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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눈물 이야기의 진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퍼오당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82.♡.42.173) 댓글 4건 조회 3,132회 작성일 04-02-11 11:13

본문

이름: 史랑
홈페이지: http://www.seoprise.com
2004/2/11(수)

박정희 눈물 이야기의 진실


인터넷에 떠도는 박정희의 허상

요즘 육사 교장의 글이라고 알려져 있는 글이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반전, 평화 세력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을 수구, 보수라고 부른다는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치는 내용입니다. 자신들의 피땀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은 없었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그 근거로 들고 있는 핵심이 박정희와 관련된 두 편의 눈물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감동적이라고 말하는 이 이야기들의 역사적 진실은 사실과 다릅니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5.16 쿠데타 직후 미국이 박정희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 이야기에서처럼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의 쿠데타를 우려한 것보다는 박정희의 좌익 경력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박정희는 해방 후 일본군 장교였다는 친일반민족행위 전력을 숨기기 위해 친형 박상희를 따라 좌익에 몸을 담았습니다. 당시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의 창설에 참여하며 군대 내 좌익의 핵심 인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수·순천 10.19 사건으로 결국 박정희의 좌익 활동이 발각되었고, 박정희는 자신의 구명을 조건으로 군대 내 좌익 조직을 모두 고발하여 군대 내 좌익 제거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좌익 출신 박정희와 좌익 장인(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사위인 김종필이 이끈 5.16 쿠데타를 좌익 군사 쿠데타가 아닌가 의심을 했던 것입니다. 쿠데타 세력이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이라고 내세우며 오버를 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였던 것입니다.

또 위 이야기의 케네디가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까지 미국과 정상회담을 가장 많이 했던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태우로 각각 7차례였습니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14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였습니다. 오히려 박정희는 이 방문으로 쿠데타를 승인 받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지원 약속이라는 선물까지 받았습니다. 미국의 태도가 바뀐 이유는 이 때 박정희가 먼저 베트남에 한국군을 파병하겠다고 제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미국이 베트남전에 전투병력을 파견하여 대규모로 개입한다는 것이 결정되기 이전이었으므로 미국의 파병 압력이란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뜻밖의 제안에 케네디는 박정희와 예정에 없던 정상회담을 또 한번 가졌고, 베트남 파병 제안으로 박정희가 자기를 아주 기분 좋게 해주었다고 칭찬까지 했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이렇게 좌익 출신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의심을 없애는데 이용되면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1961년 8월 광부와 간호사의 3년간의 노동력을 서독에 파견하고 이들의 노임을 담보로 서독은행에서 지급보증을 맡도록 한다는 상업차관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협상 결과 정부는 발빠르게 상업차관계약을 담보할 노동력을 파견하기 위한 응시자 모집 (광부 5천명 모집에 응시자 4만명, 간호사 2천명 모집에 2만여명이 지원)을 시작하였고, 결국 이때 선발된 사람들 이 독일 이민 1세대가 되었습니다. 즉 이들은 한국이 처음으로 상업차관을 도입한 1억5천만마르크(3천만달러, 위 이야기의 1억 4천만마르크도 사실과 다릅니다.)에 대한 담보였던 것입니다.

1962년 드디어 5천명의 광부들과 2천명의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달 보수로 400마르크에서 700마르크를 받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시간외 근무를 자청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런 와중에도 독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틈틈이 독일어 공부, 각종 기술 익히기에 여가 시간까지 투자하였고 결국은 독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교포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위 이야기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다음은 깊은바닷물님의 글 중 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서독에 광부로 가서 한국출신 간호사랑 결혼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는 어떤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서독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지하탄광의 힘든 노동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비하 목소리였다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미개한 나라, 월남전 참여에 대해 백성의 목숨을 돈벌이로 팔아먹는 나라 등의 비난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서독에 갔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더 교육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독에서 바라본 쿠데타 한국은 정말로 화가 치미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박정희가 목숨 걸고 수천 미터 지하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자신들의 임금을 담보로 하여 서독정부로부터 돈을 빌린다는데 더 어이없어했지요. 박정희가 서독의 자신들을 방문한다 했을 때 처음에는 똥물이라도 덮어씌우려 했답니다. 그런데 하지만 대사관측의 만류, 압박,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 등으로 실행할 수 없었고, 그래도 여기서 우리가 독일인들 앞에 박정희를 환영하고 반가와 해야지 국제 외톨이가 된 조국의 번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환영하고 어쩌고 했답니다. 그곳에서도 박정희는 인기가 없었지만 육영수 여사는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후에 그들은 어찌되었을까요? 팽 당했습니다. 한국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최대의 엘리트 교민집단이었던 서독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박정희에 대해 갈수록 거부감이 심해졌지요. 이때 한국정부는 동백림사건을 만들었고 이 사건과 관계없는 서독의 교민들조차도 이 사건으로 인한 또 한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느 이야기가 더 진실에 가까울까요? 눈물 잘 흘리는 우리 민족이 박정희를 환영하며 눈물 바다를 이루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눈물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 조국과 박정희는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박정희가 표현했다는 말처럼 타국에 동포를 팔아서 경제 개발을 하고, 그들을 외국인 취급하며 참정권도 주지 않았고, 박정희의 3선 개헌, 유신 독재 등으로 부끄러운 조국의 모습에 괴롭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정희였습니다. 이 때 흘린 박정희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추천7 비추천11

댓글목록

기가막혀님의 댓글

기가막혀 이름으로 검색 아이피 (217.♡.101.40) 작성일

거짓말 그만하고 이 글 올린사람 더러운 마음뽀나 좀 씻으세요. 구구절절이 거짓 투성이네요...

피아노맨님의 댓글

피아노맨 이름으로 검색 아이피 (130.♡.236.7) 작성일

흠...잼있군요...그럼 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인지 먼저 묻고 싶군요...그당시에 독일에서의 차관이 없었다면 경제계발 5개년 계획은 실행질수도 없었고 결국 경제기적이라고 불러진 눈부신 발전은 있었을수 없었겠지요...물론 공감가는 말씀도 있지만 그래도 국가발전에 크게 힘쓰신 분을 너무 무시하시는거 같군요...

하하하님의 댓글

하하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82.♡.68.14) 작성일

흠.... 착한사람이 간혹 잘못을 저지른것과 못된사람이 간혹 착한일을 한것과..... 그 차이를 어떻게 구별 할까요??  현재 우리가 잘 살고 있으니 고마워 해야 할까요?  경제기적?? 무엇이?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게 국가발전인가요??
결과가 좋다면(좋다고도 할 수 없지만..)과정은 무시되도 좋은가요?

궁금해요님의 댓글

궁금해요 이름으로 검색 아이피 (203.♡.227.66) 작성일

당시 광부이셨던 분의 의견을 듣고싶네요. 전후사정(역사적)이야 어쨌든, 당시 파독광부께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대한민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육사교장의 말처럼 64년 함보른광산에서 대통령과 함께 강당이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말이 사실인지....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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