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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런던의 다이애나 추모행렬 - 나는 파파라치와 당신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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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4,542회 작성일 01-09-04 22:04

본문

곤히 자는 새벽에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모방송국 독일지국이다. 다이내나가 죽었단다. 카메라맨이 한국에 귀국중이니 대신 짐을 싸란다. 이래서 느닷없이 영국런던엘 가게 되었다.

런던엔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규모가 거의 맞먹는 Heathrow 공항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내린 곳은 영국 남동쪽 작은 공항이었다. 그 공항이름은 잊어버렸다. 워낙 바삐 서두르다 보니 공항이름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내가 렌트차를 몰게 되었다.

영국에서 한번 차를 몰아 본 사람이 낫겠지하고 내게 차를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또 달랐다. 이전에는 독일차를 끌고 운전을 했다. 비록 차선이 햇갈려 여러번 죽을 뻔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왼쪽에 앉아 운전을 했기 때문에 더 적응하기가 쉬웠다. 처음 BMW 디젤차를 끌고 도버에 내려 보니 적응할 시간도 안주고 바로 로타리가 나타났다. 나는 차마 로타리를 들어설 용기가 안났다. 차들이 거꾸로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자 다른쪽 도로의 운전자가 내가 우선이라고 신호를 해왔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하고 로타리를 들어섰다. 들어오기는 들어왔는데 다시 로타리를 빠져 나갈 때도 햇갈렸다. 길을 잘못 들어 거꾸로 주행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사람을 독일사람들은 '유령운전자'라고 부른다. 죽을려고 용을 쓴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아직 죽기 싫다. 다행히 꾸물거리는 사이 차가 한대 앞서 갔다. 그 차를 얼른 쫓아갔다.

조금 몰다 보니 금새 적응이 되긴 했지만 몇번의 위기가 있었다. 외진 길에서 길을 잘못들어 옆 인가로 들어섰다가 차를 돌려나오면서 그만 차선을 바꾼 적이 있다. 길에 다른 차들이 다니고 있었으면 쉽게 실수를 눈치챘을 텐데 외진 길이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속도를 냈다. 그러다 커브길에서 별안간 같은 차선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는 순간의 그 아찔함이란! 이런 착각을 하는 것은 영국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들이 대륙쪽으로 나와 운전을 하다 차선위반사고를 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도 건망증이 심한 나는 금새 잊어버리고 영국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냈다. 스톤헤지를 갔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날따라 주위차들이 열심히 속도를 내길래 아우토반으로 착각하고 같이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어느새 경찰이 따라와 헤드라이트를 바짝 켜면서 나를 노견으로 몰아 부쳤다. 잠복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같이 속도를 내던 친구들은 다 어디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영국경찰은 신사다웠다. 그들은 즉시 벌칙금을 요구하지 않고 통지서를 호텔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내가 일정한 숙소가 없다고 우기자, 그들은 한번만 더 속도 내다 잡히면 그땐 "go to prison"이라면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 하더니 그냥 보내주었다. 나는 영국신사들은 어딘지 모르게 싱거운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경찰도 아닌게 아니라 참 싱겁다. 아마도 내가 얄짤없는 독종 독일사람들 틈속에서 살다가, 갑자기 젠틀한 사람들을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쨌든 이번 런던방문에서는 오른쪽에서 차를 몰게 됐다. 열심히 왼손으로 기아를 넣으면서 버킹엄궁전앞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인산인해였고 경찰이 차의 진입을 막았다. 런던은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주차비도 무지막지하게 비쌌다. 불법주차는 어느새 견인되고 만다. 정말 누가 런던에 차를 갖고 가겠다면 말리고 싶다.

여왕이 사는 버킹엄궁전앞엔 추모의 꽃다발들이 수북했다. 하도 사람들이 많아서 헌화하기 위해서도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런던시민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다이애나팬들은 다 몰려온 듯 싶었다. 인터뷰를 한 한 홍콩인은 그동안 자신이 수집해온 다이애나 사진 수십장을 액자를 해 가지고 나왔다. 사람이 많기는 찰스왕자가 사는 제임스궁전쪽도 마찬가지였다. 두 궁전은 얼마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양쪽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카메라를 돌려 댔다.

일을 마치고 밤에 다시한번 궁전을 찾아야 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광장에 사람들이 가지 않고 밤늦게 까지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밤에는 꽃만이 아니라 촛불이 밝혀져 있어 숙연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밤이라 낮과는 달리 조명을 달고 찍자니 사람들이 금새 카메라를 의식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가 어려웠다. 기자들을 보는 눈초리도 그리 곱지 않았다. 취재에 비협조적인 분위기였다. 조금은 그런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될 수 있으면 방해를 하지 않고 찍을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별안간 촬영를 하고 있는 나를 확 밀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무게중심을 잃고 하마터면 그 비싼 방송용 ENG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30대중반의 여자다. 술을 한잔 했는지, 아니면 흥분을 했는지 얼굴이 홍조를 띄고 있었고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다. 내가 어이 없어 하는 중에 여자는 다짜고짜로 내게 꺼지라고 하면서 욕설을 퍼부어댔다. 내 딴엔 점잖게 왜 그러느냐고 한마디하자 여자는 더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 여자! 가만히 보니 지금 자신의 울분을 터뜨릴 대상이 필요한 모양이다. 내가 그 희생양으로 선택된 셈이다. 실성한 여자가 마구 주어섬기는 영어를 다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파파라치 운운하는 대목만큼은 분명히 들려왔다. 다이애너를 쫓는 동양인 파파라치라니?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라도. 내 참 기가 막혀서.

다이애나가 영국에선 돈이 된다. 하지만 한국에선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 스타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게 아니다. 솔직히 당신같은 극렬팬들 때문에 파파라치들이 먹고 사는거 아닌가. 다이애나를 무관심하게 놔두지 못한 이유가 뭔가? 남의 사생활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가. 타인의 죽음에 그토록 울고 불고 하는 당신의 정체! 거룩한 성인인가 아니면 다이애나를 죽인 공범자인가. 당신의 그 비정상적인 애정과 증오가 다이애나를 죽인 것이다. 죽어도 당신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겠지만. 계속 그 알량한 눈물을 흘려대겠지만. 입으로는 쉴새없이 파파라치를 성토하겠지만. 제발 당신 주위의 진정으로 소외받는 이웃들의 불행을 위해 그 눈물을 아껴 두시라!

이렇게 말해 줄 수은 당연히 없었다. 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아니다. 열심히는 했다. 어쨌거나 말은 해주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더듬더듬 말을 할라치면 그 여자가 말허리를 끊고 따따따따 쏘아댄다. 그리고 어차피 내말을 들을 기세도 아니다.내 어찌 당하랴! 그래도 한마디는 해주어야겠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말이

"아이 헤이트 파파라치 앤드 유!!!"

내 영어는 기특하게도 효력을 발휘했다. 그녀가 더 길길이 뛰는걸 보면. 나는 내가 내뱉은 말이 그 여자에게 먹혀들었다는 것이 기뻐서 "난 파파라치와 너를 증오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제는 거의 실성한 듯 여자가 내 가슴을 세게 쳤다. 정말이지 나는 폭력이 싫다. 비록 한국에서 학교에 침입한 찹새들을 자구책으로 할 수 없이 때려 뉜 전과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두고두고 진심으로 반성한다. 여자는 이제 아예 내게 몰매를 안길 기세다. 그러나 내가 여자에게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한대 꽉 쥐어박았으면 속은 시원하겠는데...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주위사람들이 여자를 잡고 제지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스틸카메라 기자가 다가와 내게 눈짓을 했다. "말이 안 통한다. 대꾸해봐야 소용없으니 자리를 피하라"는 충고였다. 이미 다른 기자들도 제법 수난을 당한듯 했다. 늦은 시각이라 술을 한잔씩 걸친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기자들을 백안시하고 취재를 방해하곤 했던 것이다. 드디어 순찰 돌던 경찰도 와서는 내게 이해하고 자리를 피해달란다. 이렇게 해서 런던에서의 날밤의 봉변은 막이 내렸다.

그러나 런던의 에피스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취재일정이 바뀌어 다시 급거 독일로 돌아가게 됐다. 비행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행기를 놓치면 하루를 더 묵어야 한다. 그런데 공항에서 런던에 들어올때는 런던표지만 보고 오면 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는데 갈 때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계속 길을 헤매다 할 수 없이 지도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주유소의 점원은 지도를 파는 것보다는 자신의 길지식을 과시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지도는 살 필요가 없다며 열심히 길을 가르쳐 주었다. 하도 자신있게 얘기하길래 그것을 믿은 것이 실수였다. 도중에 서너명에게 다시 길을 묻고 물어가면서 헤맸지만 점점 오리무중이 되었다. 어떻게 고속도로에 들어 섰는데 심지어 이젠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제 비행기시간을 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기적이 일어났다. 웬 남자가 헤드라이트를 켜면서 우리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도대체 또 무슨 봉변이 기다리는 것인가. 우리는 일단 길가에 차를 세웠다. 무슨 재주가 있는지 희안하게 그 남자는 우리가 길 잃고 헤맨다는 것을 눈치채고 도와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조건 자기만 쫓아오란다. 우리의 비행기시간이 급하다는 것을 아는 그는 엄청 빠른 속도로 앞장서서 달렸다. 꽁무니만 보고 몇번을 고속도로를 바꿨는지 모르겠다. 길이 어찌나 복잡하든지! 그는 우리를 공항에 인도해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경황이 없어 고맙다는 말도, 작별인사도 못했다. 그는 그렇게 불현듯 나타나서 불현듯 사라졌다. 우리는 마치 홀린 기분이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에 도착한 우리들은 다행히 비지니스급이기 때문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흡사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런던의 방문이 끝났다. 하도 모든게 번개불에 콩구워먹듯이 이루어져서 가끔은 내가 정말 런던을 다녀왔는지가 믿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꿈같은 런던방문이었다. 199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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