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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쾰른 대성당의 문턱을 우리는 어떻게 넘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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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인혜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6,279회 작성일 02-03-10 08:02

본문

작성일 : 2000/05/13  조회수 : 201

흔한 표현으로 '기술'의 '진보'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고딕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Speyer성당(1030-1061) 벽돌은 제각기 다른 크기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칸의 돌들을 수평으로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 노력은 때로 아래돌을 반드시 수평으로 깎아내기보다 윗돌을 아래 돌에 맞게 다듬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그래서 벽면은 비균일한 구획선들로 이루어진다.
분명, 한 사람의 석공이 돌을 올린 후 그것을 다듬고 그 다음 돌을 올리는 일련의 작업을 구역별로 도맡아 해나가고 있었을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는 로마네스크 교회에 비한다면, 고딕 성당의 분업화되고 체계화된 건축 시스템은 그러니까 물론이지 하나의 '발전'이었을 것이다. 돌은 이미 채굴되는 곳에서 규격화되고 다듬어졌으며, 옮겨진 후 쌓여지기만 하면 되었고, 성당축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임무는 역할별로 할당되었다. '효율'은 놀라운 것이어서, 돌들은 대체로 '반듯 반듯' 쌓여졌고, 계절에 관계없이 연중 내내 성당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으며, 더 호화스러운 성당을 짓는다해도 더 적은 비용이 들어도 되었다.      
아마도 그러한 종류의 도취 - '진보된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효율'을 자랑하는 건축물을 우리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생각 - 가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쟁심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도취를 도와주었고, 따라서 프랑스 왕 루드비히 9세가 화려하기 그지없는 Ste-Capelle를 파리에 짓고 비잔틴 왕으로부터 사들인 예수의 가시관을 봉헌한 해 (1248년) 같은 달을 기해 쾰른의 성직자 회의에서 성당 재건에 대한 재정문제가 결의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직자 및 소위 진보적인 영주들과 재력을 가진 도시민들은 계속되는 불화로 인해 1560년 이후에는 성당 건축을 중단하게 되지만 - 263년 동안 이 건물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 적어도 이 무렵에는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이다.
쾰른 성당이 재건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다른 종교적(?) 이유도 물론 있다. Friedrich Barbarossa왕을 도와 Mailand를 '정복'했던 쾰른 성당의 대주교 Reinald von Dassel(1159-1167)은 그 공로에 대한 답례로 전리품인 동방박사의 유골을 선물로 받았다. 대주교는 떨리는 가슴으로 비밀 길을 골라 자신의 성당으로 되돌아왔고, 곧 그곳을 유명한 순례지로 만들었다. 당시 2만의 인구가 살았던 쾰른에는 때로 그 인구보다 많은 수의 순례객들이 찾아들었고, 870년 낙성식을 했던 넓지만 이미 구시대적이라 여겨지게 된 쾰른 주교 교회(Hildebold-Dom)는 그 일부가 일부러 불태워졌으며, 그 자리에 'modern'한 성당을 축조하겠다는 끈질긴 집념의 행로가 시작되었다. 단순히 순례객을 위한 것이기만 하다면, Vorhalle나 작은 예배당도 거의 없는 고딕 양식의 건물이 로마네스크 양식에 비해 훨씬 부적격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쾰른 대성당에 얽힌 자질구레한 뒷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앞서 늘어놓았던 그런 이야기들에서, 기술적 발전이 효율적인 처리방식들을 만들어내지만 그 방식에 참여하는 인간과 그 결과물은 더 획일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든지, 경쟁심이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엇을 만들어내는 데는 확실히 효과적이라든지, '지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정치적 능력을, 정신적으로는 이데올로기를 잘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든지 하는 등등의 얘기를 덧붙인다고 해도 여전히 김빠지는 일이다. 인간은 너무나 오랫동안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너무나 지겹도록 그것을 비판해왔다. 비판마저도 중화된다.
어떤 문제들은 더 파고들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나의 건조물이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계기들과 만들어진 건조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여러 가지 계기들. . . 통설처럼 전해지는 대로, 고딕 건축의 집중적인 투자력은 12세기 말부터 시작된 왕권의 강화와 왕과 시민 계층의 연합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것은 프랑스의 경우 더 잘 해당되는 사항이고, 상대적으로 분립적이고 봉건적이었던 독일의 사정은 좀 달랐다. 프랑스식의 연대감의 부족이 실제로 쾰른 성당의 축조를 중단시킨 요인이었음은 성직자와 시민들의 분쟁을 통해 확인된다. 이들을 '통합하고 이끌어줄' 또 다른 중심세력이 없었던 셈인데, 흥미롭게도 그 세력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났고 여전히 (그러나 더 강력해진) '왕'이 중심이 되었다. 이 때 즉 19세기 초는 600년 전 도시를 중심으로 하던 경쟁력이 완벽하게 국가 단위의 경쟁력으로 전환된 후였고, 독일의 'Nationaldenkmal'로서의 '고딕'의 부활은 새로운 사회적 활력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어졌다(국가적 기념물 사업을 '즐기는' 것은 국가적 자격지심에 대한 독일인 특유한 반응이며, 그들의 오랜 전통이다). 고딕 양식이 '야만적'(바자리)이라는 르네상스 이후의 오래된 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 르네상스인들에게

그것은 야만적 양식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다 - , 괴테, 보아세레, 괴레스 등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제단이 있는 동쪽보다 세속적 세계와 통하는 서쪽 장식에 더 신경을 쓰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은, 더 많은 재정력을 담당하는 만큼 성직자보다는 왕권에 봉사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이러한 성당들이 왕의 문장과 그림을 걸어 둠으로써 왕권을 과시하는 공간이 되었다거나, 대관식과 같은 국가적 의례 행사를 위한 장소로 제공되었다는 것(특히 12세기에서 13세기에는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기존의 왕에서 다시 한번 왕관을 씌워주는 의례가 유행이었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샤르트르 성당의 서쪽 정문 조각처럼 유독 구약에 등장하는 왕과 왕비(솔로몬, 다비드, 바트세바 혹은 사바)가 조각 주제로 선호되는 것은 그들이 현재의 왕과 왕비를 연상시키도록 디자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1190-1220년 사이 프랑스 지역에서 일어난 군주제의 봉건제후에 대한 승리가 최초의 고딕 양식의 취지와는 달리 성당에 새로운 장엄함을 부여하게 되는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치력과 미술사적 '양식'의 문제를 아무런 의심없이 연관지으려는 시도는 비난의 소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러한 발상이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해졌다는 것이다. . . 쾰른 성당에서는 1556년 페르디낭드 1세가 로마의 왕으로 선출되었고, 1880년 10월 성당 완공을 축하하는 국가적 행사가 열렸다. 빌헬름 1세와 왕비 아우구스타가 물론 참석하였고, 미사는 없었다.


그러나 '거룩한 본질'과 같은 것을 일상에서 발견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더 잘 발견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총력을 다해 또 다른 기묘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비아냥거리려는 뜻이 결코 아니며, 모든 사물을 탈신비화하는 계몽적 경향 또한 의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미지의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공포로부터 면제되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상상이며, 그것이 계몽의 궤도를 결정한다'. 문제는 계몽이 또 다른 신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체계를 조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인간의 움직임들을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역으로 그것의 체계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여전히 '체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들이 있으며, 공포는 제거되기보다 유지될 필요가 있다. 문지방에 귀신이 있다는 믿음이 퇴색해져 버렸다해도, 그것의 효력만큼은 수많은 문턱들에 살아있어 가끔의 전율을 가능케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는 문턱에 대해 당황하더라도 내심 기뻐해야 할 것이고, 진정한 문턱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넘나드는 어떤 곳들을 마음대로 문턱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양식도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늘을 치솟는 서쪽 정면의 탑, 통상 최후의 심판과 같은 '끔찍한' 장면이 조각되는 정문의 팀파늄, 그 곳을 용기있게 넘어서야 상승효과를 가능케 하기 위해 'En-delit'기법을 이용한 가느다란 기둥들과 빛의 출입을 만드는 기다란 스태인드 글라스로 처리된 벽면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거기 어디쯤에서 어떤 문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탑과 현란한 팀파늄, 기둥과 벽면은 어떤 현실적 기능의 수행자(지붕을 떠받치고, 장식이 되는 기능 이외 그 배후의 '현실적' 기능을 포함하여) 이상의 무엇이 되어 말을 건다. 그러나 많은 '꿈'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퇴색해져 버려우리는 좀처럼 그 어떤 공간에서도 '주술'에 걸려들지 않는다.  

김인혜 inhye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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