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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유학일기 시험끝나고 심심해서 쓰는 이번학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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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30에다시시작하는학부생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7건 조회 3,400회 작성일 20-02-19 12:31

본문

이번 학기는 꽤 힘들었다. 오랜만에 학사 공부를 다시 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공부에 잘 적응하지도 못했고, 우중충한 독일 겨울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한국과 상당히 다른 독일의 인간관계에도 낯설다는 기분을 많이 느꼈다.

내가 기대를 잔뜩 품고 학교에 가서 강의실에 들어가자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정상 입학식에는 가지 못해서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그냥 구석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자 독일 대학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들어갔던 것은 Vorlesung이었고, Vorlesung이 아닌 세미나나 문제풀이 수업, 컴퓨터 실습 수업에서는 클래스를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는 비교적 소수 인원이었는데 대략 20명을 조금 넘는 인원이었다.

며칠동안은 그렇게 구석에 박혀 지내면서 다른 아이들을 탐색(?)하는 시간을 보냈다. Vorlesung은 너무 인원이 많아서 그러지 못했지만 소규모 수업은 비교적 빠르게 학급을 파악할 수 있었다. 20명이 조금 넘는 인원 중에서 외국인은 나 포함 5명, 소속 국적은 베트남 2명, 인도네시아 1명, 나, 에콰도르 친구 1명이었다. 베트남 친구는 다른 수업과 전공에서 철저히 베트남 아이들끼리 그룹을 만들며 다니고 있었고, 다른 독일인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다(나는 이 친구들이 독일어를 쓰는 것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친구는 수업을 어려워하다가 1주일만에 그만두었고, 에콰도르 친구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끼리 몰려다녔다.

그나마 에콰도르 친구가 수업에서는 혼자였기에 나랑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 친구랑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보고, 그 친구와 친한 러시아, 스페인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벌써 그룹을 이루고 자기들끼리 친해진 독일 애들 사이에서도 많은 교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에콰도르 친구하고 이야기를 해보니까, 그 친구는 독일 애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가 김나지움까지 총 독일에서 6년을 살았지만, 결론은 독일인들과 친해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며,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들을 알아보거나 외국인들끼리 친해지라고 조언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한국에서 했던 대학 생활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신촌에 위치했기 때문에 대학이 상당히 많이 밀집해 있었고 주변 대학과 내 대학 모두 유명한 외국어학당을 가지고 있어서 외국인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쉬운 환경이었지만, 나는 그 환경에서 외국인 친구 한 명을 사귀지 못했다. 그리고 수업에서도 교환학생이나, 아니면 교환학생이 아닌 정식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쉬웠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들과 전혀 교류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독일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를까 싶었다.

어쨌든 용기를 내서 한 수업에서 일부러 독일인들 사이에 끼어서 앉으며 그들에게 말을 열심히 걸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어느 정도 친분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물론 착각이었다). 그리고 한 수업에서 두명이 함께 조를 만들라는 말에 나는 용기를 내서 몇명 있지도 않은 여자애 가운데 우연히 내 옆자리에 있던 여자애한테 같은 조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딱 잘라 거절당할 각오를 했지만 생각보다 순순히 승낙해주었다(나중에 얘랑 같은 조를 한 것을 조금 후회했지만)..

그런데 독일 친구들과 어느 정도 인사를 하고 다니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학교에서 나는 상당히 겉도는 존재였다. 한두달이 지나자 Vorlesung에서는 학생들이 우수수 빠져서 절반 조금 넘는 인원만 수업을 들어오게 되었고, 자리가 상당히 많이 남아돌게 되었지만 내 옆자리는 항상 모세의 기적과 같이 휑하니 비어있었다. 내가 일부러 수업에 일찍 가서 명당(?) 한복판을 맡아놓으면, 그 명당을 중심으로 휑하니 비어버리는 사태가 빈번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엄청나게 아는 척을 했다. 그 아는 척을 위해서 열심히 예습하고 공부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아는척을 하면 별로 안좋게 보는 시선이 많지만, 여기는 그렇게라도 해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몇몇 독일 아이들이 말도 걸어주고 수업 내용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 과정이 두달 정도 쌓이자 이제 내가 명당을 차지하면 두번에 한번정도는 휑하게 비는 것이 아니라 몇몇 독일 애들이 옆자리에 앉기도 하고 말도 어느 정도 걸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갔다. 그래봤자 내 옆자리에 있기만 할 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도 대다수 외국인들은 그룹을 지어 몰려다니며 독일인들과 인사도 하지 않기에,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학기를 보내면서 약간 내가 느꼈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독일 애들은 나에게 수학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때는 정말 못하는 것 같은데, 왜 과제 제출 성적을 보면 거의 항상 만점에 가까울까? 내가 보기엔 과제가 상당히 어려워서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정말 이상했다. 물론 과제가 성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기에(일정 점수만 넘으면 시험을 볼 자격만 주는 방식), 나는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얘네들이 배우는 속도가 진짜 엄청난 천재들인건가? 교수가 보여준 과제 점수분포표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정답률 95%~100%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이상한 분포였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제를 해도 정답률 80%중반에서 왔다갔다하는 거의 꼴찌였다. 그래서 정말 그 때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나중에 시험 직전이 되어서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독일 애들은 단체 왓츠앱 채널을 개설해서 자기들끼리 정답지랑 족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된 것은, Vorlesung은 같이 들어가지만 세미나랑 문제풀이 수업은 다른 클래스에 속하는, 어쩌다 알게 된 독일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친구가 그 왓츠앱 채널에 있는 족보 문제를 나보고 풀어달라고 하면서 족보가 쌓인 클라우드 링크를 나에게 보내면서였다.

어쨌든 1월이 되면서 프로그래밍 과제가 점점 쌓이게 되고 앞서 조를 만든 수업에서는 발표를 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맨날 결석해서 학교를 그만둔 줄 알았던 어떤 독일 여자애가 나한테 연락이 온 것이다. 프로그래밍 과제가 다음날까지 제출이었는데, 자기는 만들지 못하겠다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너랑 친한 척 하던 다른 애들한테 부탁하지 왜 인사도 안받아주던 나에게 그러는거냐?" 그런데 그렇게 말해서 싸워봐야 좋을 게 없으므로, 일단 프로그램을 나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보내주었는데, 완전히 미완성에 가까웠던지라 나로서는 당장 다음날까지는 완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제 기한은 교수가 두 달을 주었던 데다가, 분량도 엄청나서 최소 1주일은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다음날이 발표일이기도 했고, 나는 그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미안해.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없어." 라고 하면서 거절했는데, 결국 그 여자애는 다음부터 나에게 말을 걸지도 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발표일에는 더더욱 화나는 일이 발생했다. 오후 1시 10분에 발표를 해야 했는데, 그래서 오전 11시에 만나서 미리 사전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조였던 여자애가 12시 40분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12시 40분이 넘어서야 나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아파서 발표 못오겠다는 연락이었다. 병원 진단서 이미 끊어놨으니까 못가겠다 미안하다. 이런 내용이었다. 조금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지만 결국 혼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아프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그 여자애는 한 일주일간 결석한 후에 다시 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꼰대같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직접 대면하고 사과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먼저 인사해도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평소 같이 다니는 독일 남자애들이랑 깔깔거리며 잘 웃고 다니면서 내 인사는 들은척도 안하고 무시할 때 솔직히 너무 화가 났지만, 화를 내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시험과 한 학기가 최종적으로 끝났고, 나는 인사하던 독일 애들한테 시험 잘 봤는지 안부문자라도 몇 개 보내봤지만, 얘네들은 다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휴가를 즐기러 떠났는지 읽지도 않는다. 내가 그래서 어제 슬픈 마음에 에콰도르 친구에게 전화해서 "네 말이 맞았구나" 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했다.
추천5

댓글목록

Potsdamer님의 댓글

Potsdamer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학기 마무리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뭔가 유학초기때가 생각이 나서 뭉클하네요.
다행히 저는 2~3학기 지나가면서 친하게된 독일 친구가 한명 생겼고, 족보라던지 그룹 과제같은걸 그 친구과 그친구의 친구들과 하면서 잘 넘겼습니다.
어디든 좋은사람 한명정도는 있을테니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돌아오는게 없어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세요.
응원하겠습니다.

좋은마음님의 댓글

좋은마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많이 서럽고 힘드셨을 것 같아요. 감정 이입 하면서 읽었는데, 고구마 백개는 먹은 것 같아요. ㅠㅜ 나중에,, 사이다 소식 들리면 또 글남겨주세요...
학기 잘 마치신것 축하드리며 응원합니다

Eleven011님의 댓글

Eleven011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생 많으셨어요~ 뭔가 제가 학교에서 느낀거랑 많이 비슷하네요. 여기도 똑같이 독일애들 따로 이민출신애들 따로 유학온 애들 따로 다녀요. 스페인이랑 라틴은 자기네끼리 그룹지어 다니는데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더라구요. 자기 언어로 외국애들이랑 빨리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ㅎㅎ 암튼 독일애들도 보면 자기 그룹 말고는 서로 아는체도 안하고 뒤에서 욕하고 하는데 꼭 중학교 같습니다..ㅎㅎ

나만님의 댓글

나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일애들은 어렸을때부터 같이 놀던 소꼽친구이거나 초중고를 같이 나온 친구가 아니라 그저 대학에서 만난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절대 안 봅니다. 그냥 왜 우리도 독일에선 눈 마주치면 길거리에서 인사하듯이 약간 그런 인간관계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 상처받을 필요는 없죠. 우리네 정서론 섭섭하겠지만.. 사실 입맛도 초딩같죠. 고기나 소세지 좋아하고, 군것질 좋아하고, 우리나라 밑반찬이나 그런 건 일반인들은 절대 못 먹죠. 이젠 뭐 그런게 안쓰러울 지경이에요. 얘들은 결국 이런식으로 좁은 세상밖에 못 본다고 생각하는.. 우리 어르신들도 하긴 한식말곤 다른 것 못 먹으시니 비슷하려나요.

30에다시시작하는학부생활님의 댓글의 댓글

30에다시시작하는학부생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입맛은 저도 독일인과 비슷해서 여기에서 음식은 고생 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타국에 너무너무 관심이 없고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 세계사의 중심국인 유럽국과 세계사의 변방국 한국이 대등한 인지도를 가질 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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