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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의 생존자 이희완 중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성현 (펌)이름으로 검색 조회 4,862회 작성일 03-06-17 20:35

본문

서해교전 부상자중 마지막 퇴원한 이희완 중위
“전사자들, 국민에 잊혀지면 실망할 것”

  
작년 6월29일 서해교전 당시 함정 부장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두 다리에 중상을 입고 1년간 재활치료를 받아온 이희완(27·해사 54기) 중위는 17일 해군사관학교 부설해양연구소 연구원으로 발령 받았다. 부상의 정도로 보아 전역해야 하나 해군은 이 중위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감안, 현역 근무를 결정했다.

이날 이 중위는 서해교전 당시 전사한 6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전 국립현충원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중위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제가 서해교전으로 부상 당한 19명 가운데 ‘마지막 퇴원자’입니다. 지난 13일 퇴원했으니까 전사자분들께 ‘신고’하려는 겁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도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간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받으며 9번 수술을 받았다. 교전 당일 오른쪽 다리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왼쪽 무릎 아래에도 총알 1발이 박혀 구멍이 생겼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왼쪽 다리는 엉치뼈를 떼내 무릎의 경골에 이식하는 등 크고 작은 수술을 계속 받은 것. 이 중위는 현재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으며, 근육을 기르고 의족에 적응이 되는 1년쯤 뒤면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왼발로만 운전을 하기 때문에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에는 엑셀레이터가 브레이크 왼쪽에 달려있게끔 개조했다고 한다.

그가 현역복무 적합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 해군은 ‘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공격으로 순직한 함정 정장을 대신해 승조원을 지휘해 반격을 주도한 끝에 NLL을 사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중위는 당시 교전 상황에 대해 “북한군의 공격으로 정장님(고 윤영하 소령)께서 먼저 뒤로 넘어지셨다”고 기억했다.

“아무 말씀도 못하고 정장님께서 넘어지셨어요. 순간 빨리 초도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병사들에게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를 우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배(참수리 357호)의 손상이 너무 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응사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뒤 기관(엔진)을 최대한 쓸 수 있는 범위내에서 가동하고, 함수(뱃머리)를 180도 돌려서 남쪽으로 내려가자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중위는 교전 당시 자신을 방어물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던 병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전우애를 진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정장님이 넘어진 뒤 저도 다리가 떨어져 나가 그 옆에 눕게 됐습니다. 윤 소령은 눈을 감고 계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전사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총수 역할하는 병사들은 큰소리로 ‘쏴라쏴라’고 외치는 상황이었죠. 병사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부장님 일어나십시오’ ‘제가 뭘 해야합니까’ 소리쳤습니다. 몇가지 지시를 내렸는데, 그 지시를 받고 제자리로 가는 도중에 부상을 당하기도 해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순간적으로 많은 폭격을 받았기 때문에 배는 화염에 휩싸였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소리치니 병사들이 ‘부장도 가셔야한다’며 소리쳤습니다. ‘나는 다리가 절단됐고 상황이 안좋다’고 말하니 병사들이 방어물 있는 곳으로 저를 옮겨줬습니다.”

이 중위는 ‘전투’와 ‘군인다움’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함장이 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6월부터 연평도에서 근무했는데 그것도 자원한 겁니다. 접적(接敵)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바랬거든요. 아쉽긴 하지만 계속 근무한다는 자체를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해양학을 공부해 해군사관학교 해양학과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을 훌륭한 해군 장교로 키워서 제가 못다한 것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습니다.”

당시 교전에서 6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했다. 그뒤 전사자 유족들과 만남도 갖고 전화 연락도 계속한다고 이 중위는 말했다. “모임이나 행사를 떠나 한솥밥을 먹었던 전우가 전사했는데 인간된 도리를 다 해야지요.” 그는 서해교전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데 대해 “‘아쉽다’거나 ‘알아주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국을 지키다 숨진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분명히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만약 국민이 무관심하거나 잊어버린다면 그들은 실망할 겁니다. 유가족들이 있는데 잊혀진다면 마음이 아프시겠지요. 잊혀지지 않도록 챙기는 것이 제가 해야할 도리 아닐까요?”



(김성현 기자 danpa@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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