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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관계와 파병문제 or 파병문제와 한미관계? / 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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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ul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359회 작성일 03-10-04 01:38

본문

[들어가면서]

미국이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요청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9월 초인 것 같다. 9월 4일 리처드 로리스(Lawless)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및 크리스토퍼 라프레어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 그리고 토머스 허바드 미국대사가 청와대를 방문하여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9월 5일에는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이 미국에서 월포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면담할 때, 미국 측의 파병가능성에 대한 타진이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미국 방문 중인 9월 17일에는 로리스 부차관보가 다시 한번 파병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도되었고, 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 가장 최근에는 방미 중인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등 한국의 파병 관련 조사단에게 롤리스 부차관보가 9월 26일, 파병된 한국군은 이라크의 북부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 다음날인 27일에는 월포비츠 부장관이 차실장에게 조속한 파병을 기대한다고 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도 이외에도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경로로 파병에 관한 요청이 있어왔을 것인데, 이쯤 되면 정확히 표현해서 한국정부는 파병에 관한 요청이기 보다는 상당한 수준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해도 무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압력에 직면해서 한국정부는 파병문제와 한미관계를 어떻게 연결시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한국정부의 최상의 선택은 무엇이며,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미 정부는 파병을 하는 쪽으로 상당히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만약 그러한 결정을 실제로 한다면 그러한 선택이 한미관계를 생각할 때 잘 된 선택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미관계와 관련하여 파병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한미관계에서 시작하여 파병문제를 풀어나가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파병문제에서 시작하여 한미관계를 예상, 관리하려는 시각이다. 두 가지 시각이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한미관계를 해치지 않는 가장 좋은 결정이 무엇인가에 판단의 기준이 있다면, 후자는 약간의 한미관계의 갈등이 있더라도 우리의 판단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그 후 한미관계를 관리해 나가자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현실주의 논리와 맥을 같이 하는 경향이 있다.


[한미관계와 파병문제: 현실주의적 접근]

대개 파병을 찬성하는 시각은 힘의 논리를 따르는 현실주의자 (혹은 현실주의자라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논리는 국제정치의 힘의 현실을 제대로 따라가자는 논리와 미국과의 협상에서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최대한으로 받아내자는 크게 두 가지의 논리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의 논리는 대단히 간단하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약소국은 강자와 틀어지는 선택이 최악의 선택이며, 따라서 이러한 강자와의 관계를 최대한 원만하고, 든든하게 유지시키는 정책만이 국익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파병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선택이든 한미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택이라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관계를 흔들지 않거나 아니면 더욱 돈독히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파병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따라서 파병결정이라는 종속변수에 대하여 한미관계가 독립변수로 작용한다.

이러한 논리는 이렇게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와의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한미관계가 수단이기보다는 목적으로 변화하는, 즉 종속변수는 독립변수를 위해서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변화의 프로세스를 경험하게 된다. 한미관계가 독립변수로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버리면, 한국의 선택지는 대단히 좁아진다. 한국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힘센 미국으로부터 미움을 사 한미관계가 틀어질 것이라고 우려하여 결국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이후의 선택지는 요청을 받아들인 이후 미국과의 협상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그래서 현실주의의 두 번째 논리로 이어진다. 두 번째의 논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한미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파병은 이러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미국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파병을 하게 되면 미국이 고마워할 것이다. 따라서 이왕 파병을 하려면 미국이 훨씬 고맙게 생각하도록, 더 이상의 요청이 없어도 무조건 빨리,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서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고맙게 생각하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많이 못 얻는다 하여도 최소한 한미관계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다. 한미관계가 악화되지 않으면 안보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투자여건도 좋게 유지할 수 있어, 안보 및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파병결정을 미국과의 협상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은 몇 가지의 협상 목표를 갖게 한다. 주로 거론되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미국이 한국이 원하는 방식을 보다 강력하게 지지하게 하는 것, 이라크 재건사업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 이라크로부터의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확보하는 것 등이 있고, 보다 소극적인 차원에서는 한국군의 이라크 주둔지역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하는 것, 한국의 철군시기를 되도록 빨리 잡는 것, 미 2사단의 재배치 일정을 늦추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아마도 이러한 다양한 목표를 섞어서 패키지로 협상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협상은 항상 파트너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주고받는 것이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꼭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은 협상에서는 감정적인(감사하다는) 요인을 최대한 배재하고 냉정해 지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고압적인 협상 방식으로도 악명이 높다. 우선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는 한미관계의 불안이라는 카드이다. 안 보내면 불안해 진다. 그러니 보내라 라는 논리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주한미군의 병력과 장비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질지 모른다. 미국의 경제보복이 있을 수 있다. 한미 동맹에 대한 심각한 동맹재조정 요구가 나올 수 있다 6자회담에서 한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등이다. 한국에 대한 유인책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한국이 제시하는 협상 목표들일 것이다. 미국도 이러한 것들을 패키지로 묶어 최소한으로 한국에 줄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한미관계와 파병문제를 보는 현실주의 시각은 한미관계의 악화를 막기 위하여 가능한 한 빨리 파병을 하되 파병의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최대한 얻어내자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러한지 따져 봐야할 부분이 많다. 우선 현실주의자들의 논리 자체 안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미국의 힘에 대한 해석에 있다. 2001년 11월 미국의 국방장관인 럼스펠드는 미국의 목표에 따라 동맹이 결정되지, 동맹에 따라 미국의 목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밝히면서 소위 순환동맹(rotating coalition)의 개념을 천명하였다. 미국의 안보정책을 대표하는 럼스펠드의 이 견해를 따르자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타국과의 관계를 설정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미국의 이익에 따라 쉽게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있는 힘과 의사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필요하다면, 한국에 고마워하는 감정과 상관없이 정책을 바꿀 수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동맹의 신뢰는 힘 센 쪽에서 약한 쪽에 요구하는 것이지 약한 쪽에서는 강한 쪽에 신뢰를 요구할 수 없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신뢰는 강한 쪽에서만 가질 수 있는 협상카드이다. 그것이 바로 힘의 국제 정치이며, 또 현실주의의 세계이다. 미국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그들의 이익에 맞춰, 그들의 일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국가임을 현실주의는 가르쳐 주고 있다. 현실주의의 논리대로 라면 한국이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무언가 얻어낸다고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바로 받아낼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면 미래의 약속은 미국의 사정에 따라 취소될 수 있다.

두 번째의 문제점은 미국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한국의 파병을 고마워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분석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미국은 사실 상 국가로서의 미국이기 보다는 부시 대통령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이라는 잘못된 결정으로 인하여 재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졌고 그로 인해 지지율 하락(50%대 초반)이라는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즉 미국의 어려움은 부시의 지지율 하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군병사가 죽는 것도, 그리고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이 미국의 어려움이지만, 그것이 진짜 어려움이라면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더라도 철군이라는 선택을 하면 된다. 그런데 철군도 안하고 동시에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한국과 같은 (자비부담의) 외국 군대의 파병이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파병을 고맙게 생각할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파병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을 위해서 한국이라는 위험한 지역에 지난 수십 년 간 계속 파병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설사 부시 대통령이 고마워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 전체가 고마워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다른 정부관료, 국회의원, 그리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를 고마워하고 오랫동안 그 감사함을 간직하지 않는다면 한미관계의 발전이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파병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후의 한미관계를 설정해 나가는데 있어서 이번 파병의 고마움이 미래에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통령, 정부뿐만이 아니라 의회를 거쳐야 하고, 또 의원들은 지지 선거구민들의 이익을 반영하여야 하며, 대통령과 정부는 여론이라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감사라는 변수는 한국전쟁에서 죽어간 미군 병사의 규모와 승전(휴전)이라는 결과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지속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그저 미군과 함께 여러 군대와 섞여, 이라크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감사라는 변수는 쉽게 사라질 것이다.

세 번째로는 소수 의견이지만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19세기말적 관계로 설정하는 오류가 있다. 한국이 말을 듣지 않으면 미국은 엄청난 제재를 가할 힘이 있고, 특히 한미동맹관계가 흔들리면 한국은 19세기 말의 상황과 같이 국난을 맞이할 것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미국이 엄청난 제재를 가할 힘이 있다는 것과 한미동맹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그것으로 19세기 말과 같은 국난을 겪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파병반대로 세계 12위 무역국가인 한국이 그러한 국난을 맞는다면, 다른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그렇지만 미국의 이라크전이나 파병을 반대한 캐나다, 프랑스, 독일, 그리고 멕시코, 터키 등은 이미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들이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인하여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미국이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으로 상황이 역전되었고 관계 악화는 다시 관계의 관리를 통하여 복원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단기적인 코스트에 있는데, 한국이 그러한 단기적인 코스트를 지불하면서도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느냐와 국난의 문제는 매우 다른 문제이다. 19세기말과 비교하는 논리를 자꾸 쓰면 국익을 자세히 따져보기도 전에 미국의 힘의 논리와 미국의 압력이라는 카드의 효용성을 우리 스스로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단기적인 코스트라는 면에서, 그리고 한미관계의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이라는 면에서 현실주의는 그러한 것들을 방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실주의적 시각이 내리는 결론인 파병은 비록 파병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혹시 잃게 될지도 모를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정책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코스트와 미래의 불안을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다는 강심장과 자신감을 가진 지도자가 아닌 이상,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파병을 반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파병문제를 먼저 생각하고, 그 결정에 따라 한미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의 시각에서는 조금 다른 분석이 가능하다.


[파병문제와 한미관계: 자유주의적 접근]

파병 결정을 자체적인 판단기준을 가지고 먼저하고, 그 후에 한미관계를 관리해 나가자고 주장하는 논리는 보다 자유주의적인 시각에 기반 해 있다. 즉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힘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규범, 도덕성 등, 생각의 힘을 중요시 하면서, 동시에 개인이나 그룹 등, 보다 다원화된 행위자의 국내 및 국제정치에의 참가를 중요시한다. 이 시각은 정부는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부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는 타국과의 관계를 관리하여야 하며,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면서 국민은 세금을 내고, 지도자에게 투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시각은 파병문제를 보다 국내정치적 이슈로 만들고, 국내정치적으로 결정이 이루어지면 그 이후에 한미관계를 관리, 조정하자는 사고체계를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각을 반영하여 한국문제에서부터 먼저 논리를 전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외부의 적은 북한이다. 혹자는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여 한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어떠한 경우이든 한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1차적 위협은 동북아시아에 있다. 한국의 군대는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데, 북한과 대치상태에서 한국 국민에 직접적 위협을 주지 않는 이라크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한국의 군인도 한국의 국민으로서 스스로 지켜야할 생명을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그래서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한, 부시 대통령의 재선전략을 위해서 바칠 이유는 더욱 없다.

한미 동맹이라는 국가간 계약도 중요한데, 한미상호방위조약도 1조에서 당사국 중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 받고 있다고 인정될 경우 언제든지 양국은 서로 협의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미국은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유엔 헌장을 보더라도 51조의 자위권 발동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며, 헌장에서 명시한 평화유지군 파병의 조건인 수용국의 동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파병 요청은 유엔의 결의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지 않으며, 이라크의 평화유지를 위한 파병에 대해 국제사회의 동의가 없으면 파병이 불가하다. 따라서 한미동맹관계나 평화유지라는 면에서도 우리가 미국의 요청을 들어줄 법적, 규범적 이유는 없다.

또한 이라크 전쟁의 성격도 정당한 전쟁이 아니므로 이러한 정당치 못한 침략행위에 대하여 일조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는 시각이다.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이라크 정부와 알 카에다, 그리고 9-11 테러에 대한 연관을 찾는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면서 전쟁을 감행하였고, 종전 후에는 미국 주도의 군정을 세워 아랍 현실을 모르는 거만한 미국인들로 자리를 채우고, 재건사업과 석유이권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하였다. 국제사회의 반대를 뿌리치고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에 다시 일방적으로 만만한 몇 개국에 파병의 압력을 가하는 것 역시 도덕적이고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미국이 이권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를 위해서 크게 나누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달러를 넘어서는 현재, 불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걸 필요는 없다. 그것이 베트남 파병 때와의 차이이며, 이번에는 전비, 주둔비를 우리가 부담하여야 하는데, 명분없는 전쟁에 돈과 생명을 바치면서 부시 대통령을 도울 이유는 더 더욱 없다고 본다. 생명보다 더욱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가? 우리 젊은이들의 생명을 왜 그렇게 바쳐야 하는가?

한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고 뽑아 주었기 때문에 파병이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당연히 파병을 하면 안 되고, 유엔의 결의가 있을 때 파병의 명분은 좀 더 설 수 있지만, 다국적 군의 구성, 파병의 조건 등이 부당하면 유엔의 결의가 있어도 파병을 하면 안 된다. 한국의 지도자는 국민을 위하여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이를 관리해 나가야지 개인적인 사사로운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세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상의 논리에서 보면 이 시각에서는 파병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파병반대의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결정의 파장이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한국의 외교부와 유관 부처 및 인사가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한미관계는 파병반대 결정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종속변수의 관계를 갖게 되고, 이러한 면에서 한미관계를 성역화하는 현실주의 시각과 정 반대의 논리구조를 갖게 된다.

이 시각 역시 현실주의 시각이 그렇듯이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우선 이 시각은 정책결정자들에게 엄청난 결단과 용기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파병반대의 결정은 현실주의 논리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불확실한 미래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각은 스스로 내린 결정이 미칠 국제정치적 여파, 특히 한미관계에 미치는 여파에 대하여 현실주의보다 훨씬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래의 예측을 책임지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한국에 얼마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이 시각은 상당한 모험을 정책결정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명예, 자리, 권력을 걸고 모험을 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의 문제점은 첫 번째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인데, 이 시각은 파병반대의 결정을 한 후 그 결정이 한미관계에 미칠 수 있는 여파를 관리해 나갈 수 있는 힘과 자원, 능력이 한국에게 있는가에 대한 고려가 약하다. 즉 우리가 미국의 요청을 거절할 이유는 많이 찾아 놓았으나 실제로 거절한 후 한미관계 악화에서 오는 부정적 효과 등을 막아낼 수 있는 전략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어차피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움직일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는 논리는 이익의 실현이, 특히 약소국의 이익의 실현이 국가간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자칫 간과하게 된다. 따라서 주장은 옳게 들리지만 다소 이상적인 측면이 있다.

세 번째로는 정부는 꼭 국민의 생각을 대변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대외정책과 관련한 국민의 판단은 대개의 경우 비전문적이고, 한국의 경우 여론이 거의 반반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그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국익을 전문적으로 계산하고, 그에 맞춘 정책을 국민을 선도하면서 택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가 계산한 국익을 달성하는데 있어 공고한 한미관계가 핵심적인 수단이 될 경우 한미관계와 파병결정을 연계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역으로 국익을 달성하는데 파병이 오히려 해롭다면, 정부가 주도하여 파병 찬성론자들과 미국을 설득하고, 파병불가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가면서]

파병문제와 한미관계를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이상에서 제시한 크게 두 가지의 접근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파병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자체적인 파병에 관한 결정을 한 후 한미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 같이 들릴지 모른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두 가지의 시각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이미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제시한 사고의 틀에 따라 파병과 한미관계의 문제를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정부의 정책결정자가 가져서는 안 될 구분이다. 정책결정자야말로 유기적 연관관계를 잘 따져서 윈윈 솔루션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라크로 한번 파병하면 매우 오랜 기간 파병을 해야 할지 모른다. 랜드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이라크 정도의 치안 상태일 경우 인구 1000명당 20명의 치안유지 병력이 필요한데, 병사의 순환을 고려하고, 상당기간 주둔할 것을 감안하면 최소 250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다. 그렇다면 전투병력 5000명의 파병으로 그칠 것이라는 판단은 너무 순진한 판단이다. 한미관계를 고려할 때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쪽으로 정부의 입장이 기운다면 어떻게 이 병력을 빼오고, 더 이상 보내지 않을 것인가를 협상하여야 한다. 그리고 협상은 현재 보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을 정도의 매우 구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여야지 불확실한 미래의 무엇을 대상으로 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 측 사상자 및 부상자가 생겼을 때 정부는 그 사상자 및 부상자의 신원확인, 안전확보, 가족 및 유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 유공자로서의 명예로운 대우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국가가 정치지도자 개인이나 미국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여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한편 파병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여파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그리고 그 여파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 전략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 불안과의 싸움과 불편함과의 싸움은 다르다. 파병을 안 해서 지도자간의 관계가 불편해 지는 것은 지도자로 선출된 이상 당연히 참아내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그러나 파병을 안 해서 한국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불안이 생긴다면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불안을 치유할 수 있는 복안을 가지고, 또 용기와 관리 능력을 가지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파병을 하건, 안 하건, 한미관계는 갈등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파병을 했을 때 생기는 코스트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제일 큰 것은 병사의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이 가져오는 한미관계의 갈등은 상당히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밖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과 고압적인 자세, 기대 이하의 경제적, 안보적 이득, 그리고 반전, 반미 여론 등이 거세지면 한미관계는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파병을 안 했을 경우에는 미국의 요청을 거절한 동맹 파트너에 대해 미국과 부시 대통령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차피 외교정책이라는 것이 최고정책결정자의 의중을 어느 정도 반영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 경우 역시 한미관계는 진통을 겪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도 한미관계는 앞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조건 그 때마다 미국의 또 다른 요구를 들어주는 전략만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 창의적인 전략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러한 의미에서 파병문제에 대한 접근의 시각을 예를 든다면 파병문제와 한미관계의 시각이 한미관계와 파병문제의 시각보다 더욱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는 이번부터 한국 정부가 그러한 시각에서 용기 있게 결정할 수 있으며, 현명하게 전략을 수립하여 대처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파병문제에 대한 답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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