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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us, rouge, rot, red, 빨강

페이지 정보

작성자 apfelsaf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5건 조회 4,050회 작성일 06-05-01 16:17

본문

내가 좋아하는 색상은 프로메테우스의 횃불, 렘노스의 흙, 열 번째 천국의 빛, 도나르와 보탄의 눈, 마리아 마죠레의 옷, 빛의 씨앗인 빨강이다.

좀더 까다롭게 말하자면 햇살이 강한 날, 두눈을 감고 태양을 바라보았을 때 눈꺼풀 너머로 보이는 빨강을 가장 좋아하고, 온몸을 핥으며 바다 위로 타오르던 산토리니의 저녁 노을을 가장 사랑한다. 해질 녘 진한 회색 수평선 위로 그어지는, 한 방울의 코발트가 섞인 빨강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키에슬롭스키가 연출한 발렌틴을 감싸고 있는 순색의 빨강은 도발적이지만 따스하게 느껴지고, 지금은 '호빵맨'이지만 이글거리는 젊음을 불태우던 시절, 잉베이가 레닌그라드 라이브에서 연주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빈티지 화이트보다는 캔디애플 레드나 크림슨 레드가 더 잘 어울렸다.

순백을 배경으로 단순하게 잡힌 빨강은 강렬하지만 청아한 이미지를 준다. 적십자 마크나 감기몸살로 고열에 시달리는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아포테케'가 좋은 예일 테지만, SK나 KIA를 보면 빨강과 순백의 어울림은 촌스러움과 역겨운 돈냄새가 5:5로 섞여있다.

사치스러운 빨강으로는 페라리 레드가 있다.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나 디아블로, 포르쉐 911의 빨강은 그냥 빨강이지만 '페라리 레드'라는 고유명사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페라리의 빨강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 실버나 옐로우, 블랙 톤의 페라리는 정말이지 조금도 페라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채도가 낮은 빨강 중에서는 어렸을 때 나의 영웅이던 맥가이버가 마술을 부릴 때면 늘 꺼내드는 빅토리녹스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빨강을 가장 좋아한다. 필요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필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이 녀석은 1995년, 모 영화에서 주인공이 손목을 그을 때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장미의 수다스러운 빨강보다는 튜울립이나 카네이션의 단아한 빨강이 더 마음에 든다. 다분히 장삿속이 엿보이는 로만 홀리데이 루즈(Roman Holiday Rouge)는 젊은날의 오드리 햅번을 떠오르게 해 준다. 겨울의 싸늘한 손톱이 봄을 할퀴던 어느 날, 어느 작은 섬에 핀 동백은 매력적이었다.

레코드 레이블 중에서는 내가 번 존스나 아놀트 뵈클린의 그림보다 더 좋아하는 HMV(His Master's Voice)가 삽입된 붉은색 RCA 로고가 제일 귀엽다. EMI는 쳐다보기도 끔찍하다. 20세기의 끝자락에 레코딩된 새파란 녀석의 음반을 'legend' 시리즈로 발매하는 음반사, 제정신일까? 

설레임을 주는 빨강도 있다. 노찾사의 '일요일이 다가오는 소리'의 멜로디가 물씬 묻어나는 달력의 붉은 숫자, 특히 월요일의 붉은 숫자는 일상에 찌든 가슴을 막연하게나마 설레임으로 채워준다. 생각지도 않은 연휴의 빨강은 목적지 없이 아무 곳이라도 훌쩍 떠나고픈 충동을 준다. 

동화 속에 등장하는 빨간 모자는 숲의 초록과 여러 모로 대비를 이루지만, 그 이야기의 근원에는 웅게러가 반쯤은 포기한 어두움과 음습함이 도사리고 있다. 세상에, ‘빨간 모자’라는 피자 체인점도 있다. 어린아이의 살과 피로 토핑을 얹는걸까? '늑대 할머니'가 좋아하겠군.

음악의 빨강 중에서 가장 선명한 이미지를 준 곡은 앤디 윌리엄스(Andy Willams)의 'Red roses for a blue lady'였다. 빅 다나(Vic Dana)의 65년 오리지널도 좋지만 앤디 윌리엄스의 풍부하고 깊은 저음이 더 좋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처럼 설쳐대기만 하는 녀석들은 싫다.

아일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눈 위에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까마귀’는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 피처럼 붉은 뺨, 눈처럼 흰 피부’의 여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왠지 게이샤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그 이미지는 쉽게 잊을 수 없다.

빨강은 극단적인 애국심 고취에도 일익을 담당한다. 굳이 ‘극단적’이란 말을 쓴 이유는 좌익도 ‘적색분자’나 ‘빨갱이’이고, 우익 역시 빨강이기 때문이다. 붉은악마가 그 생생한 증거일 것이다. 전세계 국기 가운데 빨강이 들어가지 않은 국기를 세 보자. - 다행히 UN기에는 빨강이 없다.

또 뭐가 있을까...

가시광선 가운데 가장 긴 파장, 즉 가장 작은 에너지를 가진 빨강이 색상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준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서양의 피닉스와 동양의 봉황이 붉은색인 것은 강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선악의 양면성을 동시에 내포한다는 것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악을 상징하는 세쓰의 왕국과 여섯 날개의 불타오르는 천사, 세라핌 또한 붉은색이다. 마크 로트코의 캔버스를 뒤덮은 빨강이나 조안 미로의 화폭 한 구석을 차지한 한움큼의 붉은새가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라스코 동굴 한켠에서부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을 빨강은 선과 악, 어두움과 밝음, 지성과 야만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색이다.

思鏃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태양마차에 불을 질렀다.'
빨강의 출처에 대한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명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빨강에서 마치 모세가 불타는 덤불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신의 음성을 듣는다. - 하인리히 프릴링
추천15

댓글목록

작은나무님의 댓글

작은나무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불덩이가  생각 보다 큰 것을 보셨군요.
불덩이가 빨강인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이제,
서서히 식어져

아주 단단한
보석이 되어
그 곳에,
누구도 빼어 낼 수 없도록
박혀 있길
자꾸만
기도 하겠습니다.
.
.
.

suji님의 댓글

suji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무수히 많은 익명의 독자들 중 한 사람 입니다. 다시 글을 쓰시니 반갑구요. 옛날에 외우려다 결국 용량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한 시 한편 올립니다.

Prometheus (Goethe)

Bedecke deinen Himmel, Zeus,
Mit Wolkendunst
Und &uuml;be, dem Knaben gleich,
Der Disteln k&ouml;pft
An Eichen dich und Bergesh&ouml;hen!
Mußt mir meine Erde
Doch lassen stehen
Und meine H&uuml;tte die du nicht gebaut,
Und meinen Herd,
Um dessen Glut
Du mich beneidest.
Ich kenne nichts &Auml;rmeres
Unter der Sonn als euch, G&ouml;tter!
Ihr n&auml;hret k&uuml;mmerlich
Von Opfersteuern
Und Gebetshauch
Eure Majest&auml;t
Und darbtet, w&auml;ren
Nicht Kinder und Bettler
Hoffnungsvolle Toren.
Da ich ein Kind war,
Nicht wußte, wo aus noch ein,
Kehrt ich mein verirrtes Auge
Zur Sonne, als wenn dr&uuml;ber w&auml;r
Ein Ohr, zu h&ouml;ren meine Klage,
Ein Herz wie meins,
Sich des Bedr&auml;ngten zu erbarmen.
Wer half mir
Wider der Titanen &Uuml;bermut?
Wer rettete vom Tode mich,
von Sklaverei?
Hast du nicht alles selbst vollendet,
Heilig gl&uuml;hend Herz?
Und gl&uuml;htest jung und gut,
Betrogen, Rettungsdank
Dem Schlafenden da droben?
Ich dich ehren? Wof&uuml;r?
Hast du die Schmerzen gelindert
Je des Beladenen?
Hast du die Tr&auml;nen gestillet
Je des Ge&auml;ngsteten?
Hat nicht mich zum Manne geschmiedet
Die allm&auml;chtige Zeit
Und das ewige Schicksal,
Meine Herrn und deine?
W&auml;hntest du etwa,
Ich sollte das Leben hassen,
In W&uuml;sten fliehen,
Weil nicht alle Bl&uuml;tentr&auml;ume reiften?
Hier sitz ich, forme Menschen
Nach meinem Bilde,
Ein Geschlecht das mir gleich sei,
Zu leiden, zu weinen,
Zu genießen und zu freuen sich
Und dein nicht zu achten,
Wie ich!

apfelsaft님의 댓글의 댓글

apfelsaf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시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량 부족은 다 빌 게이츠 때문입니다.
'640KB 정도의 메모리면 누구에게나 충분할 것이다.'
- Bill Gates, MS 사장. 1981년.

the moon님의 댓글

the moo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Welcome to DongMakGol (길벗까페..ㅎ) ,... emoticon_082 주 스 님 !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태양마차에 불을 질렀다.'
빨강의 출처에 대한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명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빨강에서 마치 모세가 불타는 덤불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신의 음성을 듣는다. - 하인리히 프릴링

에서 ...


있지 ~  있지요  ~
늘 ,...여일이의 해맑은 핑크 빛의 영혼의 피  를 못잊어  하며 ..
강렬한 정열을 내뿜어 주변을 아름답게  감동과  행복을  제공해주는  정의와 ,..용맹의  빨간 색 ...피 ...를 간직한  애플쥬스  !
DongMakGol (길벗까페 !) 를 따듯하고 , 꿈 있는 동산으로 붉게 물들일줄 아는 신선하고 ,달콤한 색 ...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늘 행복을 느낀다 .

더이상
빨강의 출처에 대한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명이 있을 수 있을까?


The most powerful color  ----  emoticon_082 



 


orora님의 댓글

oror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쌩판 모르는사람 글보구 이렇게 반가운건 처음이네요. "오'설리번"이 스누커 결승에 못 오른것두 용서가 될 정도루 .......반갑습니다. 하두 반가워서 글을 설렁설렁 읽었는데, 다시 한번 읽어야겠어요..............

orora님의 댓글

orora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닌데요. 안 맞슴다.
그 설리번이 그 설리번이 아닌데,... 모르지요. 혹 오' 설리번(?)의 할머니뻘 됬을수도.....
"피" 와 "커"를 바꿔 읽으시는 병에 걸리신건 아닌지요?  그런병이 있다구 들어만 봤지, 본적은 없는데......emoticon_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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