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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쇼베 동굴벽화의 비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인혜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13,852회 작성일 02-03-10 07:44

본문

■ 동굴벽화-샤먼들의 천부적 재능

어째서 인간은 동굴벽에 무소와 사자를 그려넣었을까? 쇼베(Chauvet) 동굴의 최근 발굴은 빙하기 생활에 대한 우리의 조망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벽화뿐 아니라 동굴의 바닥 또한 신비를 벗기는 열쇠가 되고 있다..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고 있다. 수수께끼의 시조가 죽고 또 잊혀진 연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쟝 끌로뜨(Jean Clottes, 66)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그를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7년 전부터 끌로뜨는 프랑스 최고의 선사시대 연구가였고, 대부분의 시기동안 부득이하게도 그는 침체기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최근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의 모든 선사시대 연구가들 사이에서 요즘 그는 가장 부러움을 사는 인물일 것이다. 그에게 어떤 독보적인 것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에 대한 열쇠를 족히 숨기고 있을만한 보물을. . . 바로 쇼베 동굴이 그것이다.

이 곳 아르데쉐(Ardeche)에 있는 동굴 내부에다 3만년보다 더 오래전 사람들이 석탄과 자토를 이용해서 무소떼를 그렸다. 매머드, 곰, 사자, 들소, 말, 하이에나들과 표범, 사향소, 올빼미 한 마리도 그려넣었다.

460점이 넘는 벽화들 대부분은 단순하고 거의 휘갈겨져 있는 수준이고, 나머지 것들은 그야말로 걸작들이다. 서로서로 표효하는 무소들, 킁킁거리는 말들, 굶주린 들고양이, 분방한 기운과 기술적으로 현란한 그림들.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 중, 인간에 의해 그려진 세계 最古의 회화작품이다.

끌로뜨를 비롯한 연구팀은 쇼베 벽화의 제작자들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멀리 있기도 하다. 과연 이 선조들은 어떤 연유로, 그저 벽에다 사나운 짐승들을 그리겠다고 이 깊고 어두운 산중에까지 찾아들었단 말인가? 잘못된 설명은 물론 교과서에 써있는대로, 선사시대인들이 사냥이 잘되기를 기원하려는 뜻에서 그랬으리라는 추론이다. 이곳에 그려진 대부분의 동물들은 결코 식단에 포함되는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동굴에 거주했으리라는 생각 또한 잘못된 추론이다. 여기에는 들소, 산양, 말과같은 어떠한 사냥동물들의 불탄 유해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떠한 주거흔적이나 무덤들도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동굴은 어디에 쓰였을까? 어째서 동굴을 장식한 예술가들은 나무나 풍경같은 것들은 그리지 않고 오직 동물들만을 그리고 있을까? 단지 한 예술가만이 이 작업을 했을까 아니면 여러 명이 동원되었을까? 어떤 이유로 대부분의 들소, 사자, 말들의 코는 빨간 색으로 표현되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끌로뜨가 해명하려고 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 성과물은, 이 동굴이 적어도 두 번 선사시대 인간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끌로뜨는 그림에서 매스로 약간의 시험용석탄을 추출해내었고, 그것으로 연대측정을 했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림들은 약 3만 2천년 전에 그려진 것이었다. 그 이후 이 동굴에는 수천년간 굴오소리(동굴에 사는 곰의 일종)들만이 살고 있었다. 약 5천년이 지난 이후 다시 사람들이 들러서 벽화를 보완하기 전까지는. . . 아마도 그 두 번째 집단은 지금 끌로뜨가 그런 것처럼, 더 옛날 대가의 그림들을 경탄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연구가들은 그러나 환상적인 회화작품 때문에만 놀란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진짜 충격을 주었던 것은 동굴 바닥에 고스란히 보존된 선사시대 유물들이었다. 동굴바닥 위에 동굴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전승품들은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어서, 마치 그들은 어제 막 그곳을 떠난 것같이 보였다. 게다가 동굴에 살았던 곰과 다른 동물들의 뼈 그리고 사자와 늑대의 발자국 등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동굴예술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라고 선사시대 연구자인 쟝 미쉘 제네스(Jean Michel Geneste, 50)는 확신하고 있다. 그는 화가들이 틀림없이 보조원과 동행인을 두고 있었다는 점은 발견하였다. 적어도 세 곳에서 그는 결코 자연조건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는, 커다란 석조조형물을 발견하였다. 이는 커다란 판석과 단단한 파편들인데, 그 무게가 150kg을 넘는다. 엄청난 노동력을 동원해 사람들은 이 돌들을 동굴로 운반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제네스는 그외에도 네 개의 커다란 화로지역을 발견했다. 이 모두는 족히 25kg의 목재는 태울 수 있을만큼 컸다. 연소장비들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이 동굴로 옮겨왔었음에 틀림없다. 화로지 주변으로 작고 흰 돌멩이들이 놓여졌다.-"반사경"일 것이라고 제네스는 추측하고 있다. 이 돌멩이들이 동굴에 빛을 전달했을 것이다.

빛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마도 이 불의 그리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던 듯하다. 제네스는 화로지가 화가의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엄청난 양의 목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림들 아래에는 목탄더미가 놓여있었고 대부분의 더미는 그 높이가 30cm에 달했다.

동굴에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심심풀이가 아니었다. "동굴출입은 틀림없이 두려운 일이었다."고 제네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굴오소리와 이 동굴에서 함께 지내야만 했다-두 손 크기만한 발을 지닌 괴물, 이들은 무게가 거의 900kg에 달했고, 북아메리카산 큰곰보다도 더 육중한 몸체를 가졌다. 이 동물들은 살고 죽었으며 또 이 동굴에서 썩어갔다; 바닥은 그들의 뼈들로 뒤덮였고, 살아있거나 이미 죽은 동물들의 악취 속에서 화가들은 자신의 횃불이 뿜어내는 쾌쾌한 연기를 참아내야만 했다. - "이 동굴은 결단코 유쾌한 장소는 아니었지요." 제네스의 말이다.

이 사실은 또한 이 탁월한 벽화가 어째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는지를 설명해줄 수도 있다. 어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화가는 단지 몇 분의 시간이면 족했을 것이라고 끌로뜨는 믿고 있다. 화가들은 마치 현대의 낙서화제작자들처럼 빠른 속도로, 바탕을 다듬고 윤곽을 부분적으로는 판목으로 마감하면서 혼합된 석탄을 이용해 요구되는 상을 척척 완성해내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곰에 대한 공포 때문에 동굴 안으로 무기를 가지고 오기도 했을 것이다. 제네스는 매머드상아로 된 창날을 발견했다. 창은 흔적도 없이 부식되었지만, 창날은 "마치 새 것처럼 보이며," 아마도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듯하다. "이러한 창은 특히 동유럽과 시베리아일대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제네스는 말한다. 이와 같은 유구는 프랑스지역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당대인의 넓은 지역에 걸친 교역관계를 암시해주고 있다.

바닥면의 세심한 발굴조사를 통해 제네스는 2주전에 또하나의 새로운 발견을 해내었다. 그는 석고로 본뜬 것같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선사시대의 목재, 나무둥치, 식물종자의 화석을 발견했던 것이다. 동굴에 인간의 출입이 있은 바로 직후, 석회수가 유입되어 한층의 석회동지형이 형성되었다. 유기물은 그 속에서 용해되었지만, 초기인류 시대의 식물화석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이것은 실로 독보적인 발견입니다." 라고 제네스는 평가하고 있다; 이 화석 덕분에 아마도 당시 식물에 대해 상당부분 밝혀질 것이다. 지금껏 연구자들은 아르데쉐계속의 기후가 오늘날의 남스웨덴의 기후와 매우 흡사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기상천외한 유구를 미쉘 알랭 그라시아(Michel-Alain Gracia, 57)가 또한 찾아내었다. 동물발자국 전문가인 그는 개의 발바닥 화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 인간의 친구에 대한 역사는 이 유구의 발견으로 인해 아마 다시 쓰여져야할 것이다.

5월에 있었던 마지막 답사에서 이미 그라시아는 이 동굴 뒤편에서 한 흥분된 발견을 하였다 :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의 발바닥 화석이 그것이다.

선사시대의 짧은 순간을 이제 연구자들은 자세히 복원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약 2만 6천여년 전 여덟 살 내지는 열살쯤 되는 한 소년이 손에 횃불을 들고 동굴 후방지역으로 들어왔다. 이 구역은 높이가 1미터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소년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소년은 천천히 들어갔고, 빛을 삼키는 그을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담뱃불같은 불씨를 벽에다 문질렀다. 한번은 그가 발을 헛디뎠고, 왼발은 점토 위로 미끄러졌다. 그러나 요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약 70m가 지나서야 그 발자국은 사라진다.

다른 동굴을 통해서 학자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어린아이들이 종종 동굴에 출입하고 있다. 그들은 여기서 놀았을까? 아니면 통과의례의 하나로 이들은 어른의 손에 이끌려 동굴을 방문했던 것일까? 선발된 이들이 여기서 정신성과 벽화에 관한 어떤 가르침을 받았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직 불분명하다.

단 한가지 사실은 끌로뜨가 확신하고 있다 : 동굴은 당시 인간들에 있어 하나의 "신성"을 표상했다는 것이다. 매우 가끔 사람들은 산으로 찾아왔고, 아마도 모든 방문객들은 선발된 이들이었다. 그들이 점점 더 자주 드나들었을 때, 그들의 발자국은 저절로 지워졌다. 산에서 그들은 모든 삶의 기원이랄 수 있는 대지와 더 가까워지고자 했다. 이런 식의 믿음을 그림은 암시해주고 있다. 끌로뜨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매머드, 사자 혹은 들소는 그 윤곽이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 형태는 목탄의 터치에 의해 잡혀지는 것이 아니라, 바위의 자연스러운 부조에 맞추어 결정된다. "이는 마치 동물이 표면에서 기어나오는 것 같이 보이게 했다."고 끌로뜨는 설명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벽화제작자는 샤먼들이었다. 정령이나 신들과 접촉하도록 특별히 훈련된 일종의 사제였던 것이다. 산속 깊숙이 들어와 그들은 "자연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세계"를 그림으로 그렸다. 이 때문에 이들은 풍경이나 인물의 묘사를 생략하고 있으며, 어쩌면 약물로 도취된 상태에서 이 일을 완수했던 것 같다고 그는 보고 있다.

이러한 추측은 쇼베 동굴에 그려진 희귀동물이 어째서 그렇게 기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마치 엄청난 크기의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아기 매머드 두상을 한 인도 신전의 원숭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인혜 Inhye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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