없다는 걸 태극기 팔이를 보고서야 깨닫는, 다소는 미욱한 대중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태극기를 가진 아버지로부터 갓 분가했거나 아이를 학교에 보냈더니, 태극기 달기를 숙제로 가져오는 경우, 아파트 관리실의 집요한 태극기달기 권유에 늘 시달려왔을 것이다. 태극기팔이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태극기의 유용성이나 비교우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국기에 실용성이라는 게 있을 턱이 없다. 또한 태극기가 일장기나 성조기보다 아름답거나 편리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그러했듯이, ‘그것이 거기 있기에’ 사는 것 뿐이다. 태극기 팔이들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별 말이 없다.



태극기팔이는 박찬옥 감독의 첫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도 등장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주인공은 교감으로부터 시간제 교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그때 태극기 팔이가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곤 모자를 벗고 어색하게 교감에게 인사를 한다. 저, 저는 태극기를 파는 사람인데요.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를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자꾸 사람들이 태극기를 어떻게 다냐고 물어봐서요. 교감은 인상을 찌푸리며 김양을 부른다. 김양아. 그리고 태극기팔이에게 말한다. 저기 김양한테 가서 이야기하세요. 이 장면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태극기팔이가 등장하는 몇 안되는(혹시 유일한?)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순수한 상징과 기호를 파는 그 기이한 직업은 비로소 기록되었다. 그것이 등장한 방식도 흥미롭다. 태극기팔이는 국가교육체계를 찾아와 그것의 책임자에게 당당히 도덕 교과서를 요구하고 있다. 태극기를 팔아서 돈을 버는 자가 도덕교과서는 공짜로 빌려달라고 한다. 여기에서 태극기 안에 존재하는 물질성과 비물질성의 모순이 드러난다. 그것을 팔고 있는 자조차 태극기에 관한 규범은 국가(혹은 국가교육)에 의해 무상으로 제공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감의 생각은 다르다. 그에게 태극기팔이는 팔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태극기에 관한 매뉴얼을 제공할 의무가 전혀 없다. 결국 그는 ‘김양’에게 넘겨진다. 이 장면은 태극기에 대한 단순한 야유가 아니다. 태극기가 봉착한 어떤 곤혹스런 지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 태극기팔이처럼 우리는 모두 국기의 신성함과 그것의 비물질성에 대해 교육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국기에 대한 숭배는 철지난 종말신앙처럼 시들해졌다. 유머는 (언제나 그랬듯이) 신성함과 현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태극기 팔이는 오딧세이처럼 자신의 고향, 국민교육의 현장을 찾아가지만 기다리는 것은 김양에게 가보라는 말 뿐이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어수룩한 태극기 팔이의 연대는 태극기의 시대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영화는 태극기가 펄럭이는 화면을 바탕으로 연주되는 애국가로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마다 우리는 일어서서 국기와 국가(國歌), 국가(國家)에 경의를 표해야만 했다. 황지우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파하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내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오락의 산실인 극장에도 있었으니 어디엔들 없었으랴. 우리의 선생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오후 다섯시에 국가가 울려퍼지면 그 자리에 서서 가까운 곳에 게양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라. 선생님, 국기가 안 보이면 어떻게 하나요? 선생은 얼굴을 찌푸린다. 딴 놈들 서 있는 방향으로 서 있어. 그때는 길을 걷다가 다섯 시가 가까워지면 마음이 급해졌다. 눈길은 초조하게 국기를 찾는다. 찾으면 다행인데 못 찾으면 난감하다. 결국 너무 많이 틀어 질이 나빠진 마그네틱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가 우리의 발길을 붙잡으면 태극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은 대충 음악이 나오는 방향을 가늠하여 중구난방으로 서 있어야했다. 남극의 황제펭귄처럼 어수선하게, 그리고 쓸데없이 심각하게.



그것은 마치 이슬람 문화권에서 때가 되면 흘러나오는 사원의 기도소리와 같았다. 전국민을 예외없이 길거리에 붙박아둔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면서 종교적이었다. 국기에 대한 신앙이 국교로 공인되었다. 국기는 훼손되어도 안되었으며 험담의 대상이 되어도 안되었다. 그때의 일간신문 독자투고엔 심심찮게 국기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관청을 고발하는 내용이 올라왔다. 국기는 비를 맞아도 안되고 버려져서도 안되었다. 오직, 제문이나 신주처럼 불에 태우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태극기는 샤머니즘적 물신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나염공장의 포디즘적 생산과정을 통해 찍어져나오는 태극기는 완성되는 순간 신성이 부여되어 누구도 그것을 침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국기는 접는 법과 펴는 법까지 규정되었다. 나염공장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우상. 그것이 태극기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83년의 미술 선생은 꽤 멋진 화가였다. 미술실에 들어가보면 극사실주의 유화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녀의 적나라한 누드가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고 치밀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극사실주의 회화를 처음 보는 우리의 당혹은 대단했다. 사진으로 찍으면 되는 것을 왜 그리는가. 선생은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름 하나하나까지 세밀한 남녀의 성기는 충격적이었다. 충격이었으므로 우리는 일단 그것을 예술로 받아들였다. 그런 게 아방가르드요 전위겠거니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봐도 그 선생은 나름대로 그 시대의 전위였음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 선생의 지도하에 우리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젊은 화가답게 선생은 분방한 교육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정해진 틀에 따라 그리지 말고 자유롭게 그리라고 주문했다. 나는 조각도로 생전 보지도 않은 놀부를 목판에 부조했는데 뜻밖에도 칭찬을 받았다.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릴 필요는 없지. 나무와 하늘만 그려오던 애들도 신나게 새로운 오브제를 찾아 다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태극기를 그렸다. 별다른 변형을 가한 것은 아니고 그저 태극기를 들고 뛰어가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문제가 있다면 너무 못 그렸다는 것 뿐이었다. 그는 그 그림을 들고 선생에게 갔다. 그런데 선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태극기를 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기모독죄라는 참으로 희한한 죄명을 들먹였다. 이러다간 학생뿐 아니라 이것을 방조한 선생까지 잡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화실에서 그토록 세밀하고 꼼꼼하게 남녀의 성기를 묘사하는 전위적 화가가 태극기에 대해선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화풍과 열린 사고의 소유자인 그조차 태극기 피해의식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더했다. 그는 과연 왜 그랬을까. 어쩌면 그의 극사실주의는 사실주의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변명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든다. 광주에서 수많은 인명이 죽어간 게 불과 삼 년 전이었다. 고문과 영장없는 체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그는 피부의 주름과 음영, 굴곡 속으로 도피하였다. 현실 아닌 현실, 너무도 생생한 비현실 속으로 그는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그 시절의 태극기는 분명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광포하고 변덕스런 중동의 신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극기는 걸어가는 사람들을 멈춰세웠고 스스로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켰고 오락(영화)의 초입에서 국가의 경계를 주지시켰다. 한편 태극기는 맹세도 필요로 하는 의심많고 탐욕스런 신이었다. “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전국의 학교에선 이 맹세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다 망신당하는 반장들이 속출하였다. 이 길지 않은 문구는 왜 그리도 안 외워졌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태극기에게 부여된 턱없이 광대한 권위와 위엄 때문이었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순간 아이들의 오금은 저려오고 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진지한 태도는 자유로운 어린 영혼들을 압박해왔다. 신이면서도 신이 아닌 태극기는 오로지 처벌할 수만 있을 뿐 용서는 하지 못했다. 그게 태극기라는 가짜 신의 태생적 한계였으며 훗날 한갓 ‘장엄한’ 키치로 전락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의 일대기를 서술한 최재목 교수는 양명에 대비하여 주자의 학설을 간략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데 이렇다. ““모든 사물마다 다 하나의 극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도리의 궁극적인 것이다. [......] 만물의 이치를 총괄하는 것은 태극이다.” 각각의 수많은 갈라진 이치들이 천하 공공의 이치인 태극에 귀결된다고 본 것이다. 그것은 가장 궁극적인 것이고 사물의 궁극적인 표준을 뜻한다. 태극은 이러한 사물들이 갖는 개별적인 이치들의 총화를 말한다. 그래서 태극은 ‘모든 원리들의 원리’이며 모든 잡다한 사물들의 이치를 포괄한다. 주자는 모든 이치를 총괄하는 태극을 ‘총체태극總體太極’이라고 하고 거기서 갈라진 이치를 ‘각유태극各有太極’, 즉 만물이 각각 가진 태극이라고 하였다. 마치 달은 하나인데 그 달이 수많은 강과 호수에 각각 흩어져 비쳐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치는 하나인데 그것이 수만가지로 갈라졌다는 이론을 ‘이일분수론 理一分殊論’이라고 하는데 주자의 궁리론은 바로 이러한 이일분수의 구조를 휑하니 깨닫는 작업이다.”



태극기를 고안한 인물들이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 그러니까 성리학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임을 감안해볼 때, 주희의 이일분수론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감히 성리학의 고갱이로 치고 들어갈 생각도, 능력도 없으나 태극기라는 상징의 최근 존재 양태를 보고 있노라면 주자의 이 태극론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우리가 알다시피 태극기라는 기호는 본래 하나이나 그것은 한편 어디에나 편재해 있었다. 학교에도 길거리에도 관공서에도 영화관에도 있었다. 강물에 비친 달처럼 태극기는 어디에나 있었다.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는 멈추어서서 경례를 했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국가라는 가상의 개념이 그 달 뒤에 있었다. 헤겔의 절대정신을 연상시키는 이 태극 개념은 모든 잡다한 사물들의 이치를 포괄하는 존재, 다시 말해 국민국가라는 가상의 개념으로 우리 모두 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우리는 새삼 태극기라는 상징을 만들어냈던 주체들의, 국민국가를 향한 강렬한 염원을 발견하게 된다. 태극기는 허약하고 인간적인 국왕을 대신하였으며 따라서 왕조는 별 저항없이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져갔다. 절대와 불멸을 향한 희구. 그것이 태극의 정신이었다.




국민국가 건설을 위해 모든 희생을 무릅쓰던, 태극기 숭배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던 박정희 정권은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했다. 그래도 태극기의 지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88올림픽이 남한의 국민국가적 정통성을 추인하고 이윽고 유엔 가입을 통해 그 정통성이 상대화됨으로써 태극기 역시 상대화되었다. 태극기가 유엔본부 정문에서 수많은 나라의 국기와 함께 나부끼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그것은 유일신의 지배가 끝나고 다신교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태극기는 극장에서 물러났고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숭배 의식도 거리에서 사라졌다. 국민의례는 민간 영역에서 추방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태극기를 잊고 살았다. 김영삼 정부가 부르짖은 세계화의 구호 속에 국민국가적 상징은 촌스러운 것이었다.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의 대열로 한발 한발 걸어들어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가 IMF관리체제가 찾아왔다. 알고 보니 국민국가적 경계는 멀쩡했다. 원화가 통용되던 곳만 고통받았다. 신용평가기관은 국민국가에 신용등급을 매겼다. 우리는 금을 모으고 IMF에 구걸하고 미국과 일본에 굽신거렸다. 무디스와 S&P의 기침소리에 숨을 죽였다.
세월이 지났다. 몇 년이 흘렀다. 돌연 거리에 태극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태극기 숭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가상의 개념인 국민을 선취하기 위해 누구나가 태극기로 자신을 감쌌다. 해병전우회, 축구협회, 반미 시위대, 친미시위대, 기독교도, 불교도, 붉은 악마, 노동조합, 퇴역군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혹은 대형 태극기 아래에서 대한민국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것은 주희가 말한 바의 태극, 그러니까 “각각의 수많은 갈라진 이치들이 천하 공공의 이치인 태극에 귀결된다”는 그 태극이 아니다. 하나의 달이 여러 모습으로 현현하는 그런 태극도 아니다. 이것은 태극기 숭배 아래 어쩔 수 없이 하나였던, 아직 채 분화되지 않은 상태를 그리워하는 복고적 퇴행의 몸부림이다. 국민국가의 성원으로서 우리가 정말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던가? 아닐 것이다. 단지 분화가 채 덜 되었던 것일 뿐. 태극은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경지였다. 따라서 지금의 태극기 붐은 실제로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이미 하나의 동일체라고 할 수 없는 집단들이 국민국가적 정통성을 선취하기 위해 벌이는 상징 선점 경쟁이다. IMF 관리체제를 지나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 노소와 장청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은 단지 양쪽의 집계산이었을 뿐이다. 태극기는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고통스런 작업을 조금은 지연시켜 주었을 따름이다.



혁명은 사랑과 비슷하다. 우리는 하나라는 비정상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수행된다. 차이는 무시되거나 간과된다. 혁명이 깃발의 그늘에서 진행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깃발은 모두의 차이를 사상한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나 열정이 식으면 깃발은 거리를 뒹굴고 차이들이 부각되고 ‘혁명의 적’(혹은 연인)들이 숙청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깃발의 잔치를 조심하라. 채승우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풍경들, 그것은 깃발의 잔치, 그 이전과 이후의 모습들이다. 태극기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벌어진 풋사랑과 노골적인 매춘, 강간, 노회한 줄다리기의 흔적들이다. 그것은 21세기 태극기라는 상징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이다. 이것을 이일분수라고 각유태극이라고 우기지는 말자. 이것은 차이에 대한 혐오, 국민국가에 대한 환상, 국가적 힘과 위력에 대한 맹신이 빚어낸 풍자극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국가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일원론적 태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태극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헤매는 갖가지 이념과 이익의 수호자들, 고단한 태극기팔이들이여, 이제 그만 깃발을 내려라.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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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동철님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타 수정:
맨 앞에 "좀 긴 듯 하지만..." -> "무쟈게 길지만..."

이견 제시:
맨 뒤에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 "우리는 하나이면서 또한 동시에 하나가 아니다."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 생각에 이글이 지적하는 것은
과연 우리라는 범주를 어디까지 두고 생각하느냐가 아닐까요?

우리 한민족이나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까지를 우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은 아주 도전적으로 들릴게 분명합니다.

이 글은 적어도 위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에게 그들과 함꼐 우리이고 싶지않음을 밝힌 글이라고 여겨집니다.

서동철님의 말처럼 하나이면서 또한 동시에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을 그분들에게 할 이유가 글쓴이에겐 없었겠지요...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그런 것,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 드린 말씀입니다. 그래 이를 제 나름대론 이견이라고 말씀드린 게고요. 쪼께 더 덧붙임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하나이면서 또한 동시에 하나가 아니다'에서의 첫번째 '하나'가 상징하는 것 말입니다. 두번째의 '하나'는 이와는 좀 다른 의미겠죠.

이리 말씀드리니 자칫 말장난처럼 들리는데, 좀 달리 말씀드리면 글쓴이는 자신이 반대하는 '그들'을 자신의상대편에 놓고 얘기합니다만, 이 상대방과 글쓴이 자신을 함께 아우르는 '우리'가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의미에서의 '우리'는 나와 너의 저쪽 편에 있겠죠. 아니면 그 위.

글쓴이의 말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주제넘은 보충을 시도했다고 여겨주시길.

아유해피님의 댓글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제넘다니요...
별말씀을...

글이 지금보니 정말 무쟈게 길군요...
다른 분들은 아마도 주루륵 내렸을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울님의 댓글

무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차분해 지려 했지만 깃발이 흩날리던 때가 떠올라 가슴이 마구 뜨거워졌습니다.

7살 때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 설 때 부터 가장 눈에 뜨였던 것이었고
가을 운동회 때 마다 사정없이 늘어서 거미줄 처럼 하늘을 가로 질러 날리던 것이 그것 이었습니다.

아직 금지 되어 있던 나이에 표 검사하는 아저씨를 피해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 사이를
가슴 콩닥거리며 잽싸게 끼어 들어간 극장 안에서 다시 그것을 새롭게 만납니다.

황지우 표현처럼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날고 싶었던 때 였습니다.

중학교 땐 아침 조회때 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를 중얼거리며
오른손은  왼쪽 가슴께 명찰 달은 쪽에 붙여 놓고 '역사적 사명'을 애써 생각하던 때에 그것은 배경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그 끔찍한 교련시간에  양호가방을 유치원 가방처럼 어깨에 메고 90도 각도로
손을 올리며 다리를 꼿꼿이 펴고 로보트처럼 걸으며 사열대 앞을 지나면서
눈에 뜨이던 그것이 죽도록 싫었습니다.
미 대통령 지미카터가 온다고 공항 거리에 나래비로 서서 그것을 흔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받았을 땐
슬그머니 그것을 가방에 쑤쎠 넣고 냅따 다른 쪽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호르라기 소리에 놀라 멈췄는데 쫄딱 비에 젖에 움찔대던 때에 손엔 힘없이 늘어져
젖어 버린 그것과 거리마다 흉하게 짓눌려진  뭉게져 있던 그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철이 들어
연대감과 소속감이 들게 되었을 즈음엔
자정이 지나 '밤이 깊었습니다' 라는 멘트의 아나운서 목소리를 들으며
TV의 마지막  화면엔
다시 그것이 휘날리며 새가 날기 시작하는 그림을 봅니다.
눈물을 매달고
'우리나라가 정말 잘 되어야 할 텐데... 우리가 정말 잘 살아야 할 텐데...' 했습니다.


그러다 80년 봄, 광주에서 그것에 덮힌 수많은 주검들에 치 떨었고


오래동안 의도적으로 그것을 외면 하려 했을 때,
처음으로  우리가 뜨겁게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날, 바로 그 시간, 그 저녁에
처음으로 그것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87년 6월 종로에서 였습니다.
국가가 울려 나오고 수 많은 군중들이 마침내 하나가 되어
그것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다음 해, 88년 모든 나약함을 덮어 두고 당당한 척 거대하게 종합 운동장에서 펼치던  그것은
한 해 전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2002년에 정신없이 마주친 수 많은 그것들은
또 얼마나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는지...
몸에 걸치고 머리에 쓰고 얼굴에 칠하던 그 잔치와 축제에서
거대하게 꿈틀거리며 올라가던 그것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그것으로 있지만

모두에게

따로, 또 같이

있을 것입니다.

아유해피님의 댓글

아유해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리나라가 정말 잘 되어야 할 텐데... 우리가 정말 잘 살아야 할 텐데...'
 
이 글이 요구하는 그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를 답하라는 것일테지요.

따로, 또 같이 각자가 갖고 있느 답이 있을 줄 압니다.

그 각자의 답, 어느하나라도 누군가에게 강요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만 그속에서 우리 각자가 해야할 일은(혹은 할 수 있는 일) 비슷한 답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겠지요.
그 만남을 저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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