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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피히테(2)-삶 I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019회 작성일 07-06-21 00:11

본문

1762년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Rammenau. 우리의 정약용과 동년배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아버지는 수공업자였다.
1770년 경 von Miltitz라는 사람이 교육을 위해 그를 거두었다. 후에 Krebel 목사가 이를 이어 받았다. 이들의 도움으로
1774년 경 마이센에 위치한 라틴어 학교를 다닐 수 있었으며
1774년부터 1780년까지 나움부르그에 있는 유명한 Schulpforta 학교에 다녔다. 19세기 중반에 니이체 역시 이 학교를 다녔다. 신학과 고어를 중심으로 아주 엄격하게 가르치는 보수적 학교였다.
1780년부터 1784년경까지 예나, 비텐베르그, 라이프찌히 등에서 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철학이 아니다. 자신의 나이 18살에 시작한 대학생활에 대해선 알려진 사실이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 단지 재정적으로 혹독한 고생을 겪어야 했음을 후에 그의 아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재정후원자였던 von Miltitz의 도움이 끊긴 이후 가정교사 일을 통해 입에 풀칠하기에 바빴다. 하도 고생이 심해 1788년 초 한 때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1788년 하루하루 제대로 끼니 잇기도 힘들었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스위스의 쮜리히에 가정교사 자리를 구했다. 그 곳에서 후에 자신의 아내 요한나 란을 알게 되어 약혼까지 갔다.
1790년에는 허나 다시 라이프찌히에서 되돌아갔다. 스위스의 가정교사 자리는 자신의 진보적 교육원칙과 해당 집안의 보수성이 충돌하여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결국 일자리 찾아 삼천리였던 셈이다. 물론 가정교사 일. 이 일은 허나 정규직은 아니고 가르치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만 두어야 했던 일종의 비정규직이었다. 허나 바로 이 해에 그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칸트철학을 알게 된 게다. 한 학생이 그에게 칸트철학에 대해 과외를 받고 싶다는 청에 의해 우연히 접한 철학이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숙명적인 만남을 이루었던 게다. 피히테의 칸트철학 입문은 거의 전설적이라 할 정도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그것도 꽤나 깊숙히 진행되었다. 특히 그 전까지 신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이미 빈틈없이 계획되어져 있음을 믿는 결정주의자였던 그는 칸트철학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방향을 180도 틀게 되었다. 후에 그 스스로 자신의 철학적 가르침에서 반복하며 말하듯 피히테철학의 바탕은 인간 의지의 자유에 근거한다.
1791년 바르샤바에서 프랑스어가 짧다는 이유로 가정교사 자리를 잃은 뒤 7월 칸트가 살고 있는 쾨니스베르그에 도착했다. 이 대철학자를 직접 만나 자신이 끄적거린 종교철학적 논문 ‘모든 현현의 비판적 노력’을 선보였다. 칸트는 이 글의 출판을 권하며 출판사 주선까지 해주었다.
1792년 부활절 경 피히테의 윗글이 출판된 후 세상사람들은 이 글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칸트의 종교철학에 대한 글로 여겼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자 피히테는 졸지에 유명해졌다는 부수효과도 맛볼 수 있었다. 연말에 단찌히에서 가정교사 노릇.
1793년 다시 쮜리히 행. 가을 약혼녀와 결혼. 그 전에 사상의 자유와 프랑스혁명에 대한 글 두 편을 익명으로 발표했다. 생각의 자유를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정립시키며 프랑스 혁명의 기본정신에 동조하는 내용이다. 익명으로 발표한 이유는 정치적인 맥락에서가 아니라고 피히테 스스로 밝혔다. 결혼 후 신혼의 단꿈을 만끽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세상에 선보일 새로운 철학함에 대한 청사진을 엮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에 준해 쮜리히의 몇몇 지식인들, 예컨대 라바테르, 페스탈로찌 등을 위해 개인적으로 철학강의를 했다. 아내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1794년 초 독일의 예나대학 철학교수 제안을 받았다. 칸트철학의 후계자로 칭송되었던 라인홀드가 몸 담고 있던 예나대학을 버리고 봉급을 더 준다는 킬대학으로 옮기는 바람에 그의 후계자로서 전임자의 추천, 괴테의 동의 등에 힘입어 얻은 기대하지 않았던 교수 자리였다. 사실 피히테는 쮜리히에서 가정생활을 꾸리며 글쟁이로 살고자 하는 계획을 품고 있었는데, 졸지에 독일의 정식학계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물론 그와 그의 아내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당시 예나대학은 독일의 일류대학으로서 쉴러 역시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자기 고유의 철학을 주제로 강의를 벌렸다. 이름하여 Wissenschaftslehre, 철학에 해당하는 Philosophie 대신 그가 제안한 용어다. 철학이 학문 중의 학문이란 뜻을 전하고자 했으니 우리말로 ‘학의학’이라 번역함이 어떨까 싶다.
그가 죽기 전까지 이런 저런 강의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알리고자 욕을 무지 봤는데, 합쳐 10개 이상의 상이한 버젼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중 이 예나의 버젼은 첫 번째로서 이에 걸맞는 모습으로 제목에 ‘바탕(Grundlage)’이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피히테 살아 생전 책으로 온전히 세상에 발표된 유일한 버젼이다. 그만큼 피히테철학 연구에 있어 핵심을 차지하는 철학고전이다. 이를 근거로 후기를 전기와 상이하게 보는 무리와 그렇지 않고 후기 역시 전기의 핵심생각을 그대로 잇고 있으나 그 외형을 군데군데 바꾸었다는 무리로 견해가 나누어져 있는 형편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문제는 허나 이 책의 이해가 만만치가 않다는 데 있다. 그 내용의 어려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스스로 이 책을 원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책으로서 만들기 보다는 대학 강의의 자료로 엮은 글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자기가 강의를 통해 직접 그 내용을 보충하고자 했던 그런 원고였던 셈이었다. 그래 한 번에 끝가지 써내려가지도 않고 대신 서너번에 걸쳐 쓴 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진행한 근본 이유는 자기가 강의할 때 그 내용을 옮겨적느라 신경을 쓰다 보면 받아쓰기에 바빠 결국 강의와 동시에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을 잃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 이는 피히테가 칸트철학을 알기 전인 결정론자였을 때부터 변하지 않는 그의 좌우명이었다.
1795년 그 강의원고가 ‘전체 학의학의 바탕’이라는 제목을 갖고 책의 모습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이의 해석을 위한 몇몇 시도가 독일학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도 속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우선 절대자아를 다루는 첫 장에 대한 해석이 아직도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에 한 한국 철학자가 이 시도에 동참했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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