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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사는얘기 천연의 요새 라인강과 레마겐의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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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6,187회 작성일 01-09-04 22:01

본문

1999/01/30 조회수: 174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의 하나가 라인강변이다. 이 라인강변에서 가장 볼만한 구간은 코블렌쯔에서 마인쯔까지를 친다. 이 구간에는 50개가 넘는 성들이 있어 세계최대의 고성밀집도를 자랑한다. 이 고성들은 대개는 지나는 행상배들을 "죽을래, 아니면 통과세를 낼래"하고 위협하면서 벌어먹고 살았다. 그러나 15세기이래 대포가 생기면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성들도 쉽게 공략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그렇게 마음대로 설쳐대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통과세 수입이 줄어들고 나서 19세기가 되자 다시 세계에서 라인강의 낭만을 찾아 관광객들이 찾아 오면서 그 돌파구가 생겼다. 그 깡패들의 집이 19세기 이래 더도 없는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코블렌쯔-마인쯔 라인강구간의 중간쯤에 로렐라이가 있다. 이곳은 특히나 동양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조금은 어폐를 무릅쓴다면 그때문에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열사람의 프랑크푸르트시민에게 물어 물어도 도대체 어디있는지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괴테의 생가처럼.(자신있게 내게 괴테생가를 가르쳐주었던, 그래서 나를 안도시켰던, 내게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노인은 본의는 아니지만 사실은 틀리게 가르쳐 주었다.)

한결같이 로렐라이에 목매는 동양인들과는 달리 이곳 유럽인들은 라인강변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전혀 생소한 장소를 들곤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레마겐이다. 이 레마겐은 코블렌쯔에서 하류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본에 이르기 조금 못 미쳐 있는 아주 작은 마을 이다. 이곳은 2차대전때의 격전지이다.

이 마을의 라인강 우안쪽으론 로렐라이언덕과 비슷한 깍아지른 언덕이 있다. 이 절벽에는 특이하게 동굴이 있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님을 예감케 한다. 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한 숲을 뚫고 그 언덕에 오르면 너른 마당이 펼쳐진다. 2차대전참전용사들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이 언덕에 있는 술집을 많이 찾는다. 필자도 여름이면 이곳을 많이 찾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면서 전쟁때의 상황을 그려 보곤 했다. 개인적으론 이곳을 로렐라이보다 좋아한다. 약간은 아찔하지만 이 언덕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특이하게 아직도 다리교각이 두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 유명한 '레마겐의 철교'의 흔적이다.

레마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에게 레마겐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적어도 2차대전을 3개월정도 단축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이 주는 비중과 관계가 있다. 히틀러는 믿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하늘이 주신 천연의 방어선, 라인강!"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용의주도하게 각 다리하나에 5인조로 된 폭파전문팀까지 구성해 놓고 있었다. 다리만 부숴버리면 아무도 이 강을 넘어 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이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마침내 이 히든카트를 사용한다.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든 라인강 다리를 폭파하라!"

일은 히틀러의 명령대로 착착 진행됐다. 레마겐의 철교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은 5인조의 폭파팀도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폭파 단추를 누르는 순간, 레마겐의 철교는 하늘로 붕떠 올랐다. 폭파팀은 안도했다. 이제 우리는 임무를 완수했다.

그러나 아뿔싸, 그 공중으로 붕 떠올랐던 레마겐 철교는 체조의 요정 코마네치처럼 다시 사뿐히 내려 앉더니 끄떡을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레마겐의 철교는 너무나 튼튼하게 지어졌다. 독일인 특유의 완벽주의를 웅변이라도 하듯.

노르망디상륙은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제1전선을 뚫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제 2전선은 어디인가. 라인강이다. 이 라인강의 마지막 하나 남은 레마겐의 철교로 연합군은 꾸역 꾸역 모여 들었다. 그리고 며칠동안에 수많은 군인과 병정들이 이들 통해 넘어갔다. 히틀러가 믿던 제2전선 천연의 요새가 다름아닌 바로 독일인들 그자신의 완벽주의로 인하여 허망하게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16일후 그 레마겐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성급해진 연합군들의 지나친 과적사용으로 인하여 그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레마겐의 철교는 붕괴되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권리이기라도 한듯 17명의 귀중한 생명도 함께 앗아가고 만다.

폭파담당 5인조중에 4사람은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로 히틀러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나머지 한사람은 역설적으로 연합군의 포로가 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얘기가 여기까지 오면 사람들은 의문이 들 것이다. 전황을 3개월정도로 단축시킬 정도로 중요한 전선이라면 폭파가 실패한 후에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다리를 폭파시킬수는 없었던가?

물론 히틀러는 최선을 다했다. 빛바랜 당시의 레마겐의 흑백사진을 보면 그 주위는 독일공군기의 폭격으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사방에 우물이 패여 있었다. 그런데도 끝끝내 레마겐의 철교는 무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우연히 2차대전때 공군조종사로 참여했던 독일인 할아버지 댁에서 그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야 폭격을 하라고 보내겠지만, 이미 전황도 기울어진 상황에서 조종사는 조종사대로 몸을 사리게 되는거지. 독일의 흐릿한 날씨때문에 밑이 전혀 안보이는 구름위에서 대충 배당된 폭탄을 마구 써버리고는 줄행랑을 치는거야, 그러니 맞출 턱이 있나"

나는 그렇다면 구름밑으로 내려오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연합군 포성능이 좀 좋아,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간 당장 격추되고 말지"

해답을 얻은 나는 흥미가 당겨 레마겐의 철교를 직접 방문했다. 그 철교는 지금 다리부분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 양쪽 기둥은 남아 있었다. 그 중 한기둥은 속을 파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2차대전을 겪은 사람들에게 레마겐의 명성이 자자한 것을 이용해 당시 다리의 잔해 파편을 모아 때돈을 벌어보겠다고 만들어 놓은 갖가지 상품들이 다 진열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서 구입한 자료를 통해 나는 뜻밖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 레마겐의 명성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작자들중엔 영화업자도 있었다. 그들이 1968년에 만든 "The Bridge at Remagen"이라는 영화는 지금도 그해 만들어진 몇안되는 수작에 꼽힌다.

그런데 영화업자들이 이 레마겐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고 굳게 결심했을 때 최대의 걸림돌은 그 현장을 어떻게 재현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럽지역을 샅샅이 살펴 본 결과 당시 주위 지형을 비롯해서 레마겐의 철교과 거의 흡사한 곳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그 장소가 하필 동구권의 체코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당시는 두브체크대통령이 집권해서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 두브체크 대통령은 흔쾌히 영화촬영을 허용했다.
이렇게 되자 영화제작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전후 처음으로 연합군의 탱크와 각종물자, 심지어 비행기가 철의 장막을 넘어가게 된다.

벌써부터 두브체크정권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든지 혹은 실제로 이에 위협을 느꼈든 간에 처음에는 주시만 하던 소련과 동독의 반응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동독의 신문은 1면에 대문짝만하게 미제탱크와 비행기들의 사진을 싣고는 영화를 찍는다는 미명아래 미국 CIA가 개입하여 부브체크정권을 지원하기 위한 군수물자들을 사회주의조국인민들의 코앞으로 실어나르고 있다고 집중성토했다.

두브체크정권을 노리고 있던 소련은 이 영화제작을 자신들의 명분쌓기로 십분활용한다. 즉 이 영화는 프라하의 봄을 짓밟기 위해 소련제 탱크가 체코에 진입하는데 한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던 그 프라하의 봄이 어떤 봄이던가. 동독을 비판하고 서독에 넘어와서는 서독까지 비판했던, 동서독 어느체제에도 만족할 수 없었던, 68학생운동세대들의 환상에도 동의할 수 없었던 독일의 작가, 고향을 상실한 우베 욘존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그 선택된 고향의 봄이 그렇게 짓밟히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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