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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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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84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1-14 20:37 조회3,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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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학가기전
약 1년간 모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상례사 (염 하는 직업)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적었습니다.
 
------
1.
 
“오주임, 일어나.“
 
눈을 뜨니 어둠 속에 시커멓게 누군가 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그 위로 천장에 매립된 환풍기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다.
 
“교대 시간이다.”
 
이불도 없이, 1,5평 남짓한 탈의실의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다 일어난다.
 
곧 불이 켜졌다.
 
새벽 3시 30분.
 
한시간 반정도 잤나?
고요한 장례식장 복도를 지나, 복도 정 가운데 사방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사무실로 들어간다.
 
이시간 쯤이면 상가집의 사람들은 모두 피곤에 지쳐 자고 있고.
복도에는 국화 꽃 향기와 향 연기가 어우러진 그저 기분나쁜 고요함만이 감돈다.
 
잠을 쫓아보려 사무실의 티비를 틀어놓는다.
별다른 도움은 안되고.
 
그저 천장에 있는 환풍기 소리만 뭍혀질 뿐이다.
지하라 그런지 항상 공기가 텁텁하게 느껴진다.
 
오늘만 3명이 죽었다.
 
상황판을 보니 나이가 제각각이다. 40대. 80대. 10대...
서류들을 살펴보고. 사망진단서를 정리해 놓는다.
 
텔레비전에서는 “짝” 재방송이 나오고 있다.
 
언젠가 납골당을 담당하는 P과장이 나한테
 
“오주임도 저기 나가봐, 상례사라고 하면 여자들한테 인기 좀 끌껄?”
 
옆에 있던 K팀장도 거든다.
 
“남자 2호는 상례사다. 이렇게 처음 소개 나가면 다들 놀라겠지.”
 
별 시덥지 않은 기억을 하던 와중에, 텁텁하고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전화벨이 울린다.
 
“네, P병원 장례식장 입니다”
 
새벽에 오는 전화는 결국 뻔한데도.
기계적으로 전화를 받는다.
마치 자동응답기 처럼.
 
지치고 건조한 목소리의 간호사가 수화기 너머로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여기 ER 인데요. 한분 계세요”
 
또 누가 죽었나 보다.
오늘은 곱게 넘어가나 했더니.
 
‘내가 교대하면 꼭 누가 죽더라.’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는다.
어차피 뻔하니까.
 
그저 상태가 너무 심각하지 않기만을 바래보며,
 
복도를 가로질러 옆방으로 건너가 하얀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다.
수술에 쓰이는 일회용 고무장갑을 힘겹게 낀다.
 
‘난 손이 너무 커..’
 
카트라고 우리가 부르는 시신을 모시는 뚜껑이 좌우로 펼쳐지는 침대 차를 끈다.
 
카트 내부엔 검정색 가죽의 쿠션이 얇게 깔려있는데
매일 소독해야 하지만 다들 귀찮아서 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더러울까...’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강철문을 열고 응급실에 가기위해 비밀번호를 누른다.
 
응급실에 갈때만 비밀번호를 눌러야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올라간다.
 
새벽의 응급실은 조용하다.
소독약 냄새만 약간 풍기고.
 
응급실 환자들이 누워있는 침대들에는 커튼이 빽빽히 쳐져 있다.
 
아마 간호사들이 연락하고 미리 쳐놨겠지.
 
밤샘으로 피곤에 쩔어 있는 의사에게 카트를 끌고 가니, 간호사에게 시체 꼬리표를 받으라고 하고는 다시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본다.
 
119요원이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눈빛을 보내며 얘기를 꺼낸다.
 
“장례식장에서 왔습니다.”
 
“저 안쪽에 가시면 돼요.”
 
간호사는 그말만 하고 급하게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마 차트를 정리해야하고 시체 확인서를 뽑아야 겠지.
 
응급실 가장 안쪽에 커튼이 쳐진 침대로 다가간다.
 
피냄새가 진동 한다.
그리고 주위엔 아무도 없다.
 
의료진은 이미 손을 떼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결국 마지막엔 내가 찾아온것.
 
항상 이럴때면 저승사자가 된 기분이다.
검정색 양복에 검정 넥타이니 현대적인 느낌이랄까?
 
커튼을 젖히니 한 남성이 옷가지가 갈가리 찢겨진 상태로 누워있다.
 
‘교통사고구나.’
 
남성이 누워있는 침대는 난장판이다.
아마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겠지.
의사들은 제대로 정리도 안하고 그냥 갔나보다.
주사약들. 수술 도구들이 널려져있다.
 
심장박동을 기록하는 계측기를 주섬주섬 떼어내고
팔에 꽃힌 링겔들을 뽑아내, 몸을 살짝 눌러본다.
 
아직 따뜻하다.
 
하지만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보통 사지가 멀쩡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약. 글로 적는다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굳이 몸을 눌러보는 이유는 팔다리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나름대로 확인하는 절차다.
 
새벽에 혼자 모시러 오면 시신을 카트로 옮기기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수술용 가위로 찢어진 옷가지, 신발등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챙기고, 능숙하게 혼자서 카트로 시신을 당겨 내린다.
피로 얼룩진 침대시트를 옆에서 당기면 옮기기가 수월하다.
어차피 내려가서 시트는 의료용 폐기물로 버려야한다.
 
카트의 뚜껑을 덮고.
유유히 응급실을 빠져나간다.
 
나가는길에 간호사에게 시체 확인서를 받는다.
확인서는 손바닥 만한 하얀 종이인데 묶을수 있게 끈이 달려있다.
 
보통 2장을 받아서 하나는 발에 묶지만 귀찮아서 흘끔 보고는 그냥 두 장 다 주머니에 우겨 넣는다
 
종이엔
날짜. 이름. 성별. 나이. 사망이유가 적혀있다.
 
의사가 귀찮았는지 성명등은 미상으로만 적혀있고
 
맨 아래줄의 사망이유란 에는
 
D.O.A
만 적혀있다
 
"Dead On Arrival"
“도착시 이미 사망”이라는 의학용어다.
 
카트를 끌고 응급실 복도를 지나간다.
응급실에 방문한 사람들이 저마다 수근거린다.
 
엘리베이터에 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기다린다.
장례식장에서는 시신과 단 둘이서만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같이 타면 사람들이 병원에 클레임을 걸기 때문이다.
 
몇번 사람들을 보내고. 엘리베이터에 타고 지하 3층 버튼을 누른다.
시신은 입관실 바깥쪽 시신냉장고 앞에 카트채로 내버려두고 가운을 벗어 던지고 사무실로 들어온다.
 
L주임이 사무실에서 짜증나는 눈빛으로 나를 원망스레 쳐다본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긴 글렀구나.”
 
교통사고는 경찰서에 먼저 전화를 해야한다.
사고가 난 곳 관할경찰서에 연락해서 교통 사고 사망자가 있다고 알리고.
 
다시 사무실 책상에 앉아 무심하게 텔레비젼을 바라본다
 
티비에선 남여가 서로에게 어필하기 위한 도시락 데이트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티비를 보자니.
과학수사대가 언제쯤 올려는지.
그 뒤에 좀 더 잘수는 없는지 생각만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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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길들이기님의 댓글

길들이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빠져드며 읽었어요. 생소한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훌륭한 필력이 계속되는 이야기를 기다리게 하네요.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추천 2

오사마84님의 댓글

오사마84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24시간 교대 근무라 피곤하긴했지만 그 어떤 직업보다 보람있었습니다...
지금은 악기제작을 하고있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백조의성님의 댓글

백조의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주 특별한 글입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카프카의 "변신"의 정서도 깃들어 있군요.
"지하생활자의 수기 2" 기대합니다.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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