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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오늘은 Karl Marx 귀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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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1건 조회 2,432회 작성일 06-05-05 00:19

본문

지금으로부터 188년 전 오늘, 즉 1818년 5월 5일 맑스는 독일 Trier에서 세상 빛을 보았습니다.
생일이라고 수선 떤다기 보다는 그냥 생일을 핑계삼아, 그냥 지나치기도 쪼께 미안코 해서^^, 맑스가 1875년에 발표한 당시의 독일 사회 민주적 노동당 강령에 대한 비판 글을 번역해 올립니다.
평등을 주제로 해서도 곱씹어 보고 싶은 글입니다.

"I.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유일한 원천이다, 그리고 왜냐하면 유용한 노동은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의 생산물은 고스란히 평등한 권리에 따라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속한다.<<

항목의 첫 번째 부분: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유일한 원천이다.<<

노동은 모든 부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다. 자연 또한 마찬가지로 사용 가치의 원천이며 (실제적 부가 이로써 채워진다). 노동은 자연력, 즉 인간 노동력의 외적 표현일 따름이다. 위 문구는 모든 아동입문서에 실려 있으며 노동이 그에 속하는 대상들과 수단들에 의해 이행된다고 가정하는 한 맞는 말이다. 한 사회주의적 계획 강령은 자신들에게만 의미를 부여하는 조건들에 침묵하는 그러한 시민적 말투를 허용해서는 아니 된다. 단지 인간이 아예 처음부터 자연의 소유자로서, 즉 모든 노동 수단들과 노동 대상들의 첫 번째 원천자로서의 태도를 취할 때에만, 다시 말해 이 모든 것들을 자기의 소유물로 취급하는 경우에 한해 노동은 사용 가치의 원천이요, 따라서 동시에 부의 원천이 된다. 시민들은 노동에서 초자연적인 창조력을 꾸며보는 매우 합당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바로 노동이 자연에 의해 조건지워졌음에서 도출되는 바, 자신의 노동력 이외에는 다른 어떤 재산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모든 공동체 내지는 문화의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 이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상적 노동 조건들의 소유자로 만든 사람들이다. 그는 단지 이들의 허락으로 일할 수 있을 뿐이며, 따라서 오로지 이들의 허락으로써 살 수 있을 따름이다.

위 문장을 그냥 내버려두자, 가든 서 있든, 아니면 오히려 절룩거리든.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분명 이것이다:

>>노동의 모든 부의 유일한 원천이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도 아무도 부를 사유화할 수 없다. 단지 노동 생산물로서의 경우는 제외한다. 만약 그가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면, 그는 타인의 노동에 의해 살며 아울러 자신의 문화를 타인의 노동이라는 대가로 고유화한다.<<

이 대신 >>그리고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두 번째 문장을 첨가한다. 바로 이를 통해서, 첫 번째 문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다.

항목의 두 번째 부분: >>유용한 노동은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만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첫 번째 문장에 의하면 노동은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유일한 원천이었으매 노동 없이는 그 어떤 공동체도 가능하지 않았다. 지금은 허나 거꾸로 공동체 없이는 그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 노동도 가능하지 않음을 우리는 듣는다.

어쩌면 같은 이치로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만 쓸모 없고 공공에 해악 되는 노동이 수입원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만 게으름 피우며 살 수 있다는 등등 - 짧게 말해서 루소의 모든 것을 베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무엇이 >>유용한<< 노동인가? 단지 의도된 이익효과를 창출하는 노동뿐이리라. 한 야만인 - 그리고 인간은 원숭이임을 그만 둔 이후 야만인이다 -, 한 짐승을 돌멩이로 죽이고 열매를 모으고 하는 등의 야만인은 >>유용한<< 노동을 행한다.

세 번째: 결론 도출: >>그리고 왜냐하면 유용한 노동은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 노동의 산물은 축소되지 않은 채, 동일한 권리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속한다.<<

아름다운 결론! 만약 유용한 노동이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노동의 산물은 공동체에 속하며 - 개개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조건<<, 즉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그 몫이 돌아간다.

사실 이 문장은 모든 시대에 그때그때 공동체 상황의 수호자들에 의해 인정이 되었다. 우선 정부와 이에 빌붙는 모든 것들의 요구 사항들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정부는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등장하는 게 다양한 종류의 사적 재산 소유자들의 요구 사항들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종류의 사적 재산은 공동체의 토대 등등이기 때문이다. 보라, 저런 속이 텅 빈 문장은 돌리고 뒤집고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지 않은가?

모종의 이해 가능한 첫 부분과 둘째 부분의 짜임새는 다음과 같은 모습뿐이다:

>>부와 문화의 원천은 공동체적 노동으로서만의 노동이 된다<< 아니면, 같은 뜻이지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

이 문장은 의심의 여지없이 옳다. 왜냐하면 만약 개별적 노동 (그 구체적 조건들이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역시 사용 가치를 창출한다고 해도, 그것은 부도 문화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의 문장 역시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없다:

>>노동이 공동체적으로 발전했으며 또한 이를 통해 부와 문화의 원천이 된 그 만큼 가난과 황폐 역시 노동자들의 편에서 발전했다. 부와 문화가 비노동자의 편에서처럼.<<

이것은 지금까지 전체 역사의 법칙이다. 이는 그러니까 >> 노동<<이나 >>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 말투 대신 여기서 분명히 검증되었다: 어떻게 지금의 자본주의적 공동체에 결국 물적인 조건 등등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이러한 조건들은 노동자들에게 저러한 역사적인 저주를 깨부수는 능력을 부가하며 그들을 또한 이에 강요한다."


(강조: 맑스, 번역: 서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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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처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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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사상의 근원적인 결함은 인간행위의 정당성을 어떻게 부여받을수있는가이며 그 정당성에 대한 서구적인 해석은 그들의 번영을 세계사에서 이루게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의미는 결국엔 그들의 정당성은 그들외의 세계인류에 대한 거대한 억압과 착취을 유발시키며 그 한축에 막스의 사상적인 토대도 기인한다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동이 인간행위로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정당성의 확보의 시발점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노동 또는 내가 처해있는 역사속에서의 인간사회의 정당성속에서만 고찰된다면 그것은 귀족계급의 노동인 인간행위에 대한 반사적인 또다른 형태의 무산계급이 가지는 실존적인 귀족계급의 노동인 인간행위와 다를바가없다.
그렇기때문에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을 잉태시킨 서구의 사상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끊임없는 전쟁과 갈등을 유발시키며 그들의 희생을 통해서 미국,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구인들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발전을 도모하고있는 것이다.
서구의 죽은 시체들의 망령에 우리의 의식이 구속되어있는 한 서구외의 인류는 끊임없는 그들의 침략에 노예로서의 삶밖에 보장받을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연적인, 사회적인 현상일것이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럼 그런 서구사상을 물리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동양 사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를 조금은 펼치는 말씀을 주시렵니까?

처음님의 댓글

처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결국엔 우리가 이러한 인식의 토대속에서 서구의 죽은 시체들의 망령속에서 그들의 실체에 대한 본질과 그 현상들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희생양이면서 그 의식속에서 살아갈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한국인의 실존적인 모습이 그것을 극복하려고할때만이 실존적이고 현실적인 한국인의 자의식은 생존하고 그들이 삶의 토대로서 지탱되는 사회는 번영, 발전할수가 있다.
한국사회는 그 과정속에서 자기실존을 유지하고 있지만 죽은 시체들의 서구의식은 삶과 개인과 사회의 의식속에서 독버섯처럼 수없이 번지고 거대한 메트릭스의 독버섯망을 연결, 형성하고있기때문에 그것을 극복할수있는 한국인의 실존을 끊임없이 찾고 도전과 노력속에서 인간행위의 정당성을 도출해야한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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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 말씀은 서구  사상의 극복이라는 맥락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우리 고유의 동양 사상에 대한 말씀을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가  (되)찾고자 하는 우리 본래의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처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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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동양사상이라는 말은 엄밀히 말해서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상이라는 것이 각 개개인이 가지는 사상들의 유합체로서 각 사회구성원이 가지는 독자적인 사상속에 탄생한다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계속해서 다른 개인과 다른 사회구성들의 사상들과의 작용과 반작용의 인간행위속에서 변화, 발전 또는퇴보되는 순환과정을 반복하겠지요. 그러한 의미에서본다면 개인의 사상이 끊임없이 변화해지는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 과정속에서의 사회구성원들의 사상도 당연히 그러한 현상들을 가지게됩니다. 그러한 현상들을 내가 나의, 내가 속해있는 사회속에서의 현상들로서만 이해의 폭을 극대화시킨다면 그것은 엄청난 독선과 지배의 결과을 형성하게되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인간인식의 단순한 인간행위의 다른 형태일 따름입니다. 막스도 그 의미에서 본다면 그가 그렇게 부정하려했던 서구의 귀족계급의 의식과 다를바가 없지요.
여기서 한국인으로서의 의식에 대한 인식이 필요해지는 것이고 그 방법도 제시될수가 있다고 보는것이죠.
내가 서구사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비판할수있는 나의 사상을 가질수있느냐하는 문제와 또 그것을 극복할수있는 나의 사상은 어떤 것이며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물음과 도전과정이 형성될수있는 것입니다.다시말해서 문제의식이 형성될때만이 그것을 극복할수있는 의식과 힘이 생기고 그럴때만이 그들의 지배의식에 최소한 대등할수있는것이지요.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의 바램은 님이 위에서 '서구 사상' 운운 하시며 이를 우리가 지향해야할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님은 지금 그런 서양이니 동양이니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으신다 말씀하시니 쪼께 어리둥절해지네요. 그렇다면 우리가 처해 있는작금의 불만스런 현상을 '서구의 죽은 시체들의 망령'에만 돌림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주신 말씀엔 일단 저의 동의 말씀을 드립니다. 단지 우리가 이러한 극복 과정에서 '이건 아니야'로만 나가면 우리 스스로의 입지 조건이 약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또한 품습니다. 그래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를 긍정적으로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일종의 모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달리 말씀 드리면 '그래 바로 저거야' 하는 그런 감이 드는 무엇 말입니다.

처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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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제가 문제의식으로서 제기하는 것이 서구사상의 수백년이상 현재까지 세계사의 지배와 그것을 통한 인류사의 발전과 번영에 과연 나의 의식이 어떤 의미에서 해석될수있는가이고 나의 해석이 과연 그들의 지배의식의 단순한 동조선상에 있는 노예적인 의식의 연장이 아닌가라는 의문의 출발입니다.그렇다면 난 무엇땜에 그들의 지배의식에 내 의식이 동조해야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겠지요. 그때 난 내가 판단하고 선택할수있는 나의 의식이 가능하고 그 의식의 선택을 통해서 내가 발전하던지 퇴보하던지의 현상이 생기겠지요.그때 나의 고유의 의식과 내가 속해있는 고유사상은 형성되거나 소멸되겠지요.서구의 막스의 사상이나 자본주의사상도 결국엔 그들의 고유사상속에서 형성되고 지배하는 크다른 힘을 가진것이다고 볼수있지만 내가 그 지배의식속에서 어떻게  나의 고유사상을 정의하고 발전할것인가는 그때부터 정의가능하다고봅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이 옳게 보시듯 서양 사상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서양의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듯,
우리의 동양 사상 또한 동양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겝니다.
문제는 여기에 '나'라는 주체가 어중간하게 끼어 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야 극복이니 퇴보 운운의 말나눔이 가능하겠지요.
님 말씀하시듯 나의 고유 사상은 새로 형성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러한 형성의 씨앗이 되는 우리 고유의 사상은 이미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그 어렴풋한 윤곽이나마 말입니다.

처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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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때문에 가능한거지요. 한 인간사회과 역사와 철학을 많은 시간으로 형성했다면 당연히 고유사상을 형성하지요. 그 사상의 교류을 통해서 사상은 정체되거나 발전하거나 한다는 거지요. 문제는 그 사상은 거대한 세계관으로 형성되고 있더라도 그 세계관을 형성한 주체는 개인의 의식속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근데 그 의식이 어떤 의식속에서 자리잡고 있는가가 문제가 될수있습니다. 의식은 정체되지않는데 그것을 세계관으로 정체시키려는 그 의식에 문제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그럴때만이 내 의식과 고유사상이 뚜렷해질수가 있겠지요.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럼 이렇게 여쭘을 허락해 주시길:
님이 서구 사상을 비판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실 때 손에 쥐고 계신 님의 잣대는 무엇입니까?

처음님의 댓글

처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내가 그것을 찾을수있을 정도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을것이고 또 찾았다고한들 나의 의식에서만 머물 확률도 많지요.근대 사실 서구사상은 서구인들이 수없이 비판하고 있지않는가요. 막스조차 엄밀히 말해서 그 과정을 거친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서구사상이 세계사에서 지배의식으로 자리잡고 있다고보는데 왜 다른 세계의 인간들은 그것에 대해 당연시할수없는지가 의문입니다.
그런 서구인들의 비판의식은 결국엔 인간의식속에서 형성되기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고유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때문이지 고유사상속에선 결론적으로 비슷한 의미을 담고있다고보입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비판이야 서양이든 동양이든 그 사상사에  수없이 자주 등장했고 하고 있지요. 특히 맑스에 대한 찬반 토론이야 아직도 진행형이고요. 제 질문은 그런 일반적인 사항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위의 첫 댓글을 올리신 님의 구체적인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자 함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말섞음이 꽤 흐릿해질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님은 '찾는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잣대는 비판 이후에 찾아지는 게 아니라 비판을 가능하게 함이니 비판 전에 갖추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처음님의 댓글

처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찾고있는 과정일수밖에 없지요. 인간의식은 진행형입니다. 신이 아니지요. 신으로부터 의미되어진 것에 대한 자기의식의 진행일뿐이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일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정체된 의식에 의한 지배는 그러한 과정을 무시하게되고 억압하는겁니다.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식을 가지고 찾아가자는 말인데 그것을 어떤 의식으로 규정하려는데 또는 담으려는데 문제가 생긴다고봅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말씀하신 '극복'을 한 연후에 우리에게 걸맞는 모습을 찾아간다 함에는 저 역시 동감합니다. 단지 제가 드린 질문은 이러한 극복 후의 모습이 아니라 극복을 가능하게 하는 비판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잣대를 말합니다.
물론 이 잣대와 극복 후의 그 모습이 일치할까 하는 물음은 또 다른 문제겠지요.

처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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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어떤 잣대로서 비판가능한가는 결국엔 내 의식이 정체되지않을때 가능합니다. 내가 만약에 기독교의 의식으로 그러한 의식들을 비판하려한다면 내 의식속엔 또다른 그들과 다를바없는 의식정체속에서 비판하려하기때문에 그것은 의식의 진행일순있지만 내가 말한 자유로운 의식의 진행은 아닌것이지요. 그렇기때문에 인간의 의식을 어떤 잣대속에서 진행시키려고하지말라는 것이고 그것에서 벌써 왜곡은 시작된다는 겁니다.
그 의식의 자유로움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존재로서의 이해는 개인의 의식과 사상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간의 의식을 어떤 잣대속에서 진행"시킨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잣대를 인간의식 속에서 진행시킨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애초에 님과의 말섞음은 님의 "서구 사상의 근원적인 결함"을 말씀하신 첫 댓글입니다. 저는 이에 그럼 님의 이러한 비판을 뒷받침하는 잣대에 대해 추가 말씀을 듣고자 했던 게고요.

비판에 필수불가결한 잣대를 갖고 있음과 님 말씀하시는 "자유로움"과는 별 상관관계를 살필 수 없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처음님의 댓글

처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잣대에 대한 정의을 무엇이라고 내릴순없다는 것과 또 내리는 것자체가 엄밀히 모순인 것이며 그 잣대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과정을 통한 자기의식의 자유로움과 형성이 잣대의 기준으로본다면 그 잣대일수가 있겠지요. 결국엔 잣대는 결국에 물음의 과정속에서 또 변할수있을것이고 인간의식의 진행은 그것으로 인간행위의 중요한 의미만 가질뿐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잣대와 극복후의 모습이 일치하고 변화의 현상만 나타날뿐인 것이다고봅니다.

서동철님의 댓글의 댓글

서동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말씀 드린 잣대는 님 말씀하시는 일반적인 잣대가 아니라 아뒤 '처음'이라는 구체적인 개인이 갖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그런 개별적인 잣대를 말씀 드린 겝니다.

처음님의 댓글

처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럼 그것이 나의 구체적인 잣대지요. 내가 왜 서구사상의 비판적인 요소들을 비판하자고 했는지 말입니다.막스로 대표되는 서구사상의 공산주의가 노동을 인간행위의 의미로 단순히 귀족계급에 대한 반사적인 이해바탕속에서 그들의 서구사상틀속에서 몰입됨으로서 서구외의 다른 세계의 인간행위의 의미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와함께 지배논리로서 끊임없이 착취와 갈등을 유발시킨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것이 내가 말한 내용이고 그 잣대는 막스나 자본주의등 또는 기독교적인 서구사상의 잣대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며 나의 잣대는 그 물음을 던지게끔 했던 잣대가 무엇인가 또 그것이 서구사상을 극복할수있는가에 대한 의문제기인 것이지요.
나의 의식의 자유로움은 그것으로부터 출발하고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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