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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02-03-10 10:35 조회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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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0/11/27  조회수 : 160  

매년 7월 첫째 토요일에 테크노 음악의 열렬한 팬들은 베를린 시내의 6월 17일 거리가 시작하는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Ernst-Reuter-Platz)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성문으로 몰려든다. 성급한 이들은 금요일 저녁 베를린 시내에 있는 테크노 바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내기도 한다. 보수적인 정치가들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1997년을 기점으로 10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모여든 이 러브퍼레이드의 시작은 어찌 보면 유치한 것이었다.

1989년 베를린의 DJ인 모테(Motte)는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여 혼자서 쓸쓸히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에 그는 '평화, 친선 그리고 계란과자'를 위한 집회허가를 신청하였다. 이러한 모토는 군비축소(평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음악을 통한 국제적인 이해와 합의(친선)를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계란과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토하에 대략 150명의 젊은이들은 트럭에 나누어 타고 베를린의 쿠담(Kurf rstendamm)거리를 행진한 것이 바로 첫 번째 러브퍼레이드이다.

이렇게 시작했던 러브퍼레이드는 해마다 모토를 달리하면서 그 참여인원이 6000, 15000, 31000명으로 증가하면서 1997년에는 100만명이 넘었다. 이러한 참여인원의 증가와 더불어 이 젊은이들의 향연은 점차적으로 정치쟁점화 되었다. 즉 많은 참여인원으로 인한 쓰레기의 문제와 이 축제중 마약을 사용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많은 비판가들에게는 눈에 가시가 된 것이었다. 모테(Motte)를 비롯한 주최측은 해가 거듭할수록 해당 관청과 함께 쓰레기 문제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마약문제는 아직까지도 거론되는 문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12번째를 맞이하는 러브퍼레이드가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이 러브퍼레이드를 통해 베를린은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하는 도시로 세계적인 젊은이들의 서울이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관심과 결부된 것으로, 이 러브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주말동안 베를린에는 대략 100만 마르크(1마르크를 500원으로 계산할 경우 50억원)가 흘러들어 오기 때문이다.

이에 베를린 의회의 대변인은 단지 이 세계적으로 가장 큰 젊은이들의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이 축제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며, 불협화음 없이 끝날 수 있도록 호소를 하고 있다. 또한 베를린 의회에서 청소년 문제를 담당하는 이는 마약없는 진정한 즐거움을 호소하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젊은이들로 인해 대략 3.5km에 이르는 쿠담(Kurf rstendamm)거리는 이 축제를 진행하기에는 너무나 좁았다. 이에 '우리는 한 가족'(We Are One Family)이라는 구호아래 진행된 1995년 러브퍼레이드는 6월 17일 거리에서 진행되었다. 비록 1998년에는 나쁜 날씨로 인해 참가인원이 처음으로 줄어들었지만 1999년에는 120만명에서 150만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이 축제에 참가하였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 러브퍼레이드는 베를린의 6월 17일 거리에서 시작한다. '하나의 세상 하나의 러브퍼레이드'(One World One Love Perade)라는 구호아래 7월 8일 오후 2시 1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과 대략  50대 가량의 트럭 그리고 250명 정도의 DJ들은   6월 17일 거리가 시작되는 에른스트 로이터 광장(Ernst-Reuter-Platz)과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성문 앞에서 각각 출발해 오후 7시경 승전기념탑에 모이면 예전처럼 모테(Motte)의 연설을 끝으로 행사는 종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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