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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피히테(3)-삶 II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834회 작성일 07-07-01 02:39

본문

1795년 예나 대학에서의 두 번째 학기였던 여름학기에 일단의 예나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무리와의 충돌로 Ossmanstedt로 피신함. 이들은 엄한 내부 규율로 뭉쳐진 폐쇄적 성격의 무리를 이루고 사회의 일반 규범을 무시하며 과도한 알코홀 섭취 등으로 자신들의 태생적 특권을 누리고자 했던 바, 피히테는 이 무리의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던 게다. 이들은 이러한 피히테에 반발에 불만을 품고 그의 집에 몰려가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그를 프랑스 혁명의 동조자로서 비밀혁명단체를 결성한다는 모함을 해대고 심지어 대낮 거리에서 피히테의 부인에게 욕설을 퍼붇는 등 위협적인 태도를 보임에 피히테 가족의 피신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겨울학기에 예나로 돌아와 강의를 다시 열었다.
1796년 ‘학의학’에 근거한 법철학서 ‘자연법 바탕’을 세상에 내놓았다.
7월에 그의 유일한 아들을 얻었다. Immanuel Herrmann, 앞의 임마누엘은 베들레헴의 임마누엘이 아니라 쾨니그스베르그의 임마누엘, 즉 칸트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 만큼 칸트를 존경하는 피히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외아들은 후에 지 아버지마냥 철학자로 이름을 남겼으며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해 전집을 출판함으로써 피히테철학의 역사적 발전을 가능케한 장본인이다. 아들도 이런 아들을 둬야 집안이 산다.
1798년 그의 도덕철학적 주저인 ‘도덕가르침의 체계’를 출판한 뒤 유명한 ‘무신론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피히테가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주장에 아니다라는 피히테의 자기변호가 맞붙었는데, 이 싸움은 1799년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피히테는 예나대학 교수자리를 내놓고 베를린으로 이사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싸움의 구체적인 모습은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그리기로 하고 지금은 당장 급한대로 스케치한다:
Forberg라는 이전에 피히테의 제자였던 철학교수가 피히테가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던 철학잡지에 ‘종교 개념의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실었다. 후에 무신론적 논문으로 낙인이 찍힌 이 글의 내용에 만족을 하지 못한 피히테는 그 논문이 실린 잡지 앞 부분에 촌평조로 자신의 짧은 글을 덧붙였는데, 이 글 역시 세인들에게 무신론을 대변하는 글로 물의를 일으켰던 게다. 피히테철학은 신이 해와 달, 그리고 삼라만상을 창조했다는 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을 형이상학적 도덕적 세계에 군림하는 자로 국한시켜 보고자 한다. 달리 말하자면 피히테는 자기고유의 철학적 원칙에 초지일관 충실을 기하며 모든 철학적 사고와 행동의 바탕을 ‘자아(Ich)’에서 보고자 했다. 단지 신이란 개념은 감성의 세계를 완전 벗어난 것이기에 이 개념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초감성의 세계, 즉 도덕적 세계일 수 밖에 없다는 그의 결론이다. 이러한 도덕적 종교관은 그와 같이 철학에 단련이 되지 않았던 그 당시의 세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특히 일상의 감성적 세계에서 종교를 통해 행복을 찾고자 하며 모든 일용양식들을 신으로부터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피히테의 철학적 종교에 대한 가르침은 신이 없다는 얘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던 게다.
피히테의 종교관은 한편으론 종교를 지나칠 정도로 철학적으로(만) 해석을 하고 펼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그는 결국 후에 종교적 내지는 기독교적 믿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다. 허나 또 다른 한편 우리는 그의 이러한 엄한 가르침을 종교의 지나친 세속화를 경계하는 소리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게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의 횡포를 염두에 두건대 더욱 그렇다. 일주일 내내 이런 저런 사기로 돈을 모으고 일요일 하루 교회에 나가 헌금 두둑히 지불하면 천당간다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은 짜장 구역질 나는 세속화의 모습이다. 엊그제는 또 보수적 목사들이 연말의 대선 특정 후보들에게 “내가 너희를 낙선케 하리니…”라는 헛소리를 내질렀다 하니 점입가경이다. 피히테의 사자호가 그립다.
1800년에 가족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사를 했다. 이에는 독일낭만주의의 선구자라 일컫는 F. Schlegel의 도움이 컸다 전해진다. 그만큼 그를 비롯 Tieck등 낭만주의자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활발한 시기였다. 슐레겔의 친구 Novalis는 허나 피히테와 그의 강의를 통해 90년대 중반에 예나에서 익히 안면이 있었다. 독일낭만주의의 탄생에 있어 피히테철학이 차지하는 핵심적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만남들이다.
이후 이삼년간 활발한 저술 활동을 보이는데, 이는 그의 철학적 성숙이라는 면 이외에 돈을 벌어야 했던 그 당시의 상황적 압박이었다고도 보인다. 어쨌든 저술 활동이 활발하다 보니 그의 철학에 대한 논쟁 또한 그 당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물론 pro et contra로. 아쉬운 점은 허나 이러한 논쟁을 통해 얼추 1803년까지 그 때까지 편지등을 통해 가까이 의견교환을 나누었던 라인홀드, 야코비 그리고 셸링 등과의 친분에 금이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1804년에 베를린에서 무려 세번에 걸쳐 연달아 ‘학의학’ 강의를 벌렸다. 강의록이 전해 내려온다.
1805년 여름학기에 Erlangen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지금은 바이에른에 속한 지역이나 그 당시엔 베를린과 함께 프로이센에 속했다. 겨울에 휴가를 받아 베를린에 돌아갔다.
1806년 베를린에 머물던 중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예나 등에서 패했다는 소식에 쾨니그스베르그로 피신했다.
1807년 겨울 쾨니그스베르그에서 강의를 했으나 나폴레옹이 진격해 온다는 소식에 다시 코펜하겐으로 도망쳤다.
1808년 Tilsiter 평화협정 후 가족이 있는 베를린으로 돌아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민족교육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1810년 새로 설립된 베를린 대학 철학과 과장교수로 임명되었다.
1811년 대학 초선 총장으로 선발되었다.
1812년 학생들 소동으로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1813년 평화협정이 깨지고 나폴레옹과 다시 전쟁을 벌리는 통에 강의를 중단해야 했다.
1814년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던 피히테의 부인이 한 부상병으로부터 못쓸 병을 얻었다(1월 3일). 피히테는 자기 부인으로부터 이 병에 전염되어 1월 29일 죽었다. 나이 5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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