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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칸트 철학(2)-삶의 후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4,168회 작성일 06-10-07 10:08

본문

IMMANUEL KANT – 삶 (비판 철학 이후)

1781
순수이성비판. 11년간의 연구 결과임. 동시에 그 당시의 철학 사조들과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임. 이런 맥락에서 거론되어야 할 철학자들 중 칸트 비판 철학의 탄생에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사람을 고르라 한다면 당연 회의주의자 (1711-1776)과 더불어 칸트의 방에 유일하게 걸려 있었다는 사진의 주인공 - 루소(1712-1778).
이 현대 서양 철학의 바탕서를 통해 칸트 자신의 말에 따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철학에 도입됨.
칸트 스스로 "사고 방식의 혁명"이라 일컫는 이 '전환'이란, 시간이 없어 간단히 말하는데, 우리 의식의 눈이 의식 밖의 대상으로 향하는 전래의, 고래의 사고 방식 대신 거꾸로, 즉 대상이 우리 의식의 눈으로 향한다는 소리.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관찰자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하늘의 별들을 연구하는 대신 이 별들을 조용히 가만 놔 두고 연구의 방향을 오히려 관찰자에게 돌렸음을 비유함.
그럼 뭣땀시, 도데체 이 '전환' 내지는 '혁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순수이성비판을 직접 읽기 바람. 거기 다 써 있음.
허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지금 여기의 우리와 칸트와의 관계의 내부 속성에 또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

1783
쾨니그스베르그 성 옆에 단독 주택 구입. 그렇다고 2년 전 출판된 순수이성비판이 잘 팔려 인지세 수입으로 집을 산 것은 아님. 책 무지 안 팔렸음. 이에 물론 칸트 실망.
어쨌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돈 씀씀새의 전통은 절약하고 절대 빚지지 않는 생활이었음.
모든 미래의 형이상학에 준한 서언 출판. 원어로는 프롤레고메나. 순수이성비판을 위한 입문서라고나 할까?
아무튼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출판 이후 독자들의 꽤나 냉담한 반응에 고민한 흔적을 보임. 친한 친구들한테서조차 이해하기 힘든 글이다라는 촌평을 들어야 했음. 특히 이 책 전, 즉 비판 전에 발표한 자신의 글들에 비해 일반 대중을 배려하는 문체를 완전히 버렸다는, 엄청 학문적이라는 싫은 소리를 꽤 자주 들어야 했음.

1784
계몽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글 들어가는 부분에서 칸트의 그 유명한 아우성이 울려 퍼짐: "sapere aude!" 너 스스로 생각하는 용기를 가져라는 청천벽력의 사자호.
이 글에서 은근슬쩍 위에 열거한 촌평에 대한 답으로서 자신의 비판 철학적 글의 비대중적 문체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함.

1785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후에 출판되는 실천이성비판과 함께 칸트 도덕 철학의 골격을 형성함.
독일 철학과에서 초급세미나 교재로 무지 애용 당하고 있음.

1786
첫 번째 대학 총장 취임. 당시 프로이센의 새로운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게 대학 총장의 이름으로 쾨니그스베르그 대학의 왕에 대한 충성을 표현함에 왕으로부터 특별상을 받음.
베를린 학술원의 외부 회원으로 선정.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시초 이유

1787
순수이성비판 두 번째 개정판 출판.
특기 사항은 이 개정판에서 선험적 연역에 관한 논리 전개에 획기적인 변화를 보임. 통상 이 개정판의 글을 B, 초판의 글을 A라 표시함.
대부분은 B를 선호하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내 스승 헨리히, 허나 꼭 삐지는 사람들이 있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 쇼펜하우어하이데거는 A를 더 침.
그럼 칸트는 어떠한 이유로 A에서 B로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을까? 구수한 냄새가 나는 연구 거리다. 물론 무지 어려울 것. A와 B를 우선 이해해야 되니. 단지 바로 이 이해가 칸트 철학, 어쩌면 그의 철학적 바탕을 이해하는 필수요 동시에 첩경임을 염두에 두건대, 이에 대한 박사논문들 엄청 쏟아져 나오길 바람.
대강 이때쯤부터 그 유명한 칸트의 모습이 실현화 됨: 걸어 다니는 시계.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에 따른 매일 매일의 무지 규칙적인 일상 생활. 장수의 비결.

1788
대학 총장 두 번째 취임.
실천이성비판
이 책 끄트머리의 그 유명한 문구 다시 읽어봄:
"두 가지 사항이 자주 그리고 끊임없이 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항시 새롭고 늘어나는 놀라움과 경외의 마음을 자아낸다: 내 위의 별로 가득찬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적 법칙."
이 문구는 쾨니그스베르그에 위치한 칸트의 무덤 묘비에 새겨져 있음. 아, 물론 독어로.
정치적으로 반 자유주의적으로 전환. 신학자 요한 크리스토프 뵐나를 중심으로 프로이센 전역에서의 대대적인 사상 검열이 실시됨.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모든 글에 대한 통제로서 그 당시 계몽주의 사상과 신문 보도의 자유에 큰 상처를 입힘.
칸트의 계몽 사상 문구가 다시 떠오름: "sapere aude!"

1790
판단력비판
칸트의 미학에 관한 책임. 이로써 철학의 이론과 실천 영역을 한 맥락으로 묶으려는 시도를 펼침. 그 성공 여부는 당연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임.

1792
종교관을 중심으로 한 사상 검열 강화.
4월에 인간 본성의 극악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당시 지식인 계의 중요 잡지인 베를린 월간지에 논문 수록. 이후 네편 더 실렸으나 이후 6월에 사상 검열에 의해 강제 중단.

1793
부활절을 즈음하여 오랫동안 기다렸던 칸트의 종교 철학 책 단순 이성의 경계 내에서의 종교 출판. 여기서 칸트는 종교의 바탕을 신비함이나 느낌에서 찾음을 단호히 거절하고 오로지 도덕법칙에 그 근거를 두는 논의를 전개함. 대한민국 기독교의 광신도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정하고자픔.
9월 이론과 실천에 관한 논문 발표.

1794
성 페테르스부르그의 왕립 러시아 학술원 외래 회원이 됨.
사상 검열로 인한 프로이센 관료와 분쟁이 심화되었으나 칸트의 왕에 대한 형식적 굴복으로 일단 무마 되었음.
점차 강의 수를 줄임.

1795
영원한 평화를 위해 (2. 판 1796)
피히테(1762-1814)는 1796년 출판 된 자신의 법철학에서 이 칸트의 저술을 그 당시 그 분야에서 최고로 중요한 저술이라고 극찬함.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끼리 끼리 논다고, 칸트에게서 자신의 논조에 대한 뒷받침을 보았음.
하기사 피히테는 이미 그 전에 칸트 철학을 전승받아 독일 낭만주의와 관념론의 태동과 성숙에 결정적인 철학적 역할을 한 장본인.

1796
강의 활동 종료. 마지막으로 7월 23일 논리학 강의.

1797
인간애를 빌미로 거짓말 할 수 있다 생각되는 권리에 대해
도덕 형이상학


1798
이태리 학술원 외래 회원
학과들의 싸움. 이 글을 통해 사상 검열을 주제로 벌어진 담당 부처와의 글 교환 공개를 계속함.
실용적 안목에서의 인류학.

1800
칸트의 마지막 발표 글: 크리스찬 고트리브 밀케의 리타우-독일 그리고 독일-리타우 어 사전에 준한 (한 친구의) 후기
몸이 점차 쇄약해져 칸트의 막내 여동생과 함께 제자 바시안스키가 칸트의 간호을 맡음.
칸트의 다른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칸트의 강의록과 미발표문들의 출판 작업 시작.

1801
11월 모든 관직에서 공식적으로 사퇴.

1803
10월 첫 번째 심각한 쇄약 증세 나타남.

1804
2월 12일 한님께 돌아감.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Es ist gut." ("좋아.") 돌아가는 순간에도 이런 소리 내뱉을 수 있음이 무척 부러움.
신문에 공표된 공식 서거문:
"2월 12일 오전 11시 이마누엘 칸트 교수는 79 세 10달의 생애를 나이에 따른 노쇄에 의한 사전의 병 없이 마쳤다..."
2월 28일 쾨니그스베르그의 성당 북쪽 묘에 안장.
4월 23일 쾨니그스베르그 대학에서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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