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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사]

우리는 어떻게 사나 5(결) -80년대

글쓴이 : 김순환  (80.♡.54.247) 날짜 : 2002-03-14 (목) 00:45 조회 : 6067
우리 독일 민주교포들은 독일과 세계언론에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만행을 고발하고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한복판에 있는 독일교회에서 사흘동안 단식투쟁을 벌였습니다. 독일교회가 외국인들의 정치적 문제로 단식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독일교회 역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단식데모는 김대중 구출운동 이래 독일의 여론에 대폭적으로 그리고 심각하게 반영되었습니다.

동독에는 이북대사관이, 서독에는 이남대사관이 주재하고 있다는 현상은 우리나라 분단모순이 독일 땅에서도 여전히 보여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분단독일은 벌써 과거가 되고 말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사는 우리들은 독일과 우리나라 분단상황을 비교하고 자극을 받는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독일은 분단국가로서 마땅히 분단을 감수해야 하는데도 동, 서쪽에서 사는 독일인들은 서로를 잊지 않고 방문하고 있습니다. 항상 연락을 하면서 동족이라는 것을 잠시도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서로 자매관계를 맺고 자주 왕래하면서 화해의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양정부는 가능한 한 통상을 확대하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주기도 했습니다. 외세에 의한 분단도 이념적 긴장도 독일민족은 하나라는 자기의식을 잠시도 상실케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분단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서로 방문하는 것을 아직도 가장 중한 범죄로 처벌받고 있지요. 우리는 서로 친척이 살아 있는지 알지도 못하지요. 우리는 이렇게 해서 동족이라는 감정마저 없어지고 서로 완전히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분단의 48년을 오직 우리자신의 수치와 책임만으로 자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책에서 살던 우리는 독일교포 기독교인 몇몇 사람들과 1980년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약칭 기통회)를 발족하고 이북의 동포들과 만나 민족의 화해를 시작했습니다. 기통회는 자기의 목적과 실행목표를 다음과 같이 강령에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종살이에서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출애굽 20:1)과 가진 자와 억눌린 자들을 풀어놓는 예수의 복음(마태오 25:31)에 근거하여 외세에서 해방, 자주하는 것을 기독자의 과제로 한다.

둘째, 그리스도의 평화는 원수관계에 있는 인간들 사이에 화해를 조성하며, 남북통일의 전진적 발전을 저해하는 반공태도를 고치고 화해와 조국통일에 적극 협력한다.

셋째, 제 3세계의 신학과 같이 토론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통일과정에 기여할 것이다.

넷째, 남북간에 깔려 있는 불신, 오해, 반목을 초래하는 악감정과 사상을 극복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남북의 사상, 신앙, 문화교류를 촉진한다.

그때는 반공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 통일의 통자도 말할 수 없는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기통회는 해외에서만이 가능할 수 있는 통일운동이라고 의식하면서 1981년 5월 기통의 대표 세사람이 이북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하여 평양을 찾아 갔습니다.

형님! 금단의 이북을 방문한 우리 기독자들의 작은 시도는 큰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연대해서 같이 운동하던 다른 단체들은 우리의 연합운동을 거부하였습니다. 빨갱이로 몰아가는 전두환 독재정권의 상투적 모략에는 반독재운동하는 단체들도 항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북을 다녀온 후 어느날 제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길 저평에서 걸어 나오던 한 교포여성은 나를 보자 무섭게 딴 길로 빠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살던 곳에는 교포가 약 400명이나 살고 있었는데 집밖에 나가면 으례 교포 한두사람을 만나게 되었지만 나를 쳐다봐도 빨갱이 물이 든다고 할 정도로 공포증에 사로잡혀 왔던 것이 그 당시 우리 교포 일반의 상태였습니다.

1981년 6월 평양에서 이북 기독교도연맹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우리는 그해 11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제 1차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대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제 1차 통일대회는 '기통회'가 주최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82년 12월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모였습니다. '제 3차 통일대회'는 84년 비엔나에서 공동주최로 거행되었습니다.

기통회가 이북의 기독자들과 통일대회를 개최한 후 세계기독교 교회연합회는 일본 도잔소에서 84년 '극동의 평화와 정의문제 긴급대회'를 선행하여 86년에는 40년이상 두절되어 있던 남북기독교회 대표자들의 상봉을  스위스 글리온에서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형님도 짐작하시겠지만 우리 해외기독자들의 통일개척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아직도 엄두를 내지 못할 때 남북기독자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을 했다고 확신했습니다. 88년 드디어 남북기독교회의 직접적 대화가 스위스에서 실현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다리놓는 역할이 열매를 거두었다고 기쁘게 생각하였으며, 고독한 해외교포 통일운동을 더욱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해외기독자들의 통일대화계획을 아직도 냉전논리로서 싸잡아 빨갱이니 용공분자들이니 하면서 모든 역사적 작업을 땅밑에 묻어 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형님! 아직도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반세기가 되도록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물로서 통일을 이룰 수 없지만 눈물없이 보낼 수 없는 반세기 분단역사와 앞날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무성한 경제구조로 파생되는 노동자, 농민들의 농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의 인권회복, 비리에 민감한 학생들의 과감한 시위농성, 이와 같은 긴급하고 절실한 민중의 외침을 기독자들은 외면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합하여 뭉치게 되면 통일조국은 물론 하나님 나라는 우리것이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문민정권의 김영삼 대통령은 기독교회 장로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주인이 되는 국민의 대통령의 책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제끼는 용감한 통일정책을 김대통령에게 기대합니다.

형님! 독일에서 사는 우리 교포 민주통일운동 30년사를 짧은 지면에 다 언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실 줄 압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다 보니 매우 두서없는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38년을 독일에 살면서 본 사회현상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앞으로 기회있을 때마다 또 이야기를 나누지요.

(1993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34,35호)

 
 
해외입양인 (218.♡.180.139) 2003-02-24 (월) 03:12
통일의 주체는 기아 문제의 해결에 있읍니다..(해외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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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 (217.♡.235.243) 2002-10-11 (금) 22:06
황 주필님 연혁을 보았습니다.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이 개명을 했으면 언제부터 라는것 쯤은 알아야 하는데 연합회는 몇번을 문의를 해도
모르쇠로 일관 하기에 봇짐지고 찾아나섰지요
의문되는것은 1979년 15대때 부터 연합회라 했는데 후 15년후 임총부터 연합회라 정관
개정을 했다고 되었으니 어디에 기준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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