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신 백성욱박사님‘의 다큐멘터리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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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천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750회 작성일 25-05-09 10:40본문
안녕하세요?
백성욱박사 교육문화재단에서 ’한국인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신 백성욱박사님‘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그분의 발자취를 찾고 있습니다.
현재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방대하게 모으고 있으며, 다큐제작팀이 5월8일~5월 18일까지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체류하며 현장을 취재할 예정입니다.
혹시 백성욱박사님을 아시는 분이 계시거나, 1920년대 독일에서 한국유학생의 삶과 탄광유덕고려학우회 등에 대한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아신다면, 게시글 댓들이나 이메일주소
(happyamelie@naver.com)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조그만 실마디라도 아시는 대로 알려주시면 백성욱박사님의 흔적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성욱 박사님 (1897년~1981년)]
백성욱박사님은 1920년 초,
조선독립을 위해 상해임시정부로 가셔서
중국청년들을 선발하여 프랑스로 유학을 알선해주는 유법검학회에 지원하셨습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력난을 해결하고자 해외 근로장학생을 받아들였고 중국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300여명 가운데 21명이 한국 청년들이었습니다.
그중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시고, 독일로 대학을 가신 분들이 백성욱, 정석해, 이미륵(본명 이의경) 세분이십니다.
백성욱박사님께서는 1922-1925년까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철학과에서 유학생활을 하셨고, 탄광에서 생활비를 충족하셨다고 합니다.
1925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인준받으셨습니다.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
독일 거류한인들이 한인 유학생을 주축으로 베를린에서 1921년 1월 1일 유럽 최초의 유학생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유럽 최초의 한인유학생 단체명: 유덕고려학우회(또는 獨逸留學高麗學友會)
사무실: 칸트 슈트라세(Kant str) 122번지
(이곳은 현 훔볼트대학에서 남서쪽 5.8km 떨어진 대로변에 위치하고, 남동쪽 1.8km 지점으로 가까운 위치에는 이극로의 거주지가 있다. 유덕고려학우회가 있었던 칸트 슈트라세 122번지는 5층 건물로 1층은 상가로로 사용되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유덕고려학우회에서 1920년대 독일 거류한인들의 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23년의 경우 한인거류인은 55명이고 유학생은 10개 대학 33명으로 총 88명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인물은 간사장을 맡고 있었던 김갑수(金甲洙)와 서무를 맡고 있었던 윤건중(尹建重) 등이었으며,
1923년의 경우 이극로(李克魯)ㆍ김준연(金俊淵) 등이 임원으로 활동.
1924년 기록에 의하면 서무 또는 서기에 이극로, 회계에 김필수(金弼洙)가 활동.
일제의 자료에 의하면 1924년 5월 당시 한인 유학생은 58명이라고 하고, 1925년 4월경에는 52~3명 정도라고 합니다.
백성욱박사 교육문화재단에서 ’한국인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신 백성욱박사님‘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그분의 발자취를 찾고 있습니다.
현재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방대하게 모으고 있으며, 다큐제작팀이 5월8일~5월 18일까지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체류하며 현장을 취재할 예정입니다.
혹시 백성욱박사님을 아시는 분이 계시거나, 1920년대 독일에서 한국유학생의 삶과 탄광유덕고려학우회 등에 대한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아신다면, 게시글 댓들이나 이메일주소
(happyamelie@naver.com)로 연락부탁드립니다.
조그만 실마디라도 아시는 대로 알려주시면 백성욱박사님의 흔적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성욱 박사님 (1897년~1981년)]
백성욱박사님은 1920년 초,
조선독립을 위해 상해임시정부로 가셔서
중국청년들을 선발하여 프랑스로 유학을 알선해주는 유법검학회에 지원하셨습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력난을 해결하고자 해외 근로장학생을 받아들였고 중국에서 프랑스로 떠나는 300여명 가운데 21명이 한국 청년들이었습니다.
그중 프랑스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시고, 독일로 대학을 가신 분들이 백성욱, 정석해, 이미륵(본명 이의경) 세분이십니다.
백성욱박사님께서는 1922-1925년까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철학과에서 유학생활을 하셨고, 탄광에서 생활비를 충족하셨다고 합니다.
1925년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인준받으셨습니다.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
독일 거류한인들이 한인 유학생을 주축으로 베를린에서 1921년 1월 1일 유럽 최초의 유학생단체인 유덕고려학우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유럽 최초의 한인유학생 단체명: 유덕고려학우회(또는 獨逸留學高麗學友會)
사무실: 칸트 슈트라세(Kant str) 122번지
(이곳은 현 훔볼트대학에서 남서쪽 5.8km 떨어진 대로변에 위치하고, 남동쪽 1.8km 지점으로 가까운 위치에는 이극로의 거주지가 있다. 유덕고려학우회가 있었던 칸트 슈트라세 122번지는 5층 건물로 1층은 상가로로 사용되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다.)
유덕고려학우회에서 1920년대 독일 거류한인들의 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23년의 경우 한인거류인은 55명이고 유학생은 10개 대학 33명으로 총 88명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인물은 간사장을 맡고 있었던 김갑수(金甲洙)와 서무를 맡고 있었던 윤건중(尹建重) 등이었으며,
1923년의 경우 이극로(李克魯)ㆍ김준연(金俊淵) 등이 임원으로 활동.
1924년 기록에 의하면 서무 또는 서기에 이극로, 회계에 김필수(金弼洙)가 활동.
일제의 자료에 의하면 1924년 5월 당시 한인 유학생은 58명이라고 하고, 1925년 4월경에는 52~3명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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