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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감정에 대한 진중권의 견해…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736회 작성일 04-01-04 18:44

본문

지역감정에 대한 진중권의 견해이다. 강준만과의 말싸움, 그리고 민노당측 진보누리에서 쓰였다는 것(논쟁)을 감안해서 읽어보시기를.. 호남 패권주의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러한 것에 오해는 없기를 바랍니다.



Name 진중권 (2003-12-19 23:02:34, Hit : 439, Vote : 34)


Subject
호남과 광주항쟁


80년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때 광주는 우리 모두의 영혼이었지요. 광주의 피에 지역색이 섞여 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광주의 붉은 피에 누런 지역색을 섞으려고 한 것은 군부독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주를 '사태'라 부르면서,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무리들이 작당해서 일으킨 폭동으로 몰아갔습니다. 말하자면 김대중의 권력욕과 거기에 놀아난 호남 사람들의 난동이었다는 거죠.

얼마 전 누군가 여기에 당시 김대중이 전두환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더군요. 사형을 받은 김대중은 전두환에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광주항쟁에 대한 바로 그 군부독재 버전의 견해를 승인했지요. 이 모두가 자신의 지나친 권력욕이 만들어낸 불행한 사태였고, 이제 겸허히 반성하니 각하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 어쨌든 그 편지 덕인지, 아니면 미국의 압력 때문인지, 김대중은 목숨을 부지하고 미국으로 떠났지요.

이로써 광주항쟁에 대한 군부독재의 견해가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가해자들이 만들어낸 견해, 이것을 피해자들의 대표가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받아들이고, 이렇게 쌍방이 합의한 바탕 위에서 광주는 짓밟힌 채 80년대가 시작되었던 겁니다. 이때 광주의 참 의미를 되살리려 한 것은 소위 운동권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수많은 저항 속에서 외치는 얘기는 단 한 가지였지요. 광주를 기억하라.

도서관에서 떨어지면서 외친 구호도 "광주"였고,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추락하면서 외친 구호도 "광주"였습니다. 군부 독재는 광주를 호남에 고립시키려 들었고, 운동권은 그 포위망을 뚫고 광주를 전국화하기 위해 군부독재 정권과 쫒고 쫒기면서 숨바꼭질을 벌이며 처절하게 싸웠지요. 그때 광주는 우리의 영혼이었고, 그저 호남의 한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심장, 아니 핍박받는 제3세계 모든 나라의 심장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맛이 가기 시작한 게 87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광주의 피에는 급속히 지역색이 섞이기 시작합니다. 광주항쟁의 의의가 정략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한 거죠. 김대중과 그를 추종하는 민주당 무리들이 광주항쟁을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활용해먹으면서, 광주 항쟁은 전국적 의미는 퇴색하고 점차 지방색이 강했던 사건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거죠. 광주항쟁 때문에 오랫 동안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윤한봉씨가 저항하려 한 게 바로 그것이겠지요.

준마니스트들이 툭하면 여기에 들어와 그 시절 나보고 뭐했냐고 묻더군요. 그 시절에 저는 물론 수업 다 때려치우고 데모하러 다녔습니다. 하숙방에서 등사판으로 유인물 찍어서 공단에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강준만은 그 시기에 뭐 했지요? 내가 알기로는 MBC PD 하다가 미국에서 탱자탱자 하면서 유학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그가 광주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진보진영'을 향해 "너희들은 왜 지역문제에 관심 없냐"고 질타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지요.


제가 광주의 진보성이 민주당 틀에 머물러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자, 언젠가 그가 이렇게 대꾸하더군요. 광주 사람들의 진보성을 너무 과장하지 말라. 광주항쟁이 무슨 진보적 가치 때문에 일어난 줄 아느냐. 다른 말로 하면 광주항쟁은 김대중과 민주당을 위한 봉기였지, 너희 진보진영의 가치를 대변했던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타지역 넘들은 광주를 넘보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한때 군부독재자들이 했던 그 얘기를 강준만씨한테 들으니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한 마디로 민주당 이데올로그들은 자기들 필요에 따라 광주항쟁의 의미를 늘였다 줄였다는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정권과 싸울 때에는 "광주항쟁이란 김대중 추대 운동이 아니라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이라고 했다가, 이제 권력을 잡으니 "광주항쟁이 별 거냐. 호남사람들이 지역차별에 항거해 일으킨 김대중 추대운동, 내지 민주당 표 운동이었다. 그러니 넘보지 말아라." 라고 말하게 된 거죠.

윤한봉씨가 느낀 절망을 저도 이제는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의 영혼이었던 광주가 김대중과 잔민당의 볼모가 되어버렸으니... 어쩌다 광주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망월동 묘지에 서 있는 그 어울리지 않는 관제 기념탑들은 바로 누렇게 퇴색된 광주를 상징하는지도 모릅니다.





Subject
보수성, 그리고 깨지는 체험


과거에 사회주의가 무너질 때 저 역시 큰 충격을 받았지요. 사실 사회주의가 대단히 행복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운동권의 관성적 어법에 따라 10년 넘게 소련식 사회주의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 주장해 왔고, 또 그렇게 믿도록 자기 세뇌를 해왔던 참이었지요. 사회주의에 불리한 객관적 사실들은 무시하거나, 혹은 부르주아의 악선전으로 치부하면서 그 사회의 부정성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아왔던 거죠.

그러다가 사회주의의 몰락을 맞은 겁니다. 맑스는 이론의 올바름은 실천으로 검증한다고 했는데, 사회주의가 바로 그 맑스의 말에 따라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입증이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제게 90년대 초반은 바로 그런 아픈 경험을 내적으로 소화하고, 정리하고, 변화한 환경에 맞게 다시 좌파적 가치관을 가다듬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때부터 소위 정치적 신념의 '맹목성'을 경계하게 되었고, 그거 하나는 귀중한 경험으로 남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의 한나라당에 대한 맹목적 신앙은 물론이고, 일부 호남 사람들의 잔민당에 대한 맹목적 신앙 역시 언젠가는 깨져야 할 것입니다. '지역주의'라는 게 원래 전국적 소통망이 아니라, 거기서 동떨어져 자기완결적 구조를 갖는 향토적 소통망을 전제합니다. 말하자면 끼리끼리 얘기하는 소통의 공동체가 존재하는 거죠. 이 편협한 소통 망 안에서 자기들끼리 동의하는 사항은 이들에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여야 할,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명증적 진리로 통하게 됩니다. 여기서 맹신성이 나오지요.

대개 이런 류의 소통은 어렸을 적 가정에서부터 형성됩니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이 신념은 점차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학교에 가도 똑같은 얘기, 회사에 가도 똑같은 얘기, 거리에 나가도 똑같은 얘기, 늘 듣는 것이 똑같은 얘기이니 여기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때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소통 공동체는 그 사람에게 대단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다소간 폭력적으로 그를 배제하려 하지요. 그 언어 공동체 내에서 그런 사람은 일종의 사탄처럼 여겨집니다. 한 마디로 내적으로는 강한 동질성, 외적으로는 강한 배타성을 보이는 거죠.

참 재미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그렇게 넓은 땅도 아니고,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어, 방송3사가 모두 전국적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는데, 이런 향토적 소통망이 완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모든 지역적, 문화적 차이가 사라지는 마당에, 유독 이 땅에서만은 인터넷의 시대에도 아직 편협한 지역주의 소통망이 고집스레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입니다. 아마도 그게 그 누군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조장되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보수적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필요한 정보는 늘 새롭게 업데이트 하면서, 정작 그것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는 낡은 것 거 자체로 유지하려 하지요. 문제는 그 어떤 정보라도 하나의 패러다임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제 편할 대로 가공될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겁니다. 문제는 잘못 들어온 정보를 수정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나, 이 패러다임 자체를 교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지요.

호남 지역주의에 관해서 말하자면, 저도 과거에는 그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조독마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영남 패권주의자들과 싸운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감정이입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주장이 뭔지 체험한 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는 그 분들에게 제가 그분들을 위해 했던 것과 같은 것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즉 호남사람이 아닌 그냥 타지역 사람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한번 보라고. 그러면 자신들의 테두리가 보일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들에 대해 더 객관적인 시각을 얻게 될 것이라고....

사실 이런 식의 지역주의는 수십년 동안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특히 87년 이후에는 대선과 맞물려 아주 집중적으로 선동된 감정이지요. 그거 하루 아침에 벗어내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멘탈리티입니다. 21세기에는 애초에 어울리지를 않아요. 이 변화하는 시기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이제 특정 지역, 특정 정당과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는 낡거 유치한 행태를 버려야 합니다. 사실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게 좀 번거롭기야 하겠지요. 하지만 모든 진보는 약간의 번거로움을 수반하는 겁니다.




Subject
잔민당 = 호남민중?




강준만을 비롯한 잔민당 지지자들은 마치 잔민당이 호남 민중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양 설레방을 떱니다. 과연 그럴까요? 호남지역 토호들과, 호남출신 엘리트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게 정작 호남에 사는 민초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런다고 호남 사람들 생활이 나아집니까? 절대로 그럴 리 없지요. 잔민당이 그나마 진보성을 띠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습니다. 이제 잔민당은 호남 민중들의 짐이 될 뿐이지요. 그 메카니즘을 봅시다.

잔민당 애들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늘 호남 민중들을 방패로 사용합니다. 즉 '자신들에 대한 비난 = 호남민중에 대한 비난'이라는 거죠. 이렇게 등식을 만들어 놓으니, 잔민당이 비리를 저지르고 부패를 해도 그거 비판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왜? 그거 비판하려면 졸지에 호남 민중 전체를 비난해야 하거든요.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면 누가 겁나서 감히 잔민당을 비판하고 나서겠습니까?

서프의 공희준도 인정하듯이, 호남민중들의 이해는 그 지역 토호나 그 지역 출신 엘리트들의 이해와 결코 일치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완전히 반대가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 지역주의자들은 '잔민당 = 호남민중'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며 지역 서민들의 지지를 조직하고, 나아가 호남 서민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손쉽게 피해가려 하는 거죠.

이런 빌어먹을 메커니즘 속에서 이득은 당연히 잔민당 애들이 봅니다. 하지만 제로섬 게임처럼 그 이득에는 분명히 손실이 따릅니다. 그 손실은 누가 감당해야 할까요? 바로 호남의 서민들 자신입니다. 왜? '잔민당 = 호남민중'이라는 도식을 고집하는 한, '잔민당의 비리 = 호남 민중의 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거의 수학적 명증성을 갖는 진리입니다. 말하자면 비리는 잔민당 애들이 저지르고, 그 욕은 호남사람들이 집어먹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는 거죠.



호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낮게 잡아도 90% 이상, 몽땅 다 정치나 선거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잔민당의 비리와 실정에 대한 불만이, 잔민당 애들이 만들어 놓은 '잔민당=호남민중'이라는 등식을 거치면서, 곧바로 호남민중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지식인으로서 이런 빌어먹을 메커니즘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게 바로 강준만입니다. 공희준씨 말대로 강준만은 반성해야 합니다. 강준만이 대변하는 건 호남의 민초가 아니라, 그들의 등을 쳐먹는 그 지역의 토호와 그 지역 출신 엘리트들입니다.








Subject
우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지역감정에 대한 유물론적 시각


우리당과 민주당은 이념이나 성향이나, 그 밖의 행태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차피 서로 구 민주당을 계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어차피 서로 돈 받아먹는 구조도 같습니다. 우리당이 제법 '열린' 척 하나 사실상 이제까지 민주당에 비해 뚜렷한 개혁성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말이 개혁이지, 어차피 가진 자들을 위해 가진 자들의 정치를 하는 것이니, 그 개혁성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 분열이 무의미하거나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모종의 가능성이 숨어 있지요.

민주당, 우리당의 분열은 근본적으로 민주당 내의 헤게모니 싸움입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호남당이었고, 따라서 잔민당 부류들이 당의 실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였다가 대통령이 된 노무현조차도 그 당에서는 왕따 당하는 분위기였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상, 노무현과 그를 지지했던 신주류로서는 당의 헤게모니에 대한 정당한 요구권을 갖지요. 그런데 저쪽 애들이 지역에 기반한 그 기득권을 내놓으지 않고 수구성을 드러낸 겁니다. 이 때문에 노무현 당선의 공신들이 당을 만들어내 밖으로 나간 것이지요. 이들이 죽을 쑤는 이유는 나가려면 진작에 나갔어야 하는데, 그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쨌든 민주당과 우리당의 분당 사태는, 지배계급 내에서 기존의 지배방식에 이견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김대중 정권의 실정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이라는 카드에 힘입어 이번엔 간신히 이겼지만, 앞으로 지역구도가 깨지지 않는 이상, 정권재창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한편으로는 있습니다. 영남은 가해자였으므로 먼저 지역감정을 풀어야 할 윤리적 이유가 있지만, 또한 그들은 다수이므로 그것을 풀 정치적 이유는 없습니다. 반면 호남은 피해자였으므로, 먼저 지역감정을 풀어야 할 윤리적 이유는 없지만, 또한 그들은 소수이므로 그것을 먼저 풀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감정에 관한 한 윤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은 서로 상반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호남부터 먼저 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을 풀 1차적인 윤리적 의무는 영남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겝니다. 다만 그것을 푸는 방법은 호남이 먼저 무장해제를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전술적 차원의 판단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열린당에서 이런 /정/치/적 판단을 주장하면, 잔민당에서는 여기에 '호남은 피해자인데 왜 먼저 풀어야 하느냐'는 윤/리/적/ 판단을 들이대며, 저들을 영남패권주의자로 몰아부칩니다. 사실 두 개의 판단은 대립되는 것이 아닌데, 마치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양 제시하는 거죠. 그리고 이게 호남 지역민들의 정서에는 강하게 호소력을 갖습니다. 심지어 KI 같은 사회당 애까지 함께 들고나서는 판이니까요. 그러니 그 지역에선 오죽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윤리적 당위를 내세워 정치적 판단을 그르치게 되면 민주당은 앞으로 정권재창출을 못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당의 인식이고, 잔민당 애들 역시 속으로는 이 점을 인정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잔민당 애들은 미련하게 계속 호남 지역주의를 유지하려 하느냐? 그건 국회의원의 유물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는 자신의 의원직 당선이 최상의 가치입니다. 이게 전제되고, 거기에 정권창출까지 한다면 금상첨화라는 의식이지요. 즉 의원들에게는 정권창출보다는 의원당선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역구도는 의원들에게 사활이 걸린 그 문제를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 줍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구조, 굳이 선거 운동 안 해도 당선되는 구조, 온갖 깽판을 쳐도 다시 당선되는 구도. 어느 의원이 이 구도를 마다하려 하겠습니까?

열린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견해 차이는 그들이 처한 지역구 상황, 말하자면 지역감정에 입각한 그 기득권을 누가 더 뻑씨게 누리고 있느냐의 차이겠지요. 추미애가 열린 당으로 못 가는 것은 그의 지역구에 호남출신들이 아주 많이 살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지역구에서는 호남색 드러냈다가는 당선되기 힘듭니다. 그런 지역구의 의원들은 당연히 제 당에서 호남색을 벗겨내는 데 이해관계를 갖게 되는 거죠. 이게 사태의 본질입니다. 이거 가지고 저들은 저 난리 바가지를 치며 서로 쌈질을 해대고 있는 겁니다. 아울러 그 지지자들은 시야가 협소하여 인터넷 공간에서 마치 제 일이나 되는 양 치열하게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구요.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간단합니다. 지금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겁니다. 원시적인 지역감정을 활용해 서민들을 손쉽게 브루주아 일파의 헤게모니 아래 동원하던 그 낡은 지배방식에 문제가 제기된 겁니다. 지역대립구도를 계급대립구도로 옮겨놓아야 할 우리에게, 이것은 적지 않게 유리한 기회라고 할 수 있지요. 왜? 저들이 내부에서 싸움을 벌여 저들이 이제까지 해 왔던 원시적인 지배방식의 본질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들이 스스로 다 폭로하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폭로는 두 군데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열린당에서는 여러 가지 논거를 들이대며 잔민당의 수구성을 비판하면서 저들의 호남 패권주의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지요? 반면 핀치에 몰린 잔민당에서는 너무나 급한 나머지 그 동안 쓰고 있던 '개혁정치'라는 외피를 벗어버리고 제 알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호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이로써 제 스스로 패권주의자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지요. 가령 강준만 보세요. 몇 년 전에는 개혁의 화신이었지만, 요즘은 완전히 빤쓰까지 벗고 유감없이 지역색을 과시하고 있지요?

이 싸움이 어떻게 귀결되든 (결국 저는 두 당이 장기적으로는 다시 하나가 될 거라고 봅니다만), 그 와중에서 민주당이 30년 동안 욹어먹었던 호남 민중에 대한 지배방식은 그 더러운 본질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 낡은 지배방식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상당 부분 그 약발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지역감정이라는 원시적인 집단정서에 기반한 저질 정치를, 이념과 정책에 입각한 정상적인 정치로 되돌리는 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감정은 감정이기에 논리로 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원초적이며 강렬한 것이어서, 논리의 차가움으로 식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일단 지역감정의 약발이 떨어져야, 비로소 우리는 '논리'로 이념을 논하고, 정책을 논하고, 합리적인 의미의 정치를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게 유물론적 시각에서 바라 본 지역감정입니다. 그런데 불크라 녀석들은 지금 뭔 짓 하고 있습니까? 호남 사람들의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는 강준만류, 잔민당류의 지역주의 감정을 외려 부추기고 자빠졌습니다. 이게 나 홀로 '좌파'요, 나홀로 '사회주의자'요, 나홀로 '빨개요'라고 외치는 저 노출증 환자들의 빨간 빤쓰 밑으로 드러난 시커먼 향토색이지요. 그렇게 호남 사람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면, 그 표의 일부가 행여 사회당 쪽으로 갈 거라 착각하는 모양이지요? 그건 한 마디로 닭대가리 같은 생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하긴, 저들이 저 짓 하는 건, 호남표 얻으려 하는 짓도 아니겠지요. 그냥 여기 들어오는 남프, 동프 애들 지원받아 또 한번 깽판칠 기회를 얻기 위해서겠지요.





Name 진중권 (2003-12-20 04:33:52, Hit : 208, Vote : 13)


Subject
영남 지역주의에 관하여


일단 영남 지역은 산업적 특성으로 인해 현재 진보 벨트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지역감정은 대단히 공격적입니다. 이 공격성은 그들의 논리의 정당성과 거기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원시적인 쪽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파쇼적이지요. 역사적으로 잘 한 게 하나도 없으면서 저런 짓 하는 거, 보면 참 낯짝도 두껍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들의 논리는 대개 언급할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 경제가 안 좋습니다. 노동자들 분신하고, 농민들 할목하고, 서민들 투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문제를 그 정권의 '계급성'에서 찾는 게 아니라, '지역성'에서 찾으려 합니다. 마치 이 모든 문제가 호남정권에서 비롯되었다는 듯이. 마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듯이. 이 미신과 편견을 깨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실은 나라의 정책결정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내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합니다. 이 사회의 소통에서 못 가진 자들의 발언권이 전적으로 배제되고, 오로지 가진 자들만의 스피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영남이 누려왔던 특혜라는 게 실은 영남의 서민이 아니라 몇몇 특권층을 위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아니 어쩌면 더 심한 고통을 호남의 서민들도 똑같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민주당에 표를 준다고 호남 서민의 삶이 좋아지는 게 아니듯이, 호남 정권의 자리에 영남 정권을 가져다 놓는다고 그들의 삶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나아가 지역감정을 활용한 한나라당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배반하여, 결국 제 손으로 제 목을 죄는 짓이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합니다.

특히 영남에서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의 아성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호남정권에 의한 영남홀대론'이라는 지역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마도 최대의 적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들은 호남 정권 하에서 받았다고 자기들이 느끼는 섭섭함을 아마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려 들 겁니다. 민주노동당은 그 고리를 차단해야 합니다. 지역주의와 정면으로 싸워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넘들이라는 사실을 가열차게 폭로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은 호남에서는 호남의 지역주의와, 영남에서는 영남의 지역주의와 싸우면서, 영남과 호남의 민중들 사이에 연대의 끈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계급적 처지가 같고, 계급적 이익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각각 동원되어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이제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 부르주아들이 선거 끝난 다음에는 위안 공연하듯이 불러대는 "지역화합"의 공허한 노래 대신에, 자신들이 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처지의 공통성에 근거한 "계급적 연대"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문제는 화개장터의 연출이 아니라 계급적 각성입니다.

진보정당도 그저 예민하다고 해서 더 이상 지역주의 문제를 비겁하게 피해가서는 안 됩니다. 각 지역의 지역패권 이데올로기가 어떤 요소로 이루어지는지, 그것이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적 의식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그리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해서, 거기에 맞서 싸울 대안논리를 개발해야 합니다. 나아가 개발소외의 문제와 관련하여 과학적 연구에 근거한 분석과, 거기에 기초한 대안을 가지고,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Name 진중권 (2003-12-20 02:56:15, Hit : 202, Vote : 14)


Subject
호남 지역주의의 문제


좀 나긋나긋하게 얘기하라구요? 이제 적어도 서프 사람들은 아마 이해할 겁니다. 이게 말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건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의 어떤 집요함의 문제지요. 서프 사람들은 한나라당과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남프 애들에게 '영남 패권주의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회창과 맞선 노무현도 어쩔 수 없는 '경상도 사람', 한나라당 하면 이를 가는 유시민 같은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영남패권주의자'로 간주됩니다. 이건 말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권력의지의 집요함의 문제입니다.

"인간적 예의"가 어쩌구 하면서 호남 사람들 도닥거려주면서 얘기하면 다 알아들을 것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거야말로 자신을 저 위에 놓고 호남인들을 저 아래 놓고 우습게 보는 짓이지요. 호남 사람들이 무슨 유치원 아이들입니까? 이런 겁니다. 가령 한국과 네팔 축구팀이 붙었다 합시다. 웬만해서는 슬슬 봐주면서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거야말로 네팔팀에 대한 결례입니다. 최고의 예의는 외려 한국의 최정예 멤버를 투입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겁니다. 마치 독일팀을 대하듯이 말이지요. 그게 진정한 "인간적 예의"입니다.

호남 사람은 우리 집안에도 있습니다. 혼인을 통해서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내가 호남 사람 욕해서 뭐하겠어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얘기해 보면 호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대개 근거가 없습니다. 간혹 자기가 당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남이 당한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남이 당한 얘기를 마치 자기가 당한 것처럼 얘기할까요? 내가 볼 때 대부분의 경우, 그 바탕에 어떤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습니다. 즉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잔민당=호남'이라는 등식에 따라 그냥 호남 사람들에게 옮겨 놓는 거죠.

대부분의 편견은 사실을 지적해 줌으로써 해소가 됩니다. 편견이란 게 사실의 날조나 해석의 왜곡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때, 바로 그 사실을 바로잡고, 해석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부분의 편견은 곧바로 해결이 됩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 '정치'가 깔려 있으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문화적 편견에 정치적 동기가 실리면, 그건 더 이상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졸지에 세계관의 문제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면 편견을 제거하는 게 예수병 환자 고치는 것보다 더 어려워지지요. 이거, 언제까지 이래야 합니까? 잔민당 애들 위해서 호남 사람들이 언제까지 이런 피해를 입어야 합니까?

호남차별 운운하다가 곧바로 민주당에게 표를 던지는 지역주의 투표로는 호남 지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호남에 차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그 실상을 밝혀내고, 정책적으 그 해결방안을 마련할 일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도 안 하고 있습니다. 잔민당에서 호남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 뭡니까? 잔민당이 호남 차별을 얼마나 많이 극복해 주었나요? 전북에서는 새만금 사업이 그 지역 먹여살릴 것처럼 얘기하던데, 그거 원래 노태우가 제시한 공약 아닌가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소외의 문제는, 영남과 호남의 대립이라는 구도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가진 자와 못 가진 사이의 문제로 개념화해야 비로소 그 윤곽과 해결책이 잡힐, 그런 문제입니다. 이게 과학적 사고방식입니다. 호남이라는 말 속에 몽땅 뭉뚱그려 집어넣으면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올 수 없고, 나아가 아마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질 겁니다. 세상에 도시와 농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공업과 농업을 한 카데고리 안에 쑤셔박아 놓고, 거기서 무슨 유의미한 사회학적 결과가 나올 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Name      진중권  (2003-12-20 15:59:05, Hit : 527, Vote : 25)


Subject  
   지역감정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을 세워야




'호남차별'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습니다. (1) 소위 개발 소외로 나타나는 정책적 차별, (2) 공직이나 기업체에서의 인사차별, (3) 호남 사람들의 기질에 관한 문화적 차별. 이 문제, 더 이상 예민하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이 세 가지 차원의 차별에 대해 정면으로 다뤄야 할 때가 됐습니다. 영호남 대립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는 요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민주당-한나라당의 정치에 있다고 봅니다.

어느 연구를 보니 실제로 정치적으로 영호남의 지역대립이 격화되는 것은 87년을 지나면서부터라고 하더군요. 외려 군부독재 시절에는 영호남 대립이 강하게 부각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때는 군부독재에 대항해 영남과 호남이 굳게 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남에 부마가 있었다면, 호남엔 광주가 있었지요. 제 경험을 봐도,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외려 87년 대선, 김영삼의 민자당 합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거치면서 이게 더 심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호남의 개발소외는 경제개발의 주축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라인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급속한 산업화를 해야 했던 7, 80년대에 서울을인천항과 부산항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은, 호남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는 지역의 전통과 입지조건에 따른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누가 정권을 잡았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죠. 서울과 부산을 잇는 라인은 박정희 이전에 이미 일제시대 때에 놓여진 겁니다.

공직이나 기업체에서의 인사차별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외려 호남 독식이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노무현 정권 들어와 검찰 인사를 놓고, 호남에서는 역차별론을 펴며 반발했으나, 나중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요. 듣자 하니 조선일보와 같은 지역차별주의 신문사 내에서도 간부급에 호남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과소대표되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주민등록등본에 원적지 표기도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호남인의 기질론에 근거한 문화적 차별도 영남의 노령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급, 계층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만 현실정치와 관련해서 쏟아지는 호남에 대한 차별적 발언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외려 호남정권 및 민주당의 실정, 비리와 관련하여 더 심해지는 경향마저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현재 문화적 차별의 메카니즘은 주로 호남=잔민당이라는 도식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호남 사람들이 느끼는 차별의 감정의 실체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호남의 산업구조가 전통적인 농업 위주로 되어 있으므로, 다른 지역에 비해 소득이 높지 않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제 그 실체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아직 경제적 차별이 있다면, 과연 호남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1인당 소득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바로 잡는 방안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정치적 요구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호남 사람들은 '차별'을 근거로 잔민당에 거의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왔습니다. '차별'이라는 주장에서 거의 자연법칙적 필연성을 갖고 '민주당 지지'로 나아간 거죠.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런 호남 사람들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과연 호남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것을 통해 호남에 대한 정책적 차별이 얼마나 시정되었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밝혀야 합니다. 이건 여야를 떠나서 정책적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호남이 차별을 받는다면, 과연 호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또 호남의 차별이 '지역'이라는 잣대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인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외려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차별을 보이는 것으로 이미 입증된 매개변수들, 즉 수도와 지방,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과 같은 변수들로 설명할 때 비로소 '차별'이라는 주관적 감정의 사회학적 실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호남은 전라도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게 아니라 지방이고, 농촌이고,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개발에서 소외된 것이라고 하는 게 더 과학적일 겁니다. 이런 분석이 끝나면 그 결과를 같은 조건을 가진 다른 지역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연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인지, 유의미한 차이라면 그 차이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과학적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제출해야겠지요.

좌파는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합니다.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차별을 존속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음모에는 맞서 싸워야 합니다. 더 이상 지역차별론이 민주당의 동원 이데올로기로 악용되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호남과 영남 사람들 사이에 서로 증오감이나 부추기면서, 차별은 차별대로 존속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지역감정에 대해 이제는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좌파도 유물론적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잔민당은 호남이 아닙니다. 한나라당은 영남이 아닙니다. 영남 정권 때문에 호남이 못사는 것도 아니고, 호남 정권 때문에 영남이 못사는 것도 아닙니다. 영남과 호남의 서민들에게 그들의 고통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합니다.  호남 사람이든 영남 사람이든 먹고 사는 데에 고통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호남' 정권 때문도 아니고 '영남' 정권도 아니고, 가진 자들을 위하는 영호남 '정권' 때문에 못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납득시키고 설득시켜야 합니다.
  


Name      진중권  (2003-12-22 23:22:39, Hit : 499, Vote : 21)


Subject  
   지역감정의 허와 실


광주사회조사연구소에 낸 결과를 보세요.이 자료 뿐 아니라 다른 자료들도 본 적이 있는데, 소위 영남 사람들에 의한 호남인 차별이라는 게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로 잡히지가 않습니다. 자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영남 사람들이고 평소에 호남을 욕하는 정도가 타지역만큼 심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욕 얻어먹기로는 영남 사람들도 호남 못지 않게 먹습니다. 그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인 셈이지요.

그런데 왜 유독 영남과 호남이 원수처럼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느냐? 한 마디로 빌어먹을 선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선거철만 되면, 의도적으로 지역감정이 조장되는 거죠. 그러다가 선거 끝나면 수그러들고.... 한 마디로 민주당, 한나라당에서 자기 지역의 유권자들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저열한 지역주의 감정을 부추겨, 그들의 이성적 판단을 막고, 원초적 감정에 따른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어 왔다는 얘기죠.

그 이득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 패권주의자들이 봅니다. 그러면 그 피해는? 당연히 호남 사람들, 그리고 부분적으로 영남 사람들이 그 지역에 대한 문화적 편견의 형태로 보게 되는 겁니다. 제가 말했지요? 호남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더 이상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대개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서 표출된다고. 그것은 호남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면, 그건 잔민당이나 김대중과의 링크를 통해서 얻어먹는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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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갈등의 허(虛)와 실(實)


영호남 갈등의 허(虛)와 실(實)

대구참여연대에서 발간하는 「참여광장」(2000년 12월호)


○최근 20년 간 우리 사회에 지역주의 혹은 지역감정처럼 많은 논란을 가져온 용어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많은 정치·사회적 사건의 배경을 보면 지역감정이 중요한 결정요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안배에 의한 경제의 불균형 발전이나 인사차별 외에도 각종 국가정책의 결정도 특정 세력이나 지역의 이익을 배려해 내려진 경우가 많다. 일반 국민들도 선거에서 나타나듯이 평소에는 조용한 듯 하다가도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가 되면 다분히 지역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지난 4·13 총선은 한국정치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선거 전에 총선시민연대를 비롯한 각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및 입후보자의 자질 시비가 일면서 이번에야말로 당이나 출신지역 편향을 어느 정도 탈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못했다. 결과만 보면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예전 그대로, 혹은 더욱 심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론은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선거결과라는 것이 당선 아니면 낙선이라는 양자택일이기 때문에 당선자 수만 가지고 지역주의가 심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남권에서도 과거에는 거의 힘을 못쓰던 민주당이나 진보성향의 후보가 상당히 선전한 지역들이 있고, 호남에서 민주당 몰표가 상당 부분 사그러든 것이나 충청/강원권에서 표가 분산된 것 등은 오히려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이 만연된 것처럼 알려져 있다.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가 그렇게 보도하고 있고 정치권, 시민단체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대부분 이에 공감하는 실정이다. 이번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남지역을 휩쓴 것은 '반 DJ정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DJ라는 상징은 결국 호남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호남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빠진 영남인들이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이 부각되는 이유는 우리 정치의 양대 세력을 두 지역이 대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간 한국 정치의 지배층이었던 영남세력에 맞설만한 대표적 지역집단은 호남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영·호남 사람들 간의 배타적 감정은 어느 정도나 되는가? 여러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두 지역 사이에 지역감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책임을 맡고 있는 광주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결과1)에서는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이 예상보다는 심하지 않고 오히려 영호남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영호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거리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조사에서는 '친구삼기' '집 세주기' '자녀의 결혼' '본인의 결혼'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전국민들의 사회적 거리감을 측정하였는데, 강도가 약한 지표나 강한 지표에서 모두 영호남 상호간의 거리감보다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두 지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리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강도가 가장 높은 '본인의 결혼'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본다.

○경상도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비율을 출신연고별로 보면 대전/충청/강원이 36.3%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서울/경기(30.9%), 호남(29.1%)의 순이었다. 전라도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비율도 역시 대전/충청/강원(43.0%)이 가장 높고, 그 다음 서울/인천/경기(32.6%), 부산/경남(28.7%), 대구/경북(26.1%)의 순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에 대해 가장 사회적 거리감이 먼 지역은 충청/강원이고 그 다음은 경인지역이었는데 이같은 결과는 광주사회조사연구소에서 수행한 다른 조사들에서도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타났던 현상이다.

○조사결과를 볼 때, 영남과 호남 지역의 주민들이 상대 지역민에 대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만큼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호남이 서로 지역감정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어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전라도 및 경상도 모두에 대해 가장 큰 사회적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충청/강원 지역이라는 조사결과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역감정의 근원은 서울과 지방의 구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여건상 역사적으로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거부터 지방을 차별하는 관습이 내려왔을 것이다. 서울 및 인접 지역(경인, 충청, 강원)에서 전라도와 경상도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크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이 지방을 차별하고, 인접 지역인 충청도나 강원도는 서울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타 지역과 자신들을 구분하려 한다. 이에 따라 타 지역(지방)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강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인 전라도가 부정적인 취급을 더 많이 받기는 했지만 경상도라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인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 조사의 결과를 보면 두 지역 모두 피해자인 것이다. 그래도 경상도 지역은 그간 집권 세력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 무마해 온 반면, 전라도 지역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 취급을 더 많이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지연이나 학연으로부터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출신지역을 등에 업지 않고 성장하기 어려운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문벌, 족벌주의의 폐단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공동체적 지향이 강한 우리 문화의 정실주의적 특성이 근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 생활에서 지역주의를 단시일 내에 없애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지역간 대립이 팽배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것은 선거철일 뿐이다. 평소에는 오히려 지역간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협동으로 서로 교류를 확대하고 협력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인 만남의 장에서 특정 지역간의 지역감정이 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선거 때만 되면 다시 지역주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자기 지역의 공동이익, 나아가서는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 행동이 필요할 때는 의식적으로 그에 걸맞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합리적 사고가 지역이기주의에 밀리게 된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내 지역의 이익을 위해 내 한 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지역주의적 투표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지배세력간의 분쟁의 와중에서 지역주의가 형성되고 이것이 지배세력 간의 갈등을 거치면서 강화되고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개인적인 만남에서 상이한 지역민들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는 경우는 드물고, 지역화합을 위한 각종 교류활동을 보면 참가자들의 열성도 높고 보람도 크다고들 한다.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 한국사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호남인 모두가 영호남의 갈등에 대한 허와 실을 바로 보고 지배세력의 이해관계나 언론의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제의 해결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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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사회조사연구소에서 발간한 학술지 『사회연구』의 창간호 특집 「지역주의와 지역문제」에 자세히 나와 있음. 연구소의 홈페이지 http://www.ksrc.or.kr 에 들어가면 『사회연구』지에 실린 기사를 볼 수 있음.  




Name      진중권  (2003-12-24 01:00:04, Hit : 289, Vote : 35)


Subject  
   호남패권주의 비판 (완결편 II)


호남 민중들의 허락도 없이 호남민중의 대표를 자처하는 잔민당 호남 패권주의자들이 유포하던 지역주의 이데올로기. 그 허접한 이데올로기는 대단히 왜곡된 정보 위에 서 있습니다. 호연지기님과의 논쟁을 통해 그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 어느 정도 드러났습니다. 그 이전부터 이 게시판에서 이루어졌던 논쟁들을 총정리하여 그 논리들을 하나 하나 깨버리지요.

크게 말하면 호남 패권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호남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게 객관적 수치라기보다는 주로 경험담, 체험담 류의 주관적 자료들, 다분히 감정이 실린 자료들로 뒷받침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호남 패권주의자들은 곧바로 (2) 호남이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날아갑니다.

호남차별론의 과장과 허구

이런 주장에 대해 저는 여러 가지로 의문을 제기해 왔었습니다. 먼저 경제적 차별에 관하여. 저는 지역총생산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하며, 호남이 경제적 차별을 받는다는 게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수치로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호남이 소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면, 그것은 영남/ 호남의 대립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사이의 대립으로 봐야 하는 거죠.

정치적 차별에 관해서. 이것은 주로 엘리트 관료 및 기업체의 인사와 관련한 차별이지요. 이 부분은 김대중 정권 이후에 해소되었습니다. 정권 교체 후 정부 요직은 물론이고, 각 기업체, 심지어는 관공서의 밑바닥까지 호남 출신들이 약진을 했지요. 현 정권 들어와서도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검찰인사에 대해 호남에서는 "역차별" 운운하며 불만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차별'이랄 게 없었지요. 그런데도 지역언론과 토호들은 호남이 차별받는다고 원색적인 지역감정을 퍼뜨렸습니다.

문화적 차별에 관해서. 광주의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역감정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호남만이 아닙니다. 영남 사람들도 호남 사람들 못지 않게 부정적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영호남 간의 감정도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외려 충청/강원 지역에서 영남과 호남 모두에 대해 편견이 좀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 사람들 사이에 '증오'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정치권에서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해 퍼뜨리는 마타도어에 불과했다는 얘기죠.

호남차별의 극복

호남이 낙후된 것은 오로지 박정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일제시대때부터 영남과 호남은 산업기반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아울러 6.25 전쟁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은 산업기반이 파괴되었지만, 점령을 피했던 영남 지역은 비교적 산업시설이 온전히 보존되었지요. 거기에 미국과 일본을 주요 무역상대국으로 하는 상황에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축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깐 박정희의 선택은 그 자체로서는 잘못된 게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그의 업적이라고 볼 수가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지요.

박정희 정권 때 영남지역이 발전하고, 호남이 낙후된 것은 수출주도의 경제를 위해 상공업을 육성하려는 전략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업화에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고, 비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가혹한 저곡가 정책을 현 것이 문제겠지요. 이것은 한 마디로 농촌과 농업을 희생하여 도시와 공업을 발전시키는 전략이었기 때문입니다. 호남은 곡창지대로서 이 전략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박정희가 의도적으로 호남을 왕따시키기 위해서 그런 정책을 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낮은 쌀값은 영남이나 호남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호남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다면, 그것은 호남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지역이 수도권이 아니고, 지역 내의 대도시발달이 미약하고, 주요산업이 농업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일 겁니다. 영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처지가 호남 의 농민들과 본질적으로 나을 것은 없을 것입니다. 외국의 예를 보면, 농촌도 도시 못지 않게, 때로는 도시보다 더 잘 삽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영남/호남의 틀로 가져가니 아예 해법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지요. 최근 전농이 민주당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지지를 바꾼 것은, 바로 이런 사실에 대한 계급적 자각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인사차별은 이제는 극복되었지요. 김대중 정권이 특별히 편파인사를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호남 사람들이 파격적으로 많이 기용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던 호남인들에게 베푸는 '보상'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성도 간과할 수는 없지요. 즉 실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오직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에서 갑자기 요직에 깔린다든지, 혹은 영남도 호남도 아닌 사람들이 승진을 기다리다가 느닷없이 호남발 뒤통수를 맞는 일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문화적 차별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연구조사가 보여주듯이, 부정적 편견의 피해자는 호남만이 아닙니다. 영남도 피해자지요.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지장이 없다가, 이게 선거 때만 되면 에스컬레이트되는 거죠. 제가 봐도 영남이든, 호남이든, 그 지역에 대한 편견이 가장 강렬히 표출되는 것은 주로 선거 때입니다. 이때 영남 사람들은 한나라당이 먹어야 할 욕을 덤탱이로 먹고, 호남 사람들은 잔민당이 먹어야 할 욕을 대신 얻어먹게 되는 거죠. 그리고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믿게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영남=딴나라, 호남=잔민당이라는 정치적 등식, 그 두 당이 유권자 동원해 먹는 데에 요긴하게 사용해 왔던 그 미련한 등식이 외려 영남과 호남에 대한 문화적 차별을 공히 강화하고 있다는 거죠. 따라서 호남에 대한 문화적 차별을 척결하려면, 바로 이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논리  

호남 패권주의 이데올로기를 이루는 두 번째 요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말하자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호남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그런지 저윽이 의심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김대중이 들어와서 서해안 고속도로 뚫렸다고 좋아하더군요. 근데 그 사업은 호남을 탄압한다는 영남 정권에서 도입한 사업입니다. 전북 사람들이 목숨을 건 새만금 사업도 노태우 공약이구요. 그랬더니 김대중이 들어와 공사진척도가 빨라졌다며 "재촉의 힘" 운운하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겁니다. 영남 사람들이 "호남 정권 들어와서 영남을 압살하고 호남만 배불린다"고 비난을 하면, 이때 잔민당 패거리들은 "호남 정권 들어와서 전라도 사람들 좋아진 거 하나도 없다"고 진리를 말합니다. 그러다가도 우리가 "호남 정권 들어와도 전라도 서민들 좋아진 거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갑자기 호남 정권 덕에 얼마나 전라도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졌으며 행복해졌는지 자랑하기 시작한다는 거죠. 여기에서 잔민당 호남 패권주의자들은 묘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어쨌든 호남 정권 역시 영남 정권 못지 않게 가진 자들을 위한 정당, 그들이 하는 정치가 호남이든, 영남이든 정말로 못 사는 서민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제 마지막 논리가 등장합니다. 디지털 한겨레에서 "오늘의 논객"을 등극시킨 김군의 논리가 그것입니다. 그것을 읽어보면 참으로 허탈해질 겁니다. 원문 그대로 읽어 보시지요. 재미있게도 이 친구들은 자기들이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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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만의 정당'을 절대 지지하지 않습니다.아니, 전라도만의 정당 자체가 존재 불가능 합니다. 그렇기에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절대적 지지층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호남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았습니다. 이건 당연한겁니다. 김대중이 총맞았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김대중이 호남만을 위한 국책사업을 벌인다고 가정하면, 영남을 비롯한 진중권같은 호남혐오증 환자들이 가만 있겠습니까?

김대중은 오히려 호남을 철저히 모른체 했습니다. 김대중은 정권교체 직후 호남사람들에게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는 호남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니 호남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을것이다"라고. 이말을 들은 호남인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남사람들은 '당신이 정권교체를 해준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보상을 받았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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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세요. 김대중은 "호남을 철저히 모른 체 했습니다."  아예 "호남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까지 했습니다. 그는 "호남을 위한" "국책사업" 같은 것은 펴지 않았습니다. 왜? "호남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호남에 지역차별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 차별의 한을 먹고 들어선 호남의 정권이, 차별을 철폐하기는 커녕 아무 일도 안 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해서 낙후된 호남의 발전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런데도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김군이 밝힌 그 이유라는 게 사람을 아주 허탈하게 만듭니다. "당신이 정권교체를 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보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즉 김대중이 대통령 된 것만으로 호남은 이미 원을 풀었다는 겁니다. 김대중과 동교동 가신들이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간 것만으로 왜 호남차별의 "보상"이 되어야 하나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김대중, 노벨상 상금 받아 다른 데에 쓰지 않고 아태재단인가 뭔가 운운하며 결국 동교동에 아방궁 지었습니다. 그의 아들들 줄줄이 비리로 들어갔습니다. 그의 처조카도 들어갔습니다. 그의 집사인 권노갑, 다이너스티 승용차로 돈 받아먹었습니다. 박지원 역시 비리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이 집권한 것만 갖고 호남이 한을 풀었다구요? 그 자체만으로 "보상"을 받았다구요? 호남 사람들은 몽땅 김대중 일가친척입니까? 걔들이 그 돈, 호남 서민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하든가요?

저 지역패권주의자들이 순진한 호남의 유권자들을 기만하여 김대중의 개인적 성공을 마치 자신의 계급적 처지의 본질적 개선이나 되는 것처럼 느끼는, 가공할 자기소외의 상태를 만들어놓은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속지들 마세요.




Name      진중권  (2003-12-24 01:10:57, Hit : 257, Vote : 21)


Subject  
   호남패권주의 비판 (보론)


문제는 저 잔민당 패거리들이 마치 호남 사람들의 전형인 양 설쳐댄다는 것입니다. 잔민당 패거리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적으로는 동질성이 엄청나게 강하고, 외적으로는 대단히 배타적입니다. 아울러 이들의 인성구조는 냉정하고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정서적이어서, 쉽게 감동하고 쉽게 흥분합니다. 그래서 차마 옆에서 지켜봐주기가 좀 거기시합니다.

가령 '남프'에 올라온 다음 글을 읽어 보십시요. 이런 정서가 저들 사이에는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모양입니다.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은 한 정치인에 보내는 찬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거의 예수쟁이가 예수님 찬미하는 수준이지요. 실제로 이 글 읽어 보면 북에서 김일성 수령을 수식하는 것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해괴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저는 이들이 호남 사람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이 호남인의 전형으로 통용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소개했던 조사결과에서도 지적했듯이, 선거 때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호남 사람들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정확히 일부 잔민당 패거리들의 이런 태도를 호남 사람들 전체의 정서로 포장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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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대중이 민주의 꽃인가

그는 사위어만 가는 한국 민주주의의 불꽃을 끝내 살려 내었습니다
만일 그가 끝내 패배 했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너무나 절망스러운 불운이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꽃피지 못하고 피다만 꽃이 되어 천 년 한으로 남을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중님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김대중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꽃이요
아시아 민주의 꽃입니다
아시아에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신 지도자 김대중 그 이름이 한없이 감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제
추천-2

댓글목록

데니스님의 댓글

데니스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진중권류의 사고틀은? 서구의 사고틀이요. 그것도 서구에서 또라이들로 취급받는 공산주의잔당들의 사고틀이지., 우리 민족의 실정에는 맞지 않소. 그 서구적 사고틀을 버리지 않고서는? 님도 한국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거요.

지나다가님의 댓글

지나다가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서구의 사고틀"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사람의 사고가 저러하다면, 그 서구적 사고틀 참 좋은 것같다. 베를린리포트 방문객 여러분들도 어서어서 서구적 사고틀 마니마니 배워서 저지경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너무나도 귀중한 반면교사의 역할을 떠맡으신 데니스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디아님의 댓글

나디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댓글이 두개 있는 것을 보고 조금 긴장해서 들어왔는데..^^
어쨌든 총선을 앞두고 민노당측 글을 무턱대고 갖고온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영남은 가해자, 호남은 피해자라는 생각만 가지고있던.. 이 짧디 짧은 저의 머리에 여러가지 생각할 수 있게해서 퍼온 글입니다. 게다가 &#039;지역감정이 지긋지긋해서 이가 갈린다&#039;라는 제 표현에 한마디 하시는 분이 계셔서 퍼왔죠. 물론 진중권씨의 글은 표현이 다소 과격합니다. 논리와 객관적 자료, 통계치수를 내세우나 가끔은 자신도 실수를 하죠, 저 글에도 그러한 부분이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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