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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헤겔산책(1)-첫만남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917회 작성일 07-07-04 16:58

본문

독일 대학에서 첫 아니면 두 번째 학기 때였을 게다. 언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고 해 – 후에 이는 착각임이 드러났지만 - 드디어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에 도전해 보기로 작정하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래 구체적으로 그 학기에 제공된 초급세미나 하나를 골랐다. 헤겔의 대표작 ‘논리의 학(Wissenschaft der Logik)’ 맨 앞 부분을 주제로 삼는다 하니 두고 보고 자시고 할 게 없다 여겼다. 그대로 딱이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있음과 없음은 같다. 물론 헤겔 나름대로 이에 대한 설명은 붙인다만 설명을 읽어도 밝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어두워진다는 감이 드는 그런 글이었다. 세상에 정반대의 두 개념들을 당췌 어찌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아주 똑같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혼연일체란다. 태극에서 갈라지는 양과 음이 어찌 똑같을 수 있느뇨? 하나는 검고 또 다른 하나는 흰데, 하나는 +고 또 다른 하나는 – 아닌감? 그렇다고 헤겔이 자기의 철학적 주저에 거짓뿌렁을 해 댈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아니, 나 마냥 보잘 것 없는 철학입문생을 대철학자 헤겔님께서 놀리시고자파 헛소리를 내질렀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 문장은 진리였어야 했는데, 내게 진리로 와 닿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문제는 그 문장이 아니라, 최소한 그 당시의 내 초라한 마음에 비추어 말한다면, 나의 좁은 철학적 소갈머리에 있었던 게다. 내 어찌 이 돌대가리를 뚫을 수 있을까나?
그러던 와중에 아, 하는 함성과 함께 퍼뜩 떠오른 생각에 히죽거렸다. 어쩌면 내 돌대가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언어, 이 어렵고 난삽한 흥할 놈의 독일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짜는 순간 허나 세미나 시간에 내 바로 옆에 앉아 인상 찌뿌리며 뭐인가 찾아내고자 안간힘을 함께 쓰고 있던 독일아이의 그 헤겔책을 보고 쥐어짠 주먹을 스르르 풀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의 그 문제의 문장이 박혀 있는 그 쪽이 완전 시커멓게 채색되어 있었다. 읽으며 제대로 독해를 하고자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그것도 모자라 연필심으로 꽂은 듯한 구멍들이 군데군데 보일 정도로 힘을 쏟은 흔적이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뇌의 쓰레기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아니나 달라, 그 친구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만 세미나를 주관하던 교수에게 따지듯 악을 썼다: 도데체 어떤 이유로 있음과 없음이라는 정반대의 개념 둘이 똑같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이는 괴물(“Monster“)이 내뱉는 소리나 다름없다, 한 마디로 헛소리다, 왜 우리가 이런 헛소리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며 머리를 싸매고 있어야 하느냐 이런 말이었다. 그 순하디 순한 교수가 이 아이의 당돌함에 약간은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나는 흐믓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독일어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해도 내 스스로를 위로할 충분한 건더기를 건진 셈이었던 게다. 거 봐라, 내 머리가 문제가 아니라 헤겔의 책이 문제임을 제 삼자가 증명해 주지 않는가. 결국 내 머리와 헤겔의 책이 부딪혀 공~하는 소리가 울렸던 이유는 바로 내 머리가 비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책이 비어서란 진리가 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그 교수의 머뭇거리듯 더듬는 해석적 노력은 나의 의기양양함에 부채질을 해대는 꼴이었다.
돌이켜보건대 이 세미나에 대한 더 이상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왜소함을 꾸짖는 소리가 없었는지, 있었는데 잊고 싶었던 겐지. 단지 한참 후에야 헤겔의 그 문장은 ‘논리의 학’ 전체를 파악한 연후에야 왜 그 책의 처음부분에서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가가 어렴풋이나마 이해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얼추 20년의 공백을 두고 ‘논리의 학’ 개정판을 시도한 헤겔이 그 부분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을만큼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옳다는 신념을 처음부터 죽기 바로 전까지 잃지 않았다. 결국, 달리 말하자면, 내 머리와 헤겔의 책이 부딪혀 공~ 소리가 난 이유는 내 머리가 비었음에서 연유했음을 아울러 깨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게다. 참담하고 어두운, 허나 점차 맑고 밝아지는 정신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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