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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제도 독일의 좌파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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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스라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7,555회 작성일 02-03-15 05:11

본문

◆ 독일 좌파는 어디 있는가

하나의 유령이 독일의 허공을 맴돌고 있다. 그의 심장은 왼쪽에서 뛰지만 머리는 다르게 돌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심각한 평형감각 상실과 현실 인식 부족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이제 과거에 진보라고 불리던 것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1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년 전부터는 적녹연정이 독일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좌파가 지금처럼 나약하고 지향점을 잃고 쪼그라들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심지어 연방정부의 재정절감과 이 정책의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저항에서도 독일 좌파는 이러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체계적인 공세와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장벽 붕괴 10년 후 좌파의 세계상의 커다란 부분도 무너지고 있다. 특히 진보적 좌파-반동적 우파의 대립 구도는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특히 코소보 전쟁을 둘러싼 대립에서 보여지고 있다. 우파인 알프레드 드레거가 나토 공습에 반대한 반면 좌파인 에르하르트 에플러는 이에 찬성하는 등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좌파의 관습적인 반사신경은 여전한 것 같다. 일부 좌파들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톤만 맞으면 함께 뭉친다. 녹색당 소속인 크리스티안 슈트뢰벨레 하원의원은 99년 초에 "나는 독일이 부끄럽다"고 말했는데, 이런 것이 소위 '역 민족주의'라 할 수 있겠다.

▶ 근본적 문제에 침묵하는 좌파

사회주의 이후 첫 10년이 지난 지금 임시적으로 결산을 해보자. 새로운, 자신의 역사마저 무자비하게 반성하는 좌파가 생겨나지 못했다. 그 대신 한편으로는 세계화된 커먼센스로서의 '신중도'가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쓰린 가슴을 부등켜 안고 모든 "기회주의자"들에 대해 욕을 퍼붓는 시대착오적 좌파가 나타나 서로 대립하고 있다.

<img src=http://berlinreport.com/1004/99/5/bild/linke1.jpg align=left.1989년은 모든 좌파적 입장들에 대해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호기였으나 이는 제대로 이용되지 못했다. 68혁명의 유산인 현실 변혁을 위한 반권위주의적 욕구, 일상생활의 민주화, 현존 질서에 대한 비판의식은 이데올로기적 보수주의로 타락했다. 이러한 보수주의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위협감을 느끼는데, 이는 상점 개점 시간 연정 논의나 세제 개혁 논의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어디에서도 혁신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반란은 경직된 사유로 전락했다. (△ 독일의 60년대 말 베트남전 반대 데모)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좌파 지식인들은 침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러시아가 체첸에 대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급격한 경제 세계화에 있어 제도화된 윤리 코덱스가 필요한가? 세계 자본 이동은 '제어'되어야 하고 '제어'될 수 있는가? 민족국가는 죽었는가, 그리고 어떤 형태의 국가주권이 미래의 유럽과 UN에서 나타날 것인가? 동유럽 지역이 '독일의 지도력'을 원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소위 "라인강 자본주의"는 앵글로색슨적인 주식가치 문화에 대항하여 장래에 어떤 기회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 좌파는 침묵하고 있다.

▶ '현실'의 승리

그 대신 혼탁한 좌파의 주류는 권력에의 요구에 따라 점점 더 '사회적 현실'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실지로 기회주의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지적인 통찰에서 나왔다기 보다는 전술적 필요와 정신적 수동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녹색당에서는 나태한 이중 도덕과 실제적 분업의 모델이 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지난 10년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요시카 피셔는 분명하게 이야기 하기 보다는 종종 웅얼거리고 만다. 녹색당의 최근 당 전략회의에서는 녹색당의 사상의 빈곤, 정체 상태와 정치적 용기의 부족이 다시 한번 잘 나타났다.

그래서 잘못된 현실 정치에 대한, 그 자체로는 올바른 비판조차 무력하게 나타난다. 그 결과로 원전 포기, 외교정책, 평화주의 원칙, 경제 및 복지정책 등등 분야에서 좌파의 근본 원칙들이 포기되고, 이를 메꿀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이론도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의 입장을 일찌감치 수정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전통적 의미의 "좌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이제 "세계혁명"의 꿈을 버렸다. 이런 사람들에는 코라 슈테판, 페터 슈타이더,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볼프 비어만 등이 있다.

한마디로 현실이 가지는 힘이 시대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용주의가 회의적 정신을 대체했다. 이런 지적인 공백 속에서 1989년 이미 끝장이 난 좌파에 대한 신비화가 일어나고 있다.

<img src=http://berlinreport.com/1004/99/5/bild/fischer.jpg align=left.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이러한 과거를 반복할 것이며 이렇게 반복된 과거는 하나의 코메디가 될 것이다. 그런데 독일 좌파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요쉬카 피셔가 코소보 전쟁에 찬성한 것 때문에 자신들의 전력을 다해 그를 공격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묶어낸 책 "어떻게 요제프 피셔 박사가 폭탄을 사랑하기를 배웠는가"에서 20명의 저자가 모든 힘을 다해 슈뢰더/피셔 주식회사의 전쟁 애호를 비판하고 있다. (△ 녹색당 전당대회에서 반전주의자로부터 페인트 세례를 받은 피셔 외무장관)

1999년 독일의 좌파란 무엇인가? 단지 적은 수의 지식인들만이 자신의 과거 신조를 아직도 주장하고 있다. 베를린자유대학 명예교수인 에케하르트 크리펜도르프는 "좌파는 언제나 착취와 억압에 대한 도덕적 항거였다. 나는 과거에 대해 사과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80년대 녹색당 하원대표이던 토마스 에버만은 마치 19세기 아우구스트 베벨이 말하듯이 "좌파 정치의 기둥"을 논하면서 "좌파는 조국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 베를린 장벽 붕괴

이런 사람들에게 89년 11월 9일 장벽의 붕괴는 쇼크였음이 분명하다. 서방의 승리에 대해 좌파들은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귄터 그라스는 이를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승리라고 말했다.

장벽 붕괴를 기뻐한 사람들은 좌파 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로 욕을 먹었는데, 이는 당시에는 최악의 모욕이었다. 서독에 있던 동독 피난민 수용소에 대해 작가인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히틀러 손자들의 땅"이라고 욕했다.

좌파들에게 있어 동독 난민들은 우파에 대한 잠재적 지지세력이었고, 제3세계에서 온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주택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경쟁자들이었다. 곳곳에 휘날리는 독일 국기가 그 증거였다. 또 심리분석가 호르스트-에버하르트 리히터는 동독 난민들의 유입이 서독 내부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전세계 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싶어하던 좌파들이 갑자기 동독의 "경제 난민"들은 "서독의 번영으로부터 BMW 한 대와 넥커만 여행사 티켓 한 장을 얻으려 한다"고 투덜댔다.

한마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믿고 싶은 것이었다. 동독 작가 슈테판 하임은 슈피겔(89년 49호)에서 서독으로 밀려드는 동독인들이 썩은 물질주의와 소비에 미친 군중인 것처럼 묘사했다.

좌파는 이 역사의 진행에서 스스로 사멸할 수 있음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통일에 대해 끊임 없이 식민화, 병합, 몰수 등등의 표현을 썼다. 이런 와중에 자유, 인권, 인민 주권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투쟁 정신은 우파의 주장으로 변화되었다.

▶ 좌파는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요시카 피셔가 92년 내놓은 책 "사회주의 이후의 좌파"에서, 그는 좌파가 종말론적인 희망, 유토피아의 구원이라는 이념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피셔는 이를 위해서는 좌파는 모든 신비화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절대적인 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좌파는 이러한 교훈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좌파는 역사의 시간이 뒤로 돌아가는 것만 같아 불안해 한다. 시간은 민족주의와 대독일제국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크리스티안 슈트뢰벨레는 1990년 8월에 이미 "전 유럽"을 향한 "대독일제국의 식민화 위협"에 대해 경고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수천 명의 반파시즘 조직이 "다시는 독일이 없어야 한다(Nie Wieder Deutschland)"라고 시위했다. 이건 다시는 '아스파라거스 스프가 없어야 한다'거나 '다시는 발틱해가 없어야 한다'는 식의 초현실주의적 구호가 아닐까? 독일 좌파는 현실을 오류를 수정하는 기회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이념 앞에서의 항복으로 잘못 해석했다.

좌파들은 구동독 시절 슈타지 연루 의혹에 대한 폭로에 대해 '마녀 사냥', '매카시즘'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볼프 비어만이 14년간 슈타지 스파이로 활동했던 자샤 안더르손을 폭로했을 때 로거 빌헬름젠은 비아만의 프로파간다를 비판했다. 또 다른 슈타지 관련 사건에서는 이를 1894년의 드레퓌스 사건과 비유하기도 했다. (△ 동독 출신 저항가수 볼프 비어만)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독일 좌파는 그들의 비판적 잠재력, 자기반성의 능력, 새로운 현실에의 적응력 등을 상실했다. 그들은 수동성에 몸을 맡기고 있다. 전 사회의 변화를 좌파는 보수적 변화로 보고 있고 그래서 "잘못된" 변화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잘못된 전체 현실에 대한 비판이 자동적으로 새로운 보다 나은 세계로 이끌 수 있다는 미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요아힘 페스트가 말한 것처럼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버리려는 열정이 모든 경험과 의혹을 넘어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의 급진적 정책과 다른 모든 타협과 개혁에 대한 경멸, 그것은 자신들의 설득력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이다. 항상 어느 길목에서나 "적응"과 "배신"에 대한 비난이 도사리고 있는데, taz지의 독자 편지란은 이런 생각들의 중앙도서관과 같다.

▶ 90년대 좌파의 무기력

1990년 미국의 이라크 개입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두 번째 타격이었다. 냉전 종식 후 첫 번째 전쟁은 독일에서 대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름을 위한 피를 흘리지 말자"라는 표어가 내걸렸다. "아무도 정유회사 텍사코를 위해 죽지 않아야 한다"고도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주장했다.

병영, 기차역, 탄약운송지, 미국 영사관 등이 점거되었다. 검은 칠을 한 해골이 거리를 걸어갔고 북 소리가 울리고 소 피가 뿌려졌다. 심지어 시립극단도 평화의 이름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한마디로 불안, 도덕의 요구, 순결에의 그리움, 희생자 의식 등이 지배했다.

본의 "평화를 위한 네트워크"는 이 전쟁을 "미래에는 서방의 이해관계에 반대되는 모든 행동이 시범 케이스에 걸려들 것을 보여주는 한 예"로 해석했다. 사담 후세인이 억압받는 아랍 민중을 대신해서 싸우는 투사가 되었고, 그의 테러 정권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되지 않았다.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후세인을 히틀러와 비교한 것은 마치 요시카 피셔가 밀로셰비치를 히틀러와 비교한 것과 같이 비난을 받았다. 요시카 피셔는 이번 코소보 전쟁에서 밀로셰비치를 지적하면서 "다시는 아우슈비츠와 인민 학살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몇 년전에, 자신의 친구 다니엘 콘-벤디트와는 다른 견해를 보이면서 보스니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반대했을 때, 이 말을 쓴 적이 있다. 이러한 이념의 혼동 속에서 평화주의-전쟁주의의 투쟁전선은 걸프전, 보스니아 전쟁, 코소보 전쟁 등에서 계속 나타났다.

또한 공산주의의 학살에 대한 책 "공산주의 흑서"를 둘러싼 좌파의 맹공, 발저/부비스 논쟁 등은 홀로코스트를 둘러싼 이념 투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금년 슬로터디예크가 촉발한 비판이론을 둘러싼 논쟁도 스펙타클했으나 결국 이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코소보 전쟁에 대한 좌파들의 입장의 오류에 대해 좌파들은 고백하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에서 밀로셰비치 독재가 끝나지 않고 있는 지금, 세르비아의 편에서 나토 공습을 반대했던 페터 한트케는 침묵하고 있다. 또한 당시 "신 대독일 군국주의"를 비판했던 슈트뢰벨레, 베트나르츠, 슈바르처, 빙클러, 기지, 발라프, 알트, 포르트, 아멘트, 카스토르프, 페이만 등은 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가? (▷나토 공습에 대해 "세르비아에 대한 독일의 3번째 전쟁"이라면서 반대하는 포스터)

영국 문예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90년대 말 슈뢰더와 블래어의 등장은 이데올로기 이후의 좌파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좌파는 더 이상 사회민주주의적이지도 않다. 금세기에 좌파가 가지던 기준들을 이들은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장벽 붕괴 10년 후 좌파는 파라독스, 냉소주의, 원한 밖에는 제공할 것이 없어 보인다. 그것도 하필이면 지식인의 사회 비판이 그토록 필요한 지금 시점에서.역사가 토니 유트는 "좌파가 일상적 민주주의 과정이 가지는 산문성으로 돌아올 때 그들이 한 때 가지던 사회 비판 논쟁에 있어서의 높은 도덕성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독일의 유령들이여, 단결하라!

- 슈피겔 99.11.29(라인하르트 모어- 슈피겔 기자인 그는 68혁명 당시 피셔, 콘-벤디트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했다. 피셔 노선을 따르는 개혁주의적 좌파인 그는 지난 여름 슐로터디예크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어 슐로터디크에 의해 자신의 노선과는 다르게 '좌파 경고주의자'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 시습(sisp@berlin1004.de) 베를린천사 99년 12월◀

[이 게시물은 자유로니님에 의해 2005-07-02 10:05:41 정치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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