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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일기·수필·문학 - 유학 일기 외에 사는 이야기 혹은 직접 쓴 시와 소설을 게재하는 곳입니다.

시소설 이자의 집 구하기 오디세이 5

페이지 정보

작성자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8건 조회 2,412회 작성일 18-04-16 23:56

본문

5. 지붕얹은 공사장
독일의 여름은 아름답다. 특별히 어디에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둡고 음산한, 지루하게 긴 날들이 독일의 여름을 아름답게 한다. 오늘도 여름의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근처 공원에 앉아 신문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하늘이 파랗다. 친구 선배의 기숙사에 들어 온지 며칠이 지났다. 하루의 일과는 주로 신문을 들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신문을 덮는 것으로 끝났다. 여전히 갈 수 있는 집은 없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여긴 전화해볼까……한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빨간 볼펜으로 몇번이고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다음 집은…….임대 광고를 찬찬히 읽어가며 전화할 집을 몇개 골랐다. 동그라미가 그려진 집들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대부분은 이미 방이 나갔다는 대답 뿐이었다.   
 
오후가 되니 전에 며칠 신세를 진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저녁에 친구들과 놀러가는데 같이 가겠냐고 한다. 이자는 조금 망설였지만 혼자 있지 말고 같이 가자고 한다. 말이 저녁이지, 밤 10시가 되어서야 어느 나이트 클럽앞에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트 클럽은 한국에서 두번 가보았는데, 한번은 대학2년때 과동기들과 함께 강남역에서 좀 유명하다는 곳과, 대학3년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묵고 있던 호텔 나이트가 전부였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간 나이트는 한국에서 가 본 데와는 다르게 무지하게 좁고, 테이블도 등받이가 없는 의자와 같이 구석에 몇개 있을 뿐이었다. 연기가 자욱한 너구리 굴에 시끄러운 음악과 움직일 공간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에 모여 음악에 맞추어 흐느적 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손목에 도장을 받은 것이었다. 도장을 보여주면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 올 수 있다고 했다. 이자는 몸이 무거워서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몇 안되는 남은 사람들과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벌써 무대 한 가운데로 사라졌다. 옆에 앉은 사람이 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었는데 마는 담배도 처음 봤지만, 말아 피는게 담배만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자는 한 동안 사람들이 춤추는 걸 지켜보다가 조금 지루해져 밖으로 빠져 나왔다. 얼마쯤 지나니 같이 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온 사람들 중에 몇몇은 자동차를 타고 왔는데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얼추 클럽 앞에 모이니 다 같이 자동차로 가자고 한다. 차에 가보니 맥주 몇박스가 트렁크 안에 있었다. 클럽 안에서 사 마시는 건 비싸니까 이렇게 사 가지고 온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술을 마시면서 여기저기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 김에 친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자의 얘기를 해 주었다. 얘기를 듣던 다른 친구가 하는 말이,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이제 독립을 하려고 집을 얻었는데, 너무 오래된 집이라 내부공사를 해야해서 공사하는 두달 간은 어차피 빈 집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집주인이 공사를 해주지 않는대신, 두달  집세는 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자기는 낮에 와서 손질만 하고 가니까 원하면 와 있어도 좋다고 한다, 집세는 어차피 낼 필요가 없으니. 가구는 없지만 간이 침대가 있으니 잠은 잘 수 있을꺼라고 한다.
집세를 내지 않고 두달간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이자는 귀가 솔깃했다. 친구의 선배집도 이자한테는 집세의 부담이 없지만, 이자때문에 그 선배는 전기며 부대비용을 내야하는게 이자에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 집은 집을 내주는 사람도 두 달간 집세며 부대비용을 낼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당장 결정을 못하고 조금 생각해 보고 싶다고 그 사람의 연락처를 받았다. 새벽에 집에 들어와 뒤척이며 생각해 보니 선배한테 신세지는 것보다 다른 집으로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을 거고 , 심적 부담도 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어차피 해뜨면 밖에 나가 있을테니 서로 별로 부딪칠 일은 없겠지……. 공사하려고 다 뜯어내서 말이 아니라고 했지만, 뭐 그렇게 심각하려고………… 머리만 누이면 된다………………..이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날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선배네 집을 나와 다시 이민가방을 옯겼다. 이제 가려는 집은 이 도시에서 제일 번화한 쇼핑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에 (백년쯤 되었다고 했지만, 조금 믿기 어려웠다, 이 도시는 전쟁때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어져 집세는 굉장히 싸다고 했다. 전철을 내려 걸어가는 길에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상점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소위 명품이라고 말하는 가게들도 있다. 이런 번화가에 그렇게 낡은 집이 있다는 것이 상상이 안됐다. 쇼핑거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집에 도착 해보니 외관상으로는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보니 반층마다 (층사이) 계단에 아주 좁은 문이 있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집이 말이 아니라고 했던 얘기와 집주인이 집세를 안 받는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바닥이며 벽이며 죄다 띁어져 있었고 당연히 여기 저기 공구가 널려 있고, 뜯어진 벽과 바닥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다. 거실과 침실이 하나씩 있었는데 방마다 청녹색의 예쁜 석탄 난로가 놓여 있어 옛날 집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하지만 불행이도 전구는 달려 있지 않았다. 그나마 전기는 들어 오고 있어서 부엌에서 커피는 끓일 수가 있었고, 전자레인지도 공구들을 올려 놓은 간이 책상에 놓여 있었다. 침실에는 주로 자재들과 공사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거실에는 그래도 접이식 간이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냥 창고 같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는 공사일 거라고는 미쳐 생각을 못했다. 독일에서는 이사나갈 때 벽에 새로 페인트 칠을 한다거나 망가진 것을 고쳐 놓아야 한다고 사람들한테 들은 것처럼 그냥 그정도거니 하고 생각했던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한마디로 공사장에 간이 침대를 놓고 그냥 지붕을 얹은 꼴이었다. 집을 보여 주며, 겸연쩍어 하며 이래도 괜찮겠냐고 물어 봤지만, 이미 이민 가방을 들고 왔고, 조금 많이 불편해도 이러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에, 이자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여름이라 해가 긴게 그마나 다행이었다. 낮에는 밖에서 보내면 되지만 저녁에 해가 지면 불을 못 켜니, 해가 떨어지면 그냥 자거나 촛불을 켰다. 해가 다시 뜨면 도서관이나 공원으로 출근을 했다. 잠을 못 드는 밤에 촛불을 켤 때마다  ‘기차도 전기도 없없다’는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라고 하는 ‘요람기 (오영수)’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도 제일 심각한 것은 화장실이었는 데 집세가 유독이 싼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집들에는 외부화장실 (Außenklo) 이 있는 곳이 종종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욕실은 집에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화장실은 집을 나가 계단에 있었다 (앞서 말한 반층마다 있는 계단의 좁은 문). 화장실이라고 해도 한 사람이 겨우 앉은 수 있을 만한 공간에 변기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소리를 들으며 한가하게 볼일 보기도 힘들다).
어쩔 때는 친구들이 피자를 들고 찾아 와 주었다. 촛불을 켜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은 나름 운치있는 일이었다.  날이 밝으면 또 다시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고 공중전화로 가 전화를 걸어 보고 그렇게 계속 시간은 흘러 갔고 공사장에 사는 것도 그렇게 차츰 익숙해져 갔다.
추천4

댓글목록

먹통님의 댓글

먹통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술술 읽히는 이자의 집 구하기 오디세이, 오늘도 술술 잘 읽고 갑니다.

볼일보고 씻고 하는게 무엇보다 고역이었겠네요. 변변한 수납장도, 책상도 없는 생활이라니...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겠습니다.

52Hz님의 댓글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관심을 갖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장실은 좀 그랬죠. 불편함을 좀 주려 보려고 주로 새벽이나 늦은 밤을 이용했어요 ㅎ
하지만 세탁물을 들고 빨래방에 가는 것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근처에 빨래방이 없어 버스를 타고 가야 했었거든요.
이제 이자의 집구하기 오디세이도 막바지에 이릅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요 ^^

미니양님의 댓글

미니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화장실이 안에 있었고,
낮에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방을 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집 주인께서 윗층에 살고 저는 아래층에 살던 구조였는데,
주인께서는 항상 밤에만 들어오시니 집세를 내는 날에 200유로 집세를 내고
꿀꿀한 마음에 밖에 나가보면 
하늘의 별들이 제게 쏟아지는 환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생이라고 하는데 제게는 추억이었고요,
그런 추억을 다시 할 수 있다면 (똑같은 집에 사는 것만 빼고)
400유로(200*2)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무엇이 될지 엄청 궁금합니다.
잼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52Hz님의 댓글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하늘의 별들이 제게 쏟아지는 환상' 이란게 상상이 갑니다.
기꺼이 할 수 있는 고생이고 지난 후에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 볼 수 있는 고생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할수 있다는 마음에 동감합니다. 나중에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가는 날까지 열심히 가야겠죠. 같이 열심히 가봐요 ^^

Freude님의 댓글

Freud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재미있게 잘 앍고 있습니다. 집구하는데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었다니.. 힘든 시간이었었겠네요. 이젠 과거가 되어버려 다행일까요..?!^^
다음 내용이 궁금하네요~~^^

52Hz님의 댓글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마 힘들었겠죠 ^^ 사실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 ^^ 다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돌아 갈 곳도 주저 앉을 곳도 없어 어떻게든 나아가야한다는 마음과 그래서 불안했던 마음만이 남아 있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여기 남아있다는게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Hannnnn님의 댓글

Hannnnn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매번 너무 즐겁게 잘 읽고 있어요! 브런치 등 외부서비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글이라고 생각해요.

52Hz님의 댓글의 댓글

52Hz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사합니다. 세상엔 그렇게 좋은 사람들도 있는데 어려울 때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께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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