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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유학생의 애환이 담긴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이자의 집 구하기 오디세이 6   

6. 끝과 시작
오늘도 착찹한 마음으로 공중전화부스에서 나왔다. 아직 이른 오후였지만 어쩐지 밀려오는 피곤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옯겼다. 어쩐지 몸이 무겁다. 집주인은 오늘 오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일찍 가도 되겠지…..다행히 여름의 해가 따스하게 내려쬐고 있다. 공사장에서 촛불을 켠지도 이제 꽤 지났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생각과는 다르게 집주인이 이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친구중에 학생기숙사에 사는 사람이 있는데 며칠전에 초대를 받아 놀러갔는데 거기에 기숙사의 학생자치회 회장도 와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자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회장이 기숙사에 빈방이 있으니 보러오라고 했다며 내일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이자는 물끄러미 집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생기숙사가 있다는 것은 이자도 알고 있고 집세가 저렴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기숙사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학생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과, 어학원생도 입주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곳이나 저렴한 집세로 지원자가 넘쳐났다. 이자는 독일에 온지 한달만에 학원을 그만두어서 지금은 학원생도 아니라서 사실 지원대상이 아니지만 어차피 학원은 다시 다녀야 하니까 얼마전에 어학원생을 받아주는 기숙사에 신청서를 넣어두었다...그런사정을 다 얘긴한 것 같은데 어학원생도 아니고 학생만 받아주는 기숙사를 보러 가자고 하니…….역시 이자의 독일어가 참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자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는데 이자의 말이 어눌한건지, 이자의 얘기를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괜찮다며 내일 가보자고 한다. 학생회장에게도 다 말해놓았다며 자꾸 가자고 하는 바람에, 이자의 말을 이해못했구나……..어차피 가 보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될 테니…….. 말도 안 통하는 데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가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집주인과 함께 학생기숙사를 가게되었다. 지금가는 학생 기숙사는 전쟁전에 유럽의 교통중심지라고 불리울 만큼 번화한 곳이라고 했는데 이자가 독일에 오기 한 10년전에 도시의 새로운 번화가로 다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 공사는 이자가 독일에 온지 한 10여년 후까지 계속되어 그 곳을 지나갈 때마나 ‘비놀리아 공법 (예전에 한국에서 ‘아직도 그대로네’ 하는 문구로 시작했던 비누광고)’ 이라고 이자가 스스로 부르곤 했다 (언제가 독일의 모 주간지에서 세계의 최대 공사장으로 마이클잭슨의 얼굴과 이곳을 소개한 적도 있었다.). 기숙사는 그 번화가 뒤에 선로를 끼고 있었는데 기숙사 바로 앞에 새 전철역을 만들고 있어 기숙사방문에서 전철역까지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기숙사 건물은 성냥갑을 세워둔 모양으로 볼품이 없었고 외벽도 칙칙한 회색에 노란색을 칠한 창틀이 보기 흉하게 눈에 띄었다. 그런 건물들이 몇동이나 앞뒤로 늘어져 있었다. 작게는 5층 높게는 8층의 건물들이었고, 건물의 입구마다 가지각색의 낙서와 누런 세월의 때로 군데군데 하얀색을 보이는 우체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한가지 좋아 보인 건 지하철 입구에 제일 가까운 건물 땅층에 대형 수퍼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 일대를 공사한지 10년이 지나 이미 오피스텔이나 쇼핑센터가 들어서 있어 근처에 수퍼나 상점은 충분히 있었지만, 기숙사 아래, 방에서 2-3분 거리에 바로 수퍼가 있다는 정말 큰 장점이었다.

집주인과 같이 들어간 곳은 기숙사건물 중에도 제일 높은 8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독일에 와서 이자가 처음으로 엘레베이터를 본 건물이었다. 엘레베이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복도가 나 있었고, 복도의 오른쪽과 왼쪽으로 빨간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먼저 자치회의 회장이라는 사람의 방으로 갔다. 회장의 방은 복도의 맨 끝에 있었는데 벨을 누르니 상당한 몸집의 독일사람이 반갑게 문을 열며 맞아 주었다. 기숙사 학생회 회장이라고는 하지만 학생이라기 보다는 평생직업이 학생인것 같은 중년의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였는데 역시 비슷한 또래의, 역시 학생인 여자친구과 같이 살고 있었다. 집주인과는 친한 사이인것처럼 여러가지 사적인 얘기를 주고 받는 것같이 보였고 회장의 여자친구도 웃으며 이자와 집주인을 반겨주었다. 이자를 보며 학생회장이 한국에서 왔냐며, 자기는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자는 조금 놀랐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마나 전쟁이 나서 분단된 불쌍한 나라, 이민 일세대 분들을 보고 성실한 사람들 이라는게 전부였고, 그것도 한국사람들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 얘기일 뿐, 당시에는 한국사람들과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었고 (이민자나 유학생도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적었으므로)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솔직이 좀 특이한 일이지만 실제로 이자가 만난 독일 사람들 가운데 Südkorea 라는 나라를 모르고 어디에 있는 나라냐, 아프리카에 있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자치회 회장도 한국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듯 하다.
           
대강 인사를 하고 방을 보여주겠다며 성큼성큼 앞장을 서 갔다. 도착한 방은 복도의 맨 앞에 엘레베이테에 가장 가까이 놓인 방이었는데 일인실로 방 크기는 작았지만, 원룸의 형식으로 샤워시설에 있는 화장실이 방안에 따로 있었고, 방 한쪽에 작은 냉장고와 수납장, 그리고 요리가 가능한 부엌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침대, 옷장, 책상 등이 전부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천국이었지만……….이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방이 마음에 들 수록 그냥 한숨만 나왔다. 여기에 살 수 없는 아쉬움, 그리고 어쩐지 의사소통이 안되어 이자덕에 쓸데없이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회장이 방이 마음에 드냐고 물어 본다. 이제 제대로 잘 얘기를 해 줄때가 왔구나…..하며 이자는 어제 밤에 준비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려고 노력했다. 회장은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방이 맘에 드냐는 말만 몇번 물어보고, 그리니까 방은 아주 맘에 들지만 이자는 여기 들어올수 없다는 얘기를 다시 하려하니, 방이 맘에 들면 사무실에 연락해주겠다며, 일주일만 있으면 월초가 되니까 지금부터 당장 있을 수 있을거라고 하며, 부지런히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사태가 점점 커지는데 어쩐지 번지는 불을 보며 안타까와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꼴이 되어 마음으로 발발 동동 구르고 있는데 회장이 다시 오더니, 사무실에 얘길 해 두었으니 낼 10시 가서 계약서를 쓰면 된다고 하며 담당자 이름과 사무실 주소를 가르쳐 준다.  집 주인은 잘 되었다고 축하해 주었지만 이자는 마음이 돌덩이가 되어 자꾸 가라앉는것 같았다. 이사람들은 이자의 말을 못 알아듣는것 같고, 아마 이자같은 외국인이 아니니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낼 사무실에 가서 해명할 일이 큰일 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말 가기가 싫었지만 신경써서 도와 준 사람들 생각에 쓴소리 들을 각오를 하고 기숙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노크를 하고 머뭇머뭇 들어가 담당자 이름을 대니 사무실에 두 줄로 나란히 놓인 책상들 중 맨 뒤에 앉은 푸근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며 이리 오라고 한다.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하나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회장에게 얘기들었다면서 월초가 얼마안남았으니 그때 까지 그냥 방에 있었도 된다며, 집세는 다음 달 부터 지불하라고 한다. 그리곤 책상위에 놓인 서류를 열심히 작성하더니 개인 정보를 적으라고 서류를 이자쪽으로 돌려준다. 서류의 서두를 보니 계약서라는 말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이름을 적기 전에 사실을 얘기하려고 하니 여권을 달라며 여권을 받아들곤 자리에서 일어나 복사기로 갔다. 아주머니가 복사하는 동안 일단 이름과 다른 정보를 적고 돌아오면 얘기를 해야지 생각했는데 자리에 오자마자 계약서를 가져가 훍어보더니 비어있는 학생등록번호란에 어떤 숫자를 적었 넣는다. 그리고는 사인을 하라고 한다. 이제 더 머뭇거릴 수가 없어서 이자는 아직 학생이 아니다, 이제 어학을 시작해서 학생이 되려고 한다 하니, 회장한테 얘기들어 다 알고 있다며 이제 금방 학생이 될거니까 괜찮다고 한다……………………...............

독일에 와서 교포친구들에게 비타민 베 (Vit. B: B 는 Beziehung 의 첫자를 말한다, 비타민 B가 몸에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는 것을 빗대 Beziehung 도 삶에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쓰인다) 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이 회장은 사무실 사람들과 아주 친한 관계인가 보다. 있지도 않는 학생등록번호까지 만들어 주다니……역시 비타민 베는 어디든지 통하는 구나…………어릴 적에 독일에 꼭 와야하는 동경으로 10여년을 기다리며 독일에 왔을때는 정말 별천지에 온 줄 알만큼 무지했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괴리를 느끼지 않을거라고 믿을만큼 바보스러웠다. 하지만 독일에 온지 일년이 지나 사람이 사는데는 어디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밑둥을 잘라내 뿌리를 내리는 곳을 찾아야 한다면, 어느나라, 어느 도시가 아니라, 좋은 날시, 맛난 음식,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이제는 아마 독일에 뼈를 묻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서양에 뿌려지고 싶지만). 

몇년 전에 이사를 하게 되어 새 집을 알아보는 중에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집을 보게 되었다. 사진이라곤 외관만 알아볼 수 있는 건물사진 한장이 다 였지만, 동네는 좀 외곽이지만 조용하고, 녹지대도 많아 살기는 좋은 곳이었다. 일단 내부라도 보고 싶어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이자에게 직원이 하는 말이, 집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지원자도 많아서 어차피 방을 봐도 소용이 없을거라 하며 약속을 잡아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자가 그래도 보는 것 할 수 있지 않냐며 계속 보채니, 하는 말이, 이자는 외국인이니까 집을 받기가 어려울 거다, 거기는 외국인이 거의 살지 않는다 (도시에서 나름 부촌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하며 솔직히 얘기해 주었다. 사무실에서 자꾸 그러니까 이자도 쓸데없는 오기가 생겨 사정하다시피 하여 집을 보게 되었다. 독일집이지만 집구조가 쓸모없는 공간 없이 잘 분리되어 있었고 발코니의 정경도 맘에 들어 집을 보여 준 관리자에게 지원서를 한장 달라하여 집에 돌아오자 마자 작성해서 사무실에 팩스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에서 이자가 외국인이지만 신용도 있고 괜찮은 것 같으니 (당시의 이자는 지역에서 이름은 번드르르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이자에게 집을 주겠다며 전화가 오는 웃지도 못할 일이 있었다.  직장동료들 중 이자와 같은 경험은 한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C-Effekt’ 라 부르며 (C: 직장이름이 C 로 시작해서) 씁쓸해 했다.

어째든 이자는 너무나도 운이 좋게 회장님 덕분에, 아니 많은 사람들 도움으로 기숙사를, 그것도 학생기숙사를 구했다. 독일땅에 발을 내딛은 지 거의 8개월만 구한 이자만의 방이었다. 그 후로 6개월 지나 이자는 가짜 학생등록번호가 아닌 진짜 학생등록번호를 가지게 되었다. 좁고 보잘 것 없는 방이었지만 그곳에서 많은 생각과 꿈을 키우며 소중한 시간들을 보냈고, 이렇게 술한잔을 기울이는 날이면 다시돌아 갈 수 없는 그 방에 남겨놓은 그 시간들을 그리워 한다. 기숙사를 소개시켜준 집주인이나 회장 그리고 사무실 아주머니가 사실을 다 알고 있었고 오해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열쇠를 받았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바로 이민가방 두개를 기숙사로 옯겼다. 다음날 중도에 다니다 말던 어학원도 다시 다니려고 수강신청도 했다. 이자의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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