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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유학생의 애환이 담긴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이자의 알바 오디세이 3   

25개의 객실.

여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대부분 칩거하며 학교와 집을 찍었다. 그동안 조금 번 돈으로 어찌어찌 꾸려나갔는데 이제는 방학도 되니 다음 학기를 위해서라도 일을 하러 가야했다. 다시 중개소를 찾아갔다. 매일 찾아가 봐야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방학에 일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많으니까 차례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 헛탕치고 아침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전광판에 호텔에서 하우스 키핑 (Zimmermädchen) 을 구한다는 광고가 떳다. 비지니스 호텔이지만 사성호텔이라 규모도 꽤 크고 위치도 제법 관광지에 자리잡고 있어 교통도 편했다. 일을 고를 처지가 아니므로 써주기만 한다면야 고마운 마음으로 일을 할 작정이었으므로 차례가 이자까지 오기를 기도했다.

여름이라 휴가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자리가 많이 나서 다행히 이자한테 까지 순서가 왔다. 중개소에서 공시한 임금은 일반 학생일과는 다르게 방하나에 5 마르크. 뭐 그래도 괜찮다 싶어서 다음날 중개소에서 준 서류를 들고 호텔을 찾아갔다. 무지하게 더운 여름날이다. 아침에 8시에 가보니 책임자가 나와서 일에 대해 대강 설명해주고 유니폼을 준다. 그리고는 일을 가르쳐 주기위해 멘토어 (Mentor) 를 한명 붙여 주었다.

첫날은 그분을 따라 다니며 청소하는 것을 배웠다. 이자는 원래 게을러서, 청소하지 않기 위해 '안 어지르는 주의'인데, 그래서 항상 물건이랑 늘 그냥 그자리에 있다. 어쩔 때는 어지러져 있거나 먼지가 쌓여 있어도 '안 보여요' 라는 모토 아래 장님 흉내를 내며 모르는 척, 안보이는 척 한다. 그러니 운동도 안 해서 체력도 없는 이자에서 호텔 방 청소란 여간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호텔방들이 크진 않았지만 일단 청소기만 돌려도 손가락이 아팠다.

힘든 부분중 하나는 시트를 깔아 끼우는 일이었는데 멘토어 분이 시범을 보여주실 때는 2분도 채 되지 않아 침대 시트를 바꾸고 정리하는 것이 끝났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리 간단한게 아니었다. 일딴 침대시트를 벗기고 다시 새시트를 침대위에 쫙 펼친 다음 네 모서리 안에 접어 넣어야 하는데 네 모서리가 잘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때 매트리스를 살짝 들어야 하는데 양손으로 시트를 접는데 뭘로 매트리스를 드나? 어깨로 살짝 받치거나 한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접어서 넣어야 하거 나다. 어깨로 살짝 받칠 때 매트리스가 너무 들려 미리 접어넣어둔 모서리에서 시트가 빠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다 접어 넣은 다음에는 침대위에 구김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을 시에는 주름이 펴지도록 다시 잘 잡아당겨서 매트리스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다음에는 베갯잇을 갈고.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다음은 이불보를 갈아야 하는데 일단 헌이불보를 벗긴다음 새이불보를 뒤집어 이불보와 이불의 맨 위의 두 모서리가 맞게 한꺼번에 잡은 다음 그 상태로 이불과 이불보를 아주 세차게 흔들어 펴준다. 그럼 신기한게도 이불보가 다시 뒤집어 지면서 이불이 이불보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맨 아래면를 잡고 털어주면 끝나기 때문에 금방 끝나지만, 대신 이불을 털때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는것. 일단 키가 작아서 높은 데에 올라가지 않고 이불보가 밑에 까지 씌어지도록 털 수가 없고 그러자니 수평으로 이불이 쫙 펴지도록 털어야 하는데 역시 역부족이다. 한번 하고 나면 팔이 빠질 것 같다. 결국 두번에 못 끝내고 여러번 하는 수밖에 없으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에는 화장실 청소. 이것은 조금 즐거운 부분이었다. 욕조나 세면대에 달린 수도꼭지나 샤워기를 반짝반짝 하게 닦는게 좋았다. 세제를 뿌리고 물로 헹구어 낸 다음 마른 수건으로 싹 닦으면 새 것처럼 반짝반짝 광이났다. 반짝반짝. 어쩐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졌다. 지금도 집에서 욕실청소를 하고나서 반짝반짝해긴 수도꼭지를 보면 마치 혼자만의 비법으로 광나게 청소한 기분이 들어 흐뭇하다.

이렇게 방을 하나하나 청소하는 건 하나씩 해치우는 느낌이라 나름대로 기분이 괜찮은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는 것이었다. 다른 분들은 아침 8시에 오셔서 낮 두시가 되면 혼자서 객실 25개 정도를 섭렵하시는데 이자는 방하나에 한시간. 8시간 다 일 해도 8개 밖에 끝내지를 못했다. 문제는 시급이 아닌 성과로 임금이 지급된다는 점. 처음 일주일은 드는 힘에 비해 청소하는 방 갯수가 너무 적어서 그냥 힘들기만 했다. 다행히 이번 일은 한달 동안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계속계속 노력하니 계약이 끝날 무렵에는 15-18 개 정도를 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날은 더워 매일 일이 끝나면 땀벅벅이 되어 새앙쥐 꼴이 되었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하우스 키핑의 재미있는 점은 손님들이 짐을 챙겨 호텔을 떠날 때 수고비로 팁을 조금씩 주고 가는 것이 었는데 보통 1마르크를 책상위에 (Nachttisch) 두고 갔다.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당시 아직 화폐가 유로화로 통일되기 전이어서 유럽나라마다 고유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자주 외국돈들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독일에서 쓸 수도 없는 외국돈을 두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마르크를 받는 것보다 외국동전을 모으는게 이자에게는 더 재미있었다. 그 소중한 동전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다른 동전들과 함께 아직도 책장위의 네모난 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요즘은 다른나라 라고 해봐야 유럽연합안에서는 전부 유로화를 쓰니 동전을 모을 것도 없지만, 처음 유로화로 통일되고 나서 얼마안가 동전 뒤면 (앞면?) 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새 동전을 받을 때마다 뒷면을 본다. 그리고 또 모은다.

처음에 독일에 온 겨울에 김포공항에서 중량초과라고 1킬로당 달러로 계산해서 어마어마한 추가요금까지 내고 비행기에 실었던 이민 가방 하나가 공항 여직원의 실수로 제곳에 오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가는 불상사가 있었다. 되지도 않는 독일말로, 다행히 어떤 분이 도와주셔서 분실신고를 한 덕에 3일에 지난 후에 이자가 머무는 곳에 도착했을 때 짐을 가지고 오신 택배기사분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자기가 외국동전을 모으는데 있으면 좀 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하나도 줄 수 없어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곳이기 때문에 가져온 동전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가본 한국에는 지폐가 바뀌어져 있었다. 색은 더 진해지고 크기는 더 작아진것 같았다. 어쩐지 어려서 가지고 놀던 '브루마블' 에 나오는 놀이돈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낯설었다. 버스도 이제는 길 양쪽이 아니라 중앙에 버스 정거장이 있다고 했다. 노선표도 다 바뀌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제는 그 예전처럼 맘대로 혼자 돌아다닐 수도 없을 것 같다.

​이자는 그 후로 어딜가든 매일 아침 고마움의 표시로 1유로를 호텔 방 책상위에 놓아둔다. 한동안 출장을 다닐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으레껏 동전을 따로 챙겨서 날마다 놓아두게 되었다 (식당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이자의 지갑은 늘 텅 비워져 있는데 음식값은 거의 카드로 지불하지만, 식당가기 전에 동전은 넉넉하게 따로 챙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편에). 한번은 뱅쿠버로 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에 1달러를 두고 저녁에 들어 왔는데 돈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돈대신 쪽지가 놓여 있었다.
'미스 이자,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에도 저희 호텔을 이용해 주세요' 라고.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돈이 놓여 있던 자리에는 다른 내용의 쪽지들이 남겨져 있었다. 뱅쿠버의 5일은 그렇게 저녁마다 놓여진 쪽지를 읽는 재미까지 여러모로 잊지 못하는 여행이 되었다.
 
 
나도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1 (월) 15:23 7개월전 추천추천 1
동전이야기도 흥미롭게 잘 읽었구요,
 
'이불보 갈기'를 아직 안 해보았거나
바르게 하지 못하는 분들께는 직접 해 볼 수 있는 실용성 있는 글이라
추천을 꾸욱 눌렀습니다.

다음글이 많이 기다려 지네요.
이자님, 건강하시고 계속경험담을 글로 올려 주세요.

 
 
신태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09 (토) 01:02 7개월전
마르크 쓰던 시절 이야기라니 신기하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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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0 (일) 21:29 7개월전
잼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상상 안가요, 언제 마르크 쓰던 그런 시절이 있었나....하고요. 참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이 참 빠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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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1 (월) 15:23 7개월전
베플로 선택된 게시물입니다.
동전이야기도 흥미롭게 잘 읽었구요,
 
'이불보 갈기'를 아직 안 해보았거나
바르게 하지 못하는 분들께는 직접 해 볼 수 있는 실용성 있는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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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님, 건강하시고 계속경험담을 글로 올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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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1 (월) 21:50 7개월전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몇 편이 남아 있는데 열심히 써서 올려 보겠습니다. 나도향님도 건강하시고 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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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v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4 (목) 00:08 7개월전
청소하기 싫은 저를 딱 묘사하신 거 같네요. ^^
힘든 객실들 청소...
내집 치우는 거야 부담없이 형편대로 하면 되지만, 아니면 말아도 되고.

추억의 보따리, 오랜 만에 재미있게 다시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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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7 (일) 07:27 7개월전
저도 청소하기 싫어해요, 요리할 때도 막상 음식 만드는 건 좋아하는 데 먹고 치우는 건 싫어해서 식기 세척기 없을 땐 어떻게 살았나....싶네요 ㅋ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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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v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4 (목) 00:13 7개월전
새 이불보 씌우는 거, 상상력 부족으로 이해가 잘 안 되네요...

호텔이불로도 가능한지 모르지만 이런 쉬운 방식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Svt1QWFY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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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7 (일) 07:29 7개월전
글재주가 없어서 딱 묘사하기가 힘들었어요, 근처에 계시면 한번 제가 보여드렸을 텐데 ㅎ
올려 주신 동영상을 보니 정말 간단하네요. 두꺼운 이불로도 될것 같은데 담에 집에서 한번 해봐야 겠어요., 좋은 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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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4 (목) 01:39 7개월전
얼마 전 집에 있던 동전들을 정리하다 보니 독일 마르크화가 몇 개 있었습니다. 참 아련하네요, 이런 게 아직도 집에 있다니... 글 참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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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Hz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9-03-17 (일) 07:33 7개월전
'아련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말씀이네요. 어쩔 때 어제 일처럼 느껴지다 가도 또 어쩔 땐 평소 땐 잊고 살아서 그런지 마치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더라고요. 살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되니까 조 아쉬운 맘이 들어서 더 많이 잊어버리기 전에 하나하나씩 기록해 두려고요.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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