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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설 이자의 알바 오디세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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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3-05 23:59 조회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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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른쪽으로 내고 왼쪽으로 가져가기

​여느날과 같이 학생 직업중개소를 찾아 갔다. 한동안 할 만한 일이 없어 전전긍긍 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케이터링 회사에서 서빙할 학생들을 구하고 있었다. 사실, 그 전에도 식당의 서빙자리는 종종 있었지만 언어로 인해 그냥 고민만 하다 그만두곤 했다. 이때까지 했던 일은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이었지만 서빙은 말도 곧잘 해야 된다는 생각에 어쩐지 소극적인 나로서는 어눌한 독일어로 지원하기가 꺼려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일도 없고 더 기다릴 수도 없어 큰 맘먹고 프론트로 가서 지원의사를 밝혔다. 직원은 종이하나를 주며 이곳으로 찾아가라고 했고 일단 간단한 면접후에 채용이 되면, 일을 할 때마다 고용계약서를 갖다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자택겸 사무실로 쓰고 있는 한 아파트 였는데 (독일식 연립주택의 한 가정집) 서른 남짓의 젊은 사장이 나를 맞아 주었다. 본인 역시 서비스업계에서 서빙으로 시작해서 'Ober' (Oberkellner: 서빙책임자) 까지 하다가, 큰 케이터링 회사의 지점장으로 내가 있는 도시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서빙경력이 전혀 없어서 걱정했지만 열정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하며 채용해 주었다. 이 도시의 지점은 새로 생겨서 그런지 사장은 매우 열성적이었고, 그래서 직원들도 그러길 바라는 것인지 몰라도 시급도 일반 학생일 보다 5 마르크나 비싼 15 마르크였다. 대신, 시간이 유동적이어야 했고 2주일 교육 받는 것을 전제로 했다.

​교육은 보통 늦은 오후에서 저녁까지 두시간 가량 진행이 되었는데 사장의 사무실겸 집에서 이루어 졌다. 같이 교육을 받은 학생은 한 15 명쯤 이었다. 처음에는 인사하는 법과 주문 받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는 식탁을 차리는 법을 배웠다. 포크며 칼이며 종류도 많고 가짓수도 많은데 어느 순서로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유리잔의 용도와 놓을 장소등을 세심히도 배웠다 (사실, 지금은 포크와 칼은 바깥쪽에서 시작하고 디저트용은 머리맡에 있다는 것 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양식이 굉장히 서툴렀던 때고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아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만 음식을 먹던 나에게는 참으로 번거롭게 여겨졌고 잘 외워지지도 않았다. 와인병을 따는 것과 따르는 것도 배웠지만 여전히 잘 못한다. 그당시 배웠던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Menage' 인데, 실제로 당시에는 이말을 모르고 있었고 그 후로도 다른데서 별로 들어 본적이 없다. Menage 란 원래 프랑스 말이지만 독일말로는 식탁 한 가운데 놓여있는 소금, 후추, 기름등이 함께 담겨있는 통 또는 틀을 말한다. 사장이 Menage 를 어디에 놓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못 알아들었던 나는 사장에게 무슨 뜻이라고 되물었고, 사장의 친절한 설명에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식탁차리는 법이 익숙해지고 나니 음식을 내가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내가기 위해 요령껏 손과 팔뚝에 접시를 얻는다. 보통은 양손과 팔뚝에 균형을 잡아서 얹으면 작은 접시인 경우, 5-6의 접시를 동시에 나를 수 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접시는 손으로만 나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사실 살면서 그때까지 한번도 그런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팔뚝에도 접시를 얹어 옮긴다는 것이 작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독일 접시는 크고 무거워서 나에게는 아무리 애써도 세개이상 옮기기는 무리였다. 음식을 내가고 치우는 것도 규칙이 있었는데, 음식을 내려놓을 때는 손님의 오른쪽으로, 접시를 치울 때는 왼쪽에서 가져가야 한다. 보통은 한 식탁에서 다같이 식사가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치우는 것을 권장했다. 무엇보다, 식사가 끝나서 접시를 치웠어도 음료가 담긴 잔은 무엇이 담겨 있던 간에 설사 다 마시고 잔이 비어 있어도 손님이 일어나 집에 가기 전까지 절대 치우면 안된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보통 식당에서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2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처음으로 투입된 곳은 박람회 리셉션이었다. 리셉션이라 찬음식의 뷔페와 음료가 전부여서 서빙하는 것은 막상 어렵지 않았는데 전철에 문제가 있어 너무 늦게 도착을 한 것이었다. 행사장은 도시에서 주로 박람회만 하는 전용행사장이라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일행을 놓쳐 버린 나는 졸지에 사막의 미아꼴이 되어 버렸다. 출입구도 동마다 한두개도 아니고, 어느 동으로 들어갔는지 알수도 없었지만 아직 행사 한참 전이어서 문들은 모두 닫혀있었고, 사람들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당연히 핸디도 없을 때였으니 전화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행사장을 밖에서 돌며 사방팔방 경비원을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 약속 시간 보다 두시간 늦게 그들과 합류할 수가 있었다. 젊은 사장은 쿨하게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첫일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케이터링 서비스라는게 주로 맞춤형이기 때문에 큰 행사뿐만 아니라 개인파티에도 여러번 서빙을 하러 갔다. 복장은 늘 흰상의에 검정하의 였다. 한번은 옆도시의 큰 성에 파티를 한다하여 동원되어 간적이 있는데, 잘은 몰라도 아마 부잣집 결혼식이거나 생일파티였을 것이다. 그렇게 큰 성에서 다들 빼어입고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분주히 음식을 나르고, 샴페인을 쟁반에 담아 돌아다녔다. 부엌에 음료가 다 떨어지면 차에가서 가져와야 하는데 '식스팩' (1.5 리터짜리 6개) 을 네개씩 들고 오는 독일여자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6개짜리 한팩도 들기가 버거운데 저리 무거운 걸 척척 들다니. 하지만 나중에 많이들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독일사람들의 체력이 일반적으로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는 자정이 넘어 끝나서 뒷정리를 하니 꽤 늦은 시간이 되었고, 같이 일한 한 동료의 차를 네명이 타고 돌아가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나만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양갈래로 머리를 예쁘게 땋고 있던 독일인이 궁금했는지 나에대해 물었다. 내가 의대에 다니고 있다고 하자, 너 참 용감하구나 ("du bist ja tollkühn": tollkühn overbold 또는 foolhardy. 겁이 없구나) 하며 자긴 독일인이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독일어로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사실 더 어렵다. 차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길을 잘 모르는 운전수덕에 우리는 빠져나가는 길을 못 찾아서 결국 한시간을 고속도로에서 헤맨 뒤에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인 파티는 할 때는 주로 문앞에 'Geschlossene Gesellschaft (closed society)' 란 문구를 크게 써 놓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가끔은 그냥 서빙만이 아니라 'Kasse (음료/음식을 주문받으면 바로 돈을 받는 것으로 케이터링에서는 보통 음료만 돈을 받았다)'를 가지고 일했는데, 그러면 손님들이 음료수값외에 조금씩 팁을 주었다. 일반 식당에서는 (식당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날 받은 팁을 모아 나누어 갖는데, 우린 케이터링이라 그런지 사장이 그냥 각자 받은대로 다 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Kasse'를 가지고 일한 날은 시급보다 돈을 더 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조금 곤혹스러운 일이었는데, 무엇보다 나에게는 독일어 중 숫자가 제일 어렵다. 그냥 말하는건 괜찮은데, 머리로 계산하고 독일어로 동시에 내뱉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한동안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말은 숫자를 뒤집어 읽어 더 그런지 (예를 들어 23 이면, 한국식으로 직역하여 3과 그리고 20 이렇게 뒤의 숫자 부터 말한다) 한참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는 뭔가 혼선이 자주 생겼다. 이런 파티를 주최하는 사람도 그런 파티에 오는 사람들도 다 부유한 사람들이어서 팁을 주는 것도 보통은 관대한 편이었다.

​사장은 처음 지사장이 되어 그런지 의기가 충천하여 여기저기 일을 많이 가져왔는데 그래서 내가 사는 도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까지 일하러 가는 일이 종종 있었고, 물론 숙식과 차비가 제공되었다.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모두 서양영화의 한장면에서처럼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작은 손가방에 뾰쪽구두를 신고 향수의 향기를 뿌리며 턱시도를 멋지게 입은 신사의 팔짱을 끼고 들어 왔다. 그런 파티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무슨 정치인들이 모이는 파티였는데, 당시에 유명한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다 모인 자리였다. 티비에서나 보는 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축하공연으로는 나는 이름을 몰랐지만 독일에서 유명하다는 가수들이 나왔다. 우리는 파티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침에 가서 식탁을 차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광이 나게 닦고, 유리잔에 지문이 없는지 밑둥을 잡아 불에 비추어 확인하고 시작전 부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곤 저녁 어스름에 그 큰 박람회장이 꽉 차기 시작하고 알수 없는 독일 음악이 행사장을 진동시켰으며 주문이 들어오고 정신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큰 행사에는 여기 케이터링 회사 뿐 아니라 다른 회사도 투입되었고, 일반 식당과 마찬가지로 일인당 당담하는 식탁이 정해져 있었다. 음식을 내면서 부터는 정신이 없었지만 무사히 식탁들을 치우고, 와인을 주문 받기 시작했다. 금색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은 한 부인이 고급와인을 시켰고, 그녀의 금색 손가방도 식탁위에 놓여 있었다. 보통 와인병에는 천으로 병목을 감아 놓는데 잔에 따르고 나서 흐르는 방울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다. 또 와인 방울이 다른 곳에 떨어지거나 병을 따라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잔에 따르고 마지막에 병을 돌리라고 가르쳐 주었고 와인병을 잡아서 따를 때는 병의 배가 아니라 병바닥에 있는 홈에 손가락을 넣어 병 바닥을 잡고 따르라고 가르쳐 주었지만 사실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때까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금색 부인이 주문한 와인을 들고 식탁으로가서 와인병을 따서 잔에 따르고 병을 일으키는 순간, 와인 한방울이 천천히 하얀 식탁보에 떨어 졌다. 순간 좀 당황했지만 뭐, 큰일이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금색부인이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냐고' 소리치며 Ober 를 불러오라 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으로 너무도 당황한 나는 사색이 되어 부엌으로 들어갔고 다행히 사장의 얼굴을 보았다. 그날은 중요한 날이라 사장도 함께 일하고 있었다. 사장은 나의 얘기를 듣더니 괜찮다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자기가 가서 말하겠다고 부엌을 나갔다. 나역시 정신이 나갔지만 다른 식탁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을 가라 앉히지도 못한채 부엌문을 나서야 했다. 파티는 새벽이 훨씬 지나 끝나서 그날 우리는 15 시간 정도를 쉼없이 일했다. 그날도 Kasse 를 갖고 일해서, 후한 팁퍼들 덕에 (팁으로 한 손님에게 50 마르크를 받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날 일당과 팁을 합쳐 오백 마르크가 넘는 돈을 벌게 되었다 (당시 내가 살던 기숙사의 한달 월세는 180 마르크 였다).

​하지만 케이터링 서빙은 좀더 안정적인 알바를 구하면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정치인 파티 후로도 몇번 크고 작은 파티에서 서빙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바래져서 그때의 일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와인방울과 오십마르크'의 얘기만는 잊혀지지 않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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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begegnung님의 댓글

begegnung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 제 전문분야 이야기라 더더욱 재미나게 읽었네요. ㅎㅎ 사실 요즘은 음식 오른쪽 서빙 왼쪽에서 치우기가 잘 지켜지지 않아요. 더더욱 요새는 이쪽에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보니 우선 전문적으로 안배워도 데려다가 가르쳐서 쓰는 추세이기도 하고 ㅎㅎ 사실 옛날에 비하면 서비스 예절이 많이 지켜지지 않는게 사실이죠. 워리벨로 인해 아추비들은 일을 배우는 등 마는 둥 하다가 그냥 학교시험만 통과하면 또 전문성은 빠진 어엿한 코미가 되서 일하니 ㅎㅎ 요즘은 미술렝가도 켈르너는 막 전문성 제대로 갖춘 사람 찾기 힘들어요 ㅠ


52Hz님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가 가끔 식당 가면 다 마셨다고 술잔가져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순간, 집에 가란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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