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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없는 인간 되기   

이 글 (뿌리없는 인간) 과 연관되어 쓰인 글입니다: http://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forum&wr_id=99598&page=3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정체성 찾기라고 하면 보통은 나를 규정할 수 있는 어떤 “말”을 찾게 됩니다. 예컨대 경찰, 기술자 등과 같은 직업들도 하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텐데, 이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직업을 가리키는 “말” 로 지시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나는 채식주의자다”, “나는 민주주의자다”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을텐데, 이런 것도 자신을 어떤 “말” 로 가리키려는 시도입니다. 정체성이란 결국 ‘말로 붙들어낸 나’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뿌리” 를 찾는 것도 결국은 정체성 찾기의 일종입니다. 이 맥락에서 뿌리가 의미하는 바는 자신이 유래한 근원 같은 것이겠지요. 인터넷에서 “나의 뿌리를 찾아서” 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족보 데이터베이스 사이트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게 뿌리의 한 예겠지요. 이 경우 나는 김해 김씨다, 안동 김씨다, 뭐 그런 것이 나의 정체성으로 불려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뿌리 찾기라는 주제로 인터넷을 뒤적이다보면 또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민족적 뿌리 찾기 같은 것입니다. 단군신화 같은 것이 주로 불려 나옵니다. 이 경우에는 “나는 누구인가?” “단군의 자손이다” 와 같은 식으로 정체성 찾기, 다른 말로는 ‘말로 나를 포착하기’ 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시하는 여러가지 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 언급한 직업, 성씨, 민족 부터 취미, 정치적 신념 등등 여러가지 영역에서 스스로를 정체화 할 수 있겠지요.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나라에 따른 정체성입니다. “나는 한국인이다” 와 같은 것 말입니다.

평소에는 굳이 “나는 한국인이야” 라고 되뇌면서 살지 않으니까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정체성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아주 친한 일본인 친구가 하나 있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이 친구와 독도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내면화한 사람들에게는 —즉,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그 상황이 아주 불편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불편할까요? 그 친했던 친구를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을 만큼 내가 한국인이고 한국의 이익을 지키는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 친구 사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충돌을 일으켜 불편해 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래도 그나마 부드러운 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목숨까지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된다면? 많은 남자들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군으로서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참전 의무를 짊어지는 쪽을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해타산에 따라 참전하는 게 아닙니다. 국가의 이익이 어떻든 간에 내가 죽으면 끝인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죽어도 한국이 존재할 수 있다면 내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정체성은 단지 나를 가리키는 말에 불과한 것이지만 내 존재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은 극적인 상황이 찾아와야 비로소 그 강대한 영향력을 드러낼 뿐 평소에는 잘 느낄 수 없지만 말입니다.

위에 링크한 예전 글에서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들이 증명하는, 한국인들의 “외국인” 들로 부터의 인정에 대한 열망 또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한국인이라는 말로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거기에 더해 “외국” 을 동경하는 마음, 외국인들을 국적에 따라 정체화하여 동경하는 “외국” 의 현신인 “외국인” 으로 이해하는 사고 방식 등등의 여러가지 요인들이 추가적으로 작용하겠지요.)

우리 인간의 세계 인식은 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 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합니다. 예컨대 고대에는 비를 내리는 신이나 태양을 끌고 다니는 신 따위의 이야기를 도입해 세계를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이해-설명입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러한 설명-이해를 통해 세계를 보고 있습니다. 이 이해는 “말” 로 이루어진 이해입니다. “세계는 이러저러한 거야” 라고 “말” 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말로써 재현된 세계가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또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말” 로써 포착해 내는, 지시하는 나 자신도 이 세계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야” 라는 설명도 세계에 대한 설명-이해의 한 부분,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나” 의 안에 갇혀 평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나 자신이야말로 세계 인식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정체성의 무지막지한 위력이 생겨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어떤 특정한 말로 설명하고, 그 설명이 그럭저럭 내 마음에 들고, 그래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단단히 안착하게 되면 그것을 버리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됩니다.

그것은 그저 “말” 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허나 어쩌면 우리에겐 그 “말” 이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 외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걸 수도 있지요. 그게 사실 아무 것도 아니며, 거기엔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이런 저런 “말” 들로 만들어진 장막이 그 빈 곳을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대면한 후라면 조금은 쉽게 “말” 을 꼭 틀어쥔 그 손을 놓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 후에는 거기에 있는 것,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결국 “말” 뿐이라는 사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말을 고를 지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된다는 점이 차이를 만들 겁니다.

가끔 우리는 마냥 질기고 튼튼해 보이는 그 말의 장막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아주 잘 알려진 좋은 예는 “나는 거짓말쟁이요” 라는 진술의 역설입니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해서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테면 누군가가 사탕을 열심히 집어 먹으면서 “나는 사탕을 안 먹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의 헛됨이 잘 드러납니다. 조금 더 드라마틱한 예를 들자면 바람을 피우면서 배우자에게 전화해 “널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경우를 떠올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말이 그저 말일 뿐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정 반대의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말 한마디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이 있지요. 어떤 남녀 한 쌍이 서로 아무리 자주 만나고 사이가 좋고 호감을 갖고있고 심지어 동침도 한다고 해도 그 중 한 사람은 (뭐 두 사람 모두일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엔 문제가 생길 일이 없으니) 상대방이 “우리는 사귀는 사이야” 라고 확실하게 말 해 주는 게 너무나 중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는 그 ‘단지 말일 뿐인 말’ 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관계는 고정되지 못하고 부유할 뿐입니다. 물리적 현실이 아무리 명백한 듯 해 보여도 그 한 마디 말이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명백하지 않습니다.

조금 농담처럼 들리는 표현입니다만, 이렇듯 그저 말 뿐인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어떤 말을 할 지, 어떤 말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 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일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정체성, 특히 나라에 따른 정체성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하게 자신의 자유를 의식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한국인이라는 말로 가리키기로 결정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무비판적으로 배어든 습관에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이 습관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추겨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대다수는 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정체화하고 한국의 이익에 —한국의 이익이 정확히 누구의 이익인지를 숙고해 보라는 권고는 받아보지 못한 채— 복무할 것을 장려하는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 “이야기” 들은 우리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의 세계는 물질적인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말” 을 통해 재현된, 이야기로 구성된 세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은 이야기들을 엮어 세계를 이해-형성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유일하고 당연한, 진짜 세계라고 철썩같이 믿게 됩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삶의 어느 시점에선가 한 번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겨야 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말로 구축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내겐 어떤 말-설명을 선택할 지, 즉 어떤 세계를 내 세계로 삼을 지 결정할 자유가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한 계기와 시간을 확보하고 나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말들, 어떤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들이라도 결국은 “우리 할머니가 그랬는데, 해가 비추면서 비가 오는 날은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래” 같은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한 번쯤은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건 기존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경험일테니까요.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차분하게 세계를 구축하고 있던 말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게 되면 좀더 넓은 시야, 세계에 대한 좀더 낫고 좀더 큰 이해, 그리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나무가 자기가 서 있는 상태가 위태로운 듯 하여 자신에게 든든한 뿌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컴컴한 지하를 더듬어 나가다가 뿌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놀라 혼비백산 하지만, 뿌리가 없음을 알게 된 덕에 이내 한 군데 붙박혀 있는 대신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런 우화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3-30 (금) 12:43 24일전
님의 방식은 귀납법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저는 연역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온고이지신> 이라는 말이 저에게 좀 중요한 역할을 하죠. 옛 성인의 말을 음미하고 그 뜻을 깨달으려는 다시말해 그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그 성인들의 말씀을 음미하면 그들이 전하고 싶은 마음을 만나는 것이죠.

거기에 비해 님은 역으로 추적중이에요. 자신이 지금까지 알았던 세계를 다 부정하고 의심하고 자기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죠. 자신만의 체계를 아래서부터 하나씩 만들고있는 것이죠. 그 추적과정이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언어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하고, 자의식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것은 정공법입니다. 가는 방향이 좋아요.

온고이지신이 좋은 것은 이정표를 가지고 길을 간다는 것이고,

님의 방법은 어찌보면 <모 아니면 도다> 같은 더 큰 모험입니다. 더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만, 그러한 방식은 많은 이들이 실패합니다. 다만 그 길에 무식하게 표현해서 수십년의 노력이 가미되어야 그 과실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때는 더 큰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님 스스로가 바로 아는 나가 됩니다.  소위 깨달음 상태가 될 여정에 있는 것입니다. 언어의 감옥을 빠져 나오는 것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또 생각할 것은 <생각>입니다. 사실 언어라는 것은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생각이 없으면 언어가 없습니다. 언어와 생각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순차적으로 보면
1. 추상화/명제화 된 언어 사용하는 것을 피한다.
2.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3. 생각없이 사물을 본다
4. 무심에 들어간다

사실 2.3.4번은 거의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님은 귀납법이 깨집니다. 어떤 이정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또 다른 선입견을 만듭니다. 이 문제 때문에 선불교에서는 글을 멀리하라고 극도로 경계합니다. 하지만 인도불교에서 팔정도를 보면 바른 견해를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른 견해에 기반하여 언어를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3-30 (금) 13:29 24일전
세상은 노는 물이 2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언어를 벗어난 세계와 언어속의 세계입니다.

첫 번째 세계에서는 불교와 노장철학이 있구요.
기독교와 유교에서는 극에 이르면 첫번째 세계와 통합니다.

우리는 두번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언어를 극복하지 못하는 자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공자의 정명론은 언어로 구성된 세계를 인정하고 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시작점입니다.

정체성으로 말한다면 언어를 초월한 세계에서는 바로 진인, 대장부,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거짓된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야 진정한 우리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이게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몸이 나의 정체성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게 님들하고 아무 상관없을것 같죠?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한 윤회 세계의 죄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마왕이요,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루시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니체철학의 영원 회귀에 대한 그의 대답은 하나님과 맞짱 뜨겠다 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마왕의 지배하에 그 주민으로서 잘 살아보겠다입니다.

자신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인 하나님의 아들의 회복이 아니라 루시퍼의 지배하에 있겠다는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는 그런 현대철학에 전염되어 있습니다.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4 (수) 08:46 19일전
그런데 왜 예전에는 성리학적 질서의 부활을 강변하셨습니까.

(벌집을 건드린 겐가...)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4 (수) 17:28 19일전
유교가 극에 이르면 첫번째 세계와 관계합니다. 그 방향이 성리학과 심학/양명학입니다. 지금 세상의 혼돈은 구체제를 무너트리고 근대서양의 철학과 사상으로 신체제를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구체제는 반석위에 지은 집이요, 신체제는 모래위에 지은 집입니다.

구체제중 모든 것들이 다 가합니다. 그렇지만 불교나 기독교를 기본으로 하자 하거나, 노장철학이 국가기본철학으로 하기에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기가 좀 뭐하잖아요. 만만한 유교가 낫지.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4 (수) 17:42 19일전
그럼 유교가 한번이라도 극에 이르러 첫번째 세계를 구현한 적 있었습니까?

실용성을 고려해 노장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유교보다는 더 직접적인 기독교를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먹통님의 '뿌리'이야기는 각 개인이 깨닫기만 하면 그 삶에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베벙님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여, 베벙님의 생각이 닿는 방식이 좀 궁금해졌습니다.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4 (수) 18:04 19일전
참된 선비는 목에 사무라이의 칼이 들어와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첫번째 세계에 있습니다.그는 빈한과 곤궁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언어를 초월한 세계를 맛보고 그 안에 있으면 그게 바로 참된 인간성 회복입니다. 유교의 심성론에 깊이 이르면 그렇게 됩니다. 도학과 불학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공자가 말한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를 깨닫는 상태입니다. 나를 알고 도에 이르면, 그것이 세계를 구현하는 것을 압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혁명입니다. 세상은 사실 나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기독교를 택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요새 하도 기독교를 개독이라 하고, 먹사라 그래서 면목이 안서죠. 염치가 없는 것이죠.  전 그 대안으로 기독교 2.0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현 기독교의 기존 대형목사의 행태를 기독교 우파로 보구요, 민중신학이나 향린교회 김보라 목사가 행하는 동성애 지지설교 방식을 기독교 좌파로 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이파나 사두개이는 그 기준으로 보면 우파이구요, 열심당원은 좌파입니다.
 
기독교 좌파와 우파를 극복하고 예수님파로 복귀하고 동양의 가르침과 대화를 하자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또한 동양종교와의 대화가 종교다원이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교리에 하나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식입니다.

성서의 기본 언어나 세계관은 고대 플라톤/신플라톤철학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예/Logos. 중국문화권은 도(道) 를 중심으로 언어를 확장 발달 시켜 나갔죠. 서로의 세계관에서 배울 부분이 있더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게 기독교 2.0입니다.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5 (목) 14:15 18일전
그렇다면 베벙님께서는 모든 철학을 통섭하는 기독교2.0의 도를 깨달으셔서 사무라이가  칼을 날려도 미동조차 하지 않을 태산이 되어 독야청정 살아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베를린리포트같은 조그마한 귀퉁이에서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사람들에게 "이런 것 모르시죠?"라며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시는 수고는 어인 일입니까?

혹, 기독교2.0으로 복음을 전파하려시는 것입니까?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5 (목) 15:59 18일전
전 지난 번 아래  동호회 모집 글에 심리상담 관련 모집 글을 올렸습니다. 2-3달 간격으로 2번의 글을 올렸는데, 올릴때 마다 베리에 상주하는 선비님들이 간섭하시고 판을 깨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지난 2월 10일간 한국방문때 오늘의 유머에 비슷한 글을 올려 상담관련 2분과 전화로 통화한 적도 있었는데, 오유에서 아무도 제 글에 이의 달고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베리에는 글을 올리는 데 방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전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아예 자유투고에 진입하게 된 것이죠.

친절한 시선님도 아직 제 글을 이해를 못하시는지, 안하시는 지 모르겠지만 전 정부를 비난한 일이 없어요. 여기에 상주하시는 자칭 선비님들에게 시달려서 한번 전면에 나섯을 뿐이에요.

도학이념으로 현 시스템의 문제를 극복하자가 기본생각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는 기독교 2.0은 거기에 맞는 변화이어야 되겠다는 것이구요.

전 베리에 글 올릴 이유는 없어요. 제가 유투브 계정으로 유투브에서 활동할 계획이니까요. 다만 필요한 인력이나 회원들을 모집할 필요는 있을 뿐이구요.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6 (금) 12:52 17일전
수고하십쇼~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2 (월) 14:00 21일전
안녕하세요 먹통님.

'빌려온 말', '뿌리없는 인간 되기' 연작 정말 진지하고 흥미가득히 읽었습니다. 이야기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개인 각자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특히 좋았습니다. '생각 틀'이라고 정의해 주신 부분도 저는 '뿌리'와 함께 연결해서 매우 명징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생각 틀은 생각과 틀이라는 두 빌린 말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이 조합되어 어떤 의미를 지정하게 되는 모습은 충분히 창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먹통님은 굳이 강조하지 않았지만 행간에서 님의 바람을 읽었습니다. 님이 체험하신 경험을 선한 마음으로 타인과 나누어서 그들도 님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을 꼭 한 번 경험해 보길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아, 이 사람은 계몽주의자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구나.'

뿌리가 있는 줄 알고 박혀 살다가 뿌리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음을 발견하고 자유롭게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진부할 수도 있는데, 새로운 깨우침이란 습자지(20세기 인간들은 기억하는 그 얄부리한 종이 ^^) 한 장 정도의 두께를 두고 바로 그 진부함 너머에 존재하는 터라, 먹통님이 말씀하시는 뿌리와 생각 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파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쉽게 들고다니는 수첩을 뒤에서부터 펼치면 일종의 사명노트가 됩니다. 거의 매일 아침에 펼쳐 보는데 이렇게 써 놨습니다. 첫장에는 "니 겔국 죽는데이.(언젠가는 죽는다.)", 둘째장에는 "니, 밥 문나.(가장 나에게 가깝고 말초적인 욕구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다가...-_-)"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뭔가 애쓰는 모습이 먹통님의 방식이랑 통하는 바가 있지요 ^^? 

먹통님 글을 다 읽고 의미심장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모든 것을.' 1992년에 발간된 양귀자 소설 제목인데 아마 먹통님 잘 알고 계실 듯합니다. 이 말을 빌려와 아래와같이 좀 더 확장해 보려 합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모든 것을. 요령 것.'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12:18 20일전
제가 쓴 것보다 더 많은 걸 읽어내신 것 같습니다. :) (따봉)

딱히 그런 선한 마음으로 쓴 건 아니었지만 ㅎㅎ 좋게 받아들여진다면 저야 좋지요. 계몽주의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 것 같은 인상은 아마 제가 요즘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자, (말 살펴보기의 연장선에서) 말함과 생각함에 있어 소탈해지자' 를 모토로 삼고 있어서 풍겨진 것 아니려나 싶습니다.

수첩의 글귀 이야기는 귀감이 되네요. ㅎㅎ

말씀하신 소설은 아쉽게도 제가 모르는 것인데요, 나중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모든 것을" 이란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15:15 20일전
따봉 ㅎㅎㅎㅎ 역시 20세기 인간 ! (죠아라 ㅎㅎㅎ).

본문 내용이 갖고 있는 도발성에 비해 먹통님이 말하시는 태도는 매우 허허롭군요. 두 글을 상당히 길게 쓰신 것 보면 먹통님이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다는 뜻일텐데 다 읽고나면 어조에 취했는지 저도 따라 뭔가 헐렝~ 흐느적~ 해요.

이것은 놀라운 기술?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6 (금) 09:54 17일전
"두 글을 상당히 길게 쓰신 것 보면 먹통님이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다는 뜻일텐데"

맞아요 그 열망이 어디서 비롯된 건지 이해해 내는 것도 추후 해결해야 할 제 과제로 보고 있습니당... ㅎㅎ 일단은 사람들이 흔히 뭔가 경험한 걸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평범한 충동이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선에서 멈춰 있어요 ㅎㅎ
                    
                    
 
 
친절한시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6 (금) 12:50 17일전
조금 입체적으로 보면, 그 평범한 충동이란 것도 사람마다 세기가 다른 것 같아요. 존재의 열기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혜강 최한기가 쓴 '기학'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최한기 선생은 삶의 모습을 '활동운화'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더라구요. 평범한 이들 빌린 네 글자의 조합이 제겐 매우 쌈박했는데, 지금 먹통님께서는 그 활동운화의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쏘시개를 쑤셔 넣을 듯 말 듯 하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심정입니다. 더군다나 그 아궁이가 지금까지 내 안에서 나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글쎄...

먹통님 글을 읽고 생기는 정서적 현상들이 이렇습니다 ㅎㅎㅎ.
 
 
williwib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00:01 21일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 말로서 "어떤 세계를 내 세계로 삼을 지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뿌리없다는 말씀도 저에겐 크나큰 위로가 되네요. 왜냐면 나만 뿌리가 없는걸까 하면서 외로울 때도 있어서요.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12:19 20일전
제 글이 위로가 되었다니 뿌듯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고 마음이 내키시면 어떤 경위로 본인에게 뿌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시게 되었는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호프만복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10:18 20일전
흥미롭게 읽었어요! 글 감사합니다 ^^

자율적으로 뿌리없는 인간이 되는것이 쉽지는 않을것 같다고 생각해요.
부득이하게 여러 문화를 거쳐가며 성장한 사람의 경우 비자율적으로 뿌리없는 인간이 되기도 하는데 그게 항상 좋은 느낌은 아니거든요.

그점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좋은 말씀 같아요 :)
     
     
 
 
먹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3 (화) 12:20 20일전
성장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고충을 크게 겪는 것 같습니다. 역시 생각할 시간이 최고죠. 가능하다면 평생 갖고싶은 마음입니다 xD
 
 
베를린벙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8-04-04 (수) 17:36 19일전
1번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2번 물은 물이 아니요 산은 산이 아니다.
3번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언어는 3번에서 놀아야 합니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 남자의 여자입니다. 이게 불편하지 않고 긍정될때, 삶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때 그 때는 다시 돌아와 집에 머무릅니다. 이 때는 언어 밖에 있으면서 언어 속에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제제기로 머물때는 주화입마 상태입니다. 1번을 깨트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2번에만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체성 혼란은 아주 조심해야 할 주제입니다. 이게 정신병으로 가는 선상에 있습니다. 훈련된 자라면 정체성을 아예 두지 않는 방향이 좋은데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주공산이라고 주인없는 집에 찾아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으로 오는 것들, 다른 생각들에 내가 점령당합니다. 포로가 됩니다.

정체성을 포기하면 바로 전체입니다. 소위 >나의 자의식을 포기하니 전부를 얻는다.<

그래서 제가 만나 본 몇몇 조현증 증상의 친구들은 신비체험을 합니다. 자신이 사라졌을때 흥미로운 체험등을 합니다. 문제는 지혜와 깨끗한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고 전체로 채워나가야 하는 데, 그들은 그럴 힘이 없어서 그런 경험으로만 그칩니다. 정체성 혼란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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