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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없는 인간   

흔히 한국 사람들이 "외국" (외국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풀면 그냥 우리나라 밖의 다른 나라를 뜻할 뿐이지만, 굉장히 자주 특정한 나라, 무엇보다도 백인이 사는 부유한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문화의 장점을 꼽아보라고 하면 "남들 눈치 안 보고 자기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것" 을 언급하곤 합니다.

좀 갑작스럽습니다만, 시계바늘을 돌려 조선시대로 가 보겠습니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 왕조가 들어선 이후, 조선에는 "우리가 중화 문명의 계승자이며, 우리는 천한 오랑캐 놈들과는 달리 우월한 사람들이다" 라는 식의 생각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간혹 중화 문명의 적자로서 명나라가 멸망한 지금 조선의 왕이 황제에 올라 문명의 계보를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나왔습니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조선의 주류 담론은 중화 문명을 가치의 척도로 삼았고, 자신들이 거기에 가까워짐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중화문명을 우월한 것으로 놓고 주변 문명을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을 업신여기는 한국인이 많은 실정을 고려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중국을 업신여기는 가치관) 에 입각해 중화를 좇던 당시의 조선이 멍청했다고 생각하면서 조선을 경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오늘날 중국 대신 "외국" 을 숭앙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런 태도는 결국 하늘 향해 침 뱉기에 불과하리라 봅니다.

다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태도에 대한 찬탄으로 돌아가 봅시다. 만약 그런 문화를 가지 나라가 오늘날 많은 (국가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한 남들을 정체화하는 경향이 강한 종류의) 한국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그런 나라였다면 그런 문화는 예의와 삼감을 모르는 문화라고 업신여김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유튜브를 켜 보면 위에 언급한 그런 종류의 한국인들이 올려놓은 많은 낯뜨거운 동영상과 마찬가지로 낯뜨거운 댓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외신도 감탄한 한국의 촛불민주주의", "세계인이 감탄한 한국의 무엇무엇" 이런 내용의 동영상이 무수히 많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중화였듯,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바른 판단을 내리는 주체는 바로 "외국인" 이고,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의 긍정적 평가에 목말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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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조선이나 현대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정치∙윤리적, 지적 올바름의 척도를 빌려와 사용했고, 또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조선시대에 중국 철학자들의 사상을 길잡이로 삼았듯, 오늘날 철학의 길잡이는 서양철학입니다. 비단 철학계 뿐만 아니라, 순수학문 영역 전반에서 "외국" (파키스탄이나 나이지리아는 "외국" 이 아니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 와야 한국 대학에서 교수를 할 수 있는 그런 실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 결과는 으레 "외국" 저널에 실려야 제대로 인정을 받습니다.

항상 판단의 척도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여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철썩같이 신봉하며, 그 수입산 척도를 가지고 만물을 평가하고 만사를 판단하고 있으면서 그 사실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경우가 보통힌 듯 합니다.

한국의 고유성은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앞에 섰을 때 스스로를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고유한 무엇으로 규정하기 위해 다급히 호출되는 무엇입니다. 이런 사정에서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 아름다운 한복, 반만년 역사, 뭐 이런 것들이 불려나옵니다.

저는 꽤 오래 전부터 나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시달려 왔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내가 나를 정체화한 사회 (한국) 에서 고유하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입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난관을 돌파할 방법으로 찾아낸 것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는 대신 그저 인간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실상 자신을 특정하게 정체화하기를 단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체성을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려는 경향을 꺾는 것이 어떤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나' 라는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고유한 특성, 또는 어떤 집단의 고유한 특성은 정체성을 망각했을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꽤 흥하고 있는 한복 브랜드 '리슬' 의 대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한복을 좋아하고 한복을 어레인지해 옷을 만드는 이유는 그냥 그게 예뻐서라고요. 우리 민족의 옷이니까 사랑하고 가꾸어야한다,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예뻐서 좋다는 겁니다.

다른 나라와의 변별성을 통해서만 정립 가능한 것이 국가로서의 정체성이고, 한복이 흔히 이런 사정에서 "우리 나라의", "우리 민족의" 옷으로 호명되어 끌려나올 때, 사람들의 실생활을 살펴보면 그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하다는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서양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아! 아름다운 우리 한복!" 이라고 말을 하죠. 바로 이 장면에서 민족성이나 국가적 정체성의 도착(倒錯)적 전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전도가 바로잡아 지는 건 그냥 예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그렇게 행동한 바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화되어 한국의 특성으로 드러나게 될 때겠지요. 지금 한국의 특성은 청조 초기 조선의 실정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나 자유시장경제라는 경제 체제도 고유한 것이 아닙니다. 미적 감각 (입고다니는 옷) 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판단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고, 어떤 것들은 한국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져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도 사랑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나, 음악 중에 그런 것들이 좀 있지요. 이걸 또다시 "반만년 역사" 나 "가장 뛰어난 문자 한글" 을 호출하듯 호출하는 경향도 여전합니다만... ㅎㅎ

글이 좀 산만해졌습니다만, 정리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힘있는 국가나 힘있는 문화권의 판단 척도를 받아들여 그에 따르며 살고, 자신들이 동경하는 힘있는 문화와 닮고자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그들과 다른 사람, 조선인-한국인으로 정체화하기를 그만두지는 못하며, 그 때문에 가끔씩은 자신의 고유성을 되찾으려고 골동품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뭔가 그럴싸 한 것들 꺼내들게 되더라도 이내 그것을 힘있는 타자, 즉 조선의 중국이나 오늘날 한국인들의 "외국인" 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안심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2-19 (월) 09:20 1일전 추천추천 1 반대 0
주의깊게 읽고 이렇게 정성들여 댓글도 달아주시는 분이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제가 아직 이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관계로, 나중에 또 뭔가 쓰고싶은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또 끄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2-17 (토) 09:38 3일전
안녕하세요 먹통님. 편안한 토요일 아침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이 글을 오늘 아침에야 발견해서 읽었습니다. 먹통님은 산만해졌다 하셨지만 저에게는 대단히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읽혔습니다. 덕분에 차근차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반성적 자각이 있다는 것을 안지는 오래되었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질 것이라 쉽게 생각했지 아직까지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본문에 정성것 붙여 두신 유툽 캡쳐사진들을 봐도 그렇고, 한국 텔레비젼 예능프로에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진 것을 봐도 그렇고, 무언가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 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개인의 고유한 특성, 또는 어떤 집단의 고유한 특성은 정체성을 망각했을 때 비로소 형성"된다는 역설에서 마음 속에 탁구공 하나가 핑퐁거리며 왔다갔다 합니다. '망각'이 존재하지 않음 뜻하진 않찮습니까.

... ... ... ... 그렇군요. 이 글은 그저 서막에 불과한 것이로군요.

(사실은, 이 글 이전에 아주 긴 논문 올리셨다가 내리신 것 기억합니다. 다음에 기회 있으실 때 다시 소개해 주십시오^^)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2-19 (월) 09:20 1일전
베플로 선택된 게시물입니다.
주의깊게 읽고 이렇게 정성들여 댓글도 달아주시는 분이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 제가 아직 이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관계로, 나중에 또 뭔가 쓰고싶은 것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또 끄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2-19 (월) 13:15 1일전
아! 내 정체성을 자각했어! 앗, 그러면 와해돼. 망각했어. 앗! 자각했어! 아니야.. 와해돼. 자각했어. 엇 이건 내가 아니야. 아! 발견. 아니야!

6월 31일까지 마감입니다.

완성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꼭 남겨 주세요 ㅎㅎㅎ.

가자 산쵸 판자! 지구를 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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